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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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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학교,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기 힘들었다

지난 2월 보도한 ‘어느 전문계고 졸업생 32명’ 6개월 뒤 전수조사… 비정규 일자리에서 희망을 못 찾거나 대학 적응 힘겹지만, 공고 전공 살리는 소수도 있어
등록 2011-09-07 19:20 수정 2020-05-03 04:26

바스락거리던 작업복은 기름밥을 먹어 반질거렸다. 스패너를 든 손에도 기름때가 묻었다. 지난 2월 졸업식 전에 본 깡마른 얼굴에는 이제 제법 살이 올랐다. “그게 되겠어요?” 한 대기업이 고졸 신입사원을 7년 뒤 대졸 사원과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보도가 나간 날이었다. “대통령이 나서도 안 될걸요. 대학을 다녀야 한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니까요.” 자동차정비소는 밀린 차로 가득했다. 말을 제대로 붙일 틈도 없이 스패너를 고쳐쥐고 다시 차 아래로 몸을 낮췄다.

끝내 어려운 150만원 정규직의 꿈

상덕이는 아침 8시까지 나와서 오후 6시가 조금 넘는 시간까지 일해 월 110만원을 받는다. 수당을 합한 돈이다. 같은 반이던 정수가 “배달 일을 해도 150만원은 받는다”며 꼬드기고 있다. “넘어갈 것 같다”며 웃는다. “전망이 더 큰 문제예요. 종업원으로 계속 일할 수는 없잖아요.” 정비소를 차릴 만큼의 돈을 ‘언젠가’ 모을 수는 있는지, 그 전에 ‘잘리지 않고 계속’ 다닐 수 있는지, 상덕이는 어디서도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다. 일단 고민을 유보하고 군대에 가기로 했다. 다음달이면 정비소를 그만둔다. “어려서부터 기초생활수급자였는데….” 졸업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 석 달, 딱 500만원만 모아놓고 군대를 가려고 한다. 낮에는 중국집, 저녁에는 피자, 새벽에는 우유 배달을 할 계획이란다. 말만 들어도 숨이 차다. “지금보다는 훨씬 더 벌테니까요.” 상덕이가 군대에 가 있을 동안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식구들이 쓸, 충분치 않은 생활비다.

» 지난 2월 수도권 D공고의 졸업식 모습. 한때 대기업에서 '모셔가던' 전문계고의 대표적인 명문이었다. 한겨레 김경호

» 지난 2월 수도권 D공고의 졸업식 모습. 한때 대기업에서 '모셔가던' 전문계고의 대표적인 명문이었다. 한겨레 김경호

지난 2월 이 기획 연재 ‘경계의 아이들- 어느 전문계고 졸업생 32명의 폐기된 꿈’(849호 2011년 2월28일치)을 보도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지난 8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그 32명을 다시 만났다. 지난 2월 32명을 전수조사해 고등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자신의 장래희망이 어떻게 변했고, 취업과 진학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를 자세히 보도했다. 자동차 디자이너, 엔지니어 등을 꿈꾼 23명 가운데 8명이 꿈을 하향 조정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직업군인이나 공무원, 자동차보험설계사 등으로 꿈을 바꿨다. 5명이 취업했고, 21명이 대학에 진학(4년제 1명 포함)했다(그림 참조).

6개월 만에 이들을 다시 만난 것은 이 시기가 갖는 의미 때문이다. 8월은 전문계고 졸업자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 분기점이다. 전문계고처럼 특별전형으로 진학하거나 특별채용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는 8월 말까지가 새로운 출발을 도모할 수 있는 데드라인이다. 취업했다면 인턴을 마칠 시점이고, 진학했다면 2학기를 준비할 시점이다. 대학수시모집 공고도 난다. 그래서 방학임에도 졸업생들이 학교를 찾는다. 수도권 D공고 자동차과 32명도 학교를 찾았고, 갈 길을 정했다. 지난 6개월, 그들이 견뎌야했던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은 어떤 결정에 인생을 걸고 있을까. 6개월 전과 마찬가지로 모든 이름은 가명으로 표기했다.

