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아시아네트워크] 왕, 성역은 살아 있다

등록 2004-11-18 00:00 수정 2020-05-03 04:23

[아시아 네트워크 | 아시아의왕]

세계 30개 군주국 중 절반이나 차지… 정치적 영향력과 관계없이 여전히 ‘중심’ 에 자리



세계 30개 군주국 중 14개국이 아시아에 몰려 있다. ‘공화제’에 밀려 있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아시아의 왕. 그 실태를 아시아 네트워크 각국 필자들이 말한다.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asianetwork@news.hani.co.kr

첫 번째 이야기. “아, 그건 말이지. 브루나이 표준에 별로 어울리지 않았던 건데….” 브루나이 개발부 관료인 한 친구가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했던 말이다. 세계 최고 갑부 가운데 한명으로 꼽는 브루나이의 술탄 하사날 볼키아의 아들이자 왕세자인 알 무타디 빌라 볼키아의 지난 9월9일 결혼식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에 나온 말이었다. 호사가들을 흥분시켰던 그 결혼식은 그야말로 ‘황금잔치’였다.

브루나이의 ‘황금잔치’를 아시는가

1788개의 방이 있는 이스타나 누룰 이만궁에 일본 왕세자 나루히토, 바레인 왕 하마드를 비롯해 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대통령, 바다위 말레이시아 총리,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같은 이들이 하객으로 참석한 가운데 신랑은 황금관을 쓴 채 황금의자에 앉았고 신부 손에는 황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부케가 들려 있었다. 결혼식 뒤, 신랑 신부가 황금으로 장식한 롤스로이스에 올라 시가행진을 벌이자 103대의 리무진이 그 뒤를 따랐다.

“이런 결혼식 풍경도 ‘브루나이 표준’에 어울리지 않았다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이건 스스로 ‘아시아 표준’쯤 되리라 여겨온 가난한 기자인 내 의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날 결혼식에 참석한 브루나이 국왕인 술탄 볼키아의 표정은 어두웠다고 현장을 뛴 기자들이 전한다. 어떤 이들은 술탄 볼키아가, 1998년 아시아 경제위기 속에서 동생이자 재무장관이었던 제프리(Jefri) 왕자가 비밀 주식투자를 했다가 160억달러(17조원이 넘는)에 이르는 나랏돈을 날린 뒤부터 씀씀이를 ‘줄이면서’ 안색이 변했다고들 말한다.

술탄의 분노를 산 그 왕자는 지금 유럽을 떠돌고 있다는데, 비록 절대권력을 지닌 왕의 동생이긴 하지만 한 개인이 재정운영 실수로 날릴 수 있는 돈의 규모만 놓고 봐도 ‘아시아 표준’들은 그저 입이 쩍 벌어질 따름이다. 그래서 국왕이자 총리며 또 국방장관에다 재무장관까지 겸하고, 추밀원 의장과 종교평의회 의장까지 포함해 한 나라의 모든 ‘장’이란 자리는 모두 차지하고 있는 술탄 볼키아지만 국민들 보기에 좀 민망스러웠던지, 지난 9월29일 42년 만에 처음으로 선거를 약속했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선거 일정표까지 던진 건 아니지만, 아시아 시민들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 42년 전 선거란 완전한 민주주의를 내걸고 말레이시아와 합치자고 외쳤던 정당이 승리하자 술탄 볼키아의 아버지인 술탄 ‘하지 오마르 알리 사이푸디엔 사둘 카이리 와디엔’ 이 네팔 출신 굴카 용병들을 이용해 무장반란을 일으켜 뒤덮어버린 사건이었다.

총리가 왕을 제압한 말레이시아

두 번째 이야기. “뭐, 왕자가 교통 위반에 걸렸다고?” 조이스(여행전문 기자)라는 말레이시아 친구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압박정치로 유명했던 마하티르 총리 시절, 커피집에 둘러앉았던 외국 기자들은 저마다 감탄사를 흘렸다. “이거, 뜻밖에 말레이시아에서 이런 민주적인 현상을 보게 될 줄이야!” 이건, 무슨 민주주의라는 의미라기보다 말레이시아 정치판을 읽는 좋은 재료가 되었다.

