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동안 내설악 아낌없이 즐기기… 백담계곡에서 봉정암까지 물도 숲도 아찔한 푸르름
▣ 인제= 글 · 사진 윤승일/ 한겨레 미디어사업기획부
한없이 투명한 블루…. 백담계곡을 바라보다 문득 궁금했던 색을 떠올린다. 옥빛으로 표현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할 것만 같았던 갈증이 비로소 사라진다. 내설악의 입구 용대리부터 백담사까지 20여리 백담계곡…. 계곡과 나란히 놓인 산길이 시멘트 옷을 입기 전에는 누구나 걸어야 했다. 여름, 뜨거운 햇살을 피해 달빛에 기대 산길을 걷노라면 어느새 한 무리가 된 사람들은 옥수수로 밥을 지어먹어야 했던 가난과 그 가난한 부엌을 뒤지다 붙잡혀 강아지마냥 목줄을 메고 재주를 부려야만 했던 설악산 반달곰의 이야기며, 팔뚝만한 크기로 시작해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사람 몸만큼 커지는 백담계곡의 메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지치면 달빛에 하얗게 빛나는 너럭바위에 배낭을 풀고 악보도 없이 전해져오는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굽이져 흰띠 두른 능선길 따라/ 달빛에 젖어드는 계곡의 여운….” 노래를 기억하며 초록 터널로 빠져든다.
만해의 당당한 미소
여름의 복판, 마음껏 자라난 초록은 도시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맑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계곡 건너 숲은 초록의 파도로 일어섰다가 가라앉는다. 서로의 가지를 맞댄 나무들로 백담사로 이르는 길은 초록의 터널이다. 고개를 넘어 다리를 건넌다. 발 아래 아득했던 계곡이 비로소 눈높이로 마주한다. 호박돌이 잔뜩 덮힌 계곡 한복판에 수십년은 자랐을 소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다 드러낸 채 위태롭게 서 있다. 100여년 만에 처음이라던 지난해 여름 태풍 매미에 흙을 빼앗긴 소나무는 아이 몸집만한 바위를 뿌리로 단단히 감싸안은 채 생명을 버티고 있었다.
백담계곡 풍광에 취해 1시간여를 걸었다. 백담사 일주문. 아직 단청을 입지 못한 일주문 앞에 금강역사라도 되듯 버티고 선 다람쥐의 줄무늬가 선명하다. 마음을 다스리라는 뜻인가, 마음을 닦으라는 뜻인가…. 수심교(修心僑)라는 다리 이름은 늘 그 뜻을 궁금하게만 한다. 풀어보리라 다짐하면서 늘 풀지 못했던 궁금증이 다시 갈증을 부른다.
금강문 바로 뒤에 어울리지 않게 서 있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일주문…. 또 그 뒤, 극락보전 앞 이리저리 깨어진 채 서 있는 초라한 석탑…. 이제는 다 베어져 흔적만 남은 속과 승의 울타리인 양 심어져 있던 나무 울타리…. 1980년대 후반, 서너명의 스님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서너채의 건물과 만해 한용운의 추억과 전설만이 있었던 가난한 절 백담사의 추억이다.
이른 저녁을 마치고 포행에 나선 스님들. 무엇이 젊은 저들의 머리를 깎게 하고 하루 종일 면벽을 하게 하는 것일까? 물음 대신 두 손을 모아 합장으로 인사를 건넨다. 답인사를 건네는 그들의 얼굴 표정이 물빛만큼이나 청아하다.
여름 해는 길었다. 절집 곳곳에 붙여진 안내문에 따라 법당 보살을 찾아 하룻밤을 청했다. 짐을 풀고 절집의 이른 저녁을 마쳤지만 여전히 해는 능선을 넘지 않았다. 제 뜻대로 한세상을 살다 간 만해를 만났다. 절집 한쪽에 세워진 만해기념관이 전하는 만해는 ‘승’보다는 호걸에 가깝게 느껴진다. 기념관 앞 이제는 동상으로 남은 만해의 표정은 알 듯 모를 듯 당당한 미소로 말을 건넨다. 그가 남긴 시와 그의 표정이 화두로 가슴에 불도장을 찍는다.
