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쥐의 해, 십간십이지 중 유일하게 미움받는 동물… 일제시대부터 개발독재까지 쥐와의 전쟁은 어떻게 흘러왔는가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2008년은 쥐의 해’라는 말 속에는 동서양 문화의 원형을 이루는 상징들이 녹아 있다. 숫자 ‘2008’은 서양 문화의 뼈대를 이루는 기독교의 상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지 올해로 2008년째라는 뜻이다.
한밤중, 정북을 지키다
동양인의 세계관은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로 형상화된다. 10개의 ‘간’과 12개의 ‘지’가 모이고 흩어져 60갑자를 만들어낸다. 서양인들이 1에서 시작해 무한으로 확장되는 단선적인 세계를 살아왔다면, 동양인들은 60개의 간지가 무수히 되풀이되는 반복적인 세계관을 마음에 품었다. 쥐는 동양 문화의 원형질이 되는 십이지 가운데 가장 첫머리에 오른 동물로 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 등이 뒤를 잇는다. 2008년은 쥐의 해 ‘무자년’(戊子年)이다.
쥐는 십이지를 구성하는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이 미워하는 동물이다. 쥐는 약삭빠르고 가벼운 느낌을 주며, 사람에게 치명적인 병을 옮기고, 소중한 곡식을 축낸다. 그런 쥐가 왜 십이지에, 그것도 모든 동물을 대표하는 제일 첫자리에 포함된 것일까. 김윤정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십이지는 인도에서 건너온 불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 상징이 왜 특정 동물과 연결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쥐가 맡는 시간은 밤 11시에서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두 시간이고, 방향은 정북(正北)이다. 신라 김유신 장군 묘 등에서 정북쪽을 지키는 쥐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쥐가 십이지의 첫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말해주는 설화가 전한다. 옛날 하늘의 대왕이 동물들에게 지위를 주고자 했다. 선발 기준을 놓고 고민하다가 정월 초하루에 천상의 문에 먼저 도착한 짐승부터 지위를 주겠다고 했다. 가장 열심히 훈련한 것은 소였다. 쥐는 스스로 힘의 한계를 깨닫고 소의 등에 붙었다. 소가 가장 먼저 문에 도착한 순간, 소의 몸에 붙어 있던 쥐가 뛰어내리면서 가장 먼저 문을 통과했다. 그래서 십이지의 첫 번째는 쥐, 두 번째는 소가 됐다.
이유야 어찌 됐든 쥐는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왔다. 사람들은 새해를 시작하며 “올해는 쥐 피해를 줄여달라”며 논밭에 쥐불을 놓았고, 콩을 볶으며 ‘쥐주둥이 지진다’는 주문을 외웠다. 우리 설화 속에서 쥐는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예지자나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때도 있지만, 인간으로 둔갑해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탐욕스런 도둑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더 많다.
쥐의 본격적인 수난이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다. 각종 몹쓸 병을 옮기는 쥐를 퇴치하기 위해 경성부 위생과 직원들이 꺼내든 카드는 ‘현상금’이었다. 1938년 3월3일치 를 보면, “페스트 병원균을 절멸시키고저 경성부 위생과가 쥐 한 마리를 3전에 사들인다”는 알림 기사가 실려 있다.
인구는 3천만, 쥐잡기 목표는 3천만
는 8일 뒤인 3월11일치에서 “부민들은 안면(安眠) 방해자를 일소하는 일방(한편), 돈을 벌려는 결심하에 고양이를 대신하야 캄캄한 밤의 부엌과 창고를 노려보고 있다”는 풍경을 전했지만, 사람들의 호응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현상금이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3전으로는 당시 시내 전차표 한 장(5전)도 살 수 없었고, 소설 에서 주인공의 자존심을 긁는 싸구려 담배 ‘마꼬’(5전) 한 갑도 살 수 없었다. 결국 행사는 경성부 전체에서 모두 1208마리를 잡아 36원24전을 지출하는 초라한 성과를 낸 채 마무리된다. 이후로도 쥐와의 전쟁은 계속돼 는 1940년 4월15일치에서 ‘백방백중으로 잡히는 쥐약 만드는 법’을 자세한 삽화와 함께 전하고 있다. 기사에 ‘어린이들이 먹지 않도록’이라고 친절한 소제목을 뽑은 게 눈에 띈다.
