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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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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의 진짜 이름을 갈쳐주마

‘명의 보정가’ 앤디와 마이크의 ‘예스맨’ 스토리, 한국에도 명의 보정할 곳이 많은 것 같은데…
등록 2010-03-17 16:33 수정 2020-05-02 04:26

우리는 ‘예스맨’이다. 예스, 예스, 오, 예스, 예스맨! 지구를 구하는 사람들 끝에는 ‘맨’이 붙잖나.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플래시맨, 울트라맨, 44사이즈 다이어트 시대의 영웅이랄 수 있는 쫄라맨까지. 우리는 지구를 바로잡는다. 일종의 ‘지구를 구하는 행위’다. 어느 별에서 왔느냐고? 손에서 칼이라도 나오냐고? 출동할 때 무슨 색 팬티를 입느냐고? 홧스업, 맨~ 꼬치꼬치 묻는 당신, 당신도 우리 같은 일 하는 사람인가?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명의 보정’이라고 하는데….

예스맨이 어떤 천재지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서바이버볼’을 입고 해변을 거닐고 있다. 테러 방지에 안달한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다큐멘터리 <예스맨 프로젝트>의 한 장면.

예스맨이 어떤 천재지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서바이버볼’을 입고 해변을 거닐고 있다. 테러 방지에 안달한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다큐멘터리 <예스맨 프로젝트>의 한 장면.

수중에 들어온 ‘GWBush.com’

그전에 우리를 더 소개하겠다. 슈퍼맨이 크립톤에서 태어나 스몰빌에서 자라고, 스파이더맨이 박물관에서 거미에 물려 초능력을 갖는 것처럼 우리의 과거도 유서 깊다. 1993년 대학생이던 마이크는 ‘바비인형해방기구’을 조직했다. 지아이조와 바비의 음성장치를 바꿔 달아 지아이조가 아양을 떨고 바비가 못 말리는 마초가 되게 한 것이다. 음성장치를 바꾼 인형을 상점에 반품하면서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문의를 하라고 전화번호를 하나 붙였다. 방송사 전화번호를. 당연히 “한번 죽도로 맞아볼래”라고 말하는 바비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전화를 해댔고 방송사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우리는 이 일로 꽤 유명해졌다. 시사 프로그램 이 다루고 에서도 우리 에피소드를 사용했다. 이때 마이크에게 뭔가 색다른 유전자가 삽입되었다. 스파이더맨에게 친 번개와 비슷하달까. 3년 뒤 앤디의 심심한 인생도 바뀌었다. 게임회사의 프로그래머였던 앤디가 좀 심심했거든. 그래서 만들고 있던 게임의 중간중간에 서로 뽀뽀하거나 플레이어에게 뽀뽀를 퍼붓는 반쯤 벗은 남자애들을 삽입했다. 이 ‘뽀뽀부대’를 내장한 게임은 8만 개가 시장에 풀렸고, 게임회사는 노발대발 앤디를 잘랐다. 이것 역시 등에서 기사를 다뤘으니, 유명세에서는 마이크 반열 정도에 오른 거다.

일자리를 잃은 것보다 언론을 통해 유명해지는 것이 쉽다는 깨달음이 더 충격적이었던 앤디는 ‘알티엠아크’(Ⓡ™ark)를 조직했다. ‘주식회사를 사보타주하는’ 사이트다.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지원금’을 받았다고 뻥치는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며 마이크를 규합하기에 이른다. 우리 ‘예스맨’의 탄생이다. 그리고 1999년 수중에 ‘GWBush.com’ 도메인이 들어오면서 우리가 하는 ‘명의 보정’도 탄생한다.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 후보의 공식 웹사이트는 ‘GeorgeWBush.com’이었다. 공식 사이트에는 ‘생태주지사’니 ‘교육 대통령’이니 전혀 조지 부시와 어울리지 않는 소개의 글이 들어 있었다. 조지 부시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일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GWBush.com’ 사이트에는 ‘조지 부시가 재임한 기간에 텍사스주는 미국에서 가장 오염된 지역이 되었다’ 등 ‘진짜’ 사실을 나열했다. 조지 부시 진영은 이 사이트의 존재를 알고는 “소송을 하겠다”며 위협하기도 했다.

