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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언딘 투입하라

세월호 참사 구조 작업 지휘해야 할 해경, 언딘을 구난업체로 선정하도록 압력 넣은 정황 곳곳에서 노출
등록 2016-09-27 17:41 수정 2020-05-03 04:28
세월호 구난업체에 언딘이 선정되도록 압력을 넣은 의혹을 받고 있는 최상환 전 해양경찰청 차장이 2014년 9월3일 새벽 광주지검에서 조사받고 나오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구난업체에 언딘이 선정되도록 압력을 넣은 의혹을 받고 있는 최상환 전 해양경찰청 차장이 2014년 9월3일 새벽 광주지검에서 조사받고 나오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구조 과정에서 해양경찰청이 구난업체 언딘에 무리하게 구조 작업 총괄을 맡긴 정황은 이 단독 입수한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 등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사건’(언딘 특혜 의혹 사건) 검찰 수사기록 곳곳에서 나타난다.

언딘이 구조 작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16일 마련됐다. 검찰 수사 결과 해경의 나아무개 경감은 4월16일 오후 3시25분께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직원 홍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걸어 “서둘러 구난업체를 선정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며 “현장에서 작업 중인 언딘이라는 구난업체가 있는데 김아무개 이사에게 전화해 도움을 받으라”고 압력을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거짓말까지 해가며 언딘 선정 유도

그러나 당시 언딘은 현장에서 작업하지 않고 있었다. 나 경감이 거짓말까지 해가며 언딘을 구난업체로 선정하도록 압력을 넣은 셈이다. 평소 언딘 쪽에 각종 해양 사고 정보를 전달하며 도움을 줬던 나 경감은 홍씨에게 전화하기 전 여러 차례 언딘의 김아무개 이사와 통화하며 세월호 구난 작업을 맡을 수 있는지 등을 묻기도 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해양 사고에서 구조와 구난은 다른 개념이다. 구조는 인명을 구하는 것이고, 구난은 사고 선박을 인양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세월호 사고 당시 가장 급한 일은 구조 활동이지 구난 작업이 아니었다. 구조는 국가가 책임지는 영역이고, 구난은 민간업체들 간의 계약 문제로 해경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 해경이 특정 업체를 추천하는 경우 특혜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 경감이 청해진해운에 언딘과 계약을 맺으라고 유도한 것 자체가 부적절한 행위였다.


<i>구조 작업 뒤 이어진 인양에는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다. 구조 작업을 진행하면서 쌓은 정보는 이후 인양업체로 선정되는 데 큰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i>

언딘과 청해진해운이 2014년 4월17일 맺은 계약서에도 구난 작업 내용만 포함돼 있지 구조 관련 내용은 없다. 홍씨는 검찰 조사에서 “(당시) 구난의 의미를 구조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음도 급했다. 만약 배 인양과 관련된 문제라고 했다면 이렇게까지 급하게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 구조 작업에 참여한 해경 소속 김아무개 경정도 검찰 조사에서 “구난 계약에 해경이 관여하면 안 된다”며 “구조가 급한 상황이었지 구난업체 선정이 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나 경감이 왜 급하게 구난업체를 선정하려 했는지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청해진해운과 구난 계약을 맺은 언딘은 곧바로 구조 작업 총괄 역할까지 맡게 된다. 해경과 해군, 언딘 관계자 등 25명은 세월호 참사 사흘째인 2014년 4월18일 지휘함인 3009함에서 상황 대책회의를 열었다. 당시 회의 내용을 정리한 ‘상황 대책회의 결과 보고’ 문서를 보면 “총괄 지휘는 ‘언딘’에서 지휘체계 일원화”라고 적혀 있다. 구조 작업을 지휘해야 할 해경이 민간업체에 책임을 떠넘긴 셈이다.

언딘도 이런 상황을 거부할 이유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조 작업 뒤 이어진 인양에는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다. 구조 작업을 진행하면서 쌓은 정보는 이후 인양업체로 선정되는 데 큰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한 정황은 해경이 작성한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양 사업 입찰 때 유리한 위치 차지

해경 본청 소속인 정아무개 경정이 2014년 4월24일 작성한 ‘구조·구난 업무 일일 실적 및 계획 보고’(계획보고) 문서에는 “해수부(해양수산부)는 언딘이 국내 중소기업이므로 (인양 과정에서) 대국민 신뢰 확보 차원에서 일본 등 선진국 기업과의 제휴 등을 언급하였으나 언딘 측의 반발과 설득으로 이해”라고 적혀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이 “언딘이 해수부를 설득할 만한 입장인가?”라고 묻자 정 경정은 “언딘이야 자기들이 단독 사업자로 선정되어 있는데 굳이 다른 업체를 끌어들일 이유가 없으니까 반발했을 것”이라고 답변한다. 언딘이 구조 작업 이후 있을 인양 과정에서 발생할 이익을 고려한 정황이다.

김윤상 언딘 대표 역시 검찰 조사에서 “구난계약을 따면 사고 현장에서 실태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실태조사를 하게 되면 사고와 관련한 많은 정보를 축적하게 되기 때문에 추후 (인양 사업이) 국제 입찰로 가게 되더라도, 우리가 유력한 구난업체와 접촉하여 실태조사와 축적한 정보를 내세워 유리한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구조 작업에 언딘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해경의 나 경감이었다면 이를 더 굳건히 만든 것은 해경 고위직들이었다. 당시 구조 활동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잠수사들이 수중 작업 뒤 쉴 수 있는 바지선이었다.

