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로 인한 트러블 또는 성적 지루함, 섹스리스 커플들의 말못할 고민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결혼한 지 9년이 된 직장인 정아무개(36)씨는 최근 ‘커다란 숙제’를 풀었다. 몇달 전부터 잠자리에서 아내가 이유 없이 그를 ‘밀어내는’ 일이 빈번해졌다. 안정적인 맞벌이에, 아이도 잘 크고, 그 밖의 생활 스트레스도 거의 없는데 말이다. 아내는 딱히 거절하는 건 아니지만, 잠이 부족하다고 돌아눕거나 잡지나 책을 읽거나 자꾸 딴 얘기를 꺼내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었다. 작정을 하고 ‘매달리면’ 처음에는 응하다가 분위기가 오를 즈음 버럭 화를 내는 일도 생겼다. 성관계 텀이 점점 길어져, 한달에 한번 하기도 어렵게 됐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성적 매력’이 줄어든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러다 아내에게 ‘딴 남자’가 생겼다는 의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데 아내에게서는 특별한 징후가 발견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소한 행동에 정이 떨어지더라
사소한 일에 투닥대다 급기야 아파트가 떠나가라 목소리 높이는 일도 잦아졌다. 위기감을 느낀 정씨는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몇 차례 면담을 하고 내켜하지 않는 아내를 끌고 커플 면담도 한 끝에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 어이가 없었다. 너무도 단순한 것이었다. 아내의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는 그의 잠자리 애무 습관이 문제였던 것이다. 아내는 남편을 몹시 사랑하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이 자신을 ‘물건’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져 성욕은 물론 자존심이 크게 상한다고 했다. 남편이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자 사소한 행동에도 정이 떨어지더라고 했다.
정씨는 그동안 아내가 그런 애무 방법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성관계를 서둘렀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아내는 젖꼭지 당기는 게 아프고 싫어서 절차를 건너뛰었던 것이다. 9년을 살 비비고 살면서도 동상이몽을 했던 셈이다. 아내에게 왜 진작에 말 안 했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당신이 그걸 즐기는 것 같아 가급적 참아보려 했다”고 답했다. 서로 지나치게 배려한 게 문제였다. 문제는 배려하는 만큼 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상대에게 자신감이 결여돼 있었거나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뒤 정씨 부부는 서로 좋아하는 애무 방법을 얘기하고 시도해가며 훨씬 따뜻하고 활기찬 성생활을 하게 됐다고 한다.
오랫동안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부부나 커플 가운데, 깊이 사랑하고 특별한 불만이 없는데도 성관계를 아예 하지 않거나 대단히 드물게 하는 이들이 있다. ‘섹스리스 커플’이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얘기도 있고 여가생활이 발달하면서 성생활의 비중이 낮아졌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해석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말 못한 고민들’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
결혼한 지 15년 된 40대 중반의 ㅅ씨 부부는 자타가 공인하는 ‘동지적 커플’이다. 이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는 꼭 남매 같고 친구 같아서 손만 잡고 잔다”고 말하곤 했다. 성생활 말고도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면서, 성적 갈등으로 고민하는 주위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기도 했다. 그런 이들에게 ‘사단’이 생겼다. 아내인 ㅅ씨가 바람이 난 것이다. ㅅ씨는 우연히 만난, 남편보다 나이도 많고 사회적 지위도 높지 않은 한 남성과 불타는 사랑을 하게 됐고 이혼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ㅅ씨의 주장은 이것이었다. “성생활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건 위선이었다. 난 행복을 찾을 권리가 있다.” 뒤늦게 ‘성에 눈뜬’ 아내를 위해 ‘동지적 남편’은 각고의 노력을 해봤지만,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풀 수는 없었다. 남편은 울며 겨자먹기로 아내의 ‘외도’를 지켜봐야 했다.
