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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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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세계 접수하라, 케로케로케로로!

등록 2006-02-09 00:00 수정 2020-05-03 04:24

1998년 잡지만화로 시작해 극장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제작되는 ‘개구리 중사 케로로’…단순한 줄거리에 ‘오타쿠’스러운 취향으로 일본 이어 한국에서도 초대형 히트 예감

▣ 이명석/ 만화평론가

신년 벽두에 발행돼 곧바로 사라져버린 오천원짜리 신권 1억5천만 장은 누가 다 먹어치웠을까? 크리스마스와 밸런타인데이가 10대, 20대 시장의 시금석이라면, 세뱃돈의 축포가 터지는 설날은 유소년 시장의 나침반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주머니에서 빠닥빠닥한 신권을 건네받은 흥행의 고사리 손들이 간택한 올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유희왕>의 카드 데크? <해리 포터>의 마법 세트? 옆자리에 앉은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불빛 아동화가 키득거리며 웃고 있다. “게로게로게로, 이제 욘사마의 땅도 케로로 소대가 접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사노동에 맛들이는 외계인 미아

<개구리 중사 케로로>는 요시자키 미네가 월간 <소년 에이스>에 1998년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만화로, 근래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 만화계에서 모처럼의 초대형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원작만화의 인기는 다소 국지적이었으나, 건담 시리즈로 유명한 선라이즈에서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고, 곧바로 수백 종의 캐릭터 상품으로 초등학생에서부터 성인층까지 두루 공략하고 있으며, 오는 3월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또 한 번의 폭발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9월 투니버스를 통해 방영되기 시작해 곧바로 간판 작품이 되었고, 1개월 만에 네이버 검색어 순위 2위에 오르면서 하반기 최고 인기 애니메이션으로 등극했다. 아직 일본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지는 못하지만, 최근 용산 등의 피겨 모델 숍에서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캐릭터 상품 구입 열기가 끓어오르는 등 대형 작품으로서의 잠재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지구 침략에 나선 외계인 병사와 착한 지구인 소년의 만남’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내용을 설명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조금씩 틀어지는 구성들이 케로로의 복합적인 인기를 만들어낸다. 주인공 케로로는 케론성의 지구 침략을 위한 선봉 소대장으로 ‘퍼렁별’(이하 고유명사는 투니버스판 기준)을 밟게 됐는데, 어찌된 일인지 본대가 갑작스레 귀환하면서 우주 미아가 될 처지가 된다. 하는 수 없이 지구인 소년 우주의 집에 기식하게 된 케로로. 나름대로 침략의 전초기지를 만들었다고 선언하지만, 설거지나 청소 같은 가사노동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고, 짬짬이 취미생활인 건담 프라모델을 만드는 일로 시간을 때운다. 여기에 귀여운 눈망울의 소유자이지만 폭력적인 내면을 지닌 타마마 이등병, 군인의 본분에 충실한 기로로 하사, 도착적인 발명가에 재미주의자인 쿠루루 상사, 전향해 초록별을 지키려고 마음먹은 닌자 도로로 병장 등 별난 개성의 소대원들이 집결하면서 매회 예측할 수 없는 대소동을 펼친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는 분명히 초등학생을 주타깃으로 하고 있지만, 이 작품을 100% 이해하려면 다채로운 소양을 갖춰야 한다. 애초에 원작만화는 소년물이지만, 건담 등의 로봇 SF, UFO와 오컬트, <독수리 오형제>류의 전대물(주로 5명의 전사로 구성된 전투조직. 대개 조직 이름이 ‘~전대’로 끝나서 붙여진 이름), 프라모델과 수집광 테마까지 고루 섭렵한 ‘오타쿠 취향’의 작품이다. TV 애니메이션화 과정을 통해 섹시 코드를 줄이고 우정을 강조하며 초등학생용 버전으로 모서리를 다듬었지만,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각종 패러디들이 삽입돼 또 다른 복잡성을 만들어냈다.

