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과 재활용이 대세라지만, 무작정 고쳐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자동차를 봐도 그렇다. 아무리 세밀하게 안전점검을 받아도 시간이 지나면 고장이 잦아지고, 어느 순간 유지 비용이 운행에 따른 편익을 넘어서게 된다. 탑승자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것은 물론이다. 이쯤 되면 폐차 말고는 대안이 없다. 건설 과정에 천문학적 금액이 투입되는 원자력발전소(원전)는 어떨까.
현대경제연구원 경고에도 연장 추진
11월1일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전의 드러나지 않는 비용’이란 보고서를 공개했다. 결론이 이랬다. “설계 수명이 끝난 오래된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원전 가동률을 높이는 것은 잠재적 위험 비용이 기대 편익을 상회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원전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는 즉각 반박 자료를 냈다. 해외 사례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사고 처리 비용을 따져도 원자력은 여전히 경제적인 에너지원이라는 내용이었다. 원자력의 경제성과 안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구사하던 전형적인 논리였다.
한국은 세계 5위의 원전 대국이다. 1978년 고리 1호기(부산 기장)를 시작으로 월성(경북 경주)과 영광(전남), 울진(경북)에서 차례로 원전 운전이 시작됐다. 지난 7월에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해 운전 중인 원전은 23기가 됐다. 이 가운데 운전 기간이 25년 이상인 원전은 8기(고리 1·2·3·4, 월성 1, 영광 1·2, 울진 1호기)다. 수명이 다하거나 안전상의 이유로 문을 닫은 전세계 145개 원전의 평균 운전 기간이 24년이었던 사실에 견주면, 말 그대로 ‘노후 원전’이다.
알려진 대로 고리 1호기는 2007년 설계수명이 만료됐으나 당국의 심사를 거쳐 10년간 수명을 연장해 운전 중이다. 지난 11월20일로 설계수명이 끝난 월성 1호기는 잠정적으로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수명 연장 승인을 위해 요구하는 안전기준을 월성 1호기가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성 1호기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고리 1호기와 마찬가지로 수명 연장을 강하게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한수원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7천억여원을 들여 월성 1호기의 압력관과 제어용 전산기 등을 교체해왔다. 수명 연장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선뜻 투입이 어려웠을 거액이다.
| |
설계수명을 채운 원전을 계속 운전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선 찬반이 첨예하게 갈린다. 원자력 업계와 정부 당국은 수명을 연장해도 안전에는 별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운영 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원전에 대해 안전성을 평가해 운전 계속 여부를 가리는 것은 선진국에서 먼저 시행하고 있는 검증된 제도”(한국원자력문화재단)라는 것이다. 실제 전세계에서 운전 중인 원전 436기(2012년 5월 기준) 가운데 67기(15.3%)가 심사를 거쳐 수명을 연장한 원전이다. 한마디로 ‘다른 선진국들이 다 하는 수명 연장을 원자력 강국인 한국에서 마다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원전의 수명 연장에 부정적이다. 원전이 노후화할수록 사고 위험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이 근거로 드는 것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다. 가장 먼저 폭발한 1호기가 수명이 연장된 원전이고 4기의 폭발 순서가 수명이 오래된 순서와 일치하는 것을 보면, 원전의 노후화와 사고 위험성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논리다.
2005년 고리 1호기의 금속시편 실험 결과도 노후 원전의 취약성 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원자로 압력용기의 안전도를 가늠하 려고 원자로 제작 당시 넣어두었던 금속 조각을 꺼내 파괴실험을 해 보니 금속 강도가 현저히 약화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다. 원자로 용기가 고압과 고열, 높은 방사능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강도가 약해져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게 환경단체들의 지적이다.
원전 당국의 태도는 완강하다. 금속시편 파괴실험만으로 원전 수 명과 사고 가능성을 연결짓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 고 뒤에도 미국·캐나다 등이 10기의 원전에 대해 수명 연장을 승인 한 사실도 강조한다. 하지만 이들은 후쿠시마 사고 뒤 러시아가 수명 연장 대신 신규 증설로 선회한 점, 17기의 원전을 보유한 독일이 오래 된 순서대로 7기를 폐기한 사실은 거론하지 않는다.
일각에선 정부와 원전업계가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옹호하는 이유를 다른 데서 찾는다.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을 폐쇄할 경우, 거 기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원자로 폐쇄, 사용후 핵연료 처 리비 등)이 드러나게 되고, 결국 원전이 결코 싼 에너지원이 아니라 는 인식이 확산되는 걸 우려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원전사고, 모두 통제 불가능
근거와 속사정이 무엇이든 정부와 원전업계가 추진하는 노후 원 전 수명 연장 계획은 시민들의 상식과 정서를 거스르는 것만은 분명 하다. 원전 1기는 통상 밸브만 3만 개, 용접 부위만 6만5천 곳에 이 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배관 연장은 170km, 전선 길이는 1700km다. 어디서 언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는 치명적인 설비다. 설계와 시공, 제어 과정이 아무리 정교하다 해도 모든 과정에서 돌발 변수와 인간의 실수를 통제할 수는 없다. 실 제 인류가 경험한 세 차례의 원전 재 앙은 단순노무자의 작동 오류(스리마 일)와 과학자의 실수(체르노빌), 자연 재해(후쿠시마) 때문에 일어났다. 체 르노빌·후쿠시마 사고로 원전 반경 30km 이내 지역은 출입통제·소개 조처가 내려졌다. 원전 반경 30km 안에 거주하는 사람이 한국은 370만 명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박종준 전 경호처장 다시 경찰 출석…김성훈 차장은 세번째 불응
경호처, ‘김건희 라인’ 지휘부로 체포 저지 나설 듯…“사병이냐” 내부 불만
중립인 척 최상목의 ‘여야 합의’…“특검도 수사도 하지 말잔 소리”
김민전에 “잠자는 백골공주” 비판 확산…본회의장서 또 쿨쿨
미 국가안보보좌관 “윤석열 계엄 선포는 충격적이며 잘못됐다”
연봉 지키려는 류희림, 직원과 대치…경찰 불러 4시간만에 ‘탈출’
“김건희가 박찬욱에게, 날 주인공으로 영화 한편 어때요 했다더라”
‘독감 대유행’ 예년보다 길어질 수도...개학 전후 ‘정점’ 가능성 [건강한겨레]
박종준 전 경호처장 긴급체포 없이 귀가…경찰, 구속영장 검토
25년 경호 공무원의 조언 “대통령 ‘개인’ 아닌 ‘공인’ 지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