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철은 키가 커서 좋겠네. 남자친구도 많을 테고….”
“앱솔루틀리 낫!”(절대 아니에요!)
분위기를 풀려고 던진 첫 질문에 표정이 굳어졌다. 도대체 왜?
“저보다 큰 남학생이 별로 없다니까요. 운동도 좋지만 적당히 컸으면 좋겠어요.”
미국의 17살 레이철
공부는 공부고, 운동은 운동
그의 키는 190cm에 육박한다. 지금도 자란단다. “너무 큰 키”로 인한 단점이 많다는 게 고민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반인 그는 이런 신체조건 덕분에 진학 고민을 크게 덜었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 배구팀에서 센터를 도맡아 주전으로 뛰었고, 장학금을 받는 체육특기생으로 대학 입학이 결정됐다.
레이철이 사는 애선스는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인구 10만 명의 소도시다. 조지아주립대를 끼고 있는 교육도시지만, 전형적인 미국 남부의 시골이다.
“운동하느라 공부는 좀 부족하겠구나?”
“네버!(전혀!) 공부는 공부고 운동은 운동이죠.”
실수를 만회하려 건넨 질문도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배구를 좋아하지만 공부를 게을리하진 않았어요. 다른 아이들처럼 대학 학점을 먼저 이수할 여유는 없었지만, 일반 과목 성적은 크게 처지지 않아요.”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성적이 받쳐줘야 하고 그래야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며 자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고교 생활은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교차한다. “재능을 키워주신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났어요. 하지만 선생님과 친구들을 존중하지 않는 아이들의 태도는 너무 싫었어요.”
레이철은 촉망받는 배구 선수지만 평생 ‘배구 인생’을 살 생각은 없다. 대학에서는 역사를 전공할 계획이다. 역사 교사가 되는 게 꿈이다. 여건이 허락하면 박사과정을 밟아 대학 강단에 서고 싶단다. “대학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저를 발견하고 만들어가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얻으려 노력할 거예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니까 좋으니, 싫으니?”
“성숙해지는 게 꼭 나이로 결정되는 건 아니잖아요?”
조금 무식하게 물었다가 또 한 방 먹었다. 책임져야 할 일은 훨씬 많아졌는데, 그만큼의 결정권은 커지지 않는 애매한 시기인 것 같다는 거다.
사생활을 물어봤다. 아버지는 수의사, 어머니는 대학 수의학과 교직원. 운동 이외에 영화 감상과 그림 그리기를 즐기며, 좋아하는 스타는 가수 레이디 가가다.
“음악도 좋지만 지명도를 통해 좋은 일에 나서는 태도가 더 좋아요. 일본 지진해일 피해 기금 마련에도 가장 먼저 나서더라고요.” 모범생 같은 답변의 연속이지만, 가식을 찾긴 힘들다.
“한국 드라마·아이돌 그룹 좋아요”
“한국에 대해서는 좀 아니?”
“잘 알아요. 그리고 좋아해요. 한국 드라마!”
뜻밖의 발견이다. 까지 근래의 인기 방송작들을 줄줄이 꿴다. 친구들과 한국 드라마를 자주 본단다. 소녀시대와 2PM, 빅뱅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의 근황도 물어본다.
“어떻게? 왜?”
“인터넷으로 봐요. 스토리가 탄탄하고 연기력이 좋아요.”
“대사를 못 알아듣잖아?”
“드라마를 말로 이해하나요? 분위기와 느낌으로 보지요.”
보수적인 미국 남부의 청소년들에게도 한류의 감수성이 통하다니….
레이철은 끝까지 사진 취재를 거부했다. “생얼 사진은 절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대신 ‘뽀사시’한 졸업 앨범용 사진이 담긴 디지털 파일을 건네줬다. 그래, 17살은 17살이야.
애틀랜타(미국)=김회승 기자 한겨레 경제부문 honesty@hani.co.kr
| |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소년범 의혹’ 조진웅 은퇴 선언…“지난 과오에 마땅한 책임”

‘갑질’ 의혹 박나래 입건…전 매니저 “상해, 대리처방 심부름”

트럼프가 이겼다…대미 3500억불 투자 손해, 자동차관세 절감 효과 2배

‘심근경색’ 김수용 “저승 갔었다…술, 담배, ○○○ 이젠 안녕”

진보-보수 ‘적대적 공존’ 시즌2 막으려면 햇볕정치가 필요하다

민주, 통일교 후원금 의혹에 “국힘과 달리 조직적 동원 없어…불법 아냐”

‘갑질 의혹’ 박나래, 전 매니저들 맞고소

쿠팡 손배소 하루새 14명→3천명…“1인당 30만원” 간다

“쿠팡 유출로 카드 발급”…고객센터 메시지 가짜, 클릭 금지!

‘현지누나’ 파문에 국힘 “국정문란 사건…김 직무배제 해야”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resize/test/child/2025/1205/53_17648924633017_17648924515568_2025120450403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