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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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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기업들의 부당거래

미르·K스포츠재단에 수백억원 낸 기업들은 ‘피해자’ 아니라 ‘포괄적 뇌물 공여자’
삼성·포스코 등은 정유라 승마 지원, 광고회사 넘기기로 직접 ‘줄대기’도
등록 2016-11-15 17:17 수정 2020-05-03 04:28
1부_정경유착의 부활
박근혜 정부의 반노동 행보가 다시 떠오른다. ‘미르·K스포츠재단’을 매개로 한 정치권력과 기업들의 결탁이 끈끈해지는 시점이 친재벌 정책에 가속도가 붙던 시점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무슨 대가를 바라고 미르·K스포츠재단, 이들 재단의 ‘닮은꼴’인 청년희망재단에 기부금을 내고 최순실 쪽에 각종 특혜를 줬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2월24일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한 기업인 오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박 대통령,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2월24일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한 기업인 오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박 대통령,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제야 모든 게 이해된다.”

2015년 9월의 ‘얽힌 실타래’가 14개월 만에 풀렸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9월15일 노·사·정 합의라는 밥상을 잘 차려놓고는, 바로 다음날 엎어버렸다. 9월16일, 정부와 새누리당은 파견노동 범위를 늘리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이른바 ‘노동 관련 5개 법안’을 발의했다.

4월 사의를 표명했던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원회) 위원장과 삭발 농성까지 감행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을 억지로 테이블에 끌어앉혀,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시장 구조 개선’에 합의하도록 해놓고선 정부·여당이 뒤통수를 친 모양새였다.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쉬운 해고 매뉴얼’이라 불리는 일반해고 지침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정경유착의 부활

“사회적 대타협이 청와대 입장에선 얼마나 큰 성과냐? 그런데도 뭔가에 쫓기듯 계속 해고 지침이나 노동 5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왜 저렇게 집착하나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당시 노·사·정 합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대기업 총수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하는 자리에서나,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상근부회장,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과 관련해 긴밀히 연락하면서 ‘노동개혁’ 등 재계의 숙원사업을 어떤 식으로든 거론하지 않았나 싶다”고 짐작했다.

2015년 여름부터 이어진 박근혜 정부의 반(反)노동 행보를 다시 기억에서 소환하는 이유가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을 매개로 한 정치권력과 기업들의 결탁이 끈끈해지는 시점과, 노동개혁 5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친(親)재벌 정책에 가속도가 붙던 시점이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해 7월 청와대로 대기업 총수들을 초대해 점심 식사를 함께 한 뒤, 그 가운데 7명을 하반기에 독대해 미르재단에 후원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정치 민주화와 함께 교묘한 방식으로 진화했으리라 여겨졌던 ‘정경유착’이 아주 친숙하고도 고루한 방식으로 부활한 셈이다.

정치권력은 ‘대놓고’ 돈을 요구했고, 기업은 ‘못 이기는 척’하며 돈보따리를 풀었다. 미르재단에는 2개월 만에 486억원이, K스포츠재단에는 7개월 만에 288억원이 모였다. 기업들이 미르재단에 입금한 다음날인 2015년 10월27일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노동개혁 5법 통과 등을 호소했고, K스포츠재단 입금이 끝난 2016년 1월18일에는 재계가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촉구하며 벌인 1천만 서명운동에 참여하러 직접 거리에 나섰다.

어디선가 많이 봤던 모습이다. 1974년 최태민이 설립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명예총재로 이름을 올린 구국여성봉사단(이후 새마음봉사단)은 기업들에 강제 모금한 것으로 구설에 올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4~87년 일해재단을 만들어 기업 기부금으로 600억원 가까이를 모았고, 5공 청문회에서 논란이 됐다. 1992년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명절 때마다 가져다준 떡값만 200억원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 2002년 ‘차떼기’ 등 주요 선거 때마다 불법 정치자금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전경련의 ‘자정 선언’도 지겨우리만큼 반복됐다.

미르·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의혹이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선의의 도움을 준 기업인들을 실망시켜 송구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마치 일진한테 ‘삥 뜯긴’ 선량한 학생인 양 “최순실이 누군지 몰랐다”거나 “전경련의 자발적 모금 요구에 따른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정말 기업들은 ‘피해자’에 불과할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드러날수록, 기업들은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등장한다. 검찰은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만 해도 ‘뇌물죄’가 아닌 ‘직권남용’ 혐의만 적용했다. 두 사람이 전경련과 대기업에 압력을 넣어 재단에 돈을 내게 했지만, 기업 쪽이 어떤 ‘부정 청탁’을 했고 대통령 또는 정부가 어떤 ‘대가’를 주었는지가 명확지 않아 뇌물죄 적용을 미룬 것이다.

