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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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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평화는 ‘현역’에 있다

등록 2006-06-24 00:00 수정 2020-05-03 04:24

생소리 소극장 ‘EBS 스페이스’와 걸출한 베이시스트 송홍섭의 만남…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삐삐밴드, 그런 건 다 ‘내 과거’고…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가끔 ‘삑사리’가 날지라도 음반보다 공연장이 음악의 실체에 가깝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공연장에 가는 횟수는 줄어만 간다. 열에 한 번만 당해도 나머지 아홉의 감동을 제압해버리는 ‘준비 부족’. 그것이 주는 허탈감 때문만은 아니다. 체조 경기는 물론 전당대회, K1리그까지 두루 소화해내는 다목적 체육관의 3% 부족한 소리들이 가끔 돈과 시간의 본전을 떠올리게 한다. 고층 빌딩의 로비에서 열리는 기업 주최의 간이 음악회나 지하철 역내의 납작한 복도에서 울리는 노인 브라스밴드의 소리가 그 취지만큼 아름답지 못한 것도 비슷한 이치다.

십수년간 고인 ‘자아’를 털어낸 2집

서울 도곡동의 교육방송 사옥에 위치한 스튜디오 소극장 ‘EBS 스페이스’의 공연 일정표를 꼬박꼬박 챙기는 건 다 그런데 이유가 있다. 98평에 151석의 객석이 마련된 이 공간은 대중음악 가운데에서도 재즈 중심의 어쿠스틱 공연에 초점을 맞춰 설계됐다. 대형 록 공연처럼 충분한 음량을 얻진 못하지만, 연주자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객석에 앉아보면 악기의 생소리가 들려온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시간 반씩 열리는 무료 공연의 평균 당첨률은 11:1. 끝없는 인내 끝에 얻어낸 좌석이 가장자리여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 보기 드문 반원형 구조가 구석구석 소리를 뿌려준다. 6월5일부터 7일까지 날것의 느낌이 살아 있는 이 공연장과 알아주는 베이스 주자가 조우했다.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 시리즈 여덟번째로 송홍섭(52)이 이끄는 밴드가 초대됐다.

20살 가량의 실용음악과 새내기들과 연주하는 풍경은 독특하다. 1980년대에 정원영·한상원·유재하를 무대에 올리고, 90년대에 삐삐밴드와 유앤미블루를 만든 그가 2000년대에 선택한 젊은 사람들. 이들을 ‘스승과 제자’로 여기는 건 실수이자 실례다. 15일 공연의 앙코르 무대에서 선보인 5분가량의 드럼 독주 또한 ‘선생님의 배려’가 아니었다. “그날 드러머가 자기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 하겠다고 하더군요.” 공연 며칠 뒤 서울 망원동 녹음실에서 만난 그가 말한다. “가난해도 빛이 나야 하는데 요즘 음악인은 어딘가에 머물러 있어요. 자기가 잘 친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계산이 없는 순수한 연주자들을 찾다가 의사소통이 가능한 최저 선까지 내려오게 됐습니다.” 파트너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 가늠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이를 얻는 것도 매한가지다. 사랑과 평화,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 같은 아우라 넘치는 밴드에 몸담아온 이 베이시스트는 “‘7080’과 묶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 “그건 과거잖아요. 내 유일한 자랑이 오늘이 어제와 다를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는 점인데.”

한영애의 , 노사연의 등 수백 곡을 만든 그의 손은 ‘팔리는 노래’를 안다. ‘위대한 탄생’에서 나와 1980년대 후반부터 최고의 개런티를 받으며 프로듀서, 편곡자, 연주자로서 제작에 관여한 음반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한영애,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 박정운, 정경화, 어어부밴드, 임재범, god…, 여기서 멈추자. 그러나 그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겪었고, 병원에도 가게 됐다. 진화를 원한 음악인은 지난해부터 2집 녹음을 시작하면서 십수년간 고인 ‘자아’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남의 기록에 몰두한 세션맨은 앞으로 10여 년간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고 창작하고 기록할 예정이다.

2집은 꽉꽉 채우고 난 뒤 한 움큼 덜어낸 여백 같은 음반이다. 키보드도 없고, 콘셉트도 없고, “타당성이 부족한 요즘의 복잡한 소리”도 없다. 자로 잰 듯 하기보단 초가집처럼 단순하게, 붓글씨처럼 한 획을 긋듯이 음악을 하는 게 그의 스타일이라 옛 시절 단정하고 정확한 ‘사랑과 평화’에서 빠져나오게 됐지만, 결국 그때 익힌 ‘리듬’이 그의 영원한 잣대다. “육군본부 군악대 시절 악보를 잘보고 혼자 좋은 소리를 낼 줄은 아는데 합주를 잘 못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죠. 핵심은 ‘리듬’에 있어요.” 리듬이 악보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작곡가로 히트곡이 부진했던 80년대 어느 한해동안 악기의 손가락 번호까지 그린 치밀한 악보 칠판을 준비했던 그는 지금 단순함의 미학을 추구한다.

7월7일 대중음악 전용극장 ‘악스’에서 무대

송홍섭 밴드의 땅따먹기 놀이는 7월7일 서울 광진구의 대중음악 전용극장 ‘악스’에서 재현된다. 그 뒤 모든 콘셉트를 무장해제하고 클럽과 동해안에서 연주를 즐길 예정이다. 평생 끄떡없던 5시간 반의 수면시간이 부족해 낮잠을 청하는 나이가 된 그. 의사가 허락한 포도주와 소파에 굴러다니는 노자와 장자가 일상이다. “결벽증인지, 고전이 아니면 시간 낭비인 것 같아 읽지를 못해요.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서양 책은 읽기 어렵더군요. 장자는 요술 같은 책이에요. 문제에 부딪힐 때 아무 페이지나 열면 거기 답이 있어요. 음반에 도덕경 문구를 넣었더니 언론에서 감당 못할 만큼 질문을 해대는데, 제가 그런 환상 같은 사람은 아니고 그냥 한 권 반복해서 보는 거예요.” 1980년대 중반 조용필 팬인 어머니의 부록으로 딸려가 본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콘서트. 그때의 베이시스트가 오늘 눈앞에 서 있는 베이시스트다. ‘강약중간약’ 대신 ‘약강약강’을 끌어오는 펑키와 퓨전의 리듬. 롤러코스터, 빛과 소금, 봄여름가을겨울, 계속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린 그곳 ‘사랑과 평화’에 도달한다. 그리고 송홍섭은 그 때도 지금도 여전히 ‘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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