쥐를 잡아오면 보상을 해주는 전통은 해방 이후까지 이어진다. 는 1966년 3월2일치에서 ‘쥐 한마리 5원씩 보상. 보사부서 쥐잡기 운동 벌여’라는 기사를 싣는다. 보건사회부의 목표는 당시 한반도 전체 인구와 맞먹는 3천만 마리였고, 이에 소요되는 예산은 1억5천만원으로 추경 예산에 반영키로 했다. 돈을 받으려면 쥐를 잡아 몸뚱이는 땅에 묻고 꼬리만 가까운 보건소로 가져가면 됐다. 사람들은 돈 욕심에 가짜 쥐꼬리를 만들어 보건소에 제출했고, 그런 사회의 풍경은 당대 코미디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가 됐다.
인류에게 쥐가 끼친 피해는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쥐는 흑사병·식중독·유행성 황달·서교열·발진열 같은 질병을 옮기고(흑사병은 14세기 유럽 인구를 3분의 1로 줄였다), 인간이 먹는 양식을 축내고, 건물을 파괴했다. 때때로 화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는 1958년 7월26일치에서 1949년부터 1958년 7월20일까지 기와집 51건, 초가집 37건, 판잣집 12건 등의 화재가 쥐구멍으로 화기가 새거나 쥐가 가설된 전선을 물어뜯어 합선된 데서 발생했다고 적었다. 쥐구멍으로 연탄가스가 새 일가족이 죽는 사건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단군 이래 계속된 우리나라 쥐의 역사를 적는다면, 1970년은 가장 비극적인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유신을 두 해 앞둔 박정희 정권의 대대적인 쥐잡기 캠페인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당시 ‘쥐잡기 캠페인’은 대통령이 진두지휘할 만큼 거국적인 행사였다.
1970년 쥐에게 가장 비극적인 해
박명근 청와대 보고관(보고번호 294호)이 1970년 3월28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 ‘70년도 제2차 쥐잡기 사업 실시 계획 보고’를 보면, 그해 1월26일 오후 6시부터 시작된 1차 쥐잡기 사업에서 “4300만 마리(4300마리가 아니다!)의 쥐를 잡아 106만6천 석의 양곡 손실을 방지하는 성과를 올린”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탄력을 받은 정부는 넉 달 뒤인 5월15일 1억9599만7천원을 투입해 7200만 마리의 쥐를 잡을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2차 운동의 성과는 목표의 절반에 못 미친 3300만 마리였다. 70년대 정부 보고서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쥐 4300만 마리는 당시 남한 인구보다 많은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한 마리 이상 쥐를 잡았다는 소린데, 다소 과장이 섞인 보고가 아닐까 싶다.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은 2006년 6월 인터뷰에서 “그렇게 잡힌 쥐의 털을 깎아서 ‘코리아 밍크’라는 이름이 붙은 쥐털 밍크 코트를 수출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경남지사는 3만 마리’ 하는 식으로 도지사들에게 잡아야 할 쥐의 양을 할당했다고 한다.
