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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시, ‘지배’에서 ‘협치’로

‘현대에 의해 현대화된 현대시’ 울산, 포스코 빼곤 설명 안 되는 포항… 기업에 대한 지역사회 감시가 기업 혁신에도 기여
등록 2013-02-25 15:23 수정 2020-05-03 04:27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의 상징인 울산에서는 신사복에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사람이 환영을 받지 못한다. 땀이 배고 기름이 묻은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대우를 받는다.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울산은 인구 7만여 명에 전 인구의 70% 이상이 농수산업에 종사하던 장생포 고래잡이 정도로나 알려져 있던 변방의 소도읍이었다 …1990년 말 현재 울산의 인구는 68만2978명인데 이 중 ‘땀이 배고 기름이 묻은 작업복을 입은’ 현대 계열사 근로자가 7만5370명이다. 직계가족 및 부양가족을 합치면 30여만 명이 현대 가족이다. 여기에 각종 협력·납품·하청 등의 400여 업체를 포함하면 울산 인구의 절반 이상이 현대 가족인 셈이다. 한편 울산에 있는 13개 현대 계열사들은 1990년에 8조890억원의 생산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울산시의 1990년도 전체 공업 생산액의 65.9%에 해당한다. 이상과 같은 단면들은 울산이 현대에 의해 현대화된 ‘현대시’임을 입증한다.”(, 1992)

울산 현대미포조선소의 모습. 울산은 현대다. 하지만 균일하지는 않다. 현대 계열사와 정규직, 하청업체와 비정규직으로 분할된 도시다. 기업과 도시의 관계 설정이 다시 이뤄져야 한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울산 현대미포조선소의 모습. 울산은 현대다. 하지만 균일하지는 않다. 현대 계열사와 정규직, 하청업체와 비정규직으로 분할된 도시다. 기업과 도시의 관계 설정이 다시 이뤄져야 한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돈 많은 머슴’이라 불린 울산

20년이 지난 2013년에도, 울산은 현대다. 울산공업단지에 수많은 기업이 있지만 그래도 울산은 현대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1월27일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했다. 1968년 현대자동차 공장이 가동에 들어갔고, 1972년에는 현대미포조선소가 준공됐다.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이 각인시킨 이미지는 강하다. 노동문학과 노동운동 투쟁가에 숱하게 등장하는 ‘미포만’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역사도 울산과 현대를 겹쳐놓게 만들었다. 이제 프로축구단 ‘울산 현대’는 ‘수원 삼성’만큼이나 입에 붙었다. 현대는 1970년 울산공과대학을 설립했다. 현재의 울산대학이다. 2010년 기준 울산의 인구는 114만 명이다. ‘현대에 의해 현대화된 현대시’라는 자찬이 과장은 아닌 셈이다.

어떤 기업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도시의 성격이 변한다. 특정 기업의 영향력이 지배적 수준에 이르거나 그것을 넘어섰을 때 도시는 바뀐다. 기업과 단단히 얽힌 도시들이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울산과 경북 포항을 비교하는 의미있는 진단을 내놓은 바 있다. “포철의 포항과 현대의 울산은 사뭇 대조적이다. 현대자동차의 영향력이 압도적인 울산은 노동자 도시의 전형이다. 현대의 입장에서는 소비재 생산 기업으로서 배후도시 울산 등 주변 지역과의 경제적 연관성도 높았고 노동자 계급에 대한 지배와 통제도 상대적으로 절실했다. 그만큼 울산은 다분히 현재지향적이다. 울산은 지역총생산의 측면에서 전국 최고 수준이지만 내생적인 혁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도시다. 연구기관이나 연구·개발 인력 비율은 전국 꼴찌 수준이다. 울산을 흔히 ‘돈 많은 머슴’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외생적 기업도시에서 협력적 기업도시로: 포철과 포항의 관계를 중심으로’)