100% 이해하려면 다채로운 소양이 필요

나는 <개구리 중사 케로로>를 ‘포스트 에반게리온 시대의 도라에몽’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1970년대 소년 만화의 정형을 만들어낸 <도라에몽>은 미래에서 날아온 선진 과학문명의 로봇이 평범한 소년 주인공의 친구가 되어 다채로운 모험을 선사한다. 깜짝 놀랄 만한 발명품이 매회 등장하고, 보통의 소년들이 꿈속에서나 그리던 일들(해저 탐험, 공룡과의 전투)을 벌이고, 그 내용의 상당수는 일탈과 금기(정답 연필, 투시 안경)에 접근하지만, 최고의 지고지순한 가치인 우정을 위반하지 않는다. <도라에몽>은 이렇게 확실한 초등학생 팬을 중심으로 기반을 다진 뒤에 전 연령층의 사랑을 받는 국민 만화가 되었다. 귀여운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캐릭터 상품을 판매해 원작의 수십 곱절을 넘는 부가 수익을 얻는 전략 역시 선구적이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는 <도라에몽>의 전략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고 있지만, 30년의 세월은 여기에 더욱 다채로운 양념을 치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21세기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전 시대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만들어놓은 규칙을 통째로 뒤흔든 혼돈의 땅이기 때문이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차용한 해저 탐사 장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따온 한별의 폭주 장면, <루팡 3세>와 <이니셜 D>를 복합적으로 패러디한 할머니댁 방문 장면….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도무지 그 의미를 알 수 없겠지만, 애니메이션을 창작하는 20·30대 크리에이터들은 이런 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즐거움에 몇 주간의 밤샘을 기쁨으로 여기고 같은 연령의 마니아들로부터 열광의 박수를 받는다. 화면 중간중간 군사용어식의 활자를 도발적으로 집어넣고, 감정의 증폭을 크게 하기 위해 불연속적인 연출을 하는 방법들도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의 경향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배후에는, 조카의 선물이라고 장난감을 사온 뒤에 더 열심히 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삼촌들이 앉아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은 조카들이 정말로 그 장난감을 사랑해주지 않으면 삼촌의 취미생활은 존속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변신 합체 로봇인 <개구리 중사 케로로>는 단순히 도라에몽에 에반게리온을 합한 것이 아니라, 동시대 아이들을 공략할 수 있는 복합적인 무기들을 장착하고 있다. 3살부터 인터넷을 하고 유치원 때부터 남녀 짝짓기로 눈물 흘리는 요즘 아이들에게 과거처럼 단순한 구도의 캐릭터들은 먹히지 않는다. 우유부단한 대장이지만 타고난 엔터테이너로서 오버하는 재능을 선보이는 케로로를 비롯해 모든 주인공들의 성격은 입체적이다. 그들의 행동에는 SF적인 황당함에 숙제나 가사노동 같은 처절한 생활감이 결합돼 있다. 개구리 병사들은 어른의 음흉함과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 사이에서 갈등하고, 서로 다른 성격의 대립은 전쟁을 불사하는 상황을 만들면서도 어처구니없이 천적 관계로 끝을 맺는다. 여차하면 대결 모드를 만들고, 이를 유행하는 경향의 게임으로 진전시키고, 등장인물들 사이의 주종 관계나 로맨스 관계를 복잡화하는 것도 현대의 초등학생들을 붙잡아두기 위한 전술들이다.

한국에 <개구리 중사 케로로>를 들여온 투니버스 쪽에서는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케로로의 2중대 역할을 할 마니아층의 국내 기반이 넓지 않다는 점도 그렇고, 국내 초등학생들이 작품을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한-일 간의 문화적 기반의 차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판은 평일 오후 4시대 방영을 메인으로 하고, 번역에서도 덜 윤리적이거나 마니악한 요소를 슬쩍 빨아낸 뒤 밋밋한 초등학생 버전을 만들어놓았다. 그럼에도 개성 강한 주인공들이 펼치는 탄탄한 이야기들이 호응을 얻으며 첫 번째 시즌의 방영을 마쳤고, 시즌2의 방영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에서는 원작만화의 에피소드를 소진한 상태이지만, 시즌3의 제작이 결정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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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음모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

모든 시대를 개척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그렇듯이, 케로로의 인기는 그 부모들에게 나름의 고민을 안겨주고 있는 듯하다. 귀여운 얼굴을 한 개구리가 여차하면 지구 정복을 운운하며 대규모 전투를 벌이는 정도는 부모 세대도 익히 경험한 수준이다. 케로로의 팬이 된 아이가 갑자기 건담 프라모델을 사달라면서 야기될 경제적인 문제에 신경을 쓰는 게 낫다. 그럼에도 정치적으로 눈에 걸리는 점은 케로로의 소대원들이 옛 일본군의 복장과 계급을 지닌 채 나타나 제국 해군기를 배경으로 거수 경례를 하는 장면일 것이다. ‘중사’라고 번역된 ‘군소’(軍曹) 역시 옛 일본의 하사관 계급의 하나다. 일본군에게 지배당한 국민의 아이가 그 군복 패션에 매료되는 상황이 달갑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케로로의 배후에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 같은 음모가 깔려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전반적인 개그 코드 중 하나는 복고풍의 촌스러움을 첨단 발명품과 대비시키는 것인데, 결국 소대원의 복장도 그런 구태의연함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나아가 케로로가 일본군이며 한국 침략에 나선 거라면, 부대장이 태업 속에 현지인과 우정을 쌓아버린 것은 다분히 반전평화의 테마를 담고 있지 않은가? 업무 착오로 타마마가 대장이 된 뒤, 독일군 복장을 한 채 독선적인 태도로 부대원을 하나둘 제거해나가다 외톨이가 되어버리는 에피소드는 파시즘에 대한 경고로도 보인다.



도로로 마스크와 질투구슬의 비밀

별 걸 다 아는 케로로 마니아 소사전

오리지널 주제곡: 국내 방영분에 대한 아쉬움이 적지 않지만, 가장 큰 아픔은 <파마머리 중사> <지구정복타령> 등 펑키하면서도 포스트모던한 주제가들을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1기 오프닝에는 화면과 상관없이 이런 가사들이 나온다. “카레를 했더니 밥을 안 했네/ 사먹는 게 싸다네 저녁 반찬/ 역에서 5분은 사실은 15분.”
<전차남>의 완전 소중 케로로: 드라마 <전차남>의 케로로 사랑이 지독해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 케로로 상품이 나온다. 스킨스쿠버 놀이 상대가 되어주는 것도 케로로, 창가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는 초록색 인형도 케로로, 애지중지하는 휴대전화 액세서리도 케로로, 에르메스와의 데이트를 준비하기 위해 시부야에 갈 때 입은 초록 팔에 노란 별 티셔츠도 케로로다.
그와 그녀의 비밀: 원작만화와 애니메이션 외에도 특별판 네 칸 만화와 대백과사전을 통해 주인공들의 배경 설정이 밝혀진다. 닌자 도로로가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이유는 고질적인 우주 천식 때문이다. 타마마의 비밀 병기는 세계의 질투를 모아놓은 질투구슬. 대재벌가의 딸인 나라가 비상시에 착용하는 슈퍼 아머는 2015년 발매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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