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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만화로 본 ‘만화경’ 한국

등록 2005-09-09 00:00 수정 2020-05-03 04:24

일본인 ‘새댁’ 요코짱과 재일동포 2.5세 정구미씨의 한국 생활
좌충우돌하면서도 한-일의 차이를 따뜻하게 보듬는 ‘귀여운’ 만화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일본에서 나고 자란 여성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일본인 다가미 요코의 <새댁 요코짱의 한국살이>(작은씨앗 펴냄)와 재일동포 2.5세 정구미씨의 <한국·일본 이야기>(안그라픽스 펴냄)는 각각 한국에 시집온 일본 새댁의 눈으로,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유학생의 눈으로 본 한국과 일본의 작은 차이들을 만화로 그려냈다. 두 만화가 주는 첫 느낌은 한마디로 ‘귀여움’이다. 이들은 포복절도할 만한 실수를 연발하면서도 한국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이들이 현해탄을 건너와 발견한 차이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본 사람한테 돌을 던진다?

일본인 다가미 요코는 중국에서 유학 중 현재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일본어 교육 사이트인 일본어닷컴(www.ilbono.com)에서 강사로 일하며 한국살이의 경험을 만화로 그렸다. 이 만화가 인터넷상에서 인기를 끌자 책으로 펴냈다.

그의 만화에는 한-일의 역사 청산 같은 거창한 이야기 대신 한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소소한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독자들은 일본 며느리의 엉뚱한 행동에 웃음을 참을 수 없지만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대목도 많다. 그 돌발적인 실수담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한국의 버스는 늘 스릴을 주는 존재다. “기다리는 시간은 라이벌들과의 격한 경쟁! 타면 제트코스터보다 빠른 스피드! 스릴이 필요할 땐 바로 한국의 버스를 타자!” 운수 사납게 버스에서 가장 앞자리에 앉았을 땐 이런 말을 속으로 중얼거린다. “하나님… 내 인생도 이제 끝이네요.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있었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어. 크큭! 내리자!” 이 순간 그가 다짐한 것은 두 가지. 인생을 더욱 소중히 살 것과 절대 버스 맨 앞자리에 앉지 말 것.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차문 앞에 나와 있어야 하는 한국 버스에 적응돼 일본에 가서도 미리 일어서 있다가 기사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한다.

버스로 대표되는 한국의 ‘빨리 빨리 문화’가 다가미 요코에게는 신기하기만 하다. 식당에 앉자마자 요리가 나오는 것도, 건널목 신호등이 바뀌는 것도, 음식을 다 먹지도 않았는데 배달 그릇을 가지러 오는 것도…. 그는 공포의 존재, 한국 아줌마를 발견하기도 한다. “오늘도 그녀에게 졌어. 길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세다는 한국의 아줌마. 언젠가 이길 수 있는 날이 올까요?”

한국 생활이 모두 낯설고 무서운 것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일본인한테 돌을 던진다”고 들은 적 있던 다가미 요코. 막상 와보니 이런 정담들이 오고 간다. “어, 일본 사람? 반갑네. 한잔 드세요. …저도 일본에 가본 적 있거든요. 이 고기 좀 드세요.” 실제로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많은 법이다. 이렇게 그는 일본 친구가 아이들에게 정답게 대하는 한국 사람들을 칭찬했을 때,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버스 에어컨 때문에 덜덜 떨고 있을 때 웃옷을 벗어주는 옆자리 청년에게 따뜻함을 느끼기도 한다.

정구미씨의 <한국·일본 이야기>는 다가미 요코의 만화보다 ‘무겁다’. 유학 생활의 에피소드뿐 아니라 재일동포로서의 정체성 혼란이나 한-일의 역사 인식 문제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애초 그의 홈페이지(www.koomi.net)에 만화를 연재할 때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으나 출판 만화로 엮으면서 한-일간의 화해와 역사 문제를 새로 그려넣었다. 정구미씨는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출판만화에 새로 그려넣었다”고 말했다. 성격은 다르지만 다가미 요코와 마찬가지로 좌충우돌하는 캐릭터는 여전히 귀엽다.

재일동포 2.5세로서 한국을 더 깊게 알고 싶었던 정구미씨는 마침내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하기로 결심한다. 어릴 때 몇번 방문했던 스쳐지나듯 본 한국과 실제 살아본 한국은 많이 달랐다. “도서관에 가서 공부 좀 해라!”고 소리치는 한국 선생님을 보며 무서워서 울기도 하고, 아침 8시에 모이기로 하곤 11시에 출발하는 ‘코리안 타임’에 놀라기도 한다. “일본에서 한국 남자는 인기 있다고 하는데, 어떠냐?”라는 질문은 100번도 넘게 받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보여준 가장 소중한 것은 ‘정’이었다. 새벽이 지나도록 선후배가 어울려 즐겁게 노는 모습은 일본에선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 일본에서는 죽음의 이미지가 강한 국화꽃을 선물해 질겁하게 만드는 한국 남자 친구의 이야기가 슬며시 끼어든다.

만화는 뒷부분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더듬으며 재일동포 2.5세의 정체성을 말한다. 초등학교 시절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았던 기억, 일본의 피해만을 강조하는 역사 교육, 남한계 민족학교에 들어간 뒤 한국어를 잘 못해 부끄러웠던 기억, 일본이 타국을 침략했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이 미워!”라고 외쳤던 기억…. 정구미씨는 일본에서 자신을 ‘과일나라의 토마토’ 같은 존재라고 느낀다. 그리고 ‘우리’를 알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다.

재일동포, 과일나라의 토마토

그의 깨달음은 이런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일본의 장래를 짊어질 많은 젊은 사람들이 역사 문제에 대해 관심이 낮은 것이다.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일본을 만드는 사람은 일본 사람들이다. …나라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소중하게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청년들은 자기 나라뿐만 아니라 주변 나라들의 아픔도 알 필요가 있다. 역사는 혼자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년들이 역사를 모른다고 해서 비난하고 싶지만은 않다. 모른다고 하는 그 자체가 또 다른 역사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정구미씨는 앞으로 “만화를 통해 한-일간의 가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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