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무엇으로 환생할까.
7월10일로 불가에서 죽은 이의 환생이 결정되는 기간이라는 사후 49일이 흘렀다. 지난 5월23일 새벽 떠밀리듯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으로 어떻게 돌아올까?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현대사 전공)의 표현처럼 “600만 명의 상주”가 눈물을 흘렸던 애도의 시간이 끝나고 세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거센 조문의 물결은 뜨거운 촛불의 저항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렇게 거리는 비었고, 선거는 멀었고, 세상은 바쁘다. 역시 시간은 힘이 세고, 슬픔은 시간을 이기지 못하는 것일까. 노무현 정부의 국가홍보 구호처럼 여기는 “다이내믹 코리아!”. 그렇게 빠른 ‘코리안타임’ 속에서 7