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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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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화·민주화 귀결이 이슬람국가?

‘중동 민주화 모델’ 떠오른 터키를 다녀오다… ‘제헌’에 가까운 개헌·세속주의 완화 등 집권당 드라이브에 기대·우려 공존
등록 2013-04-07 17:39 수정 2020-05-03 04:27

실크로드 무역품의 최종 집산지였다는 옛 명성 그대로였다. 석조 아치로 천장을 올린 어둑한 회랑 양편엔 형형색색의 유리 제품과 도자기, 실크, 캐시미어, 귀금속 공예품이 가득했다. 지난 3월17일 방문한 이스탄불의 전통시장 그랜드바자는 시끌벅적한 한국의 시골 장터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귀 아픈 구두 선전도, 집요한 호객 행위도 없었다. 상점 주인으로 보이는 몇 사람이 전통차 ‘차이’를 마시며 천장에 걸린 텔레비전 액정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제복을 입은 늙은 군인의 상반신 사진 아래로 의미를 알 수 없는 터키어 자막이 흘렀다.
“이스마일 하키 카라다이라는 사람인데, 전직 터키군 총사령관이다. 1997년 친이슬람 정부를 무너뜨린 군부 개입 사태와 관련해 올해 초 체포돼 재판을 받고 있다.” 동행한 터키 지한통신사의 서울특파원 알파고 시나시(26)가 설명했다. 1997년 터키 군부는 제1당인 복지당을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에 회부해 당을 해산시켰다. 이스마일 전 사령관은 한국으로 치면 ‘하나회’ 같은 정치군인 집단의 우두머리였다고 알파고는 덧붙였다.
터키판 ‘하나회’ 숙청?
이틀 뒤 터키 검찰이 2007년 쿠데타 모의 혐의로 ‘에르게네콘’(Ergenekon) 핵심 연루자 64명에게 종신형을, 나머지 96명에겐 최고 15년형을 구형했다는 소식이 현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에르게네콘은 2007년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반정부 비밀조직으로, 전·현직 군인과 언론인, 정치인들로 이뤄진 일종의 극우파 네트워크다. 이날 터키 일간지 (Zaman)은 3월19일에 있었던 에르게네콘 사건 13차 공판 소식을 전하며 “군부가 정치 개입 명분을 찾기 위해 이슬람 사원을 폭파해 소요를 일으키고, 그리스와 전쟁 위기를 조장하는 등 17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 듯했다. 3년째 터키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군부의 힘을 빼기 위해 정부가 사건을 의도적으로 부풀리고 있다고 의심하는 터키인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에르게네콘 숙청의 배후에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이끄는 중도 이슬람 성향의 정의개발당(AKP)이 있다. 2002년 총선에서 제1당으로 부상한 뒤 10년 동안 한 번도 정권을 놓치지 않았다. 정의개발당 집권 기간에 터키 사회는 ‘조용한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광범위한 변화를 경험했다. 한때 세 자릿수까지 치솟았던 살인적 물가상승률이 한 자릿수로 뚝 떨어졌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도 2310억달러(2002년)에서 7378억달러(2011년)로 세 배 이상 늘었다.
군사정부 시절 만들어진 악법도 크게 완화됐다. 우선 소수민족인 쿠르드에 대한 차별이 줄었다. 쿠르드어 방송채널이 생겼고, 정치인들의 쿠르드어 선거운동도 묵인되고 있다. 1960년 쿠데타 직후 만들어져 군부의 정치 개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온 국가안보위원회의 위상도 격하됐다. 2010년 개헌안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선출과 임명 방식을 뜯어고치고, 군 범죄 혐의자를 군사 법정이 아닌 일반 법정에 세울 수 있게 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하지만 정의개발당은 3년 전 개헌에 만족하지 않고 또 한 번의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헌법의 모체인 1982년 ‘쿠데타 헌법’의 뼈대를 갈아치우려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제헌’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다. 핵심 내용은 △군부에 대한 민 우위 확보 △정부 형태 변경(의원내각제→대통령제) △세속주의 원칙 완화(이슬람문화·종교교육 확대) △사법부 독립성 강화 △쿠르드족 처우 개선(쿠르드어 공용어 인정) 등이다.
