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기관차 같은 절대권력을 보여주는 <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고지훈 지음, 앨피 펴냄)에는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현대사’와 ‘웃음과 감동의 교차’는 결합하기 쉽지 않은 말들이다. 이 ‘교차’를 위해 지은이의 문장은 날아다닌다. 불쑥불쑥 엉뚱한 꺼내놓고 엉뚱한 가정을 하는가 하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비아냥대기도 한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재미있지만, 독설의 진정성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역사서도 가끔은 이렇게 놀아볼 필요가 있다.
책은 기자가 내키는 대로 하자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절대권력의 맞수 김구·조봉암·신익희·조병옥, 절대권력의 2인자 이기붕·김종필, 절대권력의 조력자 김용무·이인·오제도·선우종원, 전향의 세 가지 스펙트럼 양한모·류근일·김문수가 첫 번째 부분이다. 절대권력에 치이거나 부대끼거나. 이들의 보여주는 폭주기관차, 절대권력의 모습에 ‘웃음’의 요소가 숨어 있다. 그렇다면 북으로 간 사람들 박헌영·홍명희·문익환·임수경, 변혁의 불씨들 김주열·전태일·박종철은 ‘감동’의 요소다. 뭐니뭐니해도 재미있는 건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첫 번째 부분이 아니겠는가.
‘넘버2’ 이기붕의 인생은 얼마나 파란만장한가. 어머니의 교육열 덕분에 미국 유학을 갔지만, 돈이 없어서인지 이승만·조병희처럼 흔한 박사학위 한 장 못 따고 나이트클럽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다 능력 있는 아내 박마리아를 만난다. 서울로 돌아와 아내 덕분에 먹고살며, ‘물장사’도 좀 하다가, 아내의 뒷바라지 덕택에 이승만의 ‘주구’ 노릇을 충실히 한다. 이승만은 그래도 인파들의 인사를 받으며 하야했지만, 이기붕은 수면제를 먹고 아들의 총을 맞아 저승에 갔다. 그의 세 번째 자살 결심이었다. 해방기 법조인들 김용무·오제도 등은 한판의 코미디 활극 같은 해방기 법조계에서 ‘빨갱이’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한 증오심으로 똘똘 뭉쳤다. 특히 오제도는 법원 서기로 일하다 시험도 거치지 않고 미군정에 특채돼 빨갱이의 ‘섹스 매뉴얼’까지 선전했다.
지은이가 전향자의 세 가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고 말한 양한모·류근일·김문수는 유독 눈길을 끈다.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생존자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의 깊게 읽어봐야 할 대목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류근일은 반성할 좌익활동도 별반 없는 ‘봉건적 자유주의자’였을 뿐이다.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사상사건에 연루되곤 했던 그는 반성하듯 북한 비판 기사들을 써냈다. 반면 김문수는 성실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동운동가였지만, 생계와 가족을 위해 그 성실성을 보수에 내던진 ‘생계형 전향자’로 분석된다.
어떤가. 스멀스멀 웃음이 배어나오지 않는가. 지은이를 대신해 말하자면, 이 희극적인 사실들이 우리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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