먼저 취업을 선택한 5명을 전화 또는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취업한 5명 가운데 정규직으로 자리를 잡은 건 1명뿐이다. 나머지 4명은 각각 취업을 포기하거나 포기하기 직전이었다. 1990년대만 해도 현대자동차에서 어렵사리 ‘모셔가던’ D공고 자동차과가 2011년 내놓은 성적표는 참담했다. 상종가를 치던 1980년대의 화려한 시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 전문계고 졸업자 진로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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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가장 월급을 많이 주는 업체를 골라 가장 먼저 취업한 봉주도 상덕이처럼 직장을 그만둘 결심이 서 있었다. 그는 “12시간 맞교대에 10여m를 왕복하며 물건 나르는 일을 1년 동안 계속했다”며 “이제 군대에 다녀와서 다른 일을 찾겠다”고 말했다. 여자친구가 생겼지만 만날 시간이 없다. 정규직 자리에도 미련이 없다. “150만원을 버느라 연애도 못해요.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봉주의 목소리는 많이 지쳐 있었다.

정수와 태희는 여름이 되기 전 일을 그만뒀다. 둘은 무대설비업체에 취직했다. 케이블 방송 무대 음향도 맡고 패션쇼 무대 설치도 하며, 아이돌과 방송인도 눈앞에서 봤다. 앰프 출력에 따라 가슴도 두근거렸다. “돈이 없으니까 더는 못 버티겠더라고요. 군대에 다녀오면 전문대라도 갈 생각이에요.” 겉으로는 화려해 보였지만, 둘은 월수입 100만원이 빠듯한 비정규직일 뿐이었다. 계속 일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둘은 군대도 같이 갈 생각이다. 딱히 다른 수가 없다. 정수는 지금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태희는 무직 상태다.

정규직으로 당분간 회사 생활을 계속할 계획이 있는 유일한 졸업생은 보경이다. 기계설비업체에 취직해 이제 수습을 겨우 벗었다. 수습 때 90만원을 받다가 이제는 100만원 조금 넘게 받는다. D공고 자동차과 선배가 간부로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게 그나마 큰 힘이 된다. 자동차과에서 배운 기술을 바로 써먹을 수 있다는 것도 보람이다. “힘들기는 하지만….” 군대를 어떻게 해결할지,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규직이긴 하지만 하청업체인 이 기계조립업체 또한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 현실 안에 보경이가 있다. “자꾸 물어보지 마세요.” 보경이도 다른 4명처럼 전망을 묻는 걸 가장 힘들어했다. 취업한 보경, 정수, 태희, 봉주, 상덕. 이들이 말한 희망은 ‘150만원, 정규직, 평범한 삶’이었다. 누구도 이들에게 답을 주지 못했다.



어려운 미적분, 힘겨운 아르바이트

“영어 과외를 계속하고 있고, 수학도 학원에 다니고 있거든요. 그래도 저는 좀 낫지 않을까요.”(2월 인터뷰)

“영어는 도저히 못 따라가겠고. 수학도 제가 생각했던 것이랑 많이 다르네요. 교양수업도 그렇고. 숨이 차서….”(8월 인터뷰)

주영이의 책상에는 9월1일부터 시작할 2학기 대학 교재 가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옆에 이 ‘수학(상)’부터 ‘미적분’까지 차례로 놓여 있다. 눈길이 머물렀다.

“과외를 하려고요.”

“그래요? 과외 알바?”

“에이, 가르치는 게 아니라 배우려고요.”

4년제 대학에 진학한 주영이는 학교를 다니며 미적분 심화 과정을 배운 적이 없다. 1학기에 수학은 과락을 겨우 면했다. 이제 곧 공업수학을 배워야 하는데, 위기감이 몰려온다. 그래서 입시단과학원에서 고등학생들과 함께 을 배운다. 공고에 가서도 열심히만 하면 대학도 가고 취직도 한다는 말이 요즘처럼 의심스러울 때가 없다. 3년 내내 학교와 집밖에 모르는 모범생이었다. 대학은 왔는데, ‘그 아이들’을 상대하기 버겁다. 전문계고 출신은 과에서 다른 부류였다. 그나마 영어 수업은 따라갈 만한데, 체육특기자들이 주로 듣는 기초반이 개설돼 있어서다. “전문계 출신들끼리 듣는 거죠. 운동하는 아이들이랑 함께.” 과 친구들이 엄청나게 공부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영·수는 물론이고 물리·화학·생물 등 기초과목은 과락을 면하기가 버겁다. ‘인서울’ 편입도 생각했지만 그보다 버티는 게 우선이다. 주영이를 힘들게 하는 건 다른 데 있다. 4년 뒤 대학 졸업 이후 미래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아서다. 졸업한 선배들을 도서관에서 만나는 일은 흔하다. 자동차 전공인데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영어·수학도 따라가기 힘든데, 그걸 해도 결국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판단하기 힘들다.

