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세계가 눈독들이는 베이징~상하이 구간 고속철, 자기부상식과 궤도식 사이에서 고민중 </font>
▣ 베이징·상하이=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세계의 돈과 원자재, 에너지를 무서운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이 느림을 뜻하는 ‘만만디’ 성향을 보이고 있는 분야가 있다. 고속철 도입과 관련해서다. 중국은 1990년대 초 철도에 대한 투자 부족으로 인해 여객과 화물 운송에서 병목 현상이 일어나자 고속철 도입을 해결책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올 1월엔 2020년까지 전국 철로 총 10만km 연장(현재 7만3천km), 베이징~상하이(1300km) 노선을 포함한 ‘4종(縱)4횡(橫) 여객 운송 전용 고속철도 건설 계획’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중·장기 철로망 계획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고속철 사업자와 기종 선정 작업에 들어가지 못했다. 베이징~상하이 노선의 경우 2005년 착공, 201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당초 올 말이나 내년 초에 사업자·기종 선정을 완료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현재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신중히 연구·검토 중”이다. 수년간 지속돼온 논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탓이다. 철로 위에 바퀴가 굴러가는 궤도식으로 하자는 쪽과 자력으로 차량을 띄워 운행하는 자기부상식으로 하자는 쪽의 대립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2005년 착공 연기될 가능성도
4종4횡 노선 가운데 일본·프랑스·독일 등 중국에 자기 나라의 고속철을 깔고자 하는 철도 선진국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노선이 베이징~상하이 구간이다.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를 연결하는 이 지역은, 중국 국토의 6%에 지나지 않지만 인구는 27%가 몰려 있다.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 이상이다. 그만큼 이용률이 많은 ‘황금 노선’이다. 게다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0년 상하이 국제박람회가 예정돼 있어 국제적인 이목을 끌기에도 최상의 노선인 셈이다. 이 노선을 수주하는 곳이 다른 노선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쪽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입찰을 할지, 자체 기술개발로 할 것인지 고속철을 도입할 것인지, 도입한다면 궤도식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자기부상식으로 할 것인지 이 모든 게 안개 속이다. 현재 분위기로 보면 2005년 착공이 연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정부의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미 상하이~베이징 노선은, 이번 중·장기 철로망 계획의 ‘4종4횡’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창 공사 중이거나 빠르게 공사가 진행됐다면 고속철이 달리고 있어야 맞다. 1990년대 초반 철도부에서 ‘징루(베이징~상하이) 고속철도 타당성 연구 보고서’가 국무원(국무원의 수장은 총리)에 제출됐고, 수년간의 논의를 거쳐 1998년 전국인민대표대회(우리로 치면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의결기구)를 통과해 2000년에 착공하기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기술을 도입할 것인지 논쟁이 시작되면서 징루선은 기나긴 공전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당시 중국에 유학했고 고속철협력포럼의 일원으로 이번 중국 고속철 현황 조사에 참여한 주장환 성균관대 현대중국연구소 연구교수(정치학)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될 때까지만 해도 궤도식이 대세였는데, 주룽지 전 총리가 ‘왜 자기부상 방식은 고려하지 않느냐’고 문제제기를 한 직후 궤도파와 자기부상파간의 논쟁이 치열해졌다”며 “철도부 중심의 궤도파와 과학기술부 중심의 자기부상파가 갈려 있고, 최근에는 여기에 ‘절충파’까지 가세해 논쟁 구도가 더욱 복잡해졌다”고 설명했다.
궤도식과 자기부상식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자기부상식은 초기 투자비가 궤도식에 비해 2배가량 비싼 반면, 열차 속도가 빠르고 유지비가 적게 들며 에너지 효율성이나 친환경적인 면에서 유리하다. 그러나 운송 능력면에서 궤도식에 떨어지고 중국의 기존 철도 방식과 달라 겸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절충파는 현 시점에서 보면 궤도식이 낫지만 발전 방향은 자기부상식인 만큼 징루 고속철 건설을 연기하고, 올림픽과 국제박람회 준비를 위해 당장 급한 짧은 노선(베이징~톈진, 상하이~항저우)에는 자기부상식을 도입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궤도식 채택 전망 우세
논란이 공전을 거듭하자 중국 정부는 각각 다른 노선을 건설해 시범 운행에 들어갔다. 철도부는 베이징 부근 친황다오부터 선양까지 친선선을, 과학기술부와 상하이시는 상하이 시내의 시범 노선을 건설해 시범운행 중이다.
주목할 부분은, 자기부상파가 궤도식과 자기부상식의 일반적인 장단점 이외에 중국의 특수성을 근거로 들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나 일본, 유럽이 궤도식을 채택한 배경에는 400~500km를 한두 시간 내로 이어주길 바라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캐나다, 러시아처럼 넓은 나라는 고속철이 발달돼 있지 않다. 대도시간 거리가 1천km 이상이기 때문에 주로 비행기가 이용되고 자동차와 지하철이 이를 보조하는 수단이 된다. 미국은 세계 석유의 3분의 1을 쓰고 이 중 60%가 운송 수단에 소비된다. 국토 면적이 비슷한 중국이 미국 방식의 시스템을 도입하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장거리에서는 시간적인 면에서 비행기와 경쟁이 되고 단거리에서 자동차를 대체할 수 있는 미래의 교통수단인 자기부상 방식이 궤도식에 비해 월등히 낫다.” 상하이에서 만난 자기부상파 핵심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중국의 대내적 환경이 자기부상파쪽에 유리한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지난해 말 상업 운행을 시작한 상하이 시내 룽양루에서 푸둥 국제공항까지 30km 구간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고 궤도 침하 등 크고 작은 기술적 결함이 발견되기도 했다.
