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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끝 없는 벼랑 끝 전투

국가안보위 폭탄공격, 고위간부 이탈로 ‘운명의 시간’ 맞은 아사드 정권, 배수진 치고 반군에 맞서… ‘대세’ 장악한 반군과 정권의 충돌 갈수록 격해지고, 정권 붕괴돼도 내전 위험
등록 2012-08-16 10:44 수정 2020-05-03 04:26
커피 전문가들은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커피의 맛과 향에 낮은 점수를 준다. 커피를 잔에 따르는 모습. 한겨레 박미향

커피 전문가들은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커피의 맛과 향에 낮은 점수를 준다. 커피를 잔에 따르는 모습. 한겨레 박미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은 서로 비난하고 욕하기에 바빴다. 사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지원은 제대로 받지 못했고….” 지난 8월2일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코피 아난 유엔·아랍연맹 공동 시리아 특사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 “이달 말 만료되는 특사 임기를 연장하지 않겠다”며 “이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나빌 엘라라비 아랍연맹 사무총장에게 이런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말 특사로 임명된 직후부터 시리아 현지를 여러 차례 방문해 유혈사태를 종식시키려고 동분서주해온 아난 특사의 전격적인 사임 발표는, 시리아 사태가 결정적 국면을 지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간을 조금만 되돌려보자.

“폭탄테러는 ‘이너서클’ 균열 보여줘”

“모든 혁명에는 대세의 흐름을 바꾸는 상징적인 순간이 있다. 이집트에선 지난해 1월28일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을 점거한 시위대가 집권 여당의 본부 건물에 불을 질렀을 때가 그랬다. 리비아에선 지난해 8월20일 수도 트리폴리 시민들이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에 맞서 봉기에 가담하기 시작했을 때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는 지난 7월21일치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시리아에선? 지난 7월18일 수도 다마스쿠스 심장부를 강타한 폭탄공격 사건이 ‘운명의 순간’이란 게 이 매체의 지적이다.

그날 오후 다마스쿠스 중심가 라와다 광장 부근에 자리한 국가안보위원회 본부에 바샤르 아사드 정권의 핵심들이 모였다. 군·보안 관련 최고위 인사들로 구성된 이른바 ‘위기대응팀’의 회의가 열린 게다. 가 7월19일치에서 “(회의가 열린 건물은) 아사드 정권 신경망의 중추이자, 심장부나 다름없는 곳”이라고 전했다. 회의가 한창일 무렵, 강력한 폭발음이 건물 일대를 뒤흔들었다.

최고위급 회의였다. 이날 폭탄공격으로 숨진 이들의 면면이 이를 잘 말해준다. 다우드 라지하 국방장관, 이샴 이크티야르 정보보안국장, 하산 투르크마니 전 국방장관 겸 파룩 알샤라 부통령 군사고문과 함께 아세프 샤우카트 국방차관이 목숨을 잃었다. 샤우카트 차관은 아사드 대통령의 큰누나인 부슈라 아사드의 남편으로, 지난해 3월 ‘시리아의 봄’이 시작된 이래 유혈 강경 대응을 이끌어온 핵심으로 꼽힌다. 아사드 정권으로선 말 그대로 ‘치명타’였을 터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 싱크탱크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은 지난 8월6일 내놓은 자료에서 이날 사건의 의미를 이렇게 풀었다.

“폭탄공격의 배후를 두고 여전히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군과 맞서고 있는 ‘자유시리아군’(FSA)이 이런 규모의 공격을 감행할 능력이 없다는 점에 이견을 다는 전문가는 없다. 일부에선 외국 정보기관의 연루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한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 이번 폭탄공격은 정권 최고위 인사를 겨냥한 명백한 암살 기도였다. 정권 내부 깊숙이 반정부 세력이 침투하지 않고는 벌일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아사드 정권의 ‘이너서클’에 균열이 생겼다는 점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아사드 대통령의 최측근이 4명이나 목숨을 잃어 정권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나게 됐다.”

따져보면, 지난 7월 초부터 이미 분위기는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난 7월5일 아사드 대통령의 친구이자 공화국수비대의 핵심인 마나프 틀라스 준장이 터키로 망명했다. 7월11일엔 시리아의 동맹국인 이라크 주재 나와프 알파레스 대사가 아사드 정권을 비난하며 망명을 신청했다. 7월25일엔 알둘라티프 알다바그 아랍에미리트 주재 대사가 망명길에 올랐다. 그리고 8월 들어 다시 한번 ‘상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무기지원 통한 정권 붕괴 노려

“오늘 이 자리에서, 살육과 테러의 정권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존엄의 혁명에 동참할 뜻을 밝힌다. 이제부터 나는 그 축복받은 혁명의 일개 병사다.” 라이드 히자브 시리아 총리는 지난 8월6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대변인을 통해 이런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아랍 위성방송 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군·보안 관계자 26명 △장관급 3명 △국회의원 4명 △외교관 8명 등 시리아 고위급 망명자는 지금까지 모두 41명에 이른다. 히자브 총리의 망명은 지난 17개월여 산발적으로 이어져온 아사드 정권 핵심 인사 이탈극의 정점일 터다.