» 전문계고 진학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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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이는 그나마 낫다. 성준이는 세 차례 넘게 통화한 끝에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통화가 안 된 이유는 간단했다. 강의 시간을 제외하면 알바하느라 정신이 없단다. 강의가 끝난 저녁부터 밤까지 배달 알바를 하고, 쪽잠을 잔 다음 아침 6시에 통학버스를 탄다. 강의를 듣기는 하지만 머리에 제대로 들어올 리 없다. 주영이처럼 성준이도 가장 힘든 건 수학이다. 그렇다고 주영이처럼 학원을 다닐 돈도 시간도 없다. 기초반이 없어 영어 수업도 포기 직전이다. 졸업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알바를 줄이면 될 듯하지만 속사정이 있어 그리 못한다. 5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 대출을 스스로 갚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군대로 도망가고 싶은데.” 빚을 가족에게 떠안길까봐 군대마저 자기 마음대로 못 간다. 성적은 바닥권이다. 가족한테 차마 학점 얘기를 못한다. 학사경고를 겨우 면한 점수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는 장학생이었다. “그래도 전문대보다는 4년제 졸업한 게 낫겠죠?”

전문대에 진학한 졸업생들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전문대는 16명이 재학 중이다. 우철이는 학사경고를 받았다. 회계 전공이다. 자동차와 전혀 무관하지만 우철이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6개월에 대해 얘기하기 꺼렸다. “내가 왜 그런 질문에 답해야 하느냐”고 따지듯 되물었다. “학고(학사경고) 빼놓고 다 행복하다”고 쏴붙였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의 충격이 컸다. 고등학생 때는 영어 과목은 문제와 답을 미리 알려주고 시험을 봤다. 대학에서는 텍스트를 읽고 답을 고르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우철이도 다른 졸업생처럼 주말에는 편의점 알바를 한다. 방학 생활을 물었더니 고등학교 때 했던 일을 계속했다고 답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학비를 스스로 벌려고 마트에서 배달을 했다.

성배는 지난 4월 보호시설에서 나왔다. 아버지를 찾았지만 아버지는 이미 가정이 있었다. 나이가 차 시설에서 더 살 방법은 없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했던 식당 알바는 계속하고 있다. “가능하면 군대에 눌러앉았으면 좋겠는데.” 대학을 나와도 막막하기만 하다. 전문대 졸이라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건설회사에 들어가는 일이 거의 어렵다는 것, 게다가 자신처럼 등록금을 벌며 학교를 다니면 학점 관리가 안 돼 도저히 다른 동기들과 경쟁할 수 없음을 중간고사를 치를 때가 돼서야 알았다.

고민이 유예되는 군대가 희망이다

이들의 힘겨움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지난 2월 졸업 때 21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숫자는 그대로이지만 사람과 내용이 바뀌었다. 당시 진학하지 않은 상태로 무직이거나 알바를 하고 있던 6명 가운데 4명이 대학에 진학했고, 원래 대학 진학자에 포함됐던 4명이 군입대를 선택했는데, 이들 모두가 학업중단자로 추정된다. 대학 중도 이탈자 가운데 전문계고 출신에 많다는 점은 이미 학술 연구를 통해서도 드러나 있다.

학업을 중단하지 않은 21명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등록금이 문제다. 애초에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에 다닐 수 있는 졸업생은 주영이뿐이다. 졸업 때 20명 가운데 10명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 해당됐고, 나머지 11명도 고등학교 재학 시절 내내 급식 지원을 받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들은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쉽게 답을 하지 않았다. “왜 물어보느냐”며 할퀴듯 따지거나 “알 바 아니다”라고 짐짓 냉소적 제스처로 밀쳐내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이들이 졸업하기 전 담임교사의 도움을 얻어 이들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21명 가운데 등록금을 내려고 대출을 받은 사람(2학기 기준)이 7명(37%)이었다. 이 가운데 4명은 1학기와 2학기 모두 대출을 받았다. 또 알바로 직접 벌어서 낸 경우는 6명(32%)이다. 다시 말해 10명 중 7명이 대출을 받거나 알바로 등록금을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 덕에 대출이나 알바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5명(24%)뿐이었다.