2천t 이상의 대형 바지선 현대보령호는 실제 구조 작업에 투입된 미완성 바지선 언딘 ‘리베로호’보다 사고 해역에 30시간 먼저 도착했다. 하지만 이 배는 56시간 동안 사고 해역 인근에서 대기만 하다 돌아가야 했다. 검찰은 현대보령호와 계속 연락한 해경 우아무개 경감에게 이 일의 경위를 물었다.

검찰 작업 효율성 등을 위하여 추가로 바지선을 2대 설치하여 작업을 하여도 되는데 해경 측(이춘재 해경 경비국장, 최상환 해경 차장)에서 언딘을 밀어주기 위하여 현대보령호를 마냥 대기시키고 철수하게 유도한 것이 아닌가요?
우 경감 저는 바지선 설치 과정을 잘 모릅니다.
검찰 (이춘재 경비) 국장은 “리베로호에서 잠수 작업을 해보고 필요하다면 추가로 부를 테니 대기하라”고 하였다는 것인데, 진술인이 마음대로 철수를 시켰다는 것인가요? 진술인에게 그러한 권한이 있다는 것인가요?
우 경감국장님이 말씀은 그렇게 하셨는데…. (진술인은 눈을 감고 한숨을 쉬며 한동안 말이 없다.)
검찰 말해보시오. 처음부터 현대보령호를 투입할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닌가요?
우 경감(한동안 말이 없다가) 명시적으로 철수하라고는 안 했지만… 그렇게 계속 대기를 시켜서 스스로 포기를 하고 철수하기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검찰 진술인도 스스로 느끼기에는 일련의 과정에서 국장 이상의 지휘관이 현대보령호를 처음부터 투입할 생각이 없었다고 판단한 것 아닌가요.
우 경감 (고개를 끄덕이며) 예.
“어쩔 수 없이 공문을 만들어야 했고…”
해경이 2014년 4월21일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해경 보트 뒤로 언딘의 지시를 받고 미리 사고 현장에 출동해 자리를 잡고 있던 금호수중개발 바지선이 정박돼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해경이 2014년 4월21일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해경 보트 뒤로 언딘의 지시를 받고 미리 사고 현장에 출동해 자리를 잡고 있던 금호수중개발 바지선이 정박돼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검찰 수사 결과 언딘 리베로호가 최우선으로 사고 해역에 투입된 과정에는 최상환 당시 해경 차장과 이춘재 당시 해경 경비국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 수뇌부가 현대보령호를 스스로 돌아가도록 유도한 데에는 김윤상 언딘 대표의 의견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검찰에서 “4월20일~21일 무렵 진도군청 상황실에 해경 관계자들이 모인 상황에서 박아무개 해경 총경이 ‘현대보령호가 온다는데 어떡하지?’라고 하여 제가 ‘예상 시간을 파악해보니 현대보령호가 우리 리베로호보다 하루 정도 빨리 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현대보령호는 빈 바지(선으)로서 아무런 장비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리베로호는 모든 장비를 다 장착해서 바로 투입할 수 있습니다. 빈 바지에 장비를 장착하는 데에만 적어도 하루가 걸릴 겁니다. 또한 현대보령호는 수송선이고 리베로호는 전투함인데 구조·구난에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라고 이야기해주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김 대표 역시 검찰 조사에서 완성되지 못한 리베로호 투입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일부 인정했다.

검찰 현대보령호는 해수부의 추천으로 서해청장이 결정하여 투입된 것이고, 리베로호는 해경 차장이 추천하여 투입이 된 것인바, 결국 파워게임에서 현대보령호가 밀린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김윤상 저는 리베로호가 현대보령호보다 우수했기 때문에 해경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찰 리베로호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바지입니다. 진술인이 전회 (조사에서) 언급한 대로 태아와 같습니다. 그러한 바지를 억지로 끌고 나와 우수한 바지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김윤상 잘못된 것입니다. 추후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언딘을 구조 작업에 적극 투입하는 과정에서 해경 내부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이 반발은 가볍게 무시됐다. 목포해경의 김아무개 경사는 4월17일 해경 본청에서 언딘 리베로호에 구난명령을 내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해경은 민간업체에 구난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었다. 김 경사는 검찰에서 “알지도 못하는 언딘 리베로호에 왜 구난명령을 내려야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본청에서 지시한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공문을 만들어야 했고, 수신처에 언딘을 지정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일은 또 벌어졌다. 2014년 4월21일 해경 본청의 신아무개 경감은 김 경사에게 리베로호를 건조하던 천해지조선소에 구난명령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김 경사는 검찰 조사에서 “(신 경감에게) ‘내가 왜 이 공문을 보내야 합니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세요’라고 요구하자 신 경감은 ‘내가 꼭 자세한 이유를 설명해야 하나. 내가 서장이나 과장하고 통화를 해서 보내라고 하면 보낼 것이지’라고 기분 나쁘다는 듯이 전화를 끊었다”라고 진술했다.

언딘 투입 반발 의견은 무시

김 경사는 “이후 해경 본청의 지시를 왜 따르지 않았냐고 묻는 목포해경의 상관에게 ‘저번에 언딘에 보낸 구난명령 공문도 본청에서 지시를 하여 어쩔 수 없이 보냈는데, 이번 공문도 본청에서 보내라고 하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천해지조선소에 구난명령을 보내는 것은 맞지 않다. 이 공문은 보낼 생각이 없다’고 답변했다”고 검찰에 말했다. 또 “규정에도 없는 공문을 천해지조선소에 보냈다가 나중에 책임질 일이 두려웠고, 본청의 지시를 거절하는 것도 힘들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결국 김 경사는 이날 저녁 천해지조선소에 구난명령을 내려야 했고, 언딘은 해경의 지원을 등에 업고 완성되지 않아 운행허가증도 발급받지 못한 리베로호를 사고 해역으로 출동시킬 수 있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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