아난 특사는 그간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간의 정전협상에 집중해왔다. 이미 민간인 사망자만 2만여 명을 헤아리고 있는 유혈사태를 중단시키는 게 그의 활동 목표였다. 처음엔 아사드 정권의 완고한 자세가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승리’를 예감한 반군도 더 이상 정전에 연연하지 않게 된 게다. 이라크·이스라엘·레바논·요르단·터키 등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나라들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대세’가 꺾였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미국의 자세가 바뀌었다. 는 이미 지난 7월21일치에서 이렇게 전한 바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시리아 사태에 대한 외교적 해결 방식을 포기하고, 반군에 대한 직접 지원을 늘리는 한편 아사드 정권 몰락 이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미 터키·이스라엘 등 주변 동맹국과 이를 위해 긴밀히 논의하고 있다. (이제는 불가피해진) 아사드 정권의 몰락이 ‘통제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사전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대형 커피전문점이 주요 상권을 파고들면서 원두커피를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지만 가격 거품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한 커피전문점 매장 앞 모습. 한겨레21 박승화

대형 커피전문점이 주요 상권을 파고들면서 원두커피를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지만 가격 거품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한 커피전문점 매장 앞 모습. 한겨레21 박승화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중반부터 ‘몰락이 임박했다’는 주장이 나왔음에도, 아사드 정권은 질기게 ‘목숨’을 연장해왔다. 뉴스 신디케이트 가 8월6일 “히자브 총리의 망명 이후에도 아사드 대통령 측근 그룹은 당분간 건재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매체는 “히자브 총리는 불과 두 달 전 총리에 임명됐으며, 특히 수니파 출신이어서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 세력이 중추를 이루고 있는 아사드 정권의 핵심과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리아 사태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고민’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아사드 정권의 몰락을 앞당기는 가장 빠른 방법은 시리아 반군에 무기를 대주는 것일 터다. 하지만 ‘자유시리아군’으로 대표되는 시리아 반군 진영은 단일한 조직이 아니다. 반군에 지원해준 무기가 자칫 아사드 정권 몰락 이후 시리아 정정 불안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는 8월8일치에서 아사드 정권 몰락 이후 닥쳐올 수 있는 위기 상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이렇게 분석했다.

이라크 학습효과 vs 알라위 단독 국가

첫째, 아사드 정권 아래서 탄압받아온 다수 이슬람 수니파 주민들이 정권의 기반이던 시아파 알라위족을 겨냥한 보복에 나서는 경우다. ‘종족 간 유혈 충돌’은 이미 심각한 지경에까지 치달아 있다. 아사드 정권 몰락 이후 종족 간 충돌이 불을 뿜는다면, 되레 지금보다 많은 난민 행렬이 사방의 국경을 넘어 이웃나라로 몰릴 수 있다. 이는 고스란히 지역 차원의 긴장감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게 이 매체의 지적이다.

둘째, 반군 진영 내부의 분열 가능성도 높다. 현재 반군 진영은 아사드 정권 고위직 출신 망명자와 이미 장기간 외국에서 망명정부 활동을 해온 명망가 그룹, 정부군에서 탈영한 이후 자유시리아군의 전면에서 전투를 치러온 하급 장교 등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에 민병대를 구성해 독자적으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시리아 내부 이슬람 세력과 알카에다 등 외부 이슬람 세력까지 뒤섞인 터다. 아사드 정권이란 ‘공동의 적’이 사라진 뒤에도 이들이 단일 대오를 유지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중동 권위지인 도 비슷한 우려를 내놨다. 이 매체는 최신호에서 로버트 무드 전 유엔 시리아감시단장의 말을 따 “압도적인 화력과 무차별적 폭력을 국민에게 퍼부었던 정권은 언젠가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아사드 정권의 몰락이 시리아 내전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다마스쿠스나 알레포를 포기한 정권이 알라위 부족이 몰린 지중해 연안 산악지대 등을 중심으로 알라위 단독 국가를 구성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럴 경우 종족 간 내전이 전면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게 이 매체의 진단이다.

“정부 기관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종족 간 유혈 충돌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시리아인이 주도하는 민주적 변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치안을 회복하고 경제를 회생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동맹국은 물론 반군 진영과도 직접 소통하며 그 방법을 찾고 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8월7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이른바 ‘포스트 아사드’ 시대를 대비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게다. 이를 두고 등 미 언론들은 ‘이라크 학습효과’라고 풀이했다.
2003년 3월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미국은 ‘다국적군 임시행정처’(CPA)를 중심으로 ‘포스트 후세인’ 시대를 꾸렸다. CPA는 후세인 정권을 떠받쳤던 바트당 출신 인사들의 공직 참여를 철저히 배제하는 한편 이라크 정부군을 해산했다. 수많은 실업자가, 그것도 무장한 채 한꺼번에 거리로 내몰렸다. 이들 상당수가 저항세력에 가담한 것은 당연했다. 종족적 다양성과 소수파의 오랜 독재, 집권세력이 아랍 사회주의 색채를 지닌 바트당이란 점 등 이라크와 시리아는 공통점이 많다. 카니 대변인이 “(아사드 정권 몰락 이후) 가장 중요한 것은 시리아 사회를 포괄하는 과도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격전장 알레포, 통곡의 도시가 되나
함께 ‘봄’을 맞았던 튀니지와 이집트·리비아에서 독재가 무너지고 선거를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서는 동안에도 시리아에선 총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 는 8월8일 인터넷판에서 “시리아 최대 도시이자 상업 중심지인 알레포에서 지난 2주간 무차별 공습을 퍼부었던 아사드 정권이 마침내 지상군 병력을 투입했다”며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정부군이 반군의 거점인 살라헤딘 지역을 중심으로 파상 공세를 퍼붓고 있다”고 전했다.
알레포는 터키 국경에서 불과 40km 떨어져 있다. 반군이 승기를 잡는다면, 국경을 통한 무기 반입이 손쉬워질 터다. 정부군도, 반군도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앞서 영국 는 지난 8월6일 현지발 기사에서 시리아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따 “그간 알레포에서 벌인 (정부군의) 공세는 전채요리에 불과하다”며 “본격적인 코스요리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전했다. 시리아의 불길은 언제나 잦아들 것인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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