등록금을 벌려고 악전고투하는 13명 모두 2학기를 마친 뒤 또는 2학기 도중에 군대를 갈 예정이다. 이들에게 군대는 고마운 곳처럼 보인다. “고민도 없고, 쉴 수 있고.” 알바로 두 학기 등록금을 다 마련한 석영이는 군대 예찬론을 펼친다. 직업군인이 되려는 병관이와 연기만 군대에 희망을 거는 건 아니다. 대출받은 등록금에 더해 보호시설에서 나와 혼자 삶을 꾸려가야 하는 성배나 석영이와 마찬가지로 두 학기 모두 대출을 받은 인규·태일·영남이도 군대 얘기가 싫지 않은 기색이다. 20대에게 군대가 피할 수 없는, 또는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통과제의 같은 것이라는 일반의 의식을 배반했다. 바깥 세상에서 전문계를 다녔든 일반계를 다녔든 상관없이 훈련을 함께 받고, 차별 없이 제때 밥이 나오고, 기술이 있으면 더 인정받으니, 이들에게 군대는 ‘고마운 곳’이 된다.

이미 군입대를 한 6명(4명은 곧 입대)의 사정은 어떨까. 직업군인을 희망해 진학·취업을 포기한 2명을 제외하고 4명은 모두 직장·대학 중도 이탈자였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09년 발행한 연구보고서 ‘대학생의 학업 중단 유형 분류 및 관련 요인 분석’을 보면 “경제적 상황이나 성적 등 부정적인 이유로 휴학한 집단은 전문계고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힌다. D공고의 이탈자들은 실제로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차상위계층으로 분류된 생계곤란자였다. 2010년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전문계고 출신의 학업중단율(3.8%·2009년 기준)은 일반계 출신(1.1%)의 3배가 넘는다. 그런데 이런 수치는 현실에서 더 도드라진다. D공고의 경우 대학 진학자의 16%(4명)가 학업을 중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D공고는 취업률(16%)이나 진학률(78%)을 놓고 보면 전문계고의 평균 모델에 가깝다. 다만 전문계고에 대한 연구가 엄밀히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한 직업교육 관련 연구자는 “(연구가 부족한 것은) 전문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고 싶어 왔어도 취업은 어려워

희망은 없을까. 32명을 가르쳤던 전 담임교사는 “불완전하나마” 자동차보상과로 간 7명과 원용이를 희망의 근거로 꼽았다. 7명은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것’만 빼면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 “하고 싶어서 왔으니까요.” 7명 중 1명인 홍철이는 1학기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나머지 6명도 성적이 꽤 좋은 편이다. 홍철이와 함께 진학한 인규도 성적이 좋다. 손해액을 산정하는 일을 할 계획을 세웠다. “(D공고에서) 과수석을 했는데도 자동차회사에 못 가고 보험을 하는 게 제 잘못은 아니잖아요. 기왕 하는 거 잘해보려고요.”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취업이 보장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보험업계의 수요가 확인된 바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과에서 보험 과목은 자동차 정비·제작 기술을 배우는 과 개설 취지와 조금은 어긋난다는 점 또한 문제다.

원용이와 어렵사리 연락이 닿았다. 원용이는 도장·도색 기술을 배우겠다며 수도권을 마다하고 지역 전문대학을 택해 내려갔다. “우리 학교는 영어·수학보다는 도장 기술이 우선이니까요.” 원용이는 이번 학기에 장학금을 받았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여자친구도 생겼다. “결국은 못 가게 된 현대차보다 더 좋은 외국계로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이 또한 취업이 보장돼 있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종만과 재영, 두 사람은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둘은 전문대로 진학했다. 두 사람은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으로 생계곤란자로 분류돼 있었다. 우연인지 한부모가정이라는 점도 닮았다. 종만이는 배우가, 재영이는 항공정비사가 꿈이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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