게다가 자기부상파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주룽지 전 총리의 정계 은퇴 역시 전망을 어둡게 만든 요인이다. 주 전 총리의 후임인 원자바오 총리와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중국의 경기 과열을 우려하며 “긴축을 통한 체질 바꾸기 경제노선”을 채택했다. 최근에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새로 짓기로 한 경기장 10곳 중 5곳의 건립계획을 백지화하기도 했다. 따라서 고속철 도입 시기를 늦추는 대신 기존선을 개량해 고속화하거나 복선화·전철화쪽에 무게를 실을 가능성도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궤도식보다 건설비 등 초기 투자비가 2배가량 더 드는 자기부상식을 채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징루선 등 일부 구간을 2005년에 착공하겠다는 중·장기 철로망 계획이 발표됐을 때, 검증을 거쳐 상용화된 노선이 하나(상하이 시내 30km)밖에 되지 않는 자기부상식은 물건너갔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이 예정대로 2005년 착공을 목표로 궤도식을 채택할 경우, 평균시속 160km 수준의 자체 기술(중국 철도과학연구원쪽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순간 최고시속 321.5km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은 무리가 있다. 현재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일본 신칸센과 프랑스의 테제베(TGV), 독일의 이체(ICE) 도입이 유력하다. 일본은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리고 1970년대부터 ‘작업’을 시작해 경쟁에서 일찌감치 치고 나갔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를 비롯해 중국 국민들의 대일 감정을 악화시킨 일련의 사건 이후 불리해졌고 중국으로서는 필수 조건인 기술이전에 소극적이어서 유럽쪽에 밀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쟁에서는, 싼샤댐과 대도시 지하철 건설 등 국책사업 분야에서 수주 경험이 많은 프랑스가 조금 앞서가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국 ‘G7’에도 관심 보여
우리나라는 중국 고속철 시장에 명함을 내밀 수 있을까. 이번에 만난 중국 철도인들은 TGV 도입 이후 이를 도약대로 삼아 자체 개발에 성공하고 시험운행 중인 한국형 고속철 ‘G7’의 기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 모델이 중국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치켜세우는가 하면, 한반도와 중국의 철도망 연결에도 의욕을 보였다. 최근 국내 철도차량 업체인 로템은, 국내 연구진들이 수십년에 걸친 기술개발로 만든 자기부상 열차를 말레이시아에 수출했다. 싱가포르와 연결되는 조호르바루 센트럴에서 라르킨 센트럴까지 7.9km 노선인데, 상용화 기술 해외 수출은 독일에 이어 두 번째다. 도심형 자기부상열차와 궤도형 고속철은 분명히 다르다. 한국형 고속철이 중국에 가기까지 산 넘어 산인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도전해볼 가치까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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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자기부상열차 타보니…</font>
11월12일 중국 상하이에서 탄 자기부상열차는, 절반은 상상 이상이었고 절반은 기대에 못 미쳤다. ‘쯔시엔푸’로 불리기도 하는 이 열차의 외형은, 기차라기보다는 지하철 느낌이 더 강했다. 열차가 선로를 감싸고 있어 차량이 떠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기관사가 없이 중앙통제실에서 조정하는 무인 시스템이었다.
처음 타본 땅 위를 달리는 최고속도 열차에 승객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최고시속 431km에 도달하는 시간이었다. 오후 차 문이 닫히고 가속을 시작한 지 1분이 지나지 않아 100km를 넘어섰다. 3분가량 지나자 최고시속인 431km를 달렸다. 창문 밖 가까운 물체는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고 있어도 ‘아, 방금 지나간 것은 전봇대 같다’ 하는 느낌만 남았다. 다른 객차로 이동하는 통로쪽 윗부분에 전자시계처럼 시간과 속도를 알려주는 수치가 나타났다. 보통실은 중앙통로를 기준으로 세 자리씩 놓여 있었고 안전벨트는 따로 없었다.
열차는 곡선 구간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타는 특급열차의 선로처럼 곡선 지점 선로의 좌우 높이가 달랐다. 오른쪽으로 굽어갈 때는 왼쪽 선로가 높았고, 왼쪽으로 굽어갈 때는 그 반대였다. 궤도식 고속철이 속도 유지를 위해 곡선을 피해야 하고 우리나라 고속철(KTX)의 경우 교량과 터널이 전체 구간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자기부상열차의 강점이 아닐 수 없다. 자기부상열차가 “나는 이런 구간에서도 속도 줄이지 않고 갈 수 있다”고 뽐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승차감과 소음 면에서는 기대 이하였다. 바퀴 없이 선로 위를 떠가기 때문에 철로와 철바퀴가 부딪힐 일이 없음에 따라 비행기와 승차감이 비슷하고 엔진 소리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일반 기차 같은 덜컹거림은 없었고 평상시 크기의 목소리로 대화하기에 전혀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KTX나 시험운행 중인 한국형 고속철 ‘G7’의 승차감이나 소음 정도와 다른 점을 체감하기에는 힘들었다.
열차는 롱양루 역을 출발한 지 채 8분이 되지 않아 목적지인 푸동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 정도 속도라면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상용화될 경우 중간역 정차 등을 감안할 때 대여섯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제작진은 설명했다. 자기부상열차를 타기 사흘 전,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비행기를 이용했다. 비행시간은 2시간 정도지만 공항까지 오간 시간, 검색 등 수속과정에서의 피로감, 연착 등을 따져보니 한나절을 보낸 것 같았다.</font></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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