대법원, 뇌물죄 ‘대가 관계’ 포괄적 인정
검찰이 11월8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삼성은 최순실씨 모녀에게 특혜 지원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왼쪽).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11월1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조사를 받으러 들어가고 있다. 권 회장은 차은택씨의 포스코 옛 광고 계열사 ‘포레카’ 지분 강탈 시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11월8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삼성은 최순실씨 모녀에게 특혜 지원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왼쪽).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11월1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조사를 받으러 들어가고 있다. 권 회장은 차은택씨의 포스코 옛 광고 계열사 ‘포레카’ 지분 강탈 시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11월8일을 기점으로 검찰 수사 흐름이 달라졌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11월8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그룹 미래전략실과 대한승마협회장인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집무실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삼성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승마 훈련 지원 명목으로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어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재단에 출연금을 낸 대기업 임원들을 줄줄이 소환 조사 중이다. 11월11일에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까지 소환했다. 대기업 회장 가운데 첫 소환이다. 이미 구속영장이 청구된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은 지난해 포스코그룹 광고 계열사 ‘포레카’를 인수한 중소기업 대표를 협박해 포레카 지분을 강탈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 권오준 회장도 연루됐다는 의혹이 나온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자유로운 기업은 많지 않다. 한화·CJ·롯데·부영 등은 그룹 총수 특별사면이나 검찰 비자금 수사, 세무조사처럼 정권의 힘을 빌려야 할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었고 현대자동차와 포스코, KT 등은 최순실씨와 차은택씨가 실소유주로 의심되는 광고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1137호 기사 ‘관계도’ 참조).

대기업들은 무슨 대가를 바라고, 혹은 어떤 우려와 기대 때문에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내고, 또 최순실씨 쪽에 각종 특혜를 줬을까. 이는 검찰 수사에서 중요하게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대기업들의 ‘부정 청탁’, 그리고 재단에 낸 기부금이 ‘포괄적 뇌물’이었다는 점이 인정되면 ‘제3자 뇌물제공죄’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1억원 이상 뇌물을 받은 자는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 징역형을 받게 된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재단 모금 과정에 관여하거나 개입했다면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

“대통령은 정부의 중요 정책을 수립·추진하는 등 모든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중략) 기업활동에 관한 정책 등 각종 재정·경제 정책의 수립 및 시행을 최종 결정하며 (중략) 기업체들의 활동에 있어 직무상 또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므로 이와 관하여 대통령에게 금품을 공여하면 바로 뇌물공여죄가 성립한다. (중략) 뇌물은 대통령의 직무에 관하여 공여되거나 수수된 것으로 족하고 개개의 직무행위와 대가 관계에 있을 필요가 없으며, 그 직무 행위가 특정된 것일 필요도 없다.”

1997년 4월 대법원이 전두환·노태우 뇌물수뢰 사건에서 ‘포괄적 뇌물죄’의 법리를 정립한 판결 가운데 일부다. 즉, 대통령에게 제공한 뇌물의 대가 관계가 반드시 구체적으로 입증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4년간 대기업도 ‘주인공’이었다

이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그대로 대입해보자.

첫째, 박근혜 대통령과 안종범 전 경제수석 등이 재단 설립과 모금을 기획·주도했다.

둘째, 모금이 진행될 당시 전경련 등 재계는 노동개혁 5법,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등을 요구했다.

셋째, 재벌 총수 특별사면·복권과 검찰 비자금 수사, 경영권 승계를 위한 계열사 합병 등 개별 기업마다 ‘부정 청탁’으로 여겨질 만한 이슈가 존재했다.

넷째, 기업들이 재단에 수백억원을 기부한 뒤 청와대와 정부가 재계의 요구(‘부정 청탁’)에 부응하는 경제·노동 정책을 내놓고 각종 특혜를 주었기 때문에 ‘대가 관계’가 묵시적으로 인정된다. 이 논리에 기반해 참여연대와 민주노총은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정부 관계자, 기업인 등을 ‘제3자 뇌물공여죄’로 서울중앙지검에 형사고발했다.

은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정부와 대기업들이 어떤 드라마 스토리를 만들어왔는지 시기별로 정리해봤다. 이해하기 쉽게 하단에 타임라인도 넣었다. 이 장편 시대극을 ‘돌려보기’ 하다보면, 정부와 전경련 사이에 주고받은 ‘부당거래’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짐작케 하는 ‘복선’과 기업들이 이번 각본의 ‘피해자’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 2013년: 발단

드라마의 모든 각본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과 함께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 초기만 하더라도 청와대와 대기업 사이에 약간의 긴장감이 흘렀다. 어쨌든 박 대통령은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고, 2013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각각 구속됐다. 법무부는 ‘총수 일가로부터 독립적인 이사·감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대통령은 노사정위원회 본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하지만 그해 여름부터 균열이 나타났다. 8월28일 재계 총수와 만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상법 개정안은 신중하게 처리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후 경제민주화는 사라졌다.

최순실씨 쪽 움직임도 수면 위로 처음 떠올랐다. 4월 ‘비선 실세’인 최순실-정윤회의 딸 정유라씨가 출전한 전국승마대회에서 정씨가 2위에 그치자 경찰까지 동원된 판정 시비가 일었다. 9월에는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실세 차관’이 임명됐고, 연말에는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손경식 CJ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 압력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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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전개

이명박 정부 때부터 친정부 ‘낙하산’ 인사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주인 없는’ 대기업 2곳의 회장이 바뀌었다. 황창규 KT 회장과 권오준 포스코 회장 체제가 들어섰다. 포스코는 광고 계열사인 포레카 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때부터 차은택씨와 측근들의 포레카 강탈 시도가 이어졌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중소기업 ㄱ사 대표에게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김영수 당시 포레카 대표 등이 접근해 지분 80%를 내놓으라고 협박한 것.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처음부터 이런 음모를 알았는지가 관심을 모은다.

