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새 시집
▣ 고영직 / 문학평론가

역시, 은유는 힘이 세다. 안도현의 시집에 등장하는 뭇 사물들은 의인(擬人)화의 의장을 걸치고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하고자 한다. 염소, 뱀, 눈보라, 사과나무, 툇마루 등속의 사물들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피와 살을 지닌 존재로 표상되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는 시인의 소도구가 되는 것이다.
가령, 시적 화자는 툇마루가 되어 “언제쯤이나 가지런히 썰어놓은 애호박이 오그라들며 말라가는 냄새를 받쳐들고 있게 되나”(‘툇마루가 되는 일’)를 꿈꾸는가 하면, “간유리에 붙어 술집 안을 들여다보는 눈보라”는 “술 한잔, 술 한잔만 마시고 가겠다 하네”(‘눈보라’)라며 ‘가객’을 자청해 마지않는다. 그리고 “말뚝에 매어놓은 염소” 또한 “뿔 없는 할머니를 모시고 어서 집으로 가야겠다”(‘염소의 저녁’)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이러한 은유적 시쓰기의 지향은 백석의 시 이미지를 차용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니까 ‘나무=아버지’의 관계뿐만 아니라, ‘아버지=나무’라는 등식이 성립됨으로써 존재의 합일(合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시인은 사물들의 의인화를 통해 주체와 타자의 위치를 치환하면서 ‘사랑의 시학’을 구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사랑의 시학을 향한 시인의 집념은 3연 8행으로 이루어진 ‘강’에서 전경화되어 하나의 결정체를 이룬다.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강→물소리→흰 새떼→눈발→울음→강’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는 하나의 원(圓)을 형성하면서 그리움의 강도를 더하는 것이다.
‘굴뚝’ ‘주저앉은 집’ ‘왜가리와 꼬막이 운다’와 같은 작품들은 ‘둥근 사랑’이 실종된 풍경들을 응시하는 시어들이 처연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고 보아야 옳을 터이다. ‘모퉁이’ ‘대접’ ‘춘향터널’ 같은 작품들은 시인 특유의 익살과 해학이 묻어나면서 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춘향터널’의 경우 ‘춘향터널’과 ‘거시기’를 잇는 말장난(fun)을 통해 우리가 정녕 가닿아야 할 에로스적 충동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이라는 시에서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나 자전거가 되리”라고 말한다. 왜? “이 세상의 모든 모퉁이, 움푹 파인 구덩이, 모난 돌멩이들/ 내 두 바퀴에 감아 기억하리”라는 열망 때문이다. 문학 장르 가운데 시가 왜 기억의 부흥을 위한 ‘기억의 터(lieux)’가 될 수 있는지 잘 요약한 대목이라 볼 수 있다.
가을밤이 깊어가고 있다. 우리네 삶에서 시심(詩心)이 실종되는 순간 사랑의 시학은 더 이상 쓰일 수 없으리라. 안도현의 시집은 삶의 ‘모퉁이’를 성찰하게 하는 작은 숨구멍은 아니었을까.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모퉁이’)라는 시어가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마음에 작은 파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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