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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문화사회로 진로를 돌려라

등록 2006-07-27 00:00 수정 2020-05-03 04:24

한미 FTA와 신자유주의의 길에 대한 근본적 반성 여름호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모든 지면을 한미 FTA로 도배하는 의욕 과잉의 특집호를 맞아, 출판면도 ‘한미 FTA를 깨고 문화사회로’라는 구호를 외쳤던 여름호를 뒤늦게 돌아보기로 한다. 문화사회로의 전환은 이 90년대부터 꾸준히 모색해온 대안이다. 여름호는 한미 FTA 반대를 통해 문화사회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즉, 단순한 고발이 아니라 한미 FTA로 완결되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전환점을 제시한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지도를 그려보는 것. 이것이 지금 너무나 절실하다.

책의 특집은 1·2부로 나뉜다. 1부는 진보 학계와 노동계의 입장에서 한미 FTA를 다각도로 조망해보고, 2부는 문화사회를 이론적·실천적으로 검토한다. 1부에선 전규찬씨의 ‘자본의 결정, 정권의 선택’이 눈에 띈다. 전씨는 2001년부터 보도된 기사를 통해 정책결정자가 아닌 자본의 움직임을 살핀다. 그의 요지는 이것이다. “대통령이 2005년 들어 한미 FTA라는 카드를 선회할 때, 카드는 이미 누구의 손에 의해 테이블에 놓여 있었고, 일정 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담론화되고 있었다.” 전씨는 2001년부터 차근차근 한미 FTA 카드를 준비한 ‘보이지 않는 힘’ 한국과 미국의 자본을 추적한다. 한미 FTA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거대 자본과 이들의 ‘위원회’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글에 이어 초국적 금융자본의 야심과 의료·공공 서비스 부문의 협상 의제를 해부하는 글들도 읽어볼 만하다.

문화사회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2부 첫머리에 등장하는 문강형준씨의 ‘노동사회 비판과 문화사회의 이론적 지도’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문화사회는 프랑스 사회학자 고르가 사용해온 개념인데, 단순히 말하자면 문화가 삶의 중심 원리가 되는 사회이다. 근대는 임금노동이 모든 가치의 중심이 되는 ‘노동사회’를 탄생시켰다. 자동화와 정보화로 인해 ‘노동의 종말’이 예견되는 시대에, 노동사회의 패러다임이 지속되면 처절한 실업과 양극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문화사회는 늘어난 자유시간을 활용해 개인의 자율적 노동을 되살리는 사회다. 이것이 유토피아적 공상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시장과 정치 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 전략, 그리고 근대 노동 이데올로기의 해체가 필요하다.

문화사회는 한국 사회에 적용 가능한 대안이 될 것인가. 문강형준씨의 글에 이어 심광현씨는 생태문화사회로 가기 위한 지역적-전국적-국제적 네트워크를 제안하며, 그 계기로 한미 FTA에 반대하는 전국 300여 개 단체들의 연대체를 지적한다. ‘부안반핵민주항쟁’의 경험을 통해 생태문화사회의 가능성을 짚어보는 고길섶씨의 글은 한국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 ‘실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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