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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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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접니다, 놀라셨죠?"

등록 2001-12-27 00:00 수정 2020-05-03 04:22
풋풋한 사연을 담은 25통의 이웃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취업 원서를 쓰다 문득…

고향에 계신 아버지 안녕하세요. 저 강이입니다. 벌써 새해네요. 얼마 안 있으면 아버지 회갑이지요? 회갑 전에 ‘취업준비생’ 딱지를 떼고 싶었지만, 그리고 아버지도 그렇게 바라셨건만, 지난 한해를 또 그냥 넘기고 말았네요. 나이 서른을 넘기는 아들 걱정에 흰머리와 주름살이 더 늘었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지난해에는 다니던 대학원도 접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해를 넘기며 얻은 건 ‘나이 한살 추가’뿐이네요. 나이 한살에 낮춰야 할 ‘눈높이’는 또 얼마일지…. 하지만 지나간 일은 제쳐두고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라는 아버지 말씀 잊지 않을게요. 오늘도 PC방에서 취업원서를 쓰다가 잠시 한자 적었습니다. 아버지 회갑 축하드리고, 올 한해 내내 건강하세요.

<i> 이강/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i>

네가 곧 보게 될 세상은…

얼마 전 엄마와 너의 모습을 그려봤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한숨을 쉬면서 이런저런 걱정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겠니. 그러나 아빠는 걱정보다는 희망을 얘기해주고 싶다. 엄마의 말처럼 네가 살아가다보면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든 순간도 있을 거야. 그렇지만 세상은 절망의 순간에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승리해왔단다.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항상 현실이 됐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엄마와 아빠가 30여년을 보냈던 20세기는 소유와 정복의 욕심에 눈이 어두운 어른들의 거짓 희망이 중심이 되었던 역사였다. 이제 그들의 역사가 인류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 만큼 네가 살아갈 21세기는 나눔과 섬김의 역사를 만들어가야 될 것이다. 아빠는 네가 그 중심에 서 있기를 바랄 뿐이다. 빨리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여보 사랑해….

<i> 김현성/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상사동 미도아파트 2동 203호</i>

엄마가 남겨주신 선물은 당신

국화 언니 보셔요. 저 혜원이에요. 언니를 알게 된 지 이제 겨우 한달 남짓밖에 안 된. 하지만 한달이라는 그 시간이 제게는 1년 아니 10년처럼 느껴진답니다. 언니를 만날 때면 늘 따뜻했어요. 가끔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번의 만남에 마음을 열었고 두번의 만남에 나의 아픔들을 보여주었어요. 그리고 세번의 만남에서 언니는 내 아픔들을 치료해주었지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이뤄진 네 번째의 만남에서 언니는 절망에 빠진 나를 안아주었어요. 온몸과 마음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그 3일 동안, 내 곁을 지켜주었던 언니에게서 난 돌아가신 엄마를 느꼈어요. 엄마처럼 정말로 따스했어요. 그 따스함이 너무나 커 때론 사무치기도 했어요. 너무 미안해서, 고마워서…. 언니 알아요? 내가 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기대고 싶어하는지. 아마도 언니는 돌아가신 엄마가 제게 주신 선물인 것 같아요. 힘들어할 나를 위해 미리 준비해둔. 그래서요, 언니가 너무 소중해요. 언니를 통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마를 좀더 사랑할 수 있었고, 언니까지도 더 많이 사랑하게 됐어요.

<i> 조혜원/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i>

이제 결혼해주세요

우리가 알고 지낸 지도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다정다감한 연인으로서의 만남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아. 계절마다 찾아오는 아름다움을 우리는 연인으로서 느끼지 못하고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긴 세월을 보낸 것 같구나. 지금도 여전히 같은 회사 동료들의 눈을 피해가며 만나는 것이 긴장되지만 그 긴장 속에서 우리의 만남은 더욱더 소중해지는 것 아니겠어? 7살의 나이 차이를 서로가 극복하고 이해해주는 우리는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오빠는 믿어. 이 세상 가장 비밀스런 소리까지도 함께 듣고 이부자리 속 달걀만한 온기에도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것이 부부라는 누구의 말이 생각이 나는구나. 오빠가 전에도 말했듯이 세상이 험난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자신의 마음가짐에따라 그 세상을 바꿀 수가 있어. 힘들고 어려울 때 서로에게 의지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삶에 임한다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울 거야. 오빠가 그 아름다운 세상을 가장 사랑하는 현정이한테 열어줄게. 사랑해, 현정아. 오빠랑 결혼해줘.

