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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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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 엿같은 소리”

‘예스맨’ 마이크 버나노 인터뷰…
“시장체제란 거대한 다단계 사기극, 누군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누군 안 된다? 지독한 농담”
등록 2010-03-18 05:45 수정 2020-05-02 19:26

‘명의보정가’라는 제법 그럴싸한 ‘첨단 직종’을 만들어냈다. 무대는 전세계다. 권력과 기득권을 거침없이 조롱하고, 세상을 향해 좌충우돌 유쾌발랄한 ‘×침’을 날리는 ‘예스맨’의 앤디 비클바움(사진 오른쪽)과 마이크 버나노(사진 왼쪽). 그들은 거인의 나라를 주유하고 돌아온 ‘걸리버’를 닮아 있다.
‘근데 니들 왜 이런 일을 하는 거니, 대체?’ 궁금했다. 은 예스맨과 전자우편 인터뷰를 시도했다. “앤디는 여행 중이어서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예스맨을 대표해 마이크가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답변을 보내왔다.

앤디 비클바움(사진 오른쪽)과 마이크 버나노(사진 왼쪽). REUTERS/ BRENDAN MCDERMID

앤디 비클바움(사진 오른쪽)과 마이크 버나노(사진 왼쪽). REUTERS/ BRENDAN MCDERMID

-짤막하게 소개 부탁한다.

=우린 그냥 즐거운 활동가들의 모임이다. 권력을 남용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찾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골탕을 먹이는 게 일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접근 방식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우리가 목표로 삼은 개인이나 단체인 양 행세를 한다. 유머와 풍자는 필수다.

-세상만사에 좋고 싫음이 분명한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게 있다면.

=케이크와 코알라를 닮은 웜뱃을 좋아한다. 케이크는 맛있고, 웜뱃은 귀엽지. 우린, 그런 거 좋아한다. 이윤에 눈먼 사람들이 케이크의 품질을 떨어뜨리고, 웜뱃을 멸종 위기로 내몰고 있다. 화나는 일이지. 이윤 동기에 따라 삶의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문명인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지 않나. ‘카지노 자본주의’로는 미래가 없다. 미래 세대를 위해 웜뱃을 살리고, 케이크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쭈~욱!

-‘명의 보정’이란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

=예스맨의 활동 방식과 목표는, 말하자면 레모네이드만큼이나 고색창연한 게다. 권력을 겨냥해 웃으며 가운뎃손가락을 살며시 들어 보이는 것은 아리스토파네스부터 셰익스피어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써먹던 수법 아니냐. 남의 행세를 하는 것 역시 면면히 내려오는 코미디 수법 중 하나다. 우리의 활동 방식은 시대를 지나면서 발전해온 측면이 있다.

-활동을 하다 보면, 의도와 달리 실패하기도 할 텐데.

=실패라기보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건 오히려 우리가 상상력을 총동원해 만들어낸 ‘최악의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청중이 별다른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였다. 이따위 말을 늘어놓아도 어떻게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우리가 기대어 사는 문명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태에 있는지 여실히 느끼게 됐다. 그게 절망적이었다.

-예스맨 활동과 관련해 체포되거나 고소를 당한 일은 없나.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단 한 차례도 체포되거나 처벌당한 일이 없다. 최근 명예훼손 혐의로 미 상공회의소한테 고소를 당하기는 했지만, 상공회의소 쪽 주장이 워낙 말이 안 되다보니 실제 소송이 벌어지면 손쉽게 이길 거라 믿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오랜 세월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공세적이고 비인간적인 행태를 보여온 ‘불순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악법도 법’이라는 옛말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마디로 ‘엿 같은 소리’지. 바로 그런 생각이 나치즘의 성공을 만들어낸 거다. 유대인을 다 모아서 학살해버리라는 게 법이라면, 그따위 법을 어기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 부패를 부추기고 위험천만한 체제를 확대·강화하는 데 동원되는 수많은 법령이 존재한다. 이런 법을 그대로 따라선 안 된다. 착취와 파괴적 체제를 강제하기 위한 법은 따를 필요가 없다. 어떤 법은 따라야 하고, 어떤 법은 어겨도 되는지를 판단하는 잣대가 뭐냐고? 평범하고 단순한 윤리·도덕의식이면 족하지 않을까.

-지난해 ‘미네르바’란 블로거가 한국 경제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구속까지 됐다. 혐의는 ‘인터넷에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거였는데.

