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시즌이다. 하지만 야구계는 시끄러웠다. 지난 설 연휴에 공개된 추신수(SSG 랜더스)의 발언 때문이었다.
추신수는 미국 댈러스 한인 라디오 방송(DKNET)과 한 인터뷰에서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한국 대표팀 구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같은 B조의 일본 대표팀에는 새로운 얼굴이 많은데 한국 대표팀에는 김광현(SSG 랜더스), 양현종(KIA 타이거즈), 김현수(LG 트윈스) 등이 그대로인 점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추신수는 “당장의 성적보다 미래를 본다면 새로 뽑히는 선수들이 많았어야 한다”며 안우진(키움 히어로즈), 문동주(한화 이글스) 등을 언급했다. 안우진은 2022년 투수 2관왕(평균자책점·탈삼진)이었고, 문동주는 다치기 전까지 차세대 에이스로 큰 주목을 받았다.
추신수의 말에도 수긍은 간다. 김광현, 양현종, 김현수, 최정(SSG) 등 2010년 전후로 국가대표로 맹활약한 이들이 2023년에도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추신수는 이들과 함께 2009 WBC,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을 뛴 경험까지 있다. 13년이 지나도 대표팀 에이스가 김광현·양현종이고 야수에서도 김현수·최정이 그대로 대표팀에 남은 것에 의아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신수는 2010년 아시안게임 이후 대표팀 부름에 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난 10여 년간 대표팀 구성의 속사정을 그가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추신수가 간과한 것이 있다. WBC 대표팀 투수진에는 김광현, 양현종, 이용찬(NC 다이노스) 등 고참도 있지만 이의리(KIA)를 비롯해 소형준(kt 위즈), 김윤식(LG), 구창모(NC), 정철원, 곽빈(이상 두산 베어스) 등 미래 한국 야구를 책임질 영건도 다수 포함돼 있다. 문동주의 경우 리그에서 아직 보여준 것(2022시즌 성적 1승 평균자책점 5.65)이 없어 이번에 발탁이 안 됐지만 현 상황에서 잠재력 있는 투수는 거의 다 대표팀에 승선했다. 대표팀 투수 15명 중 절반 가까운 7명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게 된 것이 그 증거다. 이강철 감독 또한 대표팀 최종 30명을 발표할 때 “젊은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선발하고 싶었다. 성적을 내야 해서 베테랑도 뽑은 것”이라고 말했다.
2020 도쿄올림픽 때를 돌아보면, 김경문 당시 대표팀 감독이 많이 아쉬워한 부분이 베테랑 투수의 부재였다. 당시 대표팀 투수 10명 중 6명이 처음 성인 대표팀에 뽑힌 터였다. 야구에서 만약은 참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김광현·양현종 둘 중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대표팀 최종 성적(4위)은 달라졌을 수 있다. 당시 김광현과 양현종은 둘 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어 시즌 중 올림픽에는 참가할 수 없었다.
대표팀 세대교체도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어린 선수들을 팀에 끼워넣는다고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승리가 쌓이는 과정에서 이기는 법을 터득하고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로의 역할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당장 2022년 우승한 에스에스지(SSG) 랜더스만 해도 베테랑 김강민·추신수·김광현·최정과 신진 선수인 최지훈·박성한·오원석 등이 조화를 이루며 개인 투타 부문 1위가 단 한 명도 없이 케이비오(KBO) 리그 사상 최초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개막전부터 마지막 날까지 1위를 놓치지 않는 것)을 거머쥐었다. 이와 반대로 한화 이글스는 어린 선수들로만 시즌을 꾸려가다가 3년 연속 꼴찌에 머물렀다. 이기려면 SSG처럼 베테랑의 경험이 필요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바람의 아들’ 이종범 엘지(LG) 트윈스 코치의 경우 1989년 건국대 1학년 시절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에서 뛰기 시작해 2006 WBC 대표팀까지 17년을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에 헌신했다. 현재의 김현수와 비슷한 나이대에 WBC 대표로 나선 것은 더그아웃 리더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단기전에서 더그아웃 리더가 정말 중요하다는 점은 추신수 또한 프로 생활을 하면서 많이 느꼈을 터다. 국가 대항전도 다르지 않다. 김현수는 대표팀 주장으로 뽑혔다.
추신수가 안타까워했던 것이 정체된, 혹은 점점 실력이 하향 평준화되는 한국 야구의 현실이라면 관계자나 팬들로부터 지지를 얻었을 수 있다. 김광현은 2022년 평균자책점 2위(2.13), 다승 공동 4위(13승)의 선수였다. 개인 성적 면에서 그가 대표팀에 뽑히지 않으면 더 이상했다. 안우진이 WBC라는 제일 큰 야구대회에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쇼케이스를 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할 게 아니라, 김광현과 선발 맞대결을 했을 때 꺾을 수 있는 투수가 국내에 많지 않다는 점을 들어 국내 인프라나 아마추어 야구의 현주소 등을 곱씹게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마도 야구계에 건전한 토론이 오갔을 것이다.
가뜩이나 그가 언급한 안우진은 아직 과거 학교폭력 문제를 매듭짓지 못했다. 안우진은 대한체육회 규정상 올림픽, 아시안게임, 프리미어12 등의 대회에서 영구히 뛸 수 없다. 올림픽 태극마크와 WBC 태극마크는 다른 것일까.
국가 대항전은 개인의 이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금메달을 따고도 일부 선수의 병역 혜택을 위한 대표팀 발탁이 있었다는 의혹 아래 호된 역풍을 맞았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사례를 잊으면 안 된다. 당시 선동열 대표팀 감독은 국회 청문회까지 출석해야 했다.
야구 인기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WBC 성적은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다. 국내 야구 붐을 다시 일으키려면 국제 경기 성적 향상에 따른 일반인의 관심도 상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0년대 야구의 봄은 그렇게 찾아왔다. 2006 WBC 4강,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의 성과가 켜켜이 쌓여 시즌 800만 관중(2016~2018년)도 일궈냈다. 하지만 2013 WBC 1라운드 탈락, 2017 WBC 1라운드 탈락, 2018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발 의혹, 2020 도쿄올림픽 4위와 더불어 학교폭력, 음주운전 등 부정적 이슈가 거듭 불거지면서 KBO리그 인기는 확 사그라들었다. 이강철 감독이 “성적을 내기 위해” 김광현 등의 베테랑을 뽑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경우 워낙 지역 충성 팬들을 기반으로 탄탄한 인기를 구축하지만 KBO리그는 다르다. 작은 부정적 이슈에도 리그가 휘청인다. WBC 코치진과 기술위원회가 1년 가까이 고민한 결과를 추신수가 그저 후배(안우진)를 위해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들의 결정으로 폄훼한 것은 매우 아쉽다. 그의 말을 그대로 빌려 글을 갈무리한다. “야구 먼저 하고 먼저 태어났다고 선배는 아니다.”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김양희의 인생 뭐, 야구: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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