‘명의 도용’이란 딴사람의 이름을 빌려 돈을 흥청망청 쓰거나 불이익이 동반되는 계약 등을 맺는 행위다. ‘명의 보정’이란 우리 모두를 대표한답시고 이런저런 못된 짓을 하고 다니는 개인이나 단체의 정체를 밝혀주는 일이다. 기업들이 겉으로는 인류를 구하느니 하면서 속으로 감추는 저임금, 반환경적 활동, 비인간적인 대우 등도 까발린다.

무사히 강연 성공… 아, 참담한 실패

이들의 행적은 책(<예스맨 프로젝트>, 빨간머리 펴냄)과 다큐멘터리 두 편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다큐멘터리의 오프닝(왼쪽). 해골에 금칠을 한 ‘금순이’는 위험관리 프로그램 세미나에서 발표한 것으로, 위험관리를 통해 해골 바가지도 금바가지로 만드는 보험회사를 조롱하는 데 이용되었다(가운데). 앤디는 2004년 12월3일 영국 〈BBC〉생방송에 출연해 다우의 인도 보팔 참사 책임을 인정하는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다(오른쪽).

이들의 행적은 책(<예스맨 프로젝트>, 빨간머리 펴냄)과 다큐멘터리 두 편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다큐멘터리의 오프닝(왼쪽). 해골에 금칠을 한 ‘금순이’는 위험관리 프로그램 세미나에서 발표한 것으로, 위험관리를 통해 해골 바가지도 금바가지로 만드는 보험회사를 조롱하는 데 이용되었다(가운데). 앤디는 2004년 12월3일 영국 〈BBC〉생방송에 출연해 다우의 인도 보팔 참사 책임을 인정하는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다(오른쪽).

그다음으로 ‘GATT.org’ 도메인이 우리의 수중에 들어왔다. 세계무역기구(WTO·공식 사이트는 WTO.org)는 원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을 포함한 세 가지 협정을 관리하기 위해 탄생했다. ‘GATT.org’는 WTO 공식 사이트로 오인될 만하다. 이곳에는 WTO가 하는 진짜 일을 적어놓았다. ‘다국적기업의 자유’를 위해 약한 나라를 자유무역으로 끌어들이는 WTO니 당연히 명의 보정이 필요했다.

참 ‘유명해진다’라는 게 능동형이 아님을 잊어선 안 된다. 관심을 갖고 ‘GATT.org’를 보면 쉽게 가짜 사이트라는 걸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한테 각종 단체에서 문의 전자우편을 보내고, 와서 연설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마다할 리 없다. 앤디는 2000년 10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국제 서비스 회의에 앤드리아스 비클바우어 WTO 사무총장 대리인, 2001년 7월 〈CNBC〉의 ‘유럽 비즈니스 뉴스’에 그랜위스 훌라트베리 WTO 대변인, 2001년 8월 핀란드 탐페레 공과대학에서 열린 ‘섬유산업의 미래’ 회의에 행크 하디 운루 WTO 관계자가 되어 참석했다.

실망스럽게도 우리의 강연은 실패했다. ‘유권자의 투표권을 주식처럼 거래하는 시스템’을 제안했는데도 잘츠부르크 회의 참석자들은 참신하다고 했고, WTO 체제를 다윈의 적자생존에 비유했음에도 〈CNBC〉 뉴스팀은 참석해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급기야 섬유산업의 미래 회의에서는 노동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경영자 여가복’을 선보였는데도 반응은 시답잖았다(그냥 열광했다). 줄을 당기면 음경 부분이 커다랗게 부풀어오르는 옷이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든다는 사람이 딱 한 명 나타났다. “공정하지 못하다. 남자는 경영자, 여자는 노동자란 느낌이라서”라는 여자분. 그러니까, 사기꾼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세상이 사기꾼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 아닌가. 그러면 좀 급진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WTO.org가 ‘GATT.org’의 존재를 알고 경고 메시지도 올려놓은 판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2002년 5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회계사협회 오찬 강연에 WTO 개발경제연구부의 킨니스렁 스프라트가 참석해 ‘무역규제기구’(RTO)의 탄생을 알렸다. WTO 해체를 발표한 것이다. 직설적으로 WTO가 소수 부자 나라에 빌붙어 저개발국가를 홀대해왔으며 WTO의 최종 결정자가 거대기업이라는 것을 밝혔다. 새로 탄생할 RTO는 인류 모두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근본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열렬한 반응이 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회계사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WTO의 부당함에 대해 활발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기자들에게도 보도자료를 뿌렸다. 기쁜 일은 널리 알려야 하지 않나. 예스맨은 ‘명의 보정’을 통해 당연히 있어야 하는 ‘희망’이 생겨나는 것을 보았다.

