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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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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라, 시리아의 비명을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보리 결의안 부결된 뒤에 악화된 시리아 학살…
서방이 리비아식 해법 고집하고 반군은 분열하는 가운데 민간인만 숨져가
등록 2012-02-17 15:09 수정 2020-05-03 04:26

“알라 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시다). 쉰 외침이 애처롭다. 눈먼 폭탄은 끊임없이 퍼부어진다. 극한의 공포로 내몰린 이들이 초월적 존재에 기대고 있다. 아랍 위성방송 가 2월8일 인터넷판에 올린 동영상을 보면, 시리아 서부 ‘저항의 중심’으로 꼽히는 홈스의 주민들은 굉음과 함께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연신 ‘알라’를 입에 올렸다.
지난해 3월 ‘아랍의 봄’이 시리아로 번진 이후, 정부군의 파상 공세로 목숨을 잃은 이들은 그 규모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기댈 수 있는 건 반정부 단체들의 주장과 유엔 등의 추정치뿐이다. 최근까지 적게는 5천 명에서 많게는 7천 명가량이 숨졌단다. 수도 다마스쿠스도 예외는 아니다. 서부의 홈스, 중서부 하마, 중북부 에브렙, 남부 데라, 북부의 데이르 알주르까지. 온 나라에서 참극의 소식이 들려온다. 더 이상 ‘시위 진압’이라 부르기 어렵다. 학살이다.

저항 중심지 홈스 “하루 50명 주민 사망”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최근 잠시 주춤하는 듯했던 정부군의 공세가 홈스에서 다시 불을 뿜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3일 밤부터다. 이날 ‘자유시리아군’(FSA)으로 알려진 반정부군 일부 병력은 도시 외곽에 설치된 정부군 검문소 2곳을 잇따라 습격해, 정부군 병사 10여 명을 붙잡아갔다. 정부군은 곧장 홈스 중심가를 겨냥해 무차별 포격을 재개했다. 시리아 정부는 “홈스의 폭력사태는 외국이 지원하는 단체의 소행 때문”이라며 “홈스에서 질서를 회복할 때까지 공세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정부군의 공세가 사흘째로 접어든 2월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시리아 제재 결의안 표결에 들어갔다. 표결에 앞서 중국과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와 반정부 진영 간 대화의 필요성을 새삼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이를 무질렀다.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사태 발생 초기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반정부 진영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저버리고 자기 국민을 탄압했다”며 “더 이상 기회는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안보리의 표결 결과는 13 대 2, 압도적인 찬성이었다. 하지만 반대 2표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것이었다. 결의안 통과를 무산시키는 ‘거부권’이었던 게다. 곧장 “수치스런 행태”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세계 각국에서 터져나왔다. 피터 할링 국제위기감시그룹 연구원은 2월6일 와 한 인터뷰에서 “안보리 결의안 무산으로 시리아 정부는 지금까지 해온 일, 아니 그보다 더한 일을 해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것”이라며 “폭력사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bbc>은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시리아 인권감시단’의 말을 따 “2월8일 하루 홈스에서만 줄잡아 50명 이상의 주민이 (정부군의 공세로)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는 뭘까? 이번 결의안은 아랍연맹이 제출한 중재안을 유엔 안보리가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제출됐다. 아사드 대통령이 권력을 부통령에게 넘긴 뒤, 거국내각을 꾸려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새 정부를 구성하는 게 뼈대다. 안보리는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세르게이 라프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미국·유럽연합이 추진해온) ‘레임 체인지’ 전략과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그는 등과 한 인터뷰에서 “내전 상태에 있는 나라에서, 어느 한쪽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아랍연맹은 지난해 12월 시리아 현지에 파견한 감시단을 지난 1월28일 전격 철수시켰다. 안보리 표결을 일주일 남짓 앞둔 시점이었다. “갈수록 폭력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게 아랍연맹이 밝힌 철수 이유였다. 러시아 쪽은 즉각 비난 성명을 내놨다. 라프로프 장관은 외신들과 한 인터뷰에서 “유혈사태가 악화할 때는 감시단을 강화해야지 활동을 중단하고 철수시킬 때가 아니다”라며 “왜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지 모르겠다”고 강조했다.