만해에 대한 추억 탓인가. 백담사에는 만해를 비롯해 김시습, 고은 등 시인들의 흔적이 돌에 새겨져 있다. 거침없이 흘러가는 계곡의 물처럼 시에 남겨진 그들의 삶 또한 거침없게만 느껴지고 가슴에는 답답증이 몰려온다.
계곡으로 내려왔다. 편편한 돌을 골라 자리를 만들고 발을 물에 담근다. 순간 온몸으로 전해오는 차가움. 샘처럼 쉴 새 없이 땀을 뿜어대던 땀구멍이 일순 막히며 온몸에 소름이 돋고 털이 곤추 선다. 그리고 온몸에 퍼지는 한기. 아스팔트가 뒤덮인 도시는 연일 폭염의 소식을 전하는데 이곳은 차라리 춥다. 물속에 담근 발가락이 가렵다. 작은 물고기들이 어느새 몰려들어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찾아드는 어둠. 계곡에서 피어난 물안개는 능선을 따라 올라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은 용이 되었다. 호랑이가 되고… 그리운 이들의 얼굴이 되어 밤하늘로 사라져갔다.
낯선 방… 낯선 이들과 함께하는 잠자리… 늦게까지 잠이 들지 못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밤의 빛과 끊이지 않는 물 흐르는 소리에 간간이 더해지는 이름 알지 못하는 새소리와 금방이라도 쏟아져내릴 것만 같은 별빛은 작은 흥분이었다. 그 흥분에 겨워 경내를 서성거리기를 수 차례… 비로소 들었던 잠을 깨운 것은 익숙한 시계의 자명종 소리가 아니라 목탁 소리였다. 하룻밤을 청하는 이들에게 아침 공양을 알리는 목탁 소리… 시계는 아침 6시를 알린다.
새벽 3시에 일과를 시작하는 스님들은 벌써 대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었다. 계곡에 퍼지는 물안개는 어제 저녁의 물안개와는 색이 다르다. 극락보전 뒤 샘에서 한 모금, 다람쥐는 벌써 자기들끼리의 놀이를 시작했는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신을 빼놓는다. 만해기념관 한 모퉁이에 누군가가 ‘다람쥐 공양물’이란 글이 새겨진 작은 그릇에 과자를 놓아두었다. 망설임 없이 그릇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과자를 집어드는 다람쥐들이지만 카메라만 들이대면 도망을 친다. 원하지 않는 이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은 다람쥐도 사람과 다르지 않은가 보다. ‘고개를 숙여야만 볼 수 있는 우리 꽃’. 만해 동상 한쪽의 작은 화단에 붙여진 안내문에 부끄러움이 가슴에 물안개처럼 번진다.
공양간에 주먹밥을 청했다. 약간의 양념으로 버무리고 김으로 감싼 주먹밥이 오늘 허기진 배를 채워줄 것이다. 극락보전 샘에서 물통도 채웠다. 다시 수심교를 건너 산을 오른다. 다음해에는 철거될 예정이라는 백담대피소. 이른 아침이면 아침을 짓느라 부산했던 산꾼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내설악으로 설악산에 들기 위해서는 백담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신세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백담사 입구에 오기까지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제 역할이 끝나면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며 백담대피소 철거 소식을 일러주던 국립공원 직원은 옛 낭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백담대피소를 지나며 길은 이제 오솔길로 바뀌었다. 옛사람들은 토끼길이니, 노루길이니, 다람쥐 코재라는 말로 길을 나누었다. 토끼나 다닐 만한 길이라든가… 노루도 다닐 수 있는 길이라든가… 다람쥐도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가파른 길이라는 의미가 담긴 그 말은 이제 듣기 어렵다.
오세암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오세암으로 가는 길. 영시암까지는 수렴동 계곡을 길라잡이 삼아 작은 오솔길이 때로는 계곡으로 때로는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책하기 좋은 노루길이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 백담사 경내에 새겨진 고은의 시를 떠올리며 가능한 천천히 걷는다. 고개를 숙여 길가 꽃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붉은빛을 띠는 소나무 금강송을 만나면 고개를 들어 키가 얼마냐고 물어도 본다.