성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라
섹스는 잘되면 아무 문제가 아니지만, 잘 안 되면 모든 문제가 되는 특성이 있다. 섹스 만족도가 낮은 이들은 자기 몸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게 마련이다. 몸 이미지가 나쁘면 자아 이미지도 훼손된다. 자아 이미지가 훼손되면 자아 존중감이 낮아지고, 자아 존중감이 낮으면 대인관계나 성취동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삶이 일그러지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도 그려진다. 성적 장애나, 특정 경험에 따른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이 섹스리스의 원인이라면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3월 초 문을 연 서울 강남 청담마리산부인과 부설 성 건강센터는 의학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생활 치료·상담기관이다. 이곳을 찾아온 첫 번째 내담자는 결혼한 지 3년 된 여성이었다. 그는 극심한 성교통(성관계 때 생기는 통증) 때문에 단 한 차례도 성생활을 하지 못했다. 수소문해도 산부인과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한 산부인과를 찾았더니 의사는 특별한 조치 없이 그의 질내에 검진 기구를 넣었다. 몸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그는 3일간 출혈을 했다. 뒤늦게 그가 사연을 털어놓자 “치료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는 지나치게 억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성에 대한 호기심마저 부도덕한 짓으로 여기며 성장했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무성적 존재로 만들었다. 결혼 전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결혼 뒤 성관계를 시도하며 지옥에 떨어진 심정이 됐다. 이 여성은 무리한 성관계 시도에 앞서 성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게 우선이다.
한 부부의 사례는 남편쪽의 트라우마가 원인이었다. 남편이 도통 섹스를 하려 하지 않아, 아내쪽에서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됐다. 남편에겐 아내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사연이 있었다. 그가 어릴 때 일찍 혼자 된 어머니가 남자를 집안에 들였다. 어머니와 남자는 밤마다 숨죽여 성관계를 했고 이불 아래서 들려오는 억눌린 소리는 잠든 척하고 있던 그를 괴롭혔다. 그는 남자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고 한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아내와 섹스를 할 때면 그때 상황이 떠오른다고 한다. 특히 아내가 잠자리에서 말을 하거나 섹스 도중에 신음소리를 내면 그때 일이 생생히 오버랩돼, 순간 멈춰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성 건강센터의 유외숙 상담실장은 “성인의 60∼70%는 크고 작은 성적 갈등을 경험한 일이 있다고 한다”면서 “그런데 성인을 상대로 한 각종 기관은 외과시술이나 정신치료로 갈려 있어 갈 곳 없이 속앓이만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오럴섹스를 하고 싶은데 아내에게 요구하지 못해 다른 여자를 찾곤 했다는 남성은 ‘성적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례였다. 그는 아내에게 요구할 수 있다는 상담자의 얘기에 “그런 짓을 해달라고 하면 아내가 가장인 나를 존경하겠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 문득 남편과의 잠자리가 싫어져 애 핑계로 성관계를 거부했던 여성은 처음부터 성관계가 좋았던 적이 없었던, 욕구장애를 지닌 여성이었다. 상대를 망가뜨릴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좋아하는 상대의 손도 못 잡는다는 남성도 있었다. 그는 상수도·하수도 나누듯이 좋아하는 사람은 바라보기만 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밤마다 폰섹스를 했다. 이 남성은 성장과정에서 부모로부터 ‘여자 생각 꿈에도 말고 공부만 하라’는 요구에 시달리며 고교 졸업 때까지 자위 한번 안 해봤다고 한다. 유 실장은 “이런 이들은 평생 싸울 대상도 아닌 것과 싸우는 이들”이라며 “성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성적 권리를 오랫동안 박탈당하고 살아와, 그 자체로 자괴감과 분노에 휩싸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배우자에게 모멸감을 주는 사례