정부는 예상 밖의 놀라운 성과를 낸 쥐잡기 사업을 정례화한다. 이듬해인 1971년 쥐잡기 사업의 실시 날짜는 3월25일 저녁 7시였다. 그에 앞서 294만5천 장의 ‘삐라’와 30만 장의 ‘포스타’가 뿌려졌다. 그날의 목표는 인화아연으로 만든 쥐약 600만 포를 전국 동사무소를 통해 나눠준 뒤 3월25일 저녁 7시를 기해 뿌려 쥐 8천만 마리를 잡는 것이었다. 그런 행사에 크고 작은 사고가 없었을 리 없다.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사리에 사는 오간난(당시 나이 59)씨는 3월23일 오후 5시 술 깨는 약인 줄 알고 쥐약을 먹어 숨졌고, 전남 광주시 학동에 살던 김석원(당시 나이 52)씨는 가정 불화 끝에 쥐약을 먹고 자살했다. 당시 정부 보고서는 차량에 붙이려던 쥐잡기 표어를 찢는 사례가 있었음을 비분강개한 어조로 전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971년 우리나라의 총 자동차 등록 대수는 14만269대에 불과했다. 쥐가 어찌되든 상관없는 특권층들이었을 것이다.
쥐의 주거지는 인간의 주거지
시간이 지났고, 경제가 발전했고, 주변의 위생환경도 크게 개선됐다. 이제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쥐꼬리 수를 할당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쥐는 요즘 시궁창이 아닌 실험실에서 인간과 인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국립독성과학원 실험동물자원팀은 “1년에 동물 500만 마리가 의학 실험으로 죽어가는데, 그중에 60~70%가 쥐”라고 말했다. 국립독성과학원에서는 2007년 11월7일 오후 3시 위령탑 앞에서 실험동물을 위한 위령제를 열었다.
쥐는 십이지의 대표 동물이다. 미국의 로버트 설리번은 2004년 펴낸 이라는 저서에서 “쥐의 주거지와 인간의 주거지는 거의 완벽하게 겹친다”고 말했다. “신대륙으로 이주한 쥐들은 앞서 터를 잡고 살던 다른 쥐들을 몰아냈고, 닥치는 대로 식량을 먹어치워서 나중에는 굶어죽을 지경이 됐다.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쥐들은 싸움터로 내몰렸으며, 주거지를 잃고 방황하거나 죽어갔다.” 인간도 쥐처럼 약삭빠르고, 배은망덕하며, 치명적인 병을 옮기고, 무엇보다 탐욕스럽다. 쥐는 인간의 혐오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았고, 인간도 결국 그러할 것이다. 십이지 속에 등장하는 쥐의 이미지는 결국 인간의 추악한 본성에 대한 시니컬한 은유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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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2월이 되면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동물을 주제로 한 작은 전시회를 준비한다. 이번 주인공은 2008년 ‘무자년’의 쥐. 1999년 ‘토끼’를 시작으로 벌써 9년째에 이르고 있다.
올해 쥐띠전은 시간과 공간을 표시하는 방식으로서 ‘십간십이지’의 역사와, 그것이 인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수용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눈에 띄는 전시물은 지금까지 띠 동물 전시에 나오지 않았던 약사여래회상도(藥師如來會上圖·약사여래가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불화)다.
김윤정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그림 속에 나오는 12야차(약사여래와 그 주변에 모인 사람들을 보호하는 장수들)와 십이지를 연결해 해석해본 게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의 해석에 따른다면 십이지는 인도에 근원을 둔 불교 문화가 중국을 거치면서 12개의 동물과 결합돼 우리나라와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시회장에는 그 밖에도 실제 생활에서 쓰였던 쥐덫이나 쥐잡이 포스터, 쥐불놀이 깡통과 같은 생활 문화재들이 마련돼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이 중에서 쥐불놀이 깡통은 1970년대 종로구 원서동 장씨 집안에서 실제로 썼던 것을 북촌생활사박물관을 통해 입수해 전시했다. 깡통은 사탕통으로 만들어졌는데, 미군부대를 통해 흘러나온 게 아닌가 싶다. 전시회장 밖에는 쥐와 관련된 다양한 얘기들을 담은 ‘쥐 이야기 가마니’와 전시회 방문 기념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스탬프도 마련돼 있다. 가마니에 손을 넣고 짧은 ‘쥐 이야기’ 한 편을 뽑아볼 수도 있다. 전시회는 2008년 2월25일까지 계속된다.
* 사진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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