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30주년 맞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유신체제의 암흑기에 문학적 저항의 좌표 설정
▣ 고명철/ 문학평론가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무엇을’ 그토록 소중히 간직한다는 것일까? 대관절 ‘우리가’ 누구이기에, 이처럼 간직한다는 것을 세상에 미덥게 천명하는 것일까? 이것은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가 창립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채택한 캐치프레이즈인바, 작가회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라면, 이 캐치프레이즈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6월항쟁 이후 작가회의로 확대 개편
아마도 전세계에서 작가회의처럼 한 세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진보적 문인 단체를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작가회의 30주년을 맞이하면서 작가회의 안팎에서는 흔히들 이런 얘기가 오고 간다. 작가회의가 30년이란 시간을 견뎌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작가회의가 그동안 겪어온 그 숱한 역사적 경험들을 반추해본다면,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이하 자실)가 엄혹한 유신체제 아래 1974년 11월18일 설립됐고, 이후 겪어야만 했던 온갖 역사적 시련을 떠올려본다면, 어엿한 장년으로 성장한 작가회의의 지금의 모습은 믿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진보적 문인 단체로서 군부독재 정권의 극심한 정치적 탄압 속에서도 꿋꿋이 그 생명을 지켜왔다는 것은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작가회의의 모태인 자실은 반민주적·반민족적·반인류적 유신체제를 부정하고 저항한 양심적·진보적 문인들의 역량을 결집시켰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부독재는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상실한 정권으로서 자신의 철권정치를 유지하기 위해 반공 이데올로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지만, 민주화의 염원을 지닌 문인들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하여 민족문학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맡은 자실이 결성됐고, 1974년 11월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의사회관 앞에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문학인 101인 선언’을 발표한다. 자실의 결성은 그동안 문인 개개인이 실행한 저항을 집단적 저항의 힘으로 응집시킴으로써 문학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던 셈이다. 이것은 민족문학운동사에서는 물론, 민족예술운동사에서도 획기적인 분수령이다. 비록 협의회 단계에 머물렀지만, 문학을 제외한 다른 예술 장르에서 이렇다 할 만한 조직적 성격을 갖춘 문예운동이 부재한 터에 자실의 결성으로 말미암아 진보적 문예 일꾼들의 개별적 역량을 응집하는 노력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서 자실의 결성과 함께 충격적으로 표명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문학인 101인 선언’은 1970년대 민족문학운동의 방향성과 문학적 저항의 좌표를 명확히 설정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 문건이다.
이렇게 창립된 자실은 군부독재 정권의 감시와 탄압이 강해질수록 저항적 민족문학운동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이후 자실은 진보적 민족문학의 이념을 선명히 하면서 민족문학운동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런데 자실은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신군부의 탄압 속에서 그 조직적 역량을 상실했다. 하지만 1984년 12월10일 서울 흥사단에서 6년 만에 재개된 ‘민족문학의 밤’ 행사를 가졌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정관을 채택하고 임원과 조직을 대폭 수정·개선함은 물론, ‘84 문학인 선언’을 천명함으로써 민족문학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다가 1987년 6월항쟁 이후 자실에서 작가회의로 확대 개편되면서 대중적 문예운동을 통해 민족예술의 이념과 실천을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특히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문민정부의 출범(1993)으로 인해 형식적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시작하고, 후기 자본주의 문화 논리가 일상 깊숙이 침투해들어오는 현실에서 진보적 문예운동 진영은 1980년대와 다른 실천 방식이 요구됐던 것이다. 따라서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작가회의는 사단법인화를 통해 제도권 안에서 진보적이면서 대중적 민족문학운동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분단을 넘어선 문학인 대화 추진
마침내 1996년 6월22일, 작가회의는 사단법인 등기를 완료하였는데, 초대 이사장을 역임한 문학평론가 백낙청씨는 회원 각자의 창작 활동에 도움을 주는 것에서 출발해 한국 문학의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동북아와 세계 평화에도 기여하는 단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작가회의의 위상과 장래를 언급한 바 있다. 바야흐로 작가회의의 사단법인화는 그동안 유일한 문학 법인체였던 한국문인협회의 독주를 견제하면서, 각 지역에 결성된 지회와 지부의 민족문학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문학이라는 개별 장르 단위에서 사단법인화를 추진했다는 점은 우리의 진보적 문예운동사에서 큰 획을 긋는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예술장르별로 공익법인을 하나만 인정한다는 5·16 이후의 불문율이 깨지고 한국문인협회와 더불어 2개의 문인 단체 공익법인이 존재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작가회의는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도약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작가회의는 올해부터 사무총장 체제로 제도가 크게 바뀌면서 급변하는 현실에 창조적·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민족문학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 아직 개최는 안 되었으나, 남북한과 해외 동포 문학인들이 함께 모여 분단을 넘어서 민족의 내면의 대화를 실질적으로 나눌 민족문학인대회를 추진하고 있으며, 지역적·개별적·분산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진보적 문학운동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노력하고 있으며, 기초예술로서 문학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려는 문학지원 정책을 강구하고 있다. 작가회의가 살아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삶과 문학 현장에 밀착한 젊은 문학인들이 애정을 지속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회의의 후속 세대라 할 젊은 문학인들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문학 활동이 왕성해질 수 있도록 작가회의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에서 감지할 수 있듯, 앞으로도 작가회의가 한국 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믿음이 가는, 하여 우리 모두가 작가회의에 사랑을 듬뿍 쏟을 수 있는 진보적 문인 단체로서 제 몫을 다해줄 것으로 나는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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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작가회의는 창립 30돌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를 선보일 계획이다. 우선 11월18일 서울시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기념식이 성대하게 치러진다. 사회는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발족했을 때 총무를 맡았던 이시영 시인과 1984년 자유실천위원회가 재창립됐을 때 최초의 유급직원으로 일했던 소설가 공지영씨가 공동으로 맡는다. 이날 기념식은 작고 문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참가 문인들의 자리에 함께 배치하는 ‘영혼 참가’, 최고령 김규동(81) 시인과 최연소 김보영(23) 시인의 대회 개최 선언, 베트남작가동맹과 몽골작가연합의 축하사절 참석 등 다양한 이벤트와 함께 진행된다. 특히 감사패 수여자들 중에는 홍성우 변호사 등 각계 인사들과 함께 가난한 살림에도 문인들에게 따뜻한 자리를 마련해준 전 탑골주점 주인 한복희씨와 아현호프 사장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현재 작가회의는 아현호프 사장의 소재지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30주년 부대행사 중 기념전시회가 가장 큰 볼거리다. 11월17~23일에 서울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 사진자료전 ‘문학의 길, 역사의 길’, 도자기 전시회 ‘100년 동안의 시’, 시판화전 ‘21세기를 노래하는 새로운 목소리들’이 함께 열린다. 이 중 도자기 전시회는 지난 100년 동안의 한국시 중에서 21편을 선정하여 도자기로 기념비를 만들어 보여주는 행사다. 김소월의 ‘진달래꽃’부터 고은, 신경림 등 생존 시인들의 시까지 우리 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젊은 평론가들로 구성된 시선정위원회가 최근 10년 동안에 등단한 시인들 중 25명과 그들의 대표시 2편씩을 선정하여, 남궁산의 판화 25점과 함께 보여주는 시판화전은 우리 시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자리다.
고 김남주 시인 10주기 행사도 30주년 행사 중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11월24일~12월8일에 ‘사랑과 전투의 시인 김남주’ 전시가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시실에서 열리고, 12월3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심포지엄 ‘김남주의 삶과 문학’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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