<i> 이상욱/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i>

아버지의 눈물을 떠올리며

아버지…. 멍하니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제 당신은 내일이면 환갑을 맞으십니다. 어린 시절 나의 눈에 비친 당신은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크고 거친 손, 검게 그을린 어깨. 내가 생각한 어른이었습니다. 하지만 강한 당신의 겉모습 속에서 여린 마음을 발견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죠. 어둠 속에서 당신은 울고 계셨고, 난 당신의 차가운 손을 잡았습니다. 그 손은 작고 뭉뚝했으며, 어깨는 힘없이 늘어졌습니다. 지친 기운이 느꼈습니다. 비록 그날 당신의 연약함을 보았지만, 난 당신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당신을 더욱 사랑합니다.

<i> 강영구/ 서울시 동작구 흑석3동</i>

첫 제자들아, 고맙구나

몹시 불편한 넥타이에다 잘 맞지도 않는 양복을 입고 처음 교실에 들어서던 날 혹시 그때 선생님 모습이 생각날까? 너희들은 아주 익숙한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아 앉았지만 그때 선생님은 몹시도 떨렸다는 걸 눈치챈 사람이 있을는지 궁금해지는구나. 실내화가 없다고 흙 묻은 신발을 신고 4층 교실까지 올라온 민경이나 적당히 잘 어울리는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맨 뒷자리에 앉았던 현모를 봤을 때 선생님은 사실 무척 겁이 났었지. 처음으로 매를 들던 날 잠을 설쳐댔으면서도 막상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못하고 보내는 것 같구나. 하기 싫은 숙제, 지겨운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별탈없이 건강하게 보내준 너희들에게 그저 고마워할 따름이란다. 쓴소리가 많아지고 목소리가 올라간 적도 많았었지. 아마도 선생님이 부끄러운 모습들을 감추고 싶어서 그랬을 거야. 이런 선생님에게 언제나 푸근한 미소들만 듬뿍듬뿍 보내주던 5학년6반 너희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만 가지고 있단다.

<i> 홍순근</i>

나라보다는 국민입니다

안녕하세요, 국민 여러분! 건강하시죠? 아 여러분께 이렇게 편지를 드리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약간 쑥스럽기도 하네요. 오랫동안 망설여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꼭 말해야겠습니다. 사실 제가 사랑했던 건 나라가 아니라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나라에 대한 사랑이 국민 여러분에 대한 사랑인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다보면 국민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 이제 나라를 잊기로 했습니다. 나라와 국민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저는 주저없이 여러분을 택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을 위해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지 나라를 위해 국민 여러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밝아옵니다. 올해에는 나라가 발전했다는 말보다는 국민 여러분이 행복해졌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싶습니다.

<i> 윤형근/ 대구시 수성구 만촌1동</i>

하니리포터로 만난 인연

하니리포터로 활동할 때 함께 일한 김은국 기자님. 그간 잘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한해가 짧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참 많은 일들을 겪었고 체험했고 보람도 느꼈었던 것 같아요. 김 기자님 일전에 이메일 답장에서 남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나를 위한 노동을 위해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내 삶을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김 기자님처럼 딸린 가족은 아직 없는 총각이지만 다가올 행복을 이제부터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일전에 프리랜서로 일할 때 김 기자님 같은 관리자 입장에 서보고 싶을 때가 솔직히 많았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직장에서 관리자가 되고보니 그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을 다스린다는 입장보다는 이제는 좀더 친한 가족같이 가까이서 이해해주는 입장에 서야 할 것 같아요. 언젠가 편집국으로 녹차를 선물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 잘들 계시겠지요. 그분들께도 인사 전해주시길 바라고요. 좀더 달라진 모습으로 내 삶에 충실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i> 박용효/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i>