KT 쪽으로는 이듬해인 2015년에야 서서히 손길이 뻗쳤다. 차은택씨의 오랜 지인 이아무개 전무가 2015년 2월 KT에 특채 입사한 뒤 차씨 쪽에 광고 몰아주기가 시작됐다. 지난 2~9월 공개된 KT 영상 광고 24편 가운데 11편이 차씨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KT는 2016년에 난데없이 한국마사회와 ‘승마산업’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최순실씨 소유 회사인 더블루K와 스포츠 발전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논의했다.

영리한 기업들은 이미 2014년에 한발 앞서 ‘실세’ 최순실씨에게 접근했다. 5월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경영권 승계 문제가 절박했던 삼성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삼성은 승마 선수단이 없는데도 2014년 12월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사를 맡은 데 이어, 2015년 3월에는 회장사를 맡았다. 반면 한화는 임기가 2년여 남아 있는데도 회장사에서 물러났다. 이때 한화와 삼성 사이에 방위산업 등 4개 계열사를 인수·합병하는 ‘빅딜’이 진행 중이었다.

이후 삼성은 최순실씨 모녀가 소유한 독일 회사 계좌에 35억원을 쪼개어 송금해줬다. 정유라씨에게 10억원짜리 명마를 사주고, 마장마술 유망주 육성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2020년까지 최대 186억원을 몰아주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검찰은 최씨와 삼성 사이에 연결고리로 의심되는 현명관 회장(전 삼성물산 회장)이 있는 한국마사회도 11월9일 전격 압수수색했다.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 과제’를 건의하는 등 전경련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노동 정책은 이미 친기업 쪽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이후 11월 기획재정부가 처음 해고 요건 완화를 언급하고, 12월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이를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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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위기

박근혜 정부와 재계의 사이는 더 끈끈해졌다. 큰 판은 흔들리고 있었다.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강조하는 한편, 그해 여름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모임이라는 명목으로 대기업 회장단을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하반기 들어 청년희망재단,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등이 차례로 설립됐다. 노동개혁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목소리는 9월15일 노·사·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점점 높아져만 갔다. “노동개혁이 곧 청년 일자리” “노동개혁 더 이상 시간 없다”는 등의 대통령 발언이 이어졌다.

그해 여름, 몇몇 대기업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삼성은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는 바람에 경영권 승계에 ‘빨간불’이 들어왔고, 롯데그룹은 장남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이에 벌어진 ‘형제의 난’으로 시끄러웠다. 그 와중에도 재계는 물밑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삼성은 최순실 쪽과 접촉하기 위해 박상진 사장(대한승마협회 회장) 등을 독일로 보냈고, 이와 관련해 최근 SBS와 인터뷰한 최씨 회사 독일 법인 공동대표는 “삼성이 노조 문제 협력 등의 정부 지원을 약속받고 최씨에게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옛 삼성물산 지분 11.2%를 소유한 국민연금공단은 엘리엇 때문에 합병이 무산될 위기에서 삼성 쪽 손을 들어줬다.

전경련 등 경제5단체는 ‘쉬운 해고’를 요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광복절에 특별사면됐다. 그해 가을부터 2016년 초까지, 기업들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수백억원을 입금했다. 그해 12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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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절정

대통령은 이제 노골적으로 대기업 편에 섰다. 1월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촉구하는 1천만 서명운동에 직접 참여했다. 기업들을 향한 미르·K스포츠재단의 요구는 2월 들어 조직적으로 진화했다.

K스포츠재단은 SK와 포스코 등을 쑤시고 다니면서 지원금과 스포츠팀 창단 등을 요구했다. 이중근 부영 회장은 안종범 전 경제수석과 K스포츠재단 관계자들이 수십억원 기부를 요구하는 자리에서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했다.

최순실씨 쪽은 평창겨울올림픽 이권 사업에도 손을 뻗쳤다. 이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일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평창겨울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사퇴했다. ‘K-컬처밸리’에 1조원을 투자하기로 발표한 CJ는 8월 이재현 회장 특별사면을 얻어냈다. 그리고 지난 9월, 등의 보도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IMAGE7%%]지겨운 정경유착 드라마의 결말은?

4년에 걸친 이 장편 드라마의 결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력-최순실·차은택을 중심으로 한 이권세력-전경련과 대기업이라는 경제권력’ 사이에서 오간 ‘부당거래’는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뿌리 깊게, 사회 곳곳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을지 모른다.

검찰은 삼성과 마사회를 제외한 다른 기업들을 아직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가 이제 막 풀리기 시작했는데, 결론은 다시 미궁에 빠질 수도 있다. 수십 년째 이어진 정경유착 드라마가 과연 이번에는 끝날까.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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