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앤리치’(젊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딸아이가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며 ‘동업’을 제안했다. 사업의 주역은 ‘엄마’고 자신은 기술 보조 역할이라며 7:3의 지분 계약을 하자고 했다. 투자금은 한 푼도 필요 없고 오직 ‘쪽팔릴 용기’만 있으면 된다고 꼬드겼다. 틱톡이나 콰이서우(快手) 등 중국에서 인기 있는 쇼트클립 플랫폼에 계정을 만들어서 ‘한국 아줌마의 베이징 일상’을 주제로 매일 짧은 동영상을 올려보자는 게 딸아이가 제안한 ‘좋은’ 사업 아이템이다. 평소의 언행과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조만간 우리는 돈방석에 앉는 건 물론이고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인 ‘왕훙’(인터넷 스타)이 될 수도 있다며, 노후보험 드는 셈 치고 자신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보자고 했다.
‘쪽팔릴 용기’가 없는 나는 “찌질한 엄마의 일상을 팔아서 돈을 벌고 싶냐!”며 “사는 것도 찌질한데 돈도 그렇게 찌질한 방법으로 벌고 싶지 않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자 딸아이가 말문을 막히게 하는 ‘명언’을 남기고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왕훙이 뭐 특별한 줄 알아? 다 자기들 찌질한 일상을 팔아서 돈 버는 사람이야! 엄마가 매일 틱톡이나 위챗 라이브에서 감동하며 보는 ‘나나 엄마의 일상’(중국 저장성 한 농촌에서 다운증후군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일상에 관한 짧은 동영상)도 그런 거야. 또 엄마가 너무 재밌다고 깔깔 웃으며 보는 ‘연변 총각의 일상’도 내용을 보면 얼마나 찌질해? 맨날 친구랑 둘이 밭에서 풀 뜯어 이상한 요리 한두 가지 해서 먹으며 쓸데없는 얘기를 나누는 게 전부잖아. 그런 걸 엄마는 재밌다고 매일 보면서 나한테도 보라고 추천하지 않았어? 그런 찌질한 일상이 돈이 되는 시대라고! 뭘 알기나 해?”
딸아이 말처럼 ‘찌질한 일상’이 돈이 되는 시대가 오긴 왔다. 2005년 무렵 누구든지 ‘크리에이터’(창작자)가 되어 마음대로 원하는 동영상을 제작해 올려서 구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비디오 플랫폼 ‘유튜브’가 생긴 이후, 전세계는 온통 크리에이터의 세상이 됐다. 70대 무명인 박막례 할머니가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것도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미래에는 누구나 15분이면 유명해질 수 있다”고 했던 앤디 워홀이 살아 있다면 이 믿을 수 없는 ‘신세계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되고 덤으로 돈을 버는 것은 물론 유명 인터넷 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는 중국에도 찾아왔다. 화물차 기사와 구이저우성의 한 가난한 마을에서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소수민족과 간쑤성 오지마을에서 산초나무 열매를 키우는 젊은 여성 농민이 왕훙이 되는 세상이다. 쓰촨성의 한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던 20대 여성 리쯔치가 자신의 자연 요리 일상을 담은 동영상으로 일약 갑부가 되고 중국 최고의 인터넷 스타가 된 전설은 벌써 까마득한 옛일이다. 중국 스마트폰과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에서는 매일 새로운 왕훙의 역사가 갱신되고 있다.
2020년 ‘가짜 진둥 사건’이 중국 쇼트클립에서 화제가 됐다. 진둥은 중국에서 중년 여성에게 인기 있는 남자배우다. 그런데 이 진둥이 중국 내 각종 쇼트클립에 나타나 주로 60대 이상의 ‘누나 시청자’를 대상으로 취향 저격을 하며 폭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차오융전, 69살. 그는 69년 동안 연애해본 적이 없다. 남편은 있었으나 술 마시는 것 외에 다른 걸 할 줄 모르는 남자였고, 어느 날 술에 취해 무단횡단을 하다가 사고로 죽고 말았다. 2020년 봄,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갇혀 있던 그는 평상시처럼 스마트폰 속의 쇼트클립 플랫폼을 열었다. 영상 속에서 튀어나온 남자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자신을 향해 노래했다. 노래한 뒤에 그는 ‘누나, 당신은 나의 유일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차오융전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한 남자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자는 자신을 ‘진둥’이라고 했다.”(<텅쉰 뉴스> 기사 중)
진짜 진둥보다 가짜 진둥이 궁금해‘육순의 아줌마들이 진둥에게 미쳐 있다’는 내용이 연일 뉴스 앞머리를 장식했고, 혼자서 진둥을 찾아 창춘으로 간 이도 많았다. 화제가 되자 진둥 소속사는 “진둥 선생은 지금까지 한 번도 쇼트클립 플랫폼 계정을 만든 적이 없다”고 발표했다.