극단적인 사례 말고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성생활 장애들이 있다. 남성의 경우 조루나 발기부전이 대표적이다. 발기부전은 보조제 개발 등 의학의 발전으로 거의 해결돼 지난해부터는 국제 성학회 등에서도 더 이상 다루지 않는 주제가 됐다. 그러나 심리적·문화적인 영역에는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다. 발기력을 남성다움의 상징으로 여기는 ‘강박’이 없어지지 않는 한 기상천외한 정력제를 구해 먹고 조금만 발기력이 떨어져도 성생활을 피해버리는 ‘불행한 남성’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발기와는 달리 조루는 심리적인 이유에 뿌리를 많이 대고 있다. 성경험이 많지 않은 남성일수록 조루 증상이 많다. 당사자에게는 굉장한 모멸감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내가 이게 무슨 꼴인가, 상대가 날 우습게 보면 어떻게 하나 전전긍긍하다가 성생활에 흥미를 잃고 회피해버리는 극단적인 경향으로 치닫기도 한다. 실제 성생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커플이 겪는 고민의 상당 부분은 미숙함에 따른 조루 증상이 차지한다. 결혼한 지 8개월 된 유아무개(33)씨는 남편의 조루 증상에 생각 없이 반응했다가 두고두고 ‘관계’의 어려움을 겪었다. 성경험이 많지 않은 남편이 어느 날 삽입도 하기 전에 사정을 하자 유씨가 그만 웃어버린 것이다. 유씨는 다음날 미안한 생각이 들어 “당신 병원 좀 가봐”라고 한마디를 했다. 이 말이 화근이 됐다. 남편이 “아내가 날 무시한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내는 날 배려하지 않는다” “날 사랑하지 않는다”로 생각을 굳혔고, 급기야 “우리 결혼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고 ‘자가발전’ 해버렸다. 유 실장은 “조루 증상에 대해서는 신체적 결함이 원인이 아니라면 당사자는 물론 상대방도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게 좋다”면서 “사람이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것이고, 장애물 경기하듯이 이 코스부터 저 코스까지 완벽하게 맞춰지는 성관계는 없고 요구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성의 성생활 장애는 욕구장애, 흥분장애, 오르가슴장애를 꼽을 수 있다. 욕구 자체가 없거나, 욕구는 있는데 흥분이 안 되거나, 흥분은 하지만 쾌락의 정점을 느끼지 못하는 단계로 나뉜다. 마지막 단계인 오르가슴장애가 가장 치유가 쉽다. 흥분장애나 욕구장애로 내려올수록 의학적 치유와 심리적 치유가 결합돼 치유시간이 길어진다. 오르가슴장애는 다른 이유가 없다면 대체로 타이밍의 문제다. 한쪽이 오르가슴을 느낀 뒤라도 꾸준히 시도하면 상대의 오르가슴을 유도할 수 있다. 흔히 성적 불만을 오르가슴 문제로만 보는 시각이 많은데, 이는 대단히 어리석은 태도이다. 오르가슴만 중시하다가는 과정과 책임을 생략해 오히려 오르가슴에 이르는 길을 잃을 수 있는 탓이다. 유 실장은 “두 사람이 동시에 오르가슴에 오르는 경우는 드물고 그럴 필요도 없다”면서 “서로의 사이클을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너무 사랑하는데 그 사람과는 안된다?
“너무 사랑하는데 그 사람과는 안 된다”는 오래된 커플의 호소가 적지 않다. 성적 장애나 트라우마를 지닌 게 아니라면, 원인이 뭘까. 앞서 정씨 부부처럼 ‘오해에 따른 트러블’이 있었거나 ㅅ씨 부부처럼 성생활을 방기했던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성적 지루함’이 원인이라고 유 실장은 설명했다. 그 배경에는 ‘대화와 협상의 부재’가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가 저절로 해주길 기대하거나, 평소 저축해놓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대박 터지듯 만족을 얻으려 들거나, 성관계는 그냥 하면 잘되는 것이라고 여기는 나태한 심보다. 유 실장은 “어떤 관계라도 가치를 부여하고 투자하지 않으면 저절로 얻어지는 게 없듯이 성관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섹스는 몸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는데, 이 수단을 제대로 써먹는 커플들은 얼마나 될까.
[성 건강지수와 파트너십 건강지수]
△ “내가 성관계를 하는 이유는?”
1.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니까 □
2.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려고 □
3. 긴장을 풀려고 □
4. 성적 흥분이 돼 있으므로 □
5. 호기심 때문에 □
6. 상대를 즐겁게 하기 위해 □
7. 특별한 날을 축하하기 위해 □
8. 내가 정상이라는 것을 나와 남에게 보여주려고 □
9. 그 사람과 실제로 가깝다는 느낌을 얻기 위해 □
10.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
11. 돈이나 다른 것을 얻기 위해 □
12. 상대와 동등해지고 싶어서 □
13. 오랜 만남에 따른 의무감으로 □
14. 싸우고 난 뒤라 화해하려고 □
15. 남을 통제하거나 이용하려고 □
16. 선택의 여지가 없고 거절하면 내가 다칠 수 있어서 □
17. 상대가 술에 취해 있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 □
→ 1∼5번 즐거운 성생활을 우선하는 사람이다. 성 자체를 즐기기 위한 긍정적인 태도를 가졌다.
