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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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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라 숨겨둔 말들아 내 소중한 사람에게!

등록 2001-12-27 00:00 수정 2020-05-03 04:22

은 신년호 특별기획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독자들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참여했으며, 어느 편지에나 애틋한 마음이 깊게 배어 있습니다. 지면 사정 등으로 편지가 실리지 못한 독자들께 사과 말씀 드립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박노자 교수의 신간 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독자들의 훈훈한 사연과 함께 새해를 시작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i> 편집자</i>

아내에게 바치는 유언

사랑하는 아내 재옥에게

100살까지 살겠다고 장담하던 내가 40 중반에 유서를 쓴다는 게 참 어색하구려. 이 글을 읽으면서 놀라지 말게.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에 대비해 가끔 삶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주변을 정리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걸세.

먼저 세 가지를 사과하네. 첫째, 당신에게 경제적으로 고생 많이 시킨 게 가장 미안하군. 부잣집 딸이 가난한 집 아들과 결혼하는 바람에 별일을 다 해보았지? 유학생 시절의 비참한 생활이야 남들도 겪는 고생이라 칠 수 있겠지만, 교수가 되어서도 빚더미 위에서 살고 있는 것은 당신이 견디기 어려우리라 짐작하네.

둘째, 통일운동을 이끈답시고 가정에 소홀히 했는데, 가정을 통한 소박한 행복보다는 시민운동을 통한 명예를 더 추구해온 점 미안하네. 사회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당신과 아이들에겐 무관심하고 무뚝뚝하면서도 다른 사람들 특히 여자들에게는 과잉 친절을 베푼다는 당신의 불만 섞인 지적에 좀더 신경을 써야 했는데 말이야. 운동의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당신 말대로 이른바 ‘끼’가 다분한 탓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하거든.

셋째, 당신은 우리가 천국에서도 꼭 만나야 한다면서 내가 진정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주기를 그토록 간절히 바랐는데, 굳이 거부해온 점도 마음에 걸리네. 물론 내가 힘쓰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신앙심이란 게 억지로 생기는 것도 아니잖은가. 그래도 기독교인들 못지않게 바르고 착하게 살려고 힘써왔다는 점은 알아주기 바라네. 나는 무턱대고 어느 한 종교에 매달리지 않고 어떠한 종교든 좋은 면은 모두 받아들이고 따르고 싶은 걸세.

이제 네 가지를 부탁하네. 첫째, 내가 죽은 것을 다음 사람들에게만 알리게. 우리 양쪽 집안 식구들, 이우정 교수님, 최준수 목사님, 김택, 이중선. 내가 일해온 대학과 이끌어온 통일운동 모임, 몇몇 가까운 친구들과 아끼는 제자들만 알면 되겠지.

둘째, 당신이 꺼려 하는 것 알지만, 내 몸뚱이에서 눈이든 장기든 쓸모있는 부분은 뭣이든 필요한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해주게. 사회에 돌려줄 만한 돈이 없으니 시체라도 내놔야지. 그리고 불에 태워 남은 재는 내 아버님 어머님 묘 앞에 뿌려주고. 그까짓 죽은 몸뚱이가 좀 흉하게 파헤쳐진들 어떻고, 아이들이 찾기 힘들 무덤을 만든들 뭐 하겠는가.

셋째, 당신과 아이들에게 가난을 안겨주고 가는 처지에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내 퇴직금과 생명보험료에서 빚 갚고 남는 게 있으면, 그 가운데서 20% 정도는 사회에 내놓기 바라네. 당신은 언젠가 고아원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으니 10%는 남한의 고아들에게 건네고, 나는 지금까지 통일운동에 조금이나마 힘써왔으니 10%는 북녘동포 돕기 성금으로 한상렬 목사님에게 전해주는 게 어떨까?

그리고 난 “땅 한줌 물려받은 것 없이 가진 것이라곤 책 보따리 몇개뿐”이라는 말을 즐겨 써왔는데, 집과 연구실에 2천권쯤 되는 책들 가운데 당신이나 우리 아이들이 꼭 간직해서 읽고 싶은 것 빼놓고는 모두 원광대학교 도서관에 전해주기 바라네. 나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준 곳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니까.

넷째, 당신은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천국에서 나를 떳떳하게 만나기 위해, 내가 먼저 죽어도 재혼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지? 그러나 나는 당신이 꼭 재혼하기를 바라네. 그게 당신은 물론 아이들을 위해 더 바람직할 것 같아. 심리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말이야. 당신이 꿈꾸는 대로 우리가 천국에서 만나더라도 서로 어색하거나 내가 섭섭해할 일이 뭐 있겠어? 오히려 내가 베풀지 못했던 정과 사랑을 가정에 충실하고 자상한 남자로부터 당신이 받게 된다면 내가 아주 흐뭇해할 걸세. 아무쪼록 내가 먼저 가는 것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지만 말고, 아이들과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살기 바라네.

