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에스프레소의 원료인 아라비카종 커피 버찌를 말리고 볶는 과정에서 다양한 화학적 반응 </font>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지난 11월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대서양홀 전시장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곳에 서울카페쇼 기간에 열린 한국바리스타 챔피언십 결승전에 올라온 ‘선수’들이 있었다. 바리스타 전용(29)씨는 6명의 결승전 진출자 가운데 한명이었다. 지난해 대회에서 심사위원 앞에서 손을 바들바들 떨던 기억을 떠올리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38개월 경력으로 두해 연속 본선에 진출한 그였지만 손에 익숙하지 않은 에스프레소 머신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자신이 내린 한잔의 커피가 고혹적인 향기를 내뿜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언제쯤이나 커피를 제대로 알지 모르겠다”는 말이 괜한 엄살은 아닐 것이다.
원두 볶으면 다양한 향 방출
이탈리아의 대표적 커피매장인 일리카페의 에르네스토 일리 회장은 “에스프레소를 알면 커피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에스프레소가 커피 ‘기술’의 결정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화학박사로서 과학을 이용해 완벽한 에스프레소를 만들겠다는 ‘희망사항’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전씨 역시 최상의 생두를 볶은 원두로 만든 에스프레소에 자신의 이름을 딴 ‘드래곤’이라는 메뉴를 개발해 대회에 선보였다. 그는 붉은 빛이 감도는 부드러운 거품을 품고 있는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을 기본으로 다양한 ‘커피 음료’를 만들어낸다. 앞으로 그는 생두와 원두를 자유롭게 ‘요리’하는 커피의 장인이 되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복잡미묘한 커피의 맛과 향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간단히 말하면 최적의 재배지에서 자란 생두를 알맞게 볶아 정성껏 내린 뒤 적절한 잔에 내놓으면 된다. 커피의 1차적인 맛은 생두에서 결정된다. 볶는 과정에서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지만 악조건의 재배지와 생두 흠집 등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 한잔의 에스프레소 원액을 추출하려면 50~60개(8g 안팎)의 생두가 필요하다. 최적의 수확기에 싱싱한 커피 버찌를 따는 것은 기본이다.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흠결이 있으면 품질을 떨어뜨린다. 물론 생두를 보는 탁월한 안목은 기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에스프레소 커피의 재료로 쓰이는 생두는 카페아 아라비카종으로 산비탈 지역에서 자란다. 가장 이상적인 재배지는 화산재로 뒤덮인 고산지대다. 커피나무의 크기가 2m도 되지 않는 아라비카종(인스턴트 커피를 만드는 로버스타종은 12m 안팎)은 생두의 크기가 작고 밀도가 높으며 단단하다. 아라비카종은 인체에 이로운 성분이 많고 카페인 함유량도 적어 신경과민과 위궤양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낮다. 이에 비해 로버스타종의 카페인 성분은 중량의 2.4~2.8%에 이르러 상대적으로 인체에 유해하다. 이런 아라비카종 커피의 버찌를 수확한 다음에는 건조와 세척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정 기간 햇빛과 공기에 노출시킨 뒤 기계에 넣어 외피를 제거하고 다시 말리면 생두로 거듭난다.
아무리 최상의 품질을 보이는 생두라 해도 불량품은 저장고에 들어가지 못한다. 광전자 세포를 이용한 ‘검열’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광전자가 불량품을 감지하면 흠집이 있는 생두를 바람으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커피볶음기는 열을 이용해 생두의 화학적인 결합을 높인다. 생두는 250여개의 휘발성 분자종을 가지고 있어 향이 약하지만 볶음기를 통과한 원두는 800개 이상으로 수가 늘어나 진한 향을 내뿜는다. 이 과정에서 생두 세포에 있던 수분이 증기로 변해 당분이나 단백질, 지방질, 미네랄 등의 화학적 반응을 촉진한다. 이에 따라 원두에 글리코실라민과 멜라노이딘이 생성돼 이산화탄소와 함께 커피의 주요한 맛을 이룬다.