6∼7번 성 자체보다는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성을 활용하는 사람이다. 긍정적인 태도에 속한다.
8∼14번 관계에서 평형을 맞추기 위해 성을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지녔다.
15∼17번 성관계에서 폭력에 굴복하거나 거꾸로 자신이 성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치명적으로 부정적이다.
△ “내가 원치 않은 성관계에 왜 응낙했을까?”
1. 상대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려고 □
2. 더욱 친해지고 싶어서 □
3. 성적 경험을 얻으려고 □
4. 호기심 때문에 □
5. 관계의 긴장을 피하려고 □
6. 상대가 거부당했다고 느낄까봐 □
7. 응낙하는 게 거절하는 것보다 쉬워서 □
8.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
9. 이미 성관계를 가진 사이니 의무감에서 □
10. 상대가 더 이상 내게 관심을 안 가질까봐 □
11. 상대가 관계를 끝내겠다고 할까봐 □
→ 1∼4번 긍정적인 정서 반응이다. 관계에서도 만족스런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5∼9번 대인관계나 의사소통 방식에 훈련이 필요하다. 관계에서 계속 끌려다닐 위험이 높다.
10∼11번 자존감을 잃었거나 수치심, 분노가 담긴 부정적인 반응이다. 이미 관계가 악화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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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마리산부인과 부설 성 건강센터 유외숙 상담실장(심리치료학 박사)은 1988년부터 청소년 성상담을 해온 성상담 전문가다. YMCA와 ‘아하 청소년 성문화센터’에서 상담하다 보니 상담 신청자의 20% 안팎은 성인이었다고 한다. 갈 곳 없는 성인들이 궁여지책으로 문을 두드린 것이다. 유 실장은 “본격적인 성생활을 하는 성인기에 접어들 때 성교육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섹스는 어떤 것일까.
일주일에 몇번 하냐, 한번 하면 얼마 동안 하냐는 것으로 만족도를 따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성인이라면 자신에게 맞는 섹스를 알 권리와 책임이 있다. 나와 파트너가 만족스런 성생활을 한다면 그게 곧 정상적인 섹스다.
섹스리스의 원인은 뭘까.
상대를 바꿔보면 어떨까 하고 조심스레 묻는 이들이 많다. 답답한 심정이 이해가 가지만, 지루함의 원인을 상대에게서만 찾는다면 해답이 안 나온다.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꼭 말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정한 입김, 쓰다듬, 눈빛을 포함해 시간 조절이나 체위 변화로도 소통할 수 있다.
소통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는 성의 세 가지 면만 강조했다. 욕구, 희생자, 금욕 말이다. 기쁨과 대화, 배려로서의 성은 감춰졌다. 남자는 욕구에 집착하고, 여자는 희생자나 금욕에 쏠려 있다. 성적 친밀감을 위해서는 여러 ‘작업’을 해야 한다. 첫 단계가 소통인데, 그것을 망설인다. 두려워한다. 상대가 마음 상하지 않을까, 날 한심하게 여기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섹스리스 지점까지 온다. 그것이 실제 위험인지 상상 속의 위험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 부딪혀보지 않으면 영영 해결되지 않는다.
권하고 싶은 방법은.
보편 타당한 섹스란 없다. 섹스는 둘이 하는 원초적인 놀이다. 소꿉놀이처럼 역할을 바꿔보거나 상황을 연출해보면 좋다.