힘든 만큼 배운 한해

내 중심을 잡아주는 소중한 친구들아. 2001년. 올해는 우리에게 사건들이 많은 한해였지. 돌아보면 정말 그렇다. 자줏빛 도서관에서 함께 힘들게 공부했던 고3 때도 이렇지 않았는데, 언젠가 가만히만 앉아 있어도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린다는 이야기를 누군가 한 다음에, 모두들 동의하며 아팠던 것이 기억나. 그래….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에 있어서 그 방향을 결정하는 제2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거겠지. 졸업 뒤 어려운 공부를 하면서 직업란에 쓸 것이 없어 울어버렸다는 현이도, 원하던 일을 찾았지만 가족과 우리 옆을 떠나야 하는 서현이도, 매일매일 가르쳐도 성과가 쉬 보이지 않는 아픈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윤이도, 매일같이 입사원서를 넣고 또 그 지겨운 불합격 소식을 듣는 나도 말이야. 그래도 돌아보면 아마 하나씩 배운 것들이 있는 한해였을 거라고 생각해. 비록 상황이 계속 안 좋더라도 우리는 끝내 좋은 경험으로 만들고야 말 테니까. 실패 속에서도 우리가 배우는 그 의미들을 놓치지 않으려 서로에게 자신에게 눈을 크게 뜨는 우리니까.

<i> 이지영/ 졸업 예비생</i>

아빠는 ‘공기’예요

아빠! 저 큰딸 연수예요. 초등학교 시절 어버이날 때 편지를 써본 이후로 처음 써보는 것 같아 죄송하네요. 어렸을 때 아빠는 무서움과 두려움의 대상이셨어요. 심지어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기도 했고요. 그것이 애정으로 변하게 된 건 몇년 전부터예요. 성실히 일하시는 아빠께 IMF는 종이호랑이마냥 나약함을 갖다 주었죠. 그걸 알면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못했고요. 그러다 재작년과 올해, 뒤늦게 겨우겨우 구한 직장에서 일을 하시다가 양손을 다치셨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때 알았어요. 제가 아빠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핏덩어리 시절,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할 때마다 가장 아끼는 물건은 물론 돈이 되는 물건이라면 죄다 팔아서 치료받게 해주었던 아빠의 사랑을 전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는지 참 후회가 되네요. 공기의 존재마냥 아빠는 늘 저희 곁에 있어주었기에 그 소중함을 몰랐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새해인사 겸 처음으로 말합니다. 아빠! 사랑해요! ^^;

<i> 민연수/ 서울시 중랑구 면목7동</i>

당신의 기도로 되찾은 생명

생명의 은인 아내(윤태자)에게. 지난 1997년 말 우리 가정에 찾아온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은 가장인 내가 위암으로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지요.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 이런 어려움이 닥치다니! 우리는 이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러나 도리질을 칠수록 현실로 다가오는 위험에 대비해야 했지요. 당신은 “수술 뒤에 결과를 장담할 수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망연자실했다고 나중에 말했습니다. 당신의 눈물과 여러분들의 기도 덕분에 새 생명을 찾았고, 지난 4년 동안 당신은 남편의 건강회복을 위해서 헌신해왔지요. 성은이, 미소란이도 당신을 닮아 열심히 자신의 삶에 충실하니 정말 감사하고,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다시 한번 영광을 돌립니다. 남은 생애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갑시다. 안녕!

<i> 장기연/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i>

이국 땅에서 큰절 올리며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골목을 지나면 눈을 치우시던 아버님께서 “이제 다 치웠어. 춥다. 어서 들어가자” 하시며 앞장을 서십니다. 현관문을 열면 어머님을 따라 나온 김칫국 냄새가 반겨주고, 온기가 가득한 안방에서 큰절을 올립니다. 올 한해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보고 싶은 어머님, 아버님, 이렇게 마음속으로는 금방 그리고 수도 없이 달려가지만, 올해도 새해 인사를 이국 땅에서 올립니다. 어머님, 아버님의 땀방울을 사랑으로 반죽해서 한입씩 떠 먹이며 키운 자식이 이제는 자신의 땀과 사랑으로 따뜻한 밥을 지어 올려야 할 때가 지났건만, 여전히 입만 벌리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나선 이 길 끝에 열매를 거두어 돌아가는 날, 저희 네 식구의 사랑을 녹여 작은 행복으로 만들어 두분께 드리겠습니다.