독자들은 왕국인 말레이시아 뉴스에서 왕은 온데간데없고 늘 마하티르 총리만을 접해왔을 터이다. 왕과 정치, 그 둘 사이의 긴장관계가 마하티르의 22년 임기 동안 총리의 완승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1957년 말레이시아 헌법에서 왕의 권력이 한풀 꺾인데다, 마하티르가 집권하고 1983년과 1993년 두 차례에 걸친 헌법 수정으로 왕은 두 팔을 모두 잘린 채 ‘의전 국가대표 선수’로 역할을 제한당하고 말았다.

왕은 1983년 개헌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정부 견제용 ‘거부권’을 빼앗겼고 이어 1993년 개헌에서는 ‘면책특권’마저 잃어버렸다. 그렇게 형식상 국가를 대표하는 말레이시아의 현재 왕의 이름은 지난 2002년 4월25일부터 5년 임기를 시작한 ‘양 디페르투안 아궁 투안쿠 시에드 시라주딘 이브니 알 마르훔 투안쿠 시에드 푸트라 자말룰라일’ 이다.

세 번째 이야기. “이번주는 말이야, 마감이 여러 개 걸려 좀 힘들 듯싶은데….” “외국에서 친구들이 와서….” “야, 그런 내용들 말고 좀 다른 걸로…. 다음번에는 꼭 쓰지.”

한마디로 골치 아팠다. 이번주 아시아의 왕들을 다루고자 했던 계획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내로라 하는 진보주의자들에다 직필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아시아 네트워크’ 필자들이 몸을 사렸다. 특히 타이와 브루나이, 말레이시아쪽에서는 그 정도가 심했다. 사실 이 기획은 왕의 개인적인 처신을 놓고 옳네 그르네를 따지기보다 아시아 정치 현실을 보는 한 도구로 활용해보자는 뜻으로 시작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들이 몸을 사리는 현실, 이건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녔음이 틀림없다.

총리나 대통령들이야 뒷구멍까지 파헤치는 세상이지만, 아직도 왕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왕은 성역이었다.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아직 그랬다.

“거리에서 국왕이나 왕비의 초상화를 보게 되면 절대로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말라.” 이건 타이를 방문하는 신참내기 관광객들에게 안내자들이 주지시켜온 사실인데, 두어해 전인가 한 독일인이 방콕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만난 타이 승객과 왕실을 놓고 논쟁을 벌인 죄로 타이 입국을 금지당한 채 공항에서 바로 쫓겨난 일이 있었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타이, 브루나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모든 왕국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언론도 처음부터 왕실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지독한 금역을 설정해왔다. 단군 이래 최대의 언론 자유를 누리는 한국 사회에서 보면 신기한 일일지 몰라도.

아시아 네트워크 필자들도 몸사려

세상을 통틀어 현재 30개 군주국(왕국)에다 31개(안도라에 두명의 왕이 있으므로) 군주들이 버티고 있다면, 그 반에 가까운 14개 군주국이 아시아에 몰려 있다. 이건 아시아 나라들 가운데 3분의 1이 현재 군주국이라는 뜻이다. 그 대표선수 명칭이야 술탄(sultan·브루나이, 오만)이든 왕(king·타이, 바레인, 부탄, 캄보디아, 요르단, 말레이시아, 네팔, 사우디아라비아, 통가)이든 천황(emperor·일본)이든 또는 에미어(emir·카타르, 쿠웨이트)든, 그 정체는 분명 군주국이다.

물론 타이, 일본, 말레이시아, 캄보디아처럼 왕이 직접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대신 왕실 생존을 보장받은 서양식 모델인 입헌군주제도 있고 또 브루나이, 부탄,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군주가 전권을 지닌 절대군주제도 있다. 게다가 아시아판 군주국들은 유지 방식도 다양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해온 세습제도가 있는가 하면, 말레이시아처럼 9명의 술탄이 돌아가면서 5년에 한번씩 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캄보디아처럼 왕실 가문이라는 조건을 지닌 이들 가운데 왕을 선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시아 군주제 국가에서 그 왕들이 정치판에 영향력을 지녔든 말든, 사회적 통념과 전통 속에서 여전히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아시아 네트워크’는 아시아의 정치판을 이해하기 위해, 그동안 우리가 너무 ‘무시’해왔고 ‘호기심 거리’로만 여겨왔던 왕과 군주국들을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다. ‘아시아 네트워크’는 이미 철 지난 ‘군주제’와 효력을 상실한 ‘공화제’라는 두 역사적 경험 속에서 낭패를 맛본 시민사회가 21세기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공감 아래 이 기획을 독자들께 올린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