<i>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학과 교수</i>

그 땅에 꽃냄새는 남아 있겠지?

사랑하는 동생 카와에게

8년 전, 내가 너와 헤어질 때 나는 내 정든 고향과 어릴 적, 그리고 성인이 됐을 때의 꿈들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요르단 국경으로 향하면서 나는 내 정든 도시(이라크 북부 쿠르드인 도시)를 완전히 버렸단다. 목적지가 어딘지 알 순 없었지만 단 한 가지, 내 가방 속에 왕복이 아닌 편도 티켓이 들어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 도시를 벗어나는 차 안에서 나는 (내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매일매일 가고 있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면서 너의 밝은 눈동자에 했던 내 마지막 키스를, 한살짜리 귀여운 얼굴에 떨어졌던 내 따뜻한 눈물을 떠올렸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때 텔레비전 뉴스는 매일같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뻔하고 내용없는 사건들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1991년 이라크군이 우리 집에 공격을 가해왔을 때 네 누나가 입었던 상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더구나. 미디어들은 우리 젊은이들이 보안군에 의해 끌려가서 다시는 가족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더구나. 그들의 가족들은 여전히 희망을 품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럴 거야!

넌 그때 겨우 한살이라서 내가 극도의 공포 속에서 떠났다는 사실은 몰랐을 거야. 그때 나는 내가 죽거나 가족들이 죽는 걸 보게 되는 두렵고 슬픈 시나리오를 원치 않았단다. 그건 악몽처럼 나를 따라다녔고, 지금도 너의 ‘조용한’ 땅에서 진행중인 시나리오다. 나는 알고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너와 너의 이웃들이 혹독한 상황에서 살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단지 살아남는 것이 너의 가장 큰 소망이라는 것을. 심지어 너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매일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네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고 두개의 무자비한 ‘해머’ 아래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 첫 번째 해머는 이라크 보안군과 그들의 무기이고, 두 번째 해머는 서방의 경제 제재와 확전 위협이란다. 국제사회는 우리의 ‘석유가 흐르는 땅’에 30년 동안 드리워진 어둠의 터널을 걷어내려는 우리의 노력을 지지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상황은 절대 바뀔 수 없을 거야!

그런 노력이 이라크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한데도, 너는 너의 땅에서 불쾌한 침입자의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겠지. 나는 네가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보장해주는 새로운 정부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확신한다. 카와야, 한번 상상해보거라. 가까운 미래에 오게 될 새로운 이라크를, 어느 따스한 오후에 우리 정원에 있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평화롭게 누워 있는 네 모습을 말이다. 카와야, 우리 어머니가 키워오신 정원의 꽃냄새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겠지? 내 어린 시절의 눈물로 젖어 있는 풀잎들과 내 젊은 시절의 평화와 자유와 사랑에 대한 꿈을 증언하는 잔디들도 아직 황폐해지지 않았겠지?

<i> 하산(가명)/ 이라크 쿠르드인 난민</i>

산이야, 미래의 동지야

“얼굴만 떠올려도 가슴이 찡해지는 사람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빙긋이 웃어본다. 매표창구에서 표를 팔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너의 얼굴과 너의 말 한마디 한마디 꼭꼭 씹어 생각하며 가슴에 따뜻하게 전해지는 너의 온기를 느낀다. 세상이 환하고 아름다워지는 온기를.

늘 그렇듯 올 한해도 여전히 가슴 아프고, 힘든 소식들이 많았구나. 아직도 전쟁으로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린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땅에는 평생 자신이 가진 몸뚱이 하나로 힘들여 노동한 노동자가 그 노동에서 소외되고 거리로 내몰리거나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제정신을 가지고는 살 수 없는 이 땅에서 진공의 느낌으로 붕붕 떠다니다 안착할 수 있는 곳은 너의 미소. 넌 내게 하늘 같은 휴식이고, 다시 나를 추스르는 힘이다.

일년 전 아침뉴스에 처절하게 끌려가는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을 보며 주책맞게 울어버린 내게 넌 “엄마, 왜 그래?” 하고 물었지. “엄마가 많이 외롭고, 슬프거든. 산이가 좀 위로해줄래?” 그때 넌 내게 다가와 양 겨드랑이에 너의 조그만 손을 끼워 “위로, 위로!” 하며 위로 들어올리는 시늉을 해서 엄마를 위로해주었었지. 그때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를 받았단다.

