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1월4일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자신의 죄는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은 정말 아무 죄가 없을까.
최순실(60)의 서울 신사동 640-1 미승빌딩 전경. 한겨레 김태형 기자
‘비선 실세’ 최순실(60)씨의 자금 유용 의혹의 얼개는 이렇다. 대기업→K스포츠재단→국내 ‘유령회사’ 더블루K→독일 더블루K·비덱스포츠(Widec Sports GmbH)→딸 정유라 승마 지원.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를 등에 업고 기업을 압박해 모은 돈을 여러 재단·업체를 통해 세탁해 딸에게 퍼줬다는 의혹이다.
하지만 최씨 일가의 ‘부정 축재’ 의혹은 한 세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씨의 선친 최태민(1912~1994)도 ‘부정 축재’ 의혹을 샀다. 공교롭게도 그 방법은 딸을 둘러싼 의혹과 비슷하다. 당시 영애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고 기업들을 압박해 돈을 뜯어내 재산을 모았다는 것이다. 그 재산의 일부가 현재 최씨 일가(4녀 최순득·5녀 최순실·6녀 최순천)가 보유한 수천억원대 부동산 자산의 종잣돈으로 쓰였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1979년 중정 “최태민, 박근혜 매명”아직도 최태민이 ‘부정 축재’했다고 의심받는 결정적 이유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수사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내용상 1979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보인다. ‘최태민 관련 자료’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를 보면, 최태민은 횡령 14건(2억2135만6천원), 사기 1건(200만원), 변호사법 위반 11건(9420만원·토지 14만1330평), (금품수수 등) 비리 13건, 이권 개입 2건, 융자 알선 3건을 저질렀다. 총 44건에 걸쳐 최소 3억1755만6천원어치 비위 사실이 적발됐다는 것이다. 그 경위 또한 자세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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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9.27. H업체 사장 K에게 대한화재보험협회 이사장 O에게 청탁하여 동 협회 청사 신축공사를 맡게 해준다고 하고 그 대가로 7천만원 수수.(※1천만원은 수수한 증거 없음)”
“76. 11.~77. 8.25 서울농협 불광지소에 (구국)봉사단 공금 합계 1억5517만6천원을 2~3회에 회전 분산한 후 가명 이송자, 임부전, 김기옥 명의 26구좌로 정기예금, 통지예금, 정기적금하여 은닉.”
“76. 10 초순 C에게 울산시장에게 청탁하여 울산시 동천강 병영교 밑 하천 토사 채취 허가를 봉사단 부산지단 명의로 받아주겠다고 하고 허가되면 2천만원 받기로 약속.”
중정은 보고서에서 최태민 비리 배경에 당시 영애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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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4.29 박근혜의 후원으로 자신의 심복 및 사이비 종교인 중심으로 대한구국선교단(76. 12.10 구국봉사단, 79. 5.1 새마음봉사단으로 각 개칭)을 설립하고 총재(박근혜는 명예총재)로 취임하여 구국선교를 빙자, 매사 박근혜 명의를 매명하여 이권개입 및 불투명한 거액 금품 징수 등 이권단체화로 치부.”
또한 최태민의 구국봉사단이 국내 재벌급 기업인 최대 60명으로부터 “1명당 입단 찬조비 2천만~5천만원에다 매월 200만원씩 운영자금을 조달”했으며 “운영위 멤버가 아닌 기업체에 대하여도 박근혜를 매명, 동일 명목으로 수천만원씩 갹출”했다고 파악했다.
최태민은 월간지 (1991년 4월호)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권개입과 금품수수’ 혐의와 관련해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자신을 직접 조사한 사실은 인정한 바 있다. 다만 “자신의 결백함이 규명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최태민과 박근혜 대통령의 첫 만남은 1975년 3월로 알려졌다. 육영수 여사가 1974년 8월 서거한 뒤, 최태민은 박 대통령에게 세 차례 편지를 보냈다.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와 근혜를 도와주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편지를 통해 접견이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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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인 1975년 4월, 최태민 총재의 대한구국선교단이 설립된다. 박근혜 당시 영애는 명예총재를 맡는다. 이 단체는 구국봉사단·구국여성봉사단(1976년)→새마음봉사단(1979년 해체)으로 이름을 바꾼다. 박근혜 대통령이 명예총재에서 총재로 나선 건 1977년 12월이다. 최태민 총재의 후임이었다. 최태민은 이후 비공식 고문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최태민이 언론에 다시 등장한 계기는 1987년 9월 육영재단 농성 사태다. 그가 박근혜 이사장이 이끄는 육영재단에서 수익·운영을 두고 전횡을 휘둘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은 1990년 11월17일 “최씨가 87년 재단 직원들에게 반감을 산 것은 현재는 폐간된 등 어린이잡지 편집에 딸 순실(38)씨가 간여하는 등 육영이 목적인 어린이회관을 수익사업체로 전환시키려 한 데서 비롯됐다”고 보도했다. 그는 1990년 11월까지 박근혜 이사장이 이끈 육영재단과 1989년 5월 조직된 근화봉사단(전 새마음봉사단) 고문을 맡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최씨 자매, 부동산 ‘알부자’박근혜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당시 영애)이 1977년 3월16일 최태민 구국봉사단 총재(맨 오른쪽)의 안내로 걸스카우트 대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의 부정 축재 의혹에 대해 줄곧 부인해왔다. 박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그것은 실체가 없는 이야기로 끝이 났다. 아버지께서 확실하게 대검에서 조사를 해보라고 했다. 그때 횡령이라든가, 이권개입이라든가 공천으로 부당한 짓을 했다면 아버지께 그대로 보고되고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민 일가의 재산 규모가 낱낱이 공개된 적은 없다. 그는 고위 공직자도, 공개된 재산범죄자도 아니었다. 다만 현재로선 그 자녀들의 부동산 자산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최순득(64)·최순실(60)·최순천(58)씨는 1980년대 후반 서울 강남구 신사·청담·삼성동 대지와 건물을 잇따라 사들였다. 서울 강남 땅값이 한창 오를 때였다. 당시 매입가는 총 수십억원대였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들의 나이가 30대 초·중반이었을 때 일이다.
