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2010년 프로야구, 괴물 출현!



장종훈·이승엽 계보 잇는 이대호, 최동원·선동열 이후 진정한 에이스 류현진

전율이 흐르는 스윙과 체인지업으로 야구사를 새로 쓰다
등록 2010-09-02 16:14 수정 2020-05-03 04:26
2010년 프로야구, 괴물 출현!

2010년 프로야구, 괴물 출현!

2010년 한국 프로야구를 회고하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된다면 롯데 이대호와 한화 류현진의 두 타석 승부를 빠뜨려선 안 된다.

7월21일 대전구장 롯데전에서 한화 왼손 투수 류현진은 올 시즌 세 번째 완봉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1-0으로 앞선 9회초 투아웃 1·3루에 타석에는 올해 최고 타자 이대호가 서 있었다. 류현진은 직구 세 개로 볼카운트 2-0(한 개는 파울)을 잡은 뒤 시속 146km짜리 강속구를 몸 쪽으로 붙였다. 이대호는 배트를 휘두르지도 못하고 삼진 아웃.

그리고 8월8일 대전구장. 한화가 3-0으로 앞선 8회초에 류현진은 다시 이대호를 상대했다. 이번에는 이대호가 이겼다. 투수와 타자의 대결에서는 초구에 어떤 공을 던지느냐가 중요하다. 류현진이 초구로 선택한 공은 8월18일 이대호를 삼진으로 잡은 몸 쪽 직구였다. 그러나 공은 조금 가운데로 몰렸고, 이대호의 스윙은 타구를 115m짜리 투런 홈런으로 만들었다.

슈퍼 타자 vs 에이스 중의 에이스

8월8일 승부에 대해 이대호는 “마음 착한 현진이가 선배 홈런 하나 치라고 준 공이다”라며 웃었다. 하지만 삼진을 당한 7월21일 몸 쪽 직구에 대해서는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이었다”고 정색했다. 그만큼 자존심이 걸린 승부였다. 류현진 역시 이대호를 상대로 한 삼진과 홈런을 “올해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으로 꼽고 있다.

이대호는 8월25일 현재 타율(0.364)·홈런(41개)·타점(121점)·득점(90점)·최다안타(154개)·출루율(0.440)·장타율(0.681) 등 도루를 제외한 공격 7개 부문 선두에 올라 있다. 타율·홈런·타점 타이틀 동시 획득을 가리키는 ‘타격 3관왕’은 2006년 이대호를 비롯해 두 번 나왔다. 그러나 7관왕은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2006년 이후 이대호를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로 평가했다. 거구에서 나오는 장타력에 언제든 3할대 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고타율과 많은 홈런을 동시에 기록한다는 건 어렵다. 대개의 홈런 타자들은 볼넷과 삼진이 많다. 홈런을 칠 수 있는 좋은 공을 노리기 때문에 볼넷을 자주 고른다. ‘이거다’ 싶은 공은 힘껏 휘두르기 때문에 빗맞을 확률도 높아진다.

올해 이대호의 홈런은 경이적인 수준이다. 41홈런은 프로야구 역대 9위 기록이다.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1~8위 기록은 1992년 장종훈(42개)을 제외하곤 모두 1999~2003년 시즌에 집중됐다. 도핑 전문가들은 이 시기 프로야구에 근육을 키우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등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금지한 약물이 만연했다고 의혹을 품는다. 한 프로구단 트레이너 출신은 “한 팀 주전 가운데 두세 명은 약물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이대호 외에 어떤 타자도 30홈런을 넘기지 못했다. 8월24일 현재 홈런 부문 1위 이대호와 2위 최진행(한화)의 차이는 13개다. 역대 최다 차이다. 그는 이제 장종훈과 이승엽의 계보를 잇는 슈퍼스타가 됐다.

이대호 vs 류현진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대호 vs 류현진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류현진은 어떤가. 선발 투수의 기량을 측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닝 수’(얼마나 오래 던졌나)와 ‘평균자책점’(얼마나 잘 던졌나)을 보는 것이다. 류현진은 8개 구단에서 가장 많은 이닝(180⅔)을 던졌고, 가장 뛰어난 평균자책점(1.64)을 기록했다. 여기에 다승(15승)과 탈삼진(179개)도 1위다. 류현진은 8개 구단에서 가장 안타를 적게 맞으며(피안타율 0.216), 9이닝당 볼넷(1.99)은 기아의 서재응(1.90) 다음으로 적은 투수다.

소속팀이 최하위 한화가 아니었다면 류현진은 올해 손쉽게 20승 투수가 됐을 것이다. 한화는 류현진이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68.2% 확률로 승리했다. 김성근 SK 감독은 류현진을 “최동원과 선동열 이후 나타난 진정한 에이스”라고 말한다.

