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북이…> 삽화 그린 김혜진씨가 말하는 우리 어린이책 출판의 문제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평생 주부로만 살 것인가.” 대한민국의 모든 주부들이 언젠가는 정면대결해야 할 이 무거운 질문을 어린이책 그림작가 김혜진(41)씨도 피해갈 수 없었다. 생물학을 전공하고 출판사를 다니던 김씨는 서른셋, 결혼하던 해에 일러스트레이션 학원에 등록했다. 중간에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가 백일이 되기 전에 다시 중단한 공부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그림의 꿈을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늦게 배운 만큼 어려움도 컸다. 3시간 이상 잠을 이어 자지 못하는 나날들이 많다. 하루 대부분을 아이의 스케줄에 맞추고, 아이가 잠든 다음에 작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애를 재우고 잠깐 졸다가 새벽에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다.
김씨는 최근 동화책 <깜북이 가방 안에 토끼발>(최인영 글, 문원 펴냄)의 삽화를 그렸다. 주인공 깜북이는 언제 어디에서나 팔다리를 거의 가만두지 않는 말썽꾸러기지만, 생명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순수한 아이다. 김씨는 특유의 정겨운 그림체로 깜북이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그려낸다. 읽다 보면 입가에 저절로 천진한 미소가 스며드는 소박하고 재치 있는 우리 동화다.
김씨가 말하는 어린이책 출판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우리 출판계는 어린이책에도 너무 유행을 타요. 다른 출판사가 내서 잘된 책이면 여기저기 비슷한 콘셉트로 책을 만들죠. 생활동화가 잘된다고 하면 우후죽순으로 생활동화 책이 나오는데, 그림체만 봐도 한두 사람이 그린 것처럼 비슷비슷하죠.” 외국 어린이책이 시장을 압도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 책은 짧은 준비 과정 때문에 내용이 얄팍한 것들이 많은데 외국 어린이책은 작가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자료를 수집해서 만들기 때문에 그만큼 깊이가 있다고 한다. 김씨가 아이를 위해 어린이책을 고르는 기준은 “내가 읽어서 재미있는” 책이다. 부모가 읽어 재미있으면 아이들도 좋아하게 마련이라고. 읽어보면 말도 안 되는 내용이거나 유행 따라 후다닥 기획한 책이 무엇인지, 작가가 진심을 다해 쓴 글이 무엇인지 감이 온다고 한다.
동화책은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김씨는 독자들에게 “글을 읽으면서 이 아이의 모습을 어떨까 상상해보고, 그림이 잘 맞는 것 같으면 웃어달라”고 부탁한다. 글에는 없는 아이의 행동이나 차림새가 그림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는 독자들이 이런 재미를 발견하기를 바랄 뿐이다.
김씨는 지금 자신의 그림책을 펴내는 꿈에 부풀어 있다. 글에 그림이 종속되는 동화책보다는 그림이 주가 되는 그림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읽힐 만한 좋은 책을 만들 계획이냐고 묻자 “그러기엔 아직 실력이 달린다”라고 말하며 머쓱하게 웃는다. 그러면서도 아이 자랑(?)은 빼놓지 않는다. 태어나서부터 엄마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자라서 스케치북을 하루에 한권 채울 정도로 ‘밥 먹듯’ 그린다고. 그가 꼭 남겨달라고 한 말은 이것이다. “며칠씩 잠 못자고 아이를 키우며 그림 그리는 이 땅의 어머니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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