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만들어갈 ‘다시 위대해진 미국’의 실체가 조금씩 분명해진다. 집권 1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문성 대신 충성심, 경험 대신 이념에 집중해 내각을 구성하고 있다. 속속 발표되는 주요 보직 지명자의 면면은 ‘뒷걸음질하는 미국’을 실감케 한다. 벌써부터 아슬하다, 미국도 세계도.
‘노련한 전문가’로 채워졌던 트럼프 행정부 1기 출범 때와 견줘보면, 인선이 마무리된 2기 외교안보팀은 ‘아마추어 충성파’ 일색이다. 외교·안보 정책의 ‘국내정치화’ 조짐도 뚜렷하다. 2017년 1월 첫 지명자인 마이클 플린이 24일 만에 낙마한 뒤 트럼프 행정부 1기의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은 것은 현역 3성 장군인 허버트 맥매스터(당시 55살)였다. 그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실전 경험을 두루 거쳤고, 베트남전 패전 원인을 추적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불화설이 불거지면서 1년 남짓 만인 2018년 4월 물러났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첫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된 마이클 왈츠(50) 하원의원은 영관급 장교 출신이다. 현역 복무는 4년에 불과하고 비상비군인 플로리다 주방위군으로 복무하며 대령까지 진급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 때 국방부와 백악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지만, 2018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기 전까진 자신이 창업한 민간 군사업체 운영에 집중했다. 군 수뇌부 출신인 맥매스터와 견주기 어려운 경력이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첫 국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마코 루비오(53)는 3선의 현직 연방 상원의원이다. 29살에 플로리다 주의회 하원의원으로 정치권에 들어선 그는 39살 때 연방 상원의원이 됐다. 2016년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날을 세웠지만, 경선 패배 뒤 ‘친트럼프’로 돌변했다. 상원 정보위원회와 외교관계위원회를 거친 그는 트럼프 2기 외교안보팀에서 그나마 필수 경력을 갖춘 지명자로 평가받는다.
정책적으론 ‘강성 보수파’로 분류된다. 그는 중국을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이란은 ‘테러 정권’으로 규정한다. 1천 일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선 “교착상태에 빠진 전쟁에 계속 예산을 퍼부을 수 없다. 미국의 사활적 이익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달려 있다. 전쟁을 끝내야 한다. 미국이 유럽에서 발이 묶이면, 좋아할 것은 중국”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에 대해선 “종전에 반대한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관련된 모든 것을 파괴하기 바란다. 그들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악한 짐승들”이라고 말한다.
트럼프 1기 첫 국무장관은 거대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 회장 출신인 렉스 틸러슨(당시 64살)이었다. 틸러슨도 맥매스터와 비슷한 시점에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불화설이 불거지면서 사임했다. 그는 2018년 12월6일 시비에스(CBS)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자제력이 없고, 워낙 읽기를 싫어해 보고서조차 들여다보지 않으며, 사실관계 대신 자신의 ‘감’에 의지해 충동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2기 첫 국방장관 지명자 피트 헤그세스(44)는 그야말로 논쟁적이다. 미네소타 주방위군 소령이 군 경력의 전부인 그는 2020년 대선 뒤 국방부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 경호를 위해 소집령을 내렸을 때 자원했다. 하지만 취임식을 앞두고 국방부가 헤그세스 지명자를 포함해 12명의 장병을 보직 해임했다. “극우 민병조직과 연계됐다”거나 “온라인에 극단적인 견해를 게시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이라크 등지 파병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가 주로 활동한 무대는 극우 성향 참전군인 단체였다. 2014년부터 폭스뉴스에서 정치평론가와 진행자로 일해온 그는 2016년 대선 때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다.
미 국방부는 관장하는 현역 장병만 130만 명에 이르며, 민간인 직원도 75만 명을 넘는 거대 조직이다. 헤그세스 지명자는 짧은 군 경력도 그렇지만, 관료조직을 운영해본 경험 자체가 없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024년 11월13일 전현직 국방부 당국자 6명의 말을 따 “헤그세스 지명 사실이 발표된 직후 국방부가 충격에 휩싸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수위원회가 퇴역 장성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현직 장성들의 성향 분류를 할 것이란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군 지도부가 동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군의 오랜 전통인 ‘정치적 중립’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트럼프 1기의 첫 국방부 장관은 4성 장군 출신 제임스 매티스(당시 66살)였다. 해병대 1사단장과 중부군사령관을 지낸 그는 맥매스터와 틸러슨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불화하다가 2년 남짓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맥매스터·틸러슨·매티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집권 전반기에 그의 돌출행동을 가로막는 ‘제동장치’였다. 맥매스터는 ‘우리 자신과 벌인 전쟁’이란 제목의 회고록을 낸 뒤인 2024년 8월26일 시엔엔(CNN)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안보보좌관이란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대통령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에서 회의가 열릴 때마다 참모들은 경쟁적으로 아부했다. ‘대통령님 본능은 언제나 옳다’는 등의 말을 쏟아냈다. 그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북한이 군사퍼레이드를 할 때 공격해 북한군을 몰살시키면 어떠냐?’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 틸러슨과 매티스는 그런 대통령을 ‘위험하다’고 여겼고, 대통령을 부추기는 사람은 모두 ‘적’으로 간주했다.”