<i> 김용주/ 프랑스 유학생</i>

내게 위안이 된 눈물

이름 모를 당신에게. TV 속 당신은 울고 있었지만, 제가 당신의 그 울고 있는 얼굴에서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면 제가 잘못한 건가요? 당신은 초등학교 때 학교 앞, 하굣길에 과속 차량에 의해서 두 다리를 잃고 만 장애인이었습니다. TV 속에서 당신은 보험금을 타낼 요량으로 자신의 두 다리를 기차 레일에 묶어 스스로를 해한 한 가장을 원망하고 있었죠. 당신은 “두 다리로 뛰어다니고, 두 다리로 서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아느냐”고, “제발 자신의 몸은 해하지 말라”고 울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 깨달았답니다. 당신의 작은 소망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당신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이들이 다치지 않게 이 세상을 가꾸어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말입니다.

<i> 안홍석/ 광주시 동구 동명2동</i>

겨울 난롯가보다 진한 감동

우리가 다시 만난 2000년 7월2일 이후로 줄곧 넌 나의 그루터기였단다. 네가 있었기에 난 소설을 쓰고 음악을 만들 수 있었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네게 의지하며 하나하나 완성해냈지. 참 행복했어.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것만큼 포근하고 따스한 일이 또 있을까. 넌 가끔 나에게 겨울 난롯가가 주는 감동보다 더 진한 감동을 선사하곤 해. 내가 세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그 즈음이야. 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 네가 오래오래 축복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할게. 눈같이 맑고 투명한 눈망울을 가진 너. 넌 특히 웃을 때의 눈이 가장 예뻐. 새해에는 그 눈부신 웃음을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어.

<i> 윤정원/ 서울시 동작구 흑석1동</i>

통일되는 날 만나요 언니

리금녀 언니 잘 있죠? 그때 차마 하지 못한 '언니'라는 말 이제 합니다. 지난해 7월, 남북농민통일대회 취재차 이북에 갔을 때, 대학신문 기자인 제게 선배 기자로서 사진 기술이며, 취재 요령 등을 가르쳐 준 언니에게 '사랑하는 이에게 띄우는 편지', 언제 보게 될진 모르지만 보냅니다. 건강한지, 어떻게 지내시는지 무척 궁금하지만, 알다시피 소식 전하기는 쉽지 않네요. 그래도 전 언니와 같이 찍은 사진, 가끔 보며 언니의 환한 웃음, 친절과 사랑, 절대 잊지 않고 고이 간직하고 있답니다. 다음에는 통일되는 날, 다시 한번 같이 취재하며 기쁜 마음으로 만났으면 좋겠네요. 그때까지 절대 저 ?騈만 안 돼요. 더불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항상 행복하게 지내세요.

<i> 김장효숙/ 부산시 남구 용호3동</i>

새 삶, 떨림과 자신감

신부에게. 인생이 몇번의 커다란 변화의 시기를 겪으면서 다져지고 성장한다면, 제가 그 커다란 변화를 마∼악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그대를 만나서 사랑하고, 싸우고, 아파하고, 또다시 다짐하고, 그리고… 마주 서기까지 각자가 짊어온 자신의 에고가 너무나 비대해져 있었습니다. 주위의 인생 선배나 집안 어른들이 해주시는 ‘잘사는 지혜’가 아직은 실감나지 않지만 그대가 말없이 행하는 ‘져주면서 이기는 전략’에 꼼짝없이 포로가 되고 말았지요. 약간은 떨립니다. 하지만 나와 그 변화를 함께하는 당신이 있기에 자신있습니다. 멋있는 프로포즈 없이도 옆구리 ‘툭’ 치며 나를 삶의 동반자로 맞아준 당신에게 감사드리며, 새해에 시작되는 우리의 결혼생활이 서로에게 평생 힘이 되고 행복 주는 삶이길 약속합니다. 양희씨, 사랑합니다.

<i> 최영재/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i>

언니가 엄마가 된다고?

언니 결혼식날 울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언니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니,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아직 철이 덜 들어서인지, 엄마가 되면 언니와 자주 못 만날 거 같아 걱정도 되지만, 언니가 아이를 낳아 더욱 행복해졌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야. 아이 때문에 언니를 희생하는 일도 없었으면, 언제나 언니가 원하는 것을 하고 살았으면 해. 내년에는 언니와 형부와 아가가 건강하게 만나길 바라. 몸도 마음도 말이지. “아이를 기르지 않지만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처럼 나도 언니의 아이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할게. 언니와 형부도 지금처럼 훌륭한 ‘사회적’ 부모로 살아가길….