연령 차이나 성 차이는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남자는 29살을 기점으로 리비도가 매년 떨어진다. 건강 관리를 잘하고 친밀감을 잘 유지하면 상쇄된다. 여성의 초경기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폐경기는 세계적으로 평균 51살이다. 여성의 호르몬 치료는 의료보험이 되므로 이를 활용해볼 수도 있다. 아예 욕구가 개발 안 된 여성들이 많은데, 여성은 노년이 돼도 꾸준히 성욕을 개발할 수 있다. 국립의료원에서 특수장애인의 성치료 과정을 담은 비디오를 본 적이 있었다. 쓸 수 있는 근육이 별로 없고 제약이 많은 이들이 최선을 다해 섹스를 하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이었다. 비장애인들의 성적 지루함은 엄살이나 게으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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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히포크라테스는 여성의 오르가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간지러운 느낌이 몰아치며, 황홀한 기분과 따스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그러나 서구에서도 그 뒤 기상천외한 여성 잔혹사가 펼쳐지며, 여성의 욕구는 부정됐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의사들조차 “여성들은 섹스를 통해 쾌감을 얻지 못하는 것에 크게 불평하지 않는데, 사회적으로 다행스러운 현상”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편견은 무려 100년 넘게 서구 사회를 지배하다가, 20세기 중반 여성해방운동으로 자취를 감췄다. 최근의 연구결과는 오르가슴에 이르면 여성은 강한 경련과 함께 윤활 작용을 하는 액체를 분비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성행위를 ‘사랑을 만든다’(make love)라고 표현하고, 동양에서는 성이 교류해 하나로 합해진다는 ‘성교’(性交)나 정을 통한다는 ‘정사’(情事)라고 표현한다. 양쪽 다 의미심장한 연원을 지녔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며 본래의 뜻은 크게 흔들렸다. 특히 종교적 관념은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남미 도미니크 공화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키스를 하면 경찰에 체포된다. 이집트나 말레이시아는 벌금형에 처한다. 이란에서는 여성이 외국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길을 가면 즉각 검문을 당한다. 이슬람 문화권의 특징이다. 청교도 정서가 강한 영국과 미국도 대단히 보수적이다. 영국 사람들은 성생활보다 훔쳐보기를 즐긴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혼전성교를 금지하고, 일부 시에서는 세병 이상의 맥주를 마신 뒤에 성행위를 하거나, 상대에게 어떤 행위를 제안하는 것을 금지하는 ‘잠자리 금기’까지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런 영국인과 미국인이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음란 소설에는 대단히 열광적이다.
각종 성 관련 상품이 발달한 일본의 성문화도 대단히 이중적이다. 개인의 성적 욕구가 극도로 억압되는 탓이다. 사전 피임(콘돔) 준비는 가장 철저하면서, 섹스리스 커플이 가장 많은 곳이 일본이다. 지나친 성 상업화로 일상적인 성생활에 무관심해졌다고 보는 시각이 있고, 일에 너무 몰두해 성 의욕이 감소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콘돔 제조회사 듀렉스의 2003년 조사를 보면 성생활이 가장 왕성한 나라는 헝가리다. 그 다음이 불가리아, 러시아, 프랑스 순서였다. 성생활이 적은 나라는 싱가포르, 대만, 타이 등 아시아 국가들로 성인남녀 3분의 1은 일년 내내 한번도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됐다. 아시아권에서 유독 중국이 상위권에 포함됐는데 급격한 사회 변화의 결과로 보인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라틴국가 사람들이 의외로 저조한 성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가톨릭의 영향 탓으로 보인다.
개방적이든 은폐적이든 성은 총체적인 문화의 산물이나, 모든 구성원이 같은 성의식과 행동양식을 지니지 않는다는 점도 문화의 산물인 성의 매력이다. 가톨릭 교회의 이론가들은 성생활에서 단 하나의 체위만을 고집했다. 남성 상위 체위로 흔히 ‘선교사 체위’라 불리는 것이다. 중세의 교본들은 선교사 체위를 벗어난 성행위를 했을 때 처벌 범위까지 규정했다. 전희나 손으로 성기를 애무하는 것, 오럴섹스 등은 금지했다. ‘짐승처럼 뒤에서 성교를 하는 행위’는 극형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고해 규정을 보면, 여성이 생리 중이거나 임신했을 때,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는 섹스를 할 수 없었다. 수·금·토·일요일에는 섹스를 할 수 없었고, 낮에도 할 수 없었다. 다행한 점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규정을 따랐는지 확인할 만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고·인용: <백과사전이나 역사 교과서엔 실리지 않은 세계사 속의 토픽>(리처드 잭스 지음, 가람기획 펴냄)
<말하는 문화>(이노미 지음, 청아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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