트럼프 1기 때 첫 국가정보국장(DNI)은 연방 하원의원 4선과 상원의원 3선 등 공직을 두루 거친 댄 코츠(당시 73살)였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변호사와 기업인을 거쳐 3선 하원의원이 된 마이크 폼페이오(당시 53살)가 맡았다. 집권 2기의 첫 국가정보국장은 하와이 주방위군 중령 출신 털시 개버드(43) 전 하원의원이, 중앙정보국장엔 검사 출신 3선 하원의원으로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국가정보국장을 지낸 존 랫클리프(59)가 낙점됐다.
개버드 지명자는 민주당 소속으로 4선 하원의원을 지냈다. 2016년 대선 때 진보파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지지했다. 2020년 대선엔 직접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민주당 안팎에선 “러시아가 (2016년에 이어) 트럼프 당선을 위해 제3 후보로 나설 민주당 여성 정치인을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사실상 개버드 지명자를 지목한 게다. 그는 2022년 민주당을 탈당하고 ‘트럼프 지지자’로 돌아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애초 2019년 7월 랫클리프를 국가정보국장으로 지명했다. 당시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 빼곤 아무런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결국 지명을 철회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7개월 뒤인 2020년 2월 말 그를 재지명했고, 논란 속에 단 5표 차로 상원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랫클리프는 2020년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2016년 대선 때 러시아 개입설과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내용이 담긴 기밀 문건을 상원 법사위원회를 통해 공개해 ‘선거 개입’ 논란을 부른 바 있다. 그가 중앙정보국장에 지명된 직후부터 정치권 안팎에서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 정책을 맡게 될 장관 지명자의 면면도 논란을 부르고 있다. 2기 첫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맷 게이츠(42) 전 하원의원과 보건부 장관으로 지명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70)가 대표적이다. 미성년자 성 매수 의혹으로 하원 윤리위원회의 조사를 받던 게이츠 지명자는 조사 결과 보고서가 나오기 직전 법무부 장관 지명을 이유로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 관련 수사를 주도해온 법무부에 딸린 연방수사국(FBI)과 특별검사 등에 노골적 반감을 표시해왔다. 법무부의 수사를 ‘정치탄압’으로 포장해온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게이츠를 ‘복수극’의 선봉장으로 꼽은 이유다.
상원 인사청문회 통과를 자신하지 못했던 걸까? 게이츠 지명자는 11월21일 성명을 내어 “나의 인준 과정이 트럼프-밴스의 정권 인수를 위한 중요한 작업에 부당하게도 방해가 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 불필요하게 길어지는 워싱턴의 실랑이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며 자진 사퇴했다. 온갖 추문이 쏟아지는데도 “지명 철회는 없다”고 버티던 트럼프 전 대통령도 “법무장관 인준을 받으려고 한 게이츠의 최근 노력에 감사한다”며 이를 수용했다. 이어 팸 본디 전 플로리다주 법무장관을 지낸 팸 본디를 새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본디는 2019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탄핵 재판 때 변호인단에 참여했던 ’충성파’다.
케네디 보건부 장관 지명자는 ‘음모론자’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7~8%의 지지율을 유지했던 그는 2024년 8월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백신 접종이 각종 질환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며, 연방정부 차원의 백신 접종 의무화에 격렬히 반대한 바 있다.
‘이권’의 그림자도 짙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무부 장관에 더그 버검(68) 노스다코타 주지사를 지명했다. 벤처캐피털 기업가 출신인 버검은 정유업계와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자금 모금운동을 주도했다. 한국(10만210㎢)보다 약 1.7배 넓은 노스다코타(17만8694㎢)에는 경기도 남양주시와 부천시 정도의 인구(78만3천여 명)가 산다. 하지만 석유·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매장량은 텍사스와 뉴멕시코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많다. 내무부는 연방정부 소유 토지와 지하자원을 관리한다. 트럼프 2기엔 더 많은 화석연료를, 더 적극적으로 개발할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관세와 무역을 관장하는 상무부 장관엔 월스트리트의 큰손인 투자은행 캔터피츠제럴드 회장 하워드 러트닉이 지명됐다. 인수위 공동위원장인 그는 “동맹에도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애초 러트닉이 지망했던 재무부 장관으론 거대 사모펀드 업체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회장 마크 로언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경제 전문매체 포브스는 11월20일 “로언이 실제 재무장관으로 지명되면 24조달러 규모의 사모펀드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험한 세월이 다가오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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