생두를 볶는 과정에서 다양한 향이 방출된다. 향기 전문가들이 코와 색층분석법 등으로 파악한 방출 향기는 장미·초콜릿·버섯·치즈·땀 등 매우 다양하다. 심지어 고양이 냄새까지 난다고 한다. 대개의 향은 미세하게 남아 있지만 품질이 나쁜 원두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제거되지 않는다. 덜 여문 생두를 볶았을 때도 기분을 거스르는 냄새가 난다. 이렇게 볶은 원두는 필터 드립이나 에스프레소 머신 등의 조리법에 따라 커피 분쇄 기계로 갈아서 커피로 마시게 된다. 원두를 갈기 전에 조개 모양으로 속이 비었거나 깨져 있는 원두를 골라내야 최상의 맛을 낸다.
가정에서 원두 조리하는 법
이런 원두를 조리하는 것은 바리스타만의 몫이 아니다. 얼마든지 가정에서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원두커피를 즐길 수 있다. 원두 상태로 구입해 그때그때 갈아서 마시는 게 좋다. 만일 종이필터를 이용하려면 원두를 너무 가늘지 않게 갈아야 한다. 이때 종이필터를 끓는 물에 살짝 헹구면 종이 냄새가 없어진다. 물이 끓을 즈음에 불에서 내려 종이 필터에 갈은 원두를 넣고 주둥이가 가는 주전자에 담긴 물을 서서히 부어 커피를 내리면 된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다면 물의 온도를 93도 안팎으로 데워 기압을 9로 압축한 뒤 30초가량 여과해 원하는 커피를 내린다. 그렇게 해서 오일과 섬유조직 등에서 나오는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기게 된다.
현재 카페인이 없는 커피를 마시려면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일단 생두를 증기에 쪄서 수분을 50~60%대로 높인 뒤 솔벤트와 이산화탄소, 물 등을 이용해 카페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카페인이 없는 천연 커피나무에서 버찌를 딸 수도 있다. 육종으로 아라비카종 커피나무보다 카페인이 15배가량 적은 커피나무가 개발되기도 했다. 언젠가는 유전자조작 커피나무에서 커피 버찌를 딸 수도 있을 것이다. 카페인이 있더라도 안전한 커피를 즐기려면 반경 8km 이내에 화학비료를 치지 않는 지역에서 3년 이상 자연비료만 사용한 유기농 커피를 ‘카페 데 베르’에서 즐기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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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진 입맛 충족에 급급</font>
국내에서 인스턴트 커피가 대세를 이룬 것은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물에 녹는 커피’가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널리 보급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는 미군부대 물품을 취급하는 사람들을 통해 인스턴트 커피를 구입해 마시는 사람들이 ‘선진 문화인’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여기에다 1976년 동서식품이 처음으로 개발한 커피믹스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인스턴트 커피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커피믹스는 기업에서 ‘커피 심부름’을 하던 여직원들의 일거리를 줄였고 냉온수기 판매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인스턴트 커피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커피의 다른 맛을 실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원두커피 시장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반에 원두커피를 내려먹는 기구인 ‘커피메이커’가 대중적인 가전제품으로 반짝 떠올랐다. 하지만 원두커피용 생두가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 미주산업 등에서 대량으로 생산한 원두는 국내 커피 마니아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했다. 대신 인공 커피향을 첨가한 헤이즐넛이 ‘반짝’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이들을 통해서도 원두커피의 향미에 다가설 수는 없었다.
사실 ‘로부스타(robusta)종’ 커피 고형 성분을 원료로 삼은 인스턴트 커피는 깊이 있는 향미를 갖기 어렵다. 아무리 커피를 추출할 때 향기 회수 기술 등을 적용하고 냉동건조 기술로 품질을 업그레이드해도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기는 힘들다. 원두커피에 사용하는 ‘아라비카(arabica)종’을 많이 섞어 ‘골드’라고 표기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더구나 인스턴트 커피가 부패해 신맛을 내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크리머는 경화 야자유로 만든 콜레스테롤 덩어리로 건강에 해롭다.
그럼에도 국내의 커피 제조업체들이 원두커피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모험으로 통했다. 원두커피를 공급하기엔 국내 시장이 협소하고 부가가치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길들여진 입맛을 충족시키는 게 훨씬 장사가 됐던 것이다. 국내 커피시장이 인스턴트에 집중된 이유에 대해 ‘문박사 커피·차 연구소’ 문준웅 대표는 “국내 인스턴트 커피 제조업체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대량으로 제조되는 원두커피는 본래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인스턴트보다 향미가 좋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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