=완전 웃기고들 계신다. 허위 사실 유포자를 즉각 석방하라, 석방하라, 석방하라! 이른바 ‘시장체제’란 게 결국 거대한 다단계 사기극일 뿐이다. 누군 허위 사실을 유포할 자격이 있고, 누군 안 된다? 지독한 농담이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아예 지구촌의 모든 블로거와 세계 각국 정상들과 거대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남태평양의 한적한 섬에 모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회의도 하고 토론도 하고, 한 1~2년 그렇게 지내다 돌아오게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활동 초기부터 언론의 힘을 잘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언론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듯하면서도 절묘하게 활용해왔는데.

=우린 언론을 경멸하거나 무시한 바 없다, 절대로! 오히려 정반대다. 우린 언론인을 지극히 존경한다. 다만 이윤 동기에 휘둘려 대부분의 언론인이 시간과 예산 제한에 허덕이며 쓰레기 같은 기사를 양산해내고, 언론 전체가 상업적 홍보 전단쯤으로 전락하는 게 싫을 뿐이다. 언론인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언론인의 고혈을 빨아먹는 늙은 뱀파이어 같은 거대 기업을 증오할 뿐이다.

좋은 민주주의를 위해선 좋은 언론이 절실하다. 좋은 언론을 위해 더 아낌없는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명의 보정’에 열심인 건 다 존경하는 기자 선생님들이 좀더 재밌는 기사를 쓰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생각해봐라. 훌륭한 기자들은 지구촌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중요한 주제에 대해 기사를 쓰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대체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편집장이나 데스크가 무지른다. 우리가 흥미로운 ‘명의 보정’ 작업을 하면, 관련 기사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인류에게 중요한 주제를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흐흐.

-초기엔 세계무역기구(WTO)에 집중해 활동한 것으로 안다. 몇 년 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WTO의 ‘자발적 해체’를 발표한 이후엔 활동 목표를 바꾼 것 같은데.

=그렇다. WTO 각료회의를 여러 차례 무산시키는 등 반세계화 운동이 지속적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해서, 요즘엔 좀더 ‘큰 그림’을 그려보려 목하 고민 중이다. 이를테면 인류는 왜 무모한 시장을 운전석에 앉혀놓고 벼랑 끝으로 내달리며 불안에 떨고 있을까, 뭐 이런 거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인류가 현재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기후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대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과 기후변화에 둔감한 캐나다 정부를 겨냥한 ‘명의 보정’에 나서기도 했다.

-처음엔 인터넷 자체가 떴고, 그 다음엔 블로그가 각광을 받았다. 이젠 트위터가 대세다. 지난해 이란 대선 때 세계인이 트위터의 위력을 실감하지 않았나. 뉴미디어가 지구적 차원의 연대·저항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새로운 기술은 더 많은 가능성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모든 새 기술은 혜택이 있는 반면, 결정적인 약점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인쇄술도 한때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지 않았나. 하지만 유럽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은 성서였다. 그거 좋은 생각이었을까, 나쁜 생각이었을까?

트위터는 좀 성가신 면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거리시위를 조직하거나 실시간으로 급박하게 전개되는 상황을 발 빠르게 알리는 데는 강점을 지녔다. 반면 우리한테 아무런 필요도 없는 쓰레기 같은 물건을 팔기 위해 영업에 동원되기도 하지. 어쨌든 우린 인터넷을 사랑하고,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정도면 대답으로 족할 듯싶은데….

-솔직히 말해 가장 궁금한 건, 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거다. 언제까지 ‘명의 보정’을 계속해나갈 것인지도 궁금하고.

=별거 없다. 뭔가 해야 되니까 하는 거다! 삶을 되돌아볼 나이가 됐을 때,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고 자책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그때 우리가 뭔가를 하긴 했구나’ 하고 추억하고 싶을 뿐이다. 물론 우리가 좀더 나이가 들었을 무렵엔, 지구촌 차원에서 혁명이 일어나 우리가 지금 보는 체제가 이성적이고 지속 가능한 체제로 대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언젠가 꽤 괜찮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한국에도 당신들처럼 컴퓨터 지식에 밝고, 아예 일자리가 없거나 고용 형태가 ‘유연’해 시간이 많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젊은이가 많다.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예스맨 활동이 무슨 로켓 과학처럼 복잡한 건 아니다. 자유롭게 우리와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우리가 개발한 방식을 여러분이 원하는 일에 활용해도 좋겠다. 관심 있는 분을 위해 따로 연습용 웹사이트(challenge.theyesmen.org)도 마련해뒀다. 둘러보면 좀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게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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