길가 웅덩이에서 꼬물거리는 무당개구리의 올챙이들에게 언제쯤 ‘뒷다리가 쏙’ 나올 것이냐고 물어도 보고 ‘올챙이송’도 가르쳐주고…. 그러다 보면 어른 키 높이쯤에 상처를 간직한 소나무에게 상처의 내력을 물으면 옥수수밥으로 끼니를 이어야 했던 가난한 화전민들이 밤을 밝히기 위해 송진을 캐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문득문득 나타나는 능선의 편평한 곳은 그들의 집터고 낙엽송이 자라는 평지는 그들의 밭이었음도 일러준다.
수렴동 계곡을 벗어나 오세암으로 오르는 길. 몇 아름이나 되는 나무들이 수없이 넘어져 있다. 지난 봄 갑자기 내린 폭설을 이기지 못해 쓰러진 설해목들이다. 솜털처럼 가볍기만 한 눈에 서너 아름 되는 큰 나무를 넘어뜨리는 힘이 담겨 있다니…. 쓰러져 이끼와 버섯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나무들은 이 세상에 가장 강한 힘이 어디서 오는지를 일깨워준다. 오직 정상만을 바라보며 허겁지겁 오르는 산행에서는 만날 수 없는, 오직 천천히 걸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자연의 교훈이다.
2시간여를 오르면 오세암이다. 조선시대의 기인 김시습의 이야기와 다섯살 아이가 관세음보살을 현신했다는 전설이 전하는 오세암에 서면 내설악의 수많은 기암들은 마치 정원의 수석처럼 아름답고 가깝게 보인다. 보는 이에 따라 관세음보살이 되기도 하고 문수보살이 되기도 하고 500나한이 되기도 한다. 도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오세암 터에는 엄청난 기가 서려 있어 수련하기에 좋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풍광에 홀려 한없이 봉우리를 바라보다가 처사 한명이 건네는 인사에 제정신을 차린다. “점심 때인 데 공양하시지요.” 미역국 한 그릇에 무김치 몇 조각… 소찬에도 맛나는 것은 절집의 인심 때문이다.
봉정암, 장엄한 파노라마
다시 영시암으로 내려와 수렴동대피소를 찾았다. 어림잡아도 30여년을 대피소 지킴이로 살아온 이경수씨는 이미 반백을 넘어 노인의 고개를 넘어섰다. 도토리묵 한 사발로 옛이야기를 열었다. 그 역시 옛 산꾼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 굵지 않은 통나무로 지은 수렴동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산중의 밤은 일찍 찾아든다. 침낭을 폈다. 자기의 먹을거리와 침낭까지 가득 짊어지고 찾아야 했던 산. 그래서 나눌 것도 많았던 산행의 추억이 대피소 한쪽에 가득 쌓인 대여용 이불에 머쓱하기만 하다.
아침 다람쥐와 겸상해 식사를 마치고 다시 산을 오른다. 구곡담 계곡. 백담사가 대청봉에서 100번째 되는 담 앞에 세워졌다는 설화가 있을 만틈 수많은 폭포와 담이 이어진 계곡이다. 구곡담 계곡을 호위하는 용아장성의 기암들은 여전히 하늘을 받치는 벽처럼 웅장하다. 바위절벽에 위태롭게 서 있는 소나무들은 키가 훌쩍 커져 더 아슬하지만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모습 그대로 계곡을 지켜낼 것이다. 등산 경험이 부족한 불교신자들이 많이 찾고 그들의 사고를 막기 위해 등산로 철다리가 더 늘었고 길도 많이 편안해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풍광은 때때로 발걸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구곡담 계곡의 끝 ‘다람지코재’로 불리던 사태골의 급경사길. 예전 같으면 수십번 숨을 골라야 했던 그 길이 훨씬 더 편안해졌다. 사태골 대신에 봉정골로 이름까지 바뀐 그 길은 그래도 여전히 숨을 몰아쉬게 한다. 한번씩 숨을 고르며 올려보고 내려보는 바위 봉우리들은 만물상에 버금갈 정도로 세상 만물의 모습을 닮아 있다 부처님께 공양하는 비구니, 거북이, 물개 등등 쏙 빼닮은 바위들이 공양을 올리는 그 자리에 봉정암은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집. 그래서 오랫동안 너와지붕이나 슬레이트 지붕으로 견뎌야 했던 봉정암은 벌써 10여년 넘게 불사가 계속되고 있다. 공사 중이라 어수선하지만 절집 인심은 어느 절 못지않다. 절 마당에서 대한민국 최고 높은 곳에 있는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한잔을 100원에 뽑아 먹을 수도 있고 허기를 무료로 채울 수도 있다.