산이야. 엄마는 산이가 이 세상에 외롭고, 아프고, 힘든, 힘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따뜻하게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그리고 산이가 큰 세상은 그렇게 가슴 아픈 세상이 아닌 살맛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도록 엄마는 항상 깨어 있으며 노력할게. 오랫동안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아빠를 위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항상 머리맡에 아빠 베개를 챙겨놓는 산이에게, 이제는 예전처럼 아빠 보고 싶다고 떼쓰지도 않는 의젓한 산이에게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이 있구나.

아빤 지금 어렵고, 힘들지만 아주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아빠가 일하고 있는 철도청에서는 지금도 그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순직’이라는 이름으로 일터에서 목숨을 빼앗기고 있단다. “모든 사람은 노동시간의 합리적인 제도 및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하는 휴식과 여가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인권의 기본도 안 갖추어진 잘못된 현실을 바꿔나가려고 싸우고 있는 거야. 산이가 큰 그때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야.

산이야. 새해에는 우리 산이도 다섯살이 되는구나. 이제 돌아오는 새해에는 산이가 잘 부르는 지구본 노래처럼 올망졸망 많은 나라들에 사는 사람들이 웃으며 지낼 수 있는 전쟁과 굶주림이 없는 그런 세상이 되었음 좋겠다. 또 새해에는 평생을 일터에서 일한 사람들의 소중한 노동이 제대로 대접받는, 그래서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는 그런 세상이 되었음 좋겠다. 또 새해에는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신체적으로 감금하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이 폐지되어서 이 땅에 양심수라는 말이 사라지는 그런 세상이 되었음 좋겠다. 산이가 이만큼 더 커서,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될 때, 엄마는 든든한 동지를 또 하나 얻게 되는 거겠지. 우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자. 사랑한다. 산이야.

<i> 이은주/ 지하철 역무원·노동운동가</i>

고운님의 사랑을 ‘발효’시키며

고운님.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누워서 바라보는 네모난 창 너머로 마른 나뭇가지가 매서운 바람에 떨고 있습니다. 사계절의 모습이 창문에 그려지면서 세월의 흐름을 느낍니다. 새순이 돋는 계절이야 마냥 감개무량하지만, 동지를 지나는 지금, 오히려 희망으로 가슴 부풀어오르는 것은 나무도 그럴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 다 떨구어낼 때 그도 가슴 시리고 불안했겠지만 무언가 저를 감동시키는 것이 있어 인고의 세월을 늠름하게 감당하겠지요. 나무처럼 희망을 품고 겨울을 살아내리라 다짐해보는 날들입니다.

고운님. 저를 도와주시는 님의 마음이 너무나 곱게 다가오기에 저는 님을 고운님이라 불러오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고운님과의 만남도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다달이 펴내는 제 소식지 도 이제 88호가 나오니까요. 막막했던 중증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이만큼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변함없이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시는 고운님의 보살핌 덕분이었습니다. 한해를 마감하는 지금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보답의 작은 선물이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고운님과의 만남은 제가 장애인이 되고부터였지요. 89년 교통사고를 당한 때가 33살이었으니 한창 활동할 나이에 휠체어와 침대 사이를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좀더 혹독한 시련이 제 인생에 필요했던지 신은 제게 심한 통증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끙끙거리며 이 글을 쓰면서도 감사한 것은 통증이 저를 끊임없이 낮추어 겸손하게 하는 것, 왼손으로 겨우 글을 쓸 수 있게 힘을 남겨주신 것 때문입니다. 물론 가장 큰 선물은 고운님과 만나도록 해주신 것이지요. 고운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제가 있기 힘들었을 테니까요.

고운님. 지금 세상은 온통 전쟁중입니다. 아프가니스탄뿐 아니고 곳곳에 전쟁이 펼쳐져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도 많습니다. 우리의 삶에 먹구름처럼 드리워진 온갖 경쟁도 전쟁의 하나로 볼 수 있으니까요. 증오가 자라 전쟁이 된다면 전쟁을 막는 방법은 사랑밖에 없겠지요. 사랑의 결실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발효시키는 시간입니다. 지금 저는 고운님이 주신 사랑을 발효시키는 과정에 있습니다. 고운님의 사랑을 받고 그것을 잘 발효시켜 평화의 꽃 한 송이 피워내는 것이 제 여린 새해 소망입니다. 그 소망을 이루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게으름피우진 않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피워내는 평화가 지극히 작은 것이겠으나 그 파문은 멀리 나갑니다.

자주 불러보고 싶은 고운님. 고운님은 새해 무슨 꽃을 피우고 싶으세요? 땅이 기름져야 하고 바람과 햇살의 도움도 있어야 겠지요. 고운님은 고운 마음 그대로 고운 꽃을 피우실 거예요. 제가 적당한 바람과 햇살이 함께하도록 기도드릴게요. 또 연락 드릴 때까지 평안히 계십시오. 고맙습니다.

<i> 최종진/ 시인·전신마비 장애인</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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