리비아식 해법, 불가능한 작전
부결을 예감이라도 했던 걸까? 주변국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아랍에미리트·바레인·카타르 등이 참여한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은 2월7일 성명을 내어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폭력사태는 여성과 노인, 어린이까지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고 맹비난했다. 이 국가들은 이날 다마스쿠스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는 한편 자국 주재 시리아 외교관은 추방하기로 했다. 시리아 반정부 진영에 대한 무기 지원을 모색할 뜻도 내비쳤다.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 쪽에서도 아메트 다부토글루 외교장관이 나서서 “유엔이 시리아 국민을 보호할 수 없다면, 생각이 같은 나라들이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쪽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은 2월9일치에서 “미 국방부가 시리아에서 학살을 막을 방안을 찾기 위한 ‘내부 검토’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소극적으로는 반군에 대한 무장 지원, 적극적으로는 군사적 개입이 거론되는 상황이란 게다. ‘리비아식 해법’이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형국이다.
‘리비아식’이란 무얼 두고 하는 말인가?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지 두 달여 만인 지난해 10월18일 리비아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발언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의 보도를 보면, 이날 트리폴리대학에서 열린 학생과의 대화에서 클린턴 장관은 “그(카다피)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이른 시일 안에 체포되거나 사살돼, 리비아 국민이 더 이상 두려움 속에 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공습을 받은 카다피는 반군에 사로잡혀, 무차별 폭행을 당한 뒤 사살됐다.
“시리아는 리비아가 아니다. 바샤르 정권은 붕괴 직전의 상황이 아니며,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오랜 기간을 버텨낼지 모르다.” 중동전문 언론인 로버트 피스크는 2월7일 에 실은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그의 지적이 아니어도, 아사드 정권이 곧 무너질 것이란 정황은 어디에도 없다. ‘시아파 형제국’인 이란이 버티고 있다. 이라크도 주변 국가의 제재 움직임을 지켜만 보고 있다. 이웃나라 레바논 역시 마찬가지다. 피스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기다란 동맹국의 띠가 형성돼 있다”며 “아사드 정권으로선 적어도 경제·외교적 고립을 우려할 상황은 아닌 셈”이라고 말했다.
내부 반발을 무참히 짓밟은 ‘선대의 경험’도 물려받았다. 하페즈 아사드 전 시리아 대통령은 1982년 2월 하마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했다. 철저한 봉쇄 속에 이뤄진 당시 진압작전으로 목숨을 잃은 이는 줄잡아 1만~2만 명을 헤아린다. 그럼에도 그는 2000년 숨지기 전까지 둘째아들 바샤르(현 대통령)에게 안정적으로 권력을 세습시켰다.

NATO군은 없고, 러시아 함대는 있다
‘반군’은 어떨까? 미국 시사주간지 은 2월6일 인터넷판 기사에서 자유시리아군의 지도자로 알려진 리아다 알아사드 대령의 말을 따 “정부군 이탈자를 포함해 반정부군 병력은 4만 명 규모”라고 전했다. 하지만 은 “확인 불가능한 주장으로, 정부군의 추가 이탈을 부추기기 위한 심리전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터키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진 시리아 북부군 부사령관 무스타파 알셰이크 준장은 최근 와 한 인터뷰에서 “시리아 정부군은 괴멸 직전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역시 ‘확인’은 불가능하다.
더 암울한 소식도 있다. 반정부 진영 내부의 분열 조짐마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이탈’한 정부군 가운데 가장 고위급인 셰이크 준장이 ‘독자세력화’를 도모하고 있는 탓이다. 은 2월5일 그가 ‘시리아 해방을 위한 고위위원회’란 단체를 출범시켰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자유시리아군 쪽에선 “혁명의 등에 칼을 꽂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정리해보자. 리비아의 카다피는 잘 무장된 반군과 막강 화력의 NATO군을 상대해야 했다. 아사드 정권에 맞선 시리아 반군은 기껏해야 자동소총을 휘두르고 있다. NATO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리비아 반군의 근거지가 된 벵가지를 ‘해방구’로 만든 것은 영국 해군이었다. 지중해 연안의 시리아 군항 타르투스에는 옛 소련 시절인 지난 1971년부터 지금껏 러시아 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아사드의 시리아는 카다피의 리비아와 전혀 다른 상황인 게다.
2월7일 다마스쿠스를 방문한 라프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에게 아사드 대통령은 “폭력사태를 중단시키기 위해 모든 정치세력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단다. 하지만 이튿날인 2월8일에도 홈스의 민간인 거주지역 깊숙이 밀고 들어온 정부군의 탱크가 무차별 포격을 퍼붓는 장면이 등을 통해 외부로 전해졌다. 은 이날 인터넷판에서 현지 주민의 말을 따 “새벽 5시부터 3시간 남짓 동안 무려 200여 발의 포탄이 비 오듯 퍼부어졌다”고 전했다. 유혈의 참극은 계속되고 있다.

‘정권교체’ 타령 말고 몰려가 학살 막아야
‘말’이 목숨을 지킬 순 없다. ‘위협’이 학살을 막지는 못한다. 그래서다. 안보리 표결을 앞두고 돌연 시리아에서 철수했던 아랍연맹 감시단 재파견 움직임이 나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나빌 알아라비 아랍연맹 사무총장이 유엔과 공동으로 시리아 상황 감시를 위한 모니터요원과 특사단을 파견하자는 제안을 해왔다”며 “조만간 안보리와 상의해 좀더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ap>이 2월8일 전했다. 섣불리 ‘정권 교체’나 거론할 때가 아니다. 몰려가 막아야 한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p></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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