사람들을 봉정암으로 불러모으는 진신사리 탑을 찾아 절집에서 능선으로 조금 더 오른다.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인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쳐진 서북주능선. 그 아래로는 올라온 구곡담 계곡 그리고 구곡담 계곡을 호위하는 용아장성. 고개를 동쪽으로 돌리면 가야동 계곡과 공룡능선. 멀리 울산바위와 동해까지…. 오직 막힌 곳은 대청봉쪽뿐이고 모든 것이 발 아래로 펼쳐지는 장엄한 파노라마. 자장율사는 어떻게 설악의 산중에 지금도 철다리를 놓지 않고서는 오를 수 없는 험난한 산중에, 그것도 이렇게 장엄한 파노라마가 연출되는 장소를 찾아낼 수 있었을까? 저 돌탑은 비바람 거센 봉우리의 정수리에서 천년도 더 된 세월을 이겨내고 오늘도 변함없이 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그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여행은 떠남이라고 했던가
신경림 시인은 ‘여행은 떠남’이라고 말했다. “여행이란 일상으로부터 떠나고, 우리가 의지했던 안락에서 떠나고,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떠나고, 상식에서 떠나고…”. 떠남으로써 돌아올 수 있는 것이 길이고 비움으로써 다시 채울 수 있는 것이 마음이라는데…. 아름드리 나무도 눈송이에 쓰러지고, 오직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물은 거침이 없는데…. 다시 돌아오는 길. 도시의 불빛에 심란해지는 마음은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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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으로 가려면 서울 상봉터미널에서 속초로 가는 버스(미시령·진부령 경유)를 이용해 용대리에서 내리면 된다. 간혹 정차하지 않는 버스가 있으니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원통에서 용대리까지는 수시로 버스가 다닌다.
백담사에서 묵으려면 법당보살을 찾아 부탁한다. 1박2식에 1인당 1만원이다. 가족 단위나 일행이 많으면 한 방을 내어주기도 하지만 보통은 다른 사람들과 함게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백담대피소나 수렴동대피소에서도 숙박이 가능하다. 1박에 1인당 5천원이고, 침구류는 2천원을 받는다. 대피소 특성상 잠자리를 남녀로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도 미리 알아두어야 하고 편의시설이 없다는 것도 염두에 둔다.
오세암, 봉정암에서 기도를 하기 위해 찾아온 신도들을 위해 숙박이 가능하다. 계곡은 국립공원 지역이고 자연환경 보호를 위해 원칙적으로 출입이 통제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발목을 담그는 정도에서 만족하도록 한다.
입구에서 백담사로 가는 길 중간까지는 셔틀버스가 다닌다. 편도 1천원. 하지만 3km 정도는 걸어야 하고 오후 늦게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마지막 버스가 언제인지 미리 확인해두어야 한다. 백담사에서 수렴동대피소까지는 2시간 정도를 잡으면 충분하고, 오세암까지는 5시간 정도 잡으면 부족하지 않다.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는 7시간 정도를 잡으면 된다.
구곡담→수렴동→백담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내설악의 모든 계곡물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비가 오면 급격하게 물이 불어나는데 이때는 매우 위험하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3200원(문화재 관람료 포함)이다. 밤에는 서늘하니 긴팔 옷은 꼭 준비한다.
용대리는 순두부로 유명한 백담식당이 있다. 백담사 입구의 여러 식당 가운데 자갈로 지어진 집이 백담식당이다. 인근의 황태국이나 산채비빔밥 등이 유명하다.
문의: 국립공원관리공단 설악산사무소 백담분소(033-462-2554), 백담대피소(033-462-5822), 수렴동대피소(033-462-2576), 백담사종무소(033-466-6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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