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과 주변 민족주의의 ‘공생’을 파헤친 <적대적 공범자들>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임지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 <적대적 공범자들>(임지현 지음, 소나무 펴냄)의 칼끝은 민족주의를 향해 있다. 그런데 전작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보다 더 날이 시퍼렇다. 임 교수는 혈통·종족 민족주의의 폐쇄성에 대한 비판의 무기로 시민 민족주의를 지지했던 자신의 과거를 부정한다. 그것은 9·11 이후 미국의 시민 민족주의가 국가 권력에 전유되는 사태를 목격한 뒤의 성찰이다. 임 교수는 이 책에서 제국의 민족주의든, 민중 민족주의든, 열린 민족주의든 모두 어떤 중심을 내장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며 국가주의에 흡수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안으로 ‘다중적 정체성’을 내세우는데, 그 대안보다는 비판의 과정이 더 흥미롭다.
책의 논쟁적인 부분들만 살펴보자. 임 교수는 일본의 민족주의와 한국의 민족주의가 이른바 ‘적대적 공생 관계’에 있다고 본다. 역사적 경험이 다르지만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도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중심을 극복해 중심으로 가겠다는 권력 담론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저항적 민족주의는 역으로 일본의 우익 민족주의를 강화한다. 모두가 제국이 만들어놓은 게임 규칙에 종속되는 것이다.
임 교수는 통일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는 “남북의 국가 권력이 담합하여 통일의 명분을 선점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시민사회에 그 명분을 시달하고 강제하는 방식에는 결코 찬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시민사회의 동의는 통일에 대한 ‘우리의 규율화된 소원’을 표현할 뿐이다. 따라서 “통일 세력이냐 반통일 세력이냐”라는 억압적 질문을 거둬들여야 한다.
민족주의에 대한 이런 날이 선 비판은 동아시아 역사 인식으로 이어진다. 임 교수는 한-일 관계에서 우리의 ‘세습적 희생자 의식’을 집요하게 끄집어낸다. 소수의 친일파를 가해자로 규정하고 대다수 국민을 피해자로 규정했을 때, 우리 안에 타자화된 다양한 주체들은 모두 민족이라는 대의명분에 가리워져버린다. 한-일을 가해자-피해자라는 민족 구도로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임 교수가 고통과 희생을 직접 겪은 ‘우리’만이 그 과거를 이해할 수 있다는 배타적 인식론, 일본 우익의 민족주의를 오히려 강화하는 일본 좌파 지식인들의 ‘죄의식’을 공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는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감상주의적 친일파 청산도 비판한다. 소수의 ‘가해자’ 친일파를 법정에 세움으로써 식민주의가 청산된다는 생각이야말로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역사 청산은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과거를 드러내서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것이다. 고구려사 문제에서도 같은 인식의 틀이 적용된다. 근대 국민국가의 틀을 2000년 전 과거에 들이대는 것이 어불성설인 만큼, 고구려가 한국 땅이라 외칠 것이 아니라 차분히 ‘변경사’를 연구해보자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임 교수의 전략은 옳은 것인가. 지금 적절한 대답은 “며느리도 모른다”이다. 지금은 지식인들이 각자의 성에서 나와 벌판에서 논쟁을 벌여야 할 때다. 민족주의에 대한 정말 진지하고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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