4녀 최순득씨는 1985년 12월, 서울 삼성동 45-12 대지 288평(951.5m²)을 남편 장아무개(63)씨와 지분 절반씩 나눠 공동 매입했다. 남편 장씨는 1988년 12월 이곳에 지상 6층·지하 3층짜리 건물을 올렸다. 당시 주변 땅값은 200만원 안팎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86년 8월26일치 는 “서울 신사동·논현동·삼성동 고급 주택가는 땅값만 평당 180만~200만원을 호가”한다고 보도했다. 최씨 부부가 사들인 대지만 5억원 안팎이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까지 최씨 부부가 보유한 대지와 건물은 각각 300억원, 1천억원가량으로 평가받는다.
그 밖에 최씨 부부는 1998년 11월 서울 도곡동 아파트 한 채(68평형)도 매입해 현재까지 소유하고 있다. 이듬해 1999년 전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160평형·기준시가 16억원)로 꼽힌 곳이다. 현재 최씨의 아파트 시세는 35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5녀 최순실씨는 1985년 9월과 1987년 5월, 서울 신사동 639-11 대지 108평(359m²)을 매입했다. 이듬해 12월 지상 4층·지하 1층 건물을 올렸다. 최씨는 2008년 1월 이곳 대지와 건물을 한 저축은행에 팔아넘겼다. 최씨는 1988년 7월과 12월에도 서울 신사동 640-1 대지 200평(661m²)을 매입했다. 이곳에 2003년 8월 지상 7층·지하 2층짜리 건물을 세워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 건물의 현재 시세는 200억원대로 알려졌다.
최씨는 1995년 4월엔 서울 역삼동 689-25, 689-26 대지 188평(622.7m²)과 건물을 어머니 임아무개씨로부터 사들였다. 최씨와 그의 전남편 정윤회씨가 지분 6 대 4로 나눠가졌다. 당시 거래와 관련한 세금소송 재판에서 법원은 토지·건물 감정가를 13억6422만여원으로 매겼다. 최씨는 이곳 땅과 건물을 2002년 1월과 7월에 팔아넘겼다.
그 밖에 최씨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부 슈미텐에 3성급 비덱타우누스호텔과 단독주택 3채도 소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입가는 총 20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6녀 최순천씨는 1989년 4월 서울 청담동 119-3, 119-10 대지 307평(1012.6m²)을 사들였다. 최씨가 지분 4분의 1, 남편 서아무개씨가 4분의 2, 남편의 형이 4분의 1을 보유했다. 이곳에 1991년 9월 지상 9층·지하 4층 건물을 올렸다. 2002년 1월 최씨 가족(최씨와 자녀 2명)이 지분 전체를 보유한 에스플러스인터내셔널(전 서양물산)에 건물을 넘겼다. 청담사거리에 위치한 이 건물은 현재 시세 1천억원대로 평가받는다.
최씨는 서울 한남동 아파트 한 채(68평형)도 2001년 8월 매입해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다. 현재 시세는 20억원 가량이다. 그 밖에 최씨 부부는 서울 신사동·반포동, 부산 해운대구 중동, 광주 광산구 수완동에 남편 또는 에스플러스인터내셔널 명의로 1500여 평에 이르는 대지에 건물 4채를 추가로 소유하고 있다.
최순실씨 자매 일가는 다시 자녀들에게 재산 일부를 증여했다. 4녀 최순득씨의 딸 장시호(37)씨와 아들 장아무개(38)씨는 2005년 5월 제주 서귀포시 색달동 임야·밭·목장지대 4필지(6130평·2만263m²)를 아버지 장아무개씨로부터 지분 절반씩 증여받았다. 아버지 장씨가 1988년과 2002년 매입한 땅이다.
장시호씨는 서귀포시 색달동 임야 2필지(1045평·3456m²)를 2010년 4월과 2014년 7월 추가로 매입했다. 지난 10월 중순 장씨는 이곳 6개 필지를 급매물로 내놨다고 전해졌다. 장씨는 이모 최순실씨와 함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등을 통해 정부로부터 이권을 챙겨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장씨는 그 밖에 제주 서귀포시 대포동에 있는 빌라 한 채(44평형)를 2012년 5월 사들였다. 등기부상 거래가액은 4억8천만원이었다.
장시호·정유라에게 다시 ‘대물림’5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20)씨는 2011년 5~6월 부모로부터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도사리 대지·임야·목장용지 9필지(6만9635평·23만196m²) 가운데 지분 절반을 증여받았다. 나머지 절반은 최씨가 보유하고 있다. 이 땅들은 2004~2008년 최씨와 전남편 정윤회씨가 사들인 땅들이다. 현재 이 부지 전체 시세는 7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부터 최근까지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무역투자진흥회의와 관련 부처에서 산지 개발 규제 완화 제도를 마련해왔다. ‘최순실 사태’ 이후, 이 또한 정유라를 위한 제도가 아니었느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최태민 일가가 1975년 이후 3대에 걸쳐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고 ‘부정 축재’를 해왔다는 의혹은 점점 ‘실체가 있는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1136호에서는 도대체 대통령이 무슨 자격으로 자괴감이 들고 괴로운지 집중 파헤쳐 봤습니다. 이름하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집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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