보팔 참사 보상을 약속한 대기업

영국 〈BBC〉는 2004년 12월3일 생방송에 미국 거대기업 다우의 대변인 주드 피니스테라를 불러냈다. 피니스테라 대변인은 “다우는 보팔 참사의 책임을 인정합니다. 120억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12만 환자를 포함한 모든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오염된 현장을 즉각 복구할 것입니다”라고 발표했다. 보팔 참사는 1984년 유니언카바이드사의 인도 보팔 공장에서 가스가 누출되어 최소 5천 명이 사망한 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다. 다우는 유니언카바이드를 인수한 뒤 이 회사가 일으킨 산업재해에 대해 보상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미국 텍사스에서 석면 피해 관련 소송을 낸 14명에게만이었다. 피니스테라 대변인을 포함한 우리는 가짜 다우 사이트를 만들고 기다렸다. 낚시질은 고난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낚시꾼이 왜 철학을 하는지 아실 수 있을 거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콤했다. 〈BBC〉는 우리의 다우 사이트에 보팔 참사 20주년을 맞아 입장을 밝히는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회개한 다우’에 관한 뉴스는 로 타전돼 1시간 동안 머릿기사에 걸려 있었다.

‘거짓 희망’일 뿐인가. 그걸 알기 위해 우리는 인도 보팔까지 찾아갔다. 주민들은 뉴스를 듣고는 기뻐서 울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도 슬프진 않다고 말했다. 한 인도 기자는 “그런 꿈같은 일이 사실일 거라고는 어차피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나마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2006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해 1년 뒤, 우리가 재건을 책임진 회사 HUD의 대변인으로서 ‘연안도시 재건 회의’에 참석해 한 발표 때도 비슷했다. 뉴올리언스주는 있는 것도 다 쓸어버리고 새로운 도시를 짓겠다고 했다. 원거주자들은 그 휘황찬란한 곳으로 입성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내놓은 연안도시 재건 회의의 발표 내용은 이랬다. “HUD에서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지난주만 해도 임대주택이 범죄와 실업의 온상이라 생각했지만 우리는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숙자로 전락한 주민도 있습니다. 이런 실수가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 오늘부터 저소득 임대주택 사업을 재개합니다. 습지대 복구에는 엑손과 셸이 막대한 자금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오늘 열리는 임대주택 테이프 커팅식에도 꼭 참석해주십시오.” 실지로 커팅식이 열렸다. 주민들은 춤을 추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민들은 말했다. “이런 거짓말이 아니면 우리가 잃은 것을 눈여겨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거대한 사기 세상에 거대한 사기가 필요해

여기까지 읽어도 우린 그냥 사기꾼일 뿐이라고? 그렇긴 하지. 거대한 사기 같은 세상에는 거대한 사기가 필요한 거니까. 한국에도 ‘명의 보정’해야 할 게 많은 것 같은데. ‘전국경제인연합’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모인 듯한데, 실상은 한국 최고 부자만 모인 곳이지. 그들이 내는 성명서를 보면 ‘세금’에는 꼭 ‘폭탄’을 결합시키는 언어감각을 지니고 있어. 성명서에는 꼭 자물쇠 9개 채워 보호하는 ‘사유재산제’ 이야기가 들어가. 자신들의 금고 얘기라는 거지. 영화진흥위원회는 독립영화 상영관 운영권을 빼앗아서는 초짜 영화인들에게 ‘공모제’라는 ‘낙점’ 형식으로 운영권을 넘기는 곳인데, 고릿적 신라 진흥왕 때에나 듣던 얘기라 ‘영화진흥’이란 겐가.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영화가 성공하니까 그런 거 만들자고 나서니 ‘대작영화진흥위원회’인 듯도 해. 인터넷실명제는 익명이기에 자유로운 인터넷에 ‘실명’을 붙여주겠다는 ‘어불성설’ 제도. 그리고 또…. 음, 그런데, 이 글은 ‘명의 도용’ 글인 것 같은데… 누가 자꾸 자기가 예스맨이래? ‘명의 보정’이 침술원 광고의 ‘명의(名醫) 보정’은 아니잖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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