집권세력의 호소 전략, ‘구터키’ vs ‘신터키’
군부 통치의 잔재를 지우는 문제와 관련해선 의견 차가 크지 않아 보인다. 정의개발당 집권 기간에 군부의 힘을 빼는 조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온데다, 터키인 다수가 군의 정치 개입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터키에 거주해온 이희철 주터키대사관 참사관은 “터키 역사를 보면, 정세 혼란으로 정치적 힘의 공백이 생길 때마다 군부가 이를 메워왔다. 하지만 정의개발당 집권 뒤 정치적 안정이 확보되고, 군의 정치 개입에 반대하는 유럽연합(EU)의 압력이 강화되면서 군의 영향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제로 정치체제를 변경하고 1923년 공화국 수립 이후 이어져온 세속주의 원칙을 완화하는 문제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야당은 권력 집중을 부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대통령제 개헌에 반대한다. 에르도안 총리가 대통령이 되기 위한 사전작업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세속주의 완화는 한층 근본적인 문제와 닿아 있다. 정교분리 원칙을 무력화함으로써 이슬람 국가화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안팎의 우려 역시 만만찮은 탓이다. 터키에서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의 찬성이나 국민투표에서 과반의 지지를 얻어야 가능하다. 정의개발당의 의석수는 326석(59.3%). 개헌 가능선(367석)에 못 미친다.
집권세력은 개헌 시도가 맞닥뜨린 정치적·이념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포퓰리스트적 호소 전략을 펼치고 있다. 현재의 갈등을 ‘구헌법이 상징하는 군 우위·반이슬람적 질서(구터키)를 유지하려는 기득권층’과 ‘새 헌법이 구현하려는 민간 주도의 개방적 이슬람 질서(신터키)를 지지하는 서민·신중산층’의 대립 구도로 전환시키려는 셈법이다. 이같은 분할 담론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배경에는 쿠데타에 대한 지식인과 중산층의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3월18일 이스탄불의 슐레이만샤대학에서 열린 ‘제3회 한국-터키 민주화 워크숍’에서도 터키 쪽의 한 참석자는 “총 가진 자들을 믿어선 안 된다. 그들은 언제든 무력을 동원해 민간정부를 전복시킬 수 있는 집단”이라고 했다. 3월18일 만난 일간지 의 임원 역시 “군부·재벌을 위시한 특권 세력이 신터키의 안착을 가로막고 있다”고 강조했다.
눈여겨볼 지점은 경제 자유화,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최근 터키에서 문화적 보수화의 흐름 또한 뚜렷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지에서 만난 비정부기구의 한 관계자는 에르도안 정부를 일러 “경제적으로는 시장주의, 정치적으로는 민주개혁을 이끌고 있지만, 이슬람 고유의 전통과 가치를 되살리려 한다는 점에서 문화적으로는 보수색이 짙다”고 했다. 앙카라 한국문화원 관계자의 전언도 비슷했다. “몇 년 새 이스탄불과 앙카라 거리에서 히잡을 쓰고 다니는 여성이 현저히 늘었다. 2000년대 초까지 번성했던 중심가 술집도 상당수가 사라졌다.”
거리의 히잡 여성은 늘어나고
터키가 겪고 있는 이같은 변화의 내면을 외부인들이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정부가 주도하는 새로운 이슬람주의 역시 과거 군부가 지탱해온 세속주의만큼 복잡한 사상적·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워크숍에 참석한 이근 서울대 교수는 “자유화·민주화의 귀결점이 이슬람국가가 되어버리는 역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난감해했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를 통해 구현하려는 것이 어떤 사회인지를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터키는 국가 복지의 규모가 작은 반면, 이슬람의 종교 전통에 뿌리를 둔 연대와 부조 체계가 튼실한 건 사실”이라며 “관건은 이런 시스템을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들과 얼마나 잘 조화시키느냐에 달린 것 같다”고 했다.
서울 이스탄불문화원(원장 후세인 이지트) 주관으로 열린 이번 워크숍에는 한국 쪽 패널로 민주통합당의 최재천·부좌현·홍의락·이언주 의원과 김태일(영남대)·오동석(아주대) 교수, 장주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스탄불(터키)=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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