기업과의 관계에서 포항은 울산보다 훨씬 더 ‘단일화’된 도시다. 포항은 포스코(옛 포항제철)를 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포철이라는 기업 이름부터 도시 이름을 따서 지었다. 대기업 가운데 이런 예는 거의 없다. 1967년 포철 부지로 선정됐을 당시 포항은 작은 수산업 도시, 군사도시였다. 2013년 현재 포항 인구는 52만여 명에 달한다. 경상북도 1위다. 울산에서 현대의 ‘작업복’이 대접을 받듯 포항에서도 인구의 절반 정도가 포스코와 직접 연관돼 있다고 한다. 간접적으로 연관된 경제활동까지 따지면 포항 사람들 대부분이 ‘쇳물 열기’를 피하기 힘들다. ‘포항제철 돌핀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프로축구단 ‘포항 스틸러스’도 포스코가 운영한다. 1986년에는 포항공대를 세웠다.

포항의 빗장도시, 분단도시 논쟁

울산과 포항 모두 기존 도시에 특정 대기업이 들어서며 도시의 물리적 공간과 경제·사회·문화적 성격이 완전히 뒤바뀐 경우다. 삼성이 들어선 경기도 화성도 마찬가지다. 고용 창출, 세수 증대, 지역상권 활성화 같은 경제적 효과 말고도 도시 기반시설, 공공서비스, 사회간접자본이 정비된다.

이런 도시의 중심에는 언제나 기업이 있다. 울산의 경우 현대 계열사와 정규직 노동자가 ‘지배질서’의 중심을 차지한다. 하청 등을 맡은 협력업체와 비정규직 등이 ‘주변부’를 채운다. “울산은 1997년 광역시로 승격됐고 지금은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지역사회의 자체적인 역량보다는 울산에 공장을 건설한 대기업들에 의존한 지역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또한 급속한 속도로 진행된 외형적 성장에 따르는 온갖 사회·경제적 비용과 진통을 내포하고 있으며, 경제적 소득은 어느 대도시보다 높지만 시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 의료·교육·문화 분야는 상대적으로 매우 낙후되어 있다.”(유형근, ‘20세기 울산의 형성과 역사적 변천: 공업도시, 기업도시, 노동자도시’)

포항은 1990년대 초까지 ‘포항인 대 포철인’으로 구분돼 있었다고 한다. “포철이 입지하면서 만든 세계적 수준의 주거단지나 교육·연구 인프라가 막상 포항 일반 시민들의 일상생활과는 대개 무관했다는 점이다. 포항이 포철에 의해 기업도시로 변모했지만 기업과 도시 사이의 유기적 동화나 협력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포항과 포철 간에는 괴리감이나 적대감이 생겨났다. 여기서 파생된 것이 바로 빗장도시, 분단도시 논쟁이다. 형산강을 기준으로 포항이 포스코와 비포스코 지역으로 철저히 나뉘고, 포스코가 입지한 형산강 이남은 이른바 ‘강남’으로, 이북은 ‘강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전상인) 이런 현상은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며 개선되기 시작됐지만, “포스코 엘리트 세력의 강력한 영향력”이 불식되지는 않았다.

“도시는 기업의 수혜자다. 하지만 기업 역시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개입을 시스템적으로 보장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부정적 측면에 대한 지역사회의 감시는 기업의 자기 혁신에도 기여한다.” -조형제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미국·스웨덴 기업도시 모범 사례들

도요타자동차 본사와 공장이 들어서며 도시 이름을 아예 기업 이름으로 바꿔버린 일본 도요타시는 대표적인 기업도시다. 연구 중심 클러스터인 미국 랠리, 무선통신 클러스터를 형성한 스웨덴의 시스타사이언스시티도 기업도시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기업과 도시의 관계 설정은 어떠해야 할까. 거버넌스(협치)의 관점에서 지방 산업도시의 혁신을 연구한 조형제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한 기업의 흥망성쇠에 따라 도시 전체의 명운이 좌우되기도 한다. 도시는 기업의 수혜자다. 하지만 기업 역시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개입을 시스템적으로 보장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부정적 측면에 대한 지역사회의 감시는 기업의 자기 혁신에도 기여한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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