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9일 아침 7시20분께, 자카르타 주지사 관사와 마주한 수로파티 공원은 내외신 취재진과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로 북적였다. 이날은 지난 10년간 집권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SBY) 대통령의 민주당 정부를 역사 속으로 떠나보내고 새 정부와 새 대통령을 뽑기 위한 첫 결전, 총선날이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인도네시아 전국 34개 주 7천여 개 섬에서 약 1억8580명의 유권자가 560석의 국민대표회의(DPR), 132석의 지역대표회의(DPD), 2112석의 주지방의회(DPR Provinsi)와 1만6895석의 군지방의회(DPRD Kabupaten) 의원을 뽑았다. 이보다 앞선 3월30일부터 4월6일까지는 전세계 130개 도시에서 재외국민 투표가 진행됐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아빠, 저 아저씨가 다음 대통령이야?”</font></font>수로파티 공원 내에 설치된 투표소 세 곳 중 유독 중앙의 제27투표소가 붐볐다. 올해 선거의 스타인 대통령 후보 조코 위도도(일명 조코위) 자카르타 주지사가 부인과 함께 투표하러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조코위는 자신을 둘러싼 취재진에게 “매우 자신 있다”는 말을 남기고 투표소로 들어섰다.
“아빠, 저 아저씨가 다음 대통령이야?” 아빠 목말을 탄 한 여자아이가 물었다. “응, 저 아저씨가 조코위인데 지금 투표를 하고 있는 거야.” 100여 명의 취재진과 주민들 틈에 끼어 조코위가 투표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의 아빠가 답했다. 뜨거워지는 아침 햇살과 32℃를 웃도는 열기에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아이 아버지의 셔츠는 온통 땀에 젖었다.
조코위는 투표 뒤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투쟁민주당(PDI-P) 대표의 자카르타 남부 크바구산 자택으로 이동했다. 메가와티 전 대통령과 그의 딸 푸안 마하라니 투쟁민주당 선거승리위원장 등의 투표에 동행하기 위해서였다. 메가와티 자택 길 건너에 위치한 투표소 주변은 메가와티와 푸안, 조코위가 등장하자 경찰과 주민, 기자가 한데 몰리며 사람들의 물결을 이뤘다. 조코위는 메가와티, 푸안 등과 함께한 기자회견 직후 기자에게 “우리 당이 다득표해 크게 이길 것이다”라며 이날 오전 자신의 관사 앞 기자회견에서와 같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가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와 대선을 위해 선택한 투쟁민주당은 결국 10년 만에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대량 득표하지도, 큰 차이로 이기지도 못했다. 현재 여론조사기관, 정치연구소의 조사 결과와 방송사 출구조사 등을 종합한 다섯 가지의 빠른 집계(Quick Count)에서 10개 전국정당 중 투쟁민주당이 17.64~19.72%로 득표율 1위를 기록한 상태다. 뒤이어 집권연정 골카르당이 12.36~14.66%로 2위, 대인도네시아운동당(그린드라)이 8.37~12.2%로 3위, 집권여당 민주당이 6.26~10.4%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공식 집계 결과는 5월 초에나 나온다.
“국민각성당(PKB)이 의외로 선전했고, 민주당은 대몰락이다. 2009년 득표율 20%에서 올해 6%까지 떨어졌으니.” 투쟁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크바구산 한쪽에 마련된 스크린을 지켜보던 기자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그를 포함한 주요 정당 당직자들과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해보면 이번 총선 결과에서 크게 세 가지를 주목할 만한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먼저 투쟁민주당이 당초 기대한 만큼 조코위의 덕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부 자와의 솔로 시장을 연임한 조코위는 2012년 7월 자카르타 주지사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인물로 대중적 관심과 인기를 한 몸에 받아왔다. 폭발적 인기를 바탕으로 언론은 그의 대선행을 점쳤고, 2013년 2월 실시된 2014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조코위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뒤, 그가 포함된 조사에서는 내내 1위를 달렸다. 2013년 10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여론조사기관 로이모건의 조사 결과 조코위의 지지율이 37%까지 치솟기도 했다. 조코위를 총선 공식 선거운동 이틀 전에 대선 후보로 발표한 투쟁민주당은 총선 득표율 목표를 27.02%로 잡으며 압승을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투표 결과 대선 자동출마권이 주어지는 25% 득표율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큰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연예인 영입한 국민각성당 선전 </font></font>유권자들은 또 대형 부패 및 비리 사건에 연루된 정당에 냉담했다. 