<i> 이선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i>

부모님보다 더 큰 사랑

오라버니! 우리는 경북 의성이라고 하는 아주 조용한 산골에서 태어나 많은 가족들이 어우러져 사느라 몹시도 가난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죠.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사는 집도 변변치 않았고요. 늘 까만 땟줄을 달고 다니고 호롱불 아래에서 호호 공부하고 뒷산 부엉이 울음소리을 자장가삼아 잠들고…. 그러나 부모님보다 더 큰 사랑으로 오라버님이 동생들을 정성스럽게 돌봐주고 큰 꿈을 품게 해주어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잘살고 있습니다. 오라버님께 감사의 마음과 따뜻한 마음을 보내야지 하는 생각을 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담고는 있었으면서도 한번도 보여드리지도 보내지도 못했군요. 을 통하여 동생이 보내는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받아주세요. 새로 맞이하는 또 한해에도 우리 가족의 화목을 약속해요. 국민은행 청담2동 지점장 임환석 귀하.

<i> 임해숙</i>

누님, 저도 30대군요

존경하는 누님. 영원히 젊을 것 같은 누님도 나이를 먹는 건가요? 이젠 30대의 후반에 접어드셨군요. 1년 동안을 서로 떨어져 지내면서도 마음으로는 멀리 있지 않다고 느꼈었는데, 이렇게 한해를 보내고 또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누님과 함께하지 못할 때면 뵙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답니다. 드문드문 누님께 인사를 드릴 때마다 항상 중3짜리 학생으로만 보았던 제가 성장하는 모습에 놀라시던 그 표정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아 누님! 당신은 언제나 저의 마음 한구석에 커다란 기둥이었습니다. 이제 저도 곧 누님과 같은 30대가 됩니다. 더이상 어린애로서 누님께 보살핌을 받기보다 함께 인생을 논하는 친구가 되고 싶군요. 올해 있을 시험에 합격하시고, 금의환향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누님!

<i> 조영재/ 서울시 성북구 성북2동</i>

글쓰기로 만난 우리는 ‘동지’

사랑하는 후배 송미심에게. 글을 써보겠다고 YWCA 문학교실에서 만난 지도 어느새 13년이 넘어섰군요. 그대와 나는 십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오늘까지 없어서는 안 될 좋은 친구로 지내오고 있어요. 긴 세월 동안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며 슬픔과 기쁨도 함께했지요. 생각나세요? 올해 내가 이 나이에 컴퓨터를 아들한테 배워서 그대한테 처음으로 이메일로 편지를 보냈을 때, 드디어 21세기 첨단을 걷는 여성으로 거듭났다고 기뻐하며 답장을 보내주었지요. 비록 독수리 타법이지만 얼마나 손빠르게 잘 치는지 그대도 놀랐지요. 책읽기를 통해, 글쓰기를 통해, 또 네팔의 세르파 가르마 겔진에게 내 편지를 번역해주는 그대를 생각하면 언제나 고마운 마음뿐이에요. 새해에는 더욱 두터운 우정으로 만나기를 바라며 그대를 만난 걸 행운으로 생각해요.

<i> 문향선/ 광주시 북구 금호타운</i>

이등병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그동안 추운 날씨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이곳에 있는 가족들은 네가 국토방위를 튼튼하게 하기 때문에 마음 편히 각자의 일에 열중하고 있단다. 요즘 날씨가 대단히 추운데 감기는 걸리지 않았는지 염려되는구나. 아빠가 여러 차례 편지를 통해 이야기했듯이 강인한 정신력으로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너보다 더 추운 곳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위안이 될 거야. 그곳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어서 가장 졸병이겠지만, 상관들이 모두 너의 형이라 생각하면 어리광도 부릴 수 있고 동생인 너를 잘 도와줄 수 있으니 좋을 수도 있어. 행복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는 거야. 항시 운전병으로서 배운 그대로 교통법규를 준수하여 안전운전을 생활화하여라. 추운 겨울철에 몸 건강히 군복무에 충실하기 바란다.