스트라이크존을 9등분할 때 타자는 ‘몸 쪽 낮은 코스→한가운데→바깥쪽 높은 코스’로 이어지는 대각선에 강하다. 스윙 궤적이 일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 쪽 높은 코스와 바깥쪽 낮은 코스에는 약하다. 전자에는 팔 궤적이 줄어들고, 후자에는 원래 스윙보다 길어지기 때문이다. 투수와 포수는 이 원리를 이용해 타자를 잡는 볼 배합을 한다. 투수 출신인 이효봉 MBC LIFE 해설위원은 이대호에 대해 “코스로는 잡을 수 없는 타자”라고 평가한다.

올 8월 초까지 이대호는 몸 쪽 높은 코스에 타율 0.373, 바깥쪽 낮은 코스에 0.391을 기록했다. SK 전력분석팀의 김정준 팀장은 “바깥쪽 낮은 공과 몸 쪽 높은 공을 번갈아 던지는 게 최선이다. 그래도 잡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대호는 8월13일 광주 기아전에서 아킬리노 로페스의 몸 쪽 싱커를 잡아당겨 시즌 37호 홈런을 만들어냈다. 로페스는 이 공에 대해 “노리던 곳으로 정확하게 들어갔다”고 말했다. 박노준 SBS 해설위원은 “다른 타자였으면 잘 쳐야 파울이었다. 전율이 흐를 정도의 스윙”이라고 말했다.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올해 좀더 공격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홈런 양산의 이유로 든다. 이대호는 원래 볼넷을 싫어하는 공격적인 타자였다. 그러나 2007년 이전 허약했던 롯데 타선에서 이대호는 홈런뿐 아니라 안타도 쳐야 했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주자가 있는 상황에선 타점을 노리고 강하게 공을 때리라고 주문했다. 이대호는 “1·2루 간으로 살짝 밀어 쳐 안타를 만든다면 로이스터 감독이 화를 낼 것”이라고 말한다.

류현진은 2006년 입단하자마자 투수 3관왕(평균자책점·다승·탈삼진)과 신인왕, MVP를 휩쓸었던 ‘괴물’이다. 중요한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더욱 승부를 거는 장면은 압도적일 정도다. 시속 150km를 웃도는 강력한 직구에 서클체인지업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구질로 꼽힌다.

류현진은 지난해 13승·평균자책점 3.57로 가장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고교 때 수술을 받았던 왼쪽 팔꿈치가 좋지 않았고, 매 시즌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등판했던 피로가 쌓였다. 야구 기자 사이에선 “류현진이 힘보다는 기교로 던지려 하는 것 같다”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기우였다. 류현진은 올해 2006년보다 더 강력한 공을 던지고 있다. 그 자신도 “올해는 직구에 힘이 붙었고, 제구도 잘된다”고 만족하고 있다.

한 메이저리그 구단이 작성한 스카우팅 리포트는 류현진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가끔 공이 너무 낮게 들어가는 게 단점이지만 투구 폼은 완벽하다. 직구는 메이저리그 평균 수준이지만 체인지업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직구와 같은 팔 스윙에서 나오며 낙차가 커 타자가 한 번 내민 배트를 멈추기 어렵다. 올해는 위기 상황에서 체인지업이 떨어지는 각도가 더 크다. 커브는 왼손 타자 상대일 때 최고의 결정구다.”

8월8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1회초 투아웃 1루에서 류현진(왼쪽)이 이대호를 상대하고 있다. 이날 이대호는 0-3으로 지고 있던 8회 원아웃 1루에서 홈런을 때렸다. 연합

8월8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1회초 투아웃 1루에서 류현진(왼쪽)이 이대호를 상대하고 있다. 이날 이대호는 0-3으로 지고 있던 8회 원아웃 1루에서 홈런을 때렸다. 연합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괴력’

한화 구단은 공식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미 류현진이 해외 진출 자격을 얻는 2012년을 준비하고 있다. 2012년 시즌이 끝나면 류현진은 프리에이전트(FA)는 아니지만 구단 동의 아래 해외 구단에 입단할 수 있다. 국내 구단에서 일하는 한 일본인 코치는 “일본에선 요미우리 자이언츠 외에 데려갈 구단이 없다”고 말한다. 재정이 막강한 요미우리 외에는 류현진의 몸값을 감당할 구단이 없다는 얘기다. 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는 ‘빅 마켓 구단이 경쟁이 붙는다면’이라는 전제를 붙여 “뉴욕 양키스가 이가와 게이의 이적료로 한신 타이거스에 지급한 금액(2600만달러) 정도를 예상한다”고 밝혔다.

2011년이 지나면 FA가 되는 이대호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 “너무 이른 시점”이라고 말을 아낀다.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고 있는 최향남은 최근 이런 말을 전했다. “오 사다하루 소프트뱅크 회장이 ‘한국의 리(李)를 영입할 것’이라는 스카우트팀의 보고에 ‘이대호냐’라며 반색했다. 물론 이대호가 아니라 이범호였지만.” 김용달 전 LG 타격 코치는 “이대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이에 대해 “지금은 수비와 주루가 약해서 안 된다. 하지만 두세 달 훈련으로 신체 밸런스를 잡는다면 이대호는 월드 클래스의 선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규 기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