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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만을 위한 ‘재처리’



두 번의 준공일 연기로 안전성 논란 불붙은 경주 방폐장 공사… 연약 지반과 지하수 침수 우려에도 이미 방폐물 경주로
등록 2012-12-07 13:42 수정 2020-05-02 19:27

핵발전소는 대형 사고의 위험 탓에 낙후 지역에 건설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든 전기는 대부분 도시가 소비하는 차별적인 구조다. 60년이 넘은 핵발전 기술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 많은 ‘미완성 기술’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용후 핵연료 같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인체에 영향이 없도록 ‘무해화’하는 방법조차 모른 채, 그저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몇 초만 피폭돼도 치사량에 이르는 사용후 핵연료를 천연우라늄 광석의 방사능만큼 낮추는 데 약 10만 년이 걸린다. 이러한 사용후 핵연료의 국내 누적량은 2011년 말 이미 약 1만1천t을 넘어섰으며, 앞으로 매해 약 700t씩 늘어난다.
사용후 핵연료는 ‘재처리’하거나 ‘직접처분’할 수밖에 없다. ‘재처리’ 방식은 재처리 공장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우라늄을 뽑아내는 것이며, ‘직접처분’ 방식은 지하 300m 이상 깊은 최종 처분장에 영구 저장하는 것이다. 일본·영국·프랑스·중국은 상업용 핵발전소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고 있다. 세계 최다 핵발전소 보유국인 미국(104기)은 직접처분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일본도 최근 직접처분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재처리 방식은 경제성, 핵확산 저항성, 안전성 결여 모두에 근본적 약점이 있다. 재처리를 하더라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 대량 발생한다. 이 때문에 지하 깊이 최종 처분장을 만드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최종 처분장을 위해 10만 년 동안 변화가 적은 안정된 지층을 확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전세계적으로 스웨덴·핀란드 정도가 건설지를 확보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나머지 국가들은 최종 처분장 건설지를 확보하기 전까지 30~50년 동안 중간저장시설을 운영하며 시간벌이를 해야 하는 형편이다.

경북 경주 월성 핵발전소 내부에 있는 건식(공랭식) 저장시설의 모습. 붕괴열을 낮춰 수조에서 꺼낸 사용후 핵연료를 특수 용기에 넣어 지상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한겨레 자료

경북 경주 월성 핵발전소 내부에 있는 건식(공랭식) 저장시설의 모습. 붕괴열을 낮춰 수조에서 꺼낸 사용후 핵연료를 특수 용기에 넣어 지상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한겨레 자료

‘화장실 없는 아파트’ 상태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려면 냉각이 필요하다. 핵종들이 반감기를 맞아 붕괴하는 과정에서 높은 붕괴열을 내기 때문에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경우, 제어봉 삽입으로 핵분열은 멈췄지만 붕괴열 때문에 대참사가 벌어졌다. 막 꺼낸 사용후 핵연료는 발전소 안의 거대한 수조 속에 최소 1년 이상 ‘습식’ 방식으로 임시 저장한다. 수조 저장 최소 1년 뒤 붕괴열이 조금 낮아지면 특수용기에 사용후 핵연료를 넣어 지상에 저장하는 ‘건식’(공랭식) 방식도 있다. 국내에서는 월성 핵발전소가 부분적으로 이 방식을 쓴다. 중수로를 쓰는 월성 핵발전소는 경수로보다 사용후 핵연료의 양이 최소 4배 이상 늘어나기 때문이다. 건식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건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입증됐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사용후 핵연료 대부분을 핵발전소 안 수조에 임시 저장하고 있다. 핵발전소를 오랜 기간 가동해 수조가 포화상태가 돼 새로운 연료도 넣을 수 없는 이른바 ‘화장실 없는 아파트’ 상태에 가까워졌다. 최근 지식경제부가 “고리 핵발전소가 오는 2016년 수조의 포화상태에 가장 먼저 직면하게 돼, 2014년까지 ‘방사성폐기물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도 이런 사정 탓으로 보인다. 핵발전소 부지마다 또는 특정 지역에 집중적인 ‘건식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새로 들어선 국내 핵발전소 수조에 사용후 핵연료를 옮기거나 조밀저장 방식(Re-rack)을 도입한 점 등을 고려해보면, 실제로는 2024년 영광 핵발전소가 가장 먼저 포화상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훨씬 늘어날 것

정부가 이 정책을 꺼내든 이유는 “수조의 포화상태로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이 곤란하다”는 점 때문이다. 수조 속에 담아둔 사용후 핵연료를 건물 밖 건식저장시설로 옮겨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건식이 습식보다 안전한 보관법이지만, 오히려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과 확대를 불러일으킨다는 문제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초기 핵발전소들은 원자로 내 핵연료의 약 9배를 수조 수용 능력으로 삼았는데, 이는 핵발전소의 수명을 길어도 약 30년(핵연료 사용 기간 약 3년×9배=27년)으로 예상했다는 뜻이 된다.

‘한-미 원자력협정’에 대비하는 포석일 수도 있다. 2014년 시작하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교섭에서, 미국은 한국의 핵 확산을 우려해 국내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재처리 승인을 거부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국내의 ‘재처리 추진파’는 지하 수백m의 최종 처분장보다 접근하기 쉬운 지상에 건식의 중간저장시설을 만들어 언젠가 이뤄질 재처리에 미리 대비하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들은 재처리를 하면 최종 처분장의 규모를 줄일 수 있고 방사능 독성 기간을 단축할 뿐만 아니라 자원 재활용률도 높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탁상공론이다. 더구나 이 이론의 실현에 기여할 ‘소듐냉각고속로’는 실현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라는 이름을 앞세워 경북 지역에 핵발전소보다 훨씬 위험한 재처리 시설을 세우려 한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관리 정책은 임시방편인 중간저장시설 확보 여부를 둘러싼 논의에서 그치면 안 된다. 재처리냐 직접처분 방식이냐와 같이 좀더 근본적으로 국민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 국민투표를 통해 원자력 정책에 대한 국민의 뜻을 묻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이른바 ‘원자력 추진파’들이 해결책으로 제안한 방안이 언젠가 실현될 수 있다고 해도, 적어도 몇백 년 동안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인간의 생활환경에서 격리해야 하는 일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 중 발열량이 가장 높은 세슘·스트론튬의 반감기는 약 30년으로 인체에 무해한 수준으로 낮추려면 그 10배의 기간이 필요하다. 재처리 공장과 소듐냉각고속로를 폐쇄할 때 나오는 방사성폐기물까지 생각하면, 재처리 방식은 직접처분 방식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3분의 1 정도로 줄어들지만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은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동해안 활성단층 위험성 무시돼

게다가 ‘원자력 클러스터’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동해안 지역에는 울산·양산단층 등 사고 위험성을 높이는 활성단층이 있다는 사실도 무시되고 있다. 이처럼 안정된 심지층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핵발전소 건설을 강행하는 건 너무도 무책임한 행위다. 심지어 지하 수백m에 최종 처분장을 만들어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하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대전 본사에 만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지하처분연구시설(KURT)의 깊이는 지표에서 겨우 90m에 지나지 않는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경제학(원자력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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