<i> 진정채/ 전남 화순군 화순읍</i>

처음처럼 그렇게 살아요

내 인생의 1/3을 같이한 우리 신랑 보세요. 벌써 우리가 결혼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가네. 그리고 우리가 만난 지는 10년이 되나? 올 한해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우리 결혼하고,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딸 윤재가 태어나고…. 대학 1학년 때 만나서 같이 졸업하고, 군대 3년을 열심히 기다려 이제 날 데려가나 싶었는데 대학원을 멀리로 가버리고…. 그래서 그런지 남들은 8년쯤 사귀면 시들해진다고 하던데 우리는 매일 만나도 항상 모자라고 그립고 했었지. 결혼을 하고 바로 아이가 생기면서 점점 보통의 부부처럼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어. 난 아이 보느라 정신없는데 집에 오면 그냥 혼자 놀다가 자버리는 당신을 보고 오늘은 화가 나서 회사가는 거 봐주지도 않고 그냥 나도 나와버렸지. 밖으로 나오는 순간 올해 첨 보는 눈이 내리는 거야. 그 눈을 보니 갑자기 눈물나게 당신이 보고 싶었어. 기억나지? 지난해 우리 결혼 다음날 30년 만에 처음 오는 폭설 때문에 우리 신혼여행도 못 갈 뻔했잖아. 그래도 눈이 오면 잘산다고 우리 마냥 좋아했는데. 우리 정말 처음처럼 그렇게 살자. 앞으로 나도 노력하고 더 잘할게.

<i> 박소영/ 서울시 강동구 성내동</i>

더불어 사는 세상의 의미

최일도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여름 딱 한번 목사님의 강연을 들었던 대학생입니다. 그런데도 연말에 누군가에게 ‘사랑의 편지’를 쓸 생각을 하니 목사님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아마도 제겐 목사님의 강연이 무척이나 감명 깊었나 봅니다. 목사님이 주장하시던 ’더불어 사는 세상’은 제가 꿈꾸던 세상이었습니다. 자기 이익만 챙기려 드는 세상에서 모두가 조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 것일까 항상 고민하던 저는 목사님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바로 저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작지만 동호회 사이트를 만들어서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데 노력하고 있답니다. 목사님이 강연에 앞서 하시던 말씀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목사님. 저 그리고 이 글을 읽게 되는 모든 이들이 새해에는 아름답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흠뻑 느끼며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김대현/ 전남 화순군 화순읍</i>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제 인생에 언제나 희망이신 문성자 선생님 보세요. 편지 한장 드리지 못하고, 5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군요. 살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줄곧 생각나는 한 사람, 바로 제겐 선생님이셨지요. 96년 여름이었던가요? 많은 대학생들이 연세대에 갇혀 며칠째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저희 집으로 전화를 주셨지요? 전 다음 학기 등록금 구하는 데 급급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선 제가 걱정되셨다며 전화를 주셨어요. 그때 제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선생님 혹시 알고 계세요? 젊은 청춘으로 언제나 당당하고 희망차게 살겠노라고 생각했었는데, 늘 현실 앞에서 주저앉아버릴 때마다 선생님 생각을 했더랬어요. 98년 봄, 집안 사정으로 휴학을 하고 아직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어요. 당당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언젠가는 선생님과 함께 참교육의 교단에 나란히 어깨를 겨누고 서겠노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현실은 그렇지 못하네요. 그치만 선생님 전 포기하지 않아요. 언젠가는 반드시 제 꿈을 이루어낼 거랍니다.

<i> 지은정/ 서울시 양천구 신월7동</i>

우리 문학을 지켜주세요

황석영 선생님께. 세월이 흐르면서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보입니다. 경직되고 편향되었던 사고방식에서 조금 유연해졌다고 할까요, 세상과 좀더 많이 타협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원칙적인 부분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내면의 뿌리가 깊게 내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것은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제도, 역사의 흐름 등을 나름대로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도 선생님을 뵌 적은 없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서, 그리고 작품을 통해서 아주 낯익은 모습으로 뵙게 됩니다.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출판된 선생님의 작품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작품을 통해 민중의 삶, 분단된 역사, 이데올로기와 전쟁의 폐해를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가란 시대의 고통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어야 하고, 그의 작품은 소외당하는 자의 목소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늘 역사의 현장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선생님을 보면, 우리 문학의 희망을 보는 것 같습니다.

<i> 백건우/ 서울시 강남구 수서동</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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