“가짜 진둥을 팔로한 구독자는 ‘딸 셋 엄마’ ‘꿈꾸는 할머니’ ‘행복한 일가족’ 같은 아이디를 쓰는 현실 속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이고 중국 각지의 농촌 출신 여성이었다.”(앞 기사)
1인 미디어가 붐을 일으킨 이유는 ‘경제효과’ 때문이다. 가짜 진둥 사건은 구독자 수와 구독자가 보내주는 ‘별풍선’이 돈벌이가 되자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가짜 진둥’이 등장해 중년 아줌마들을 갈취한 사건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진짜 진둥’보다 ‘가짜 진둥’이 어떻게 아줌마들의 마음을 홀리고 돈까지 벌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2022년 4월, 오미크론 확진자 급증으로 상하이시가 유례없는 도시 대봉쇄를 하며 주민을 집 안에 꽁꽁 가두었을 때, 새로운 스타가 한 명 탄생했다. 그 역시 상하이에 살면서 봉쇄된,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던’ 연예인 류겅훙이다. 그는 봉쇄 기간에 자신의 집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솜씨와 탄탄한 몸매를 과시하며 매일 ‘에어로빅 체조’를 하는 영상을 올렸고, 매일 1천만 명 이상이 그의 동영상을 시청했다.
29살 무명인 둥위후이도 ‘15분 만에’ 왕훙이 됐다. 그는 사교육 업체 신둥팡(新東方)에서 2016년 대학 졸업 직후부터 영어강사로 일했다. 신둥팡은 2021년 7월 중국 정부가 ‘학원과외 금지’를 골자로 하는 ‘사교육 폐지’ 정책을 선언하기 직전까지, 주식시장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교육 기업이었다. 하지만 학원과외 폐지 정책 도입 이후 신둥팡의 주가는 하룻밤 새 90% 이상 폭락했다. 소속 사교육 학원 1500곳 이상이 문을 닫았고 직원 6만여 명도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22년 6월 초, 망할 것이 거의 뻔해 보이던 신둥팡은 홍콩 주식시장에서 연일 폭등세를 기록하며 기적 같은 부활을 했다. 틱톡의 라이브커머스 채널 덕분이다. 예전에는 학생에게 과목별 지식을 팔았던 강사들이 동영상 플랫폼 채널에서 책도 팔고 생선도 팔고 쌀과 옥수수 등 농산물, 돈이 될 만한 건 닥치는 대로 다 팔았다.
그중에서 영어강사 둥위후이의 판매 채널이 홈런을 쳤다. 대만의 유명 가수 저우제룬을 살짝 닮은 외모 때문에 학원가에서 한때 ‘1초 저우제룬’ 같은 별명으로 불렸던 그는 중국 라이브커머스 시장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전직 영어강사라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 생선과 고기 등을 팔 때 셰익스피어 작품 속 명문장을 인용하고, “당신의 고통은 때로 너무나 많은 선택에서 비롯된다. 당신이 나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더 꿋꿋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등 무수한 ‘인생 계몽’ 어록을 쏟아내며 구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른바 ‘마이크로 셀러브리티’(소셜미디어와 동영상 플랫폼 등에서 인기를 끄는 스타)가 시장의 대세를 형성하자, 수많은 보통 중국인도 앞다퉈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는 1인 미디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동영상 플랫폼의 라이브커머스는 이미 이우(義烏) 등 일용품 도매시장이 많은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판매 수단이다. 쇼트클립과 라이브커머스 등으로 자신의 고향마을 농수산품을 팔거나, 일상 이야기 등으로 무명의 왕훙들은 ‘문화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성공한다. 쓰촨에 사는 ‘금소’(金牛)라는 계정을 가진 20대 농부는 매일 자신이 일하는 논과 밭의 일상과 그 수확물로 반찬을 해먹는 영상을 보여줬고 그 결과 한 달에 우리돈으로 2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창출했다.
1인 미디어 시장의 확대는 중국의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순기능’도 한다. 2022년 6월 중순, 중국 허베이성 탕산의 한 식당에서 여성 네 명이 성희롱에 저항하다가 집단폭행을 당한 사건이 일파만파를 일으켰다. 그 사건은 마침 그 시간에 식당에 있던 손님 한 명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찍은 실시간 영상 기록을 동영상 플랫폼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경찰과 조폭이 연루된 지역사회의 오래된 병폐가 그날의 폭행 동영상 덕분에 널리 알려졌다.
2022년 초 중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쇠사슬에 온몸이 묶여 헛간에 갇혀 살던, ‘쉬저우 여덟 아이 엄마’ 사건도 한 동영상 블로거의 영상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상하이 봉쇄 기간에 수많은 상하이 시민도 스마트폰으로 매일 봉쇄 일상을 찍어서 올렸다. 그 결과 난민촌 수용소보다 못한 격리시설과 폭력적인 방역정책의 실상이 생생한 영상으로 온 세상에 알려졌다. 당국의 검열 전쟁에도 불구하고 이 동영상들은 인터넷 곳곳을 돌아 전세계로 퍼져 중국 정부가 실시하는 ‘제로 코로나19’ 정책의 민낯을 보여줬다.
‘제로 코로나19’ 정책의 민낯 보여줬지만1인 미디어와 쇼트클립 등은 이제 중국에서 디지털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수단이 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물론 ‘저항’보다는 ‘경제적 기회’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 나도 ‘쪽팔릴 용기’만 있다면 딸아이 말처럼 어쩌면 ‘찌질한 일상’으로 돈을 벌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운이 좋아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인 왕훙이라도 되면 ‘한국 아줌마의 베이징 일상’에도 쨍하고 해 뜰 날이 오려나.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북경만보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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