유권자들이 두 번이나 표를 던져 10년간 정부를 맡겼던 민주당이 함발랑 동남아시안게임 선수촌 건설 과정에서 뇌물을 수수한 사실이 밝혀졌고, 인도네시아 정치의 전통 강호인 이슬람정당 번영정의당(PKS) 역시 쇠고기 수입 관련 뇌물 수수 사건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정치적 오점을 남겼다. 전국정당 10개 중 2014년 총선 득표율이 2009년보다 하락한 유일한 두 당이 민주당과 번영정의당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총선에선 연예인 영입 전략이 통했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가요 당둣(인도·아랍·말레이계 혼성의 전통 대중음악)으로 유명한 가수 로마 이라마를 대선 후보 중 하나로 영입한 이슬람정당 국민각성당의 선전이 특히 눈에 띈다. 선거 당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조코위 효과보다 로마 효과가 강했다’는 식의 멘션과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 연예인을 영입한 캠페인 전략이 유효했다.” 민영방송 진행자 출신 탄토위 야흐야 의원을 대변인으로, 유명 여배우였던 누룰 아리핀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둔 골카르당 선거미디어팀장 로픽의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조코위 효과’가 예상만큼 나타나지 못한 이유는 뭘까. 국립이슬람대학 자카르타 캠퍼스의 부르하누딘 무타디 교수(정치학)는 인도네시아 시사주간 에 기고한 ‘조코위가 지상으로 돌아올 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투쟁민주당이 조코위를 선거운동에 충분히 활용하지 않을 거라면, 무엇 때문에 그를 선거운동 시작 이틀 전에 대선 후보로 발표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투쟁민주당이 선거운동 영상에서도 ‘인도네시아는 위대하다’(Indonesia Hebat)와 메가와티 대표, 푸안 마하라니 선거승리위원장만 실컷 보여주고 조코위는 거의 노출하지 않았던 것 등 조코위 효과 극대화 노력이 부족했다고 꼬집은 것이다.
“이번 총선의 진정한 승자는 따지고 보면 그린드라와 민주당이다.” 일간 정치사회팀장 프람은 이렇게 평가했다. 그린드라는 지난해 말 통과된 마을법을 지역 선거운동에 적극 활용해 지역표 잡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은 당초 득표율이 5%에도 못 미치리란 예상을 깨고 10% 수준까지 표를 모았다. “SBY가 선거 직후 메가와티와 투쟁민주당에 축하한다고 말했고 메가와티는 곧바로 15개 지역에서 승리했다고 발표했는데, 그게 민주당의 승리감과 투쟁민주당의 초조함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프람의 말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저조한 투표율… “기권자의 승리” </font></font>하지만 일각에선 ‘투쟁민주당이 아니라 기권자의 승리’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투표 참여율이 저조했다는 점을 꼽기도 한다. 조사기관인 인도네시아 여론조사(LSI)는 선거 당일 “기권율이 34.02%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빠른 집계상의 득표율 1위인 투쟁민주당의 19.67%를 훨씬 넘어선다”고 지적했다. 1999년 첫 총선에서 10.21%, 2004년 총선에서 23.34%, 2009년 총선에서는 29.01%로 인도네시아 유권자의 총선 기권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5월 초 공식 집계 결과가 나온 뒤 5월18~2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통령-부통령 후보를 등록하려면, 각 당은 총선 성적표를 들고 연합을 구성해 대선 출마 요건인 득표율 25%를 맞춰야 한다. 현재 유력한 대선 후보 3인은 조코위(투쟁민주당), 전 특수부대 사령관 프라보워 수비안토(그린드라), 인도네시아 대표 재벌 바크리 그룹 총수 아부리잘 바크리(골카르당) 등이다. 여기에 전 헌법재판소 소장 모흐 마푸드(국민각성당)와 현 공기업부 장관 달란 이스칸(민주당) 등이 추가로 거론되고 있다.
총선 일주일 만에 조코위 효과가 거품이었다는 말이 퍼지면서 그의 강력한 대선 경쟁자 프라보워의 지지율이 뚜렷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대다수 인도네시아 기자와 진보적 학자들은 32년 철권 수하르토기의 인권 탄압과 국가폭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프라보워의 대권 가능성을 깊은 우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인도네시아 시민들이 꼽은 대통령의 자질 단 하나 ‘정직’(honesty)에 따라 조코위가 차기 대통령이 되길 기대하면서.
자카르타(인도네시아)=글·사진 이슬기 통신원 skidolma@gmail.com<font color="#991900"><font size="3"> 1008호 주요 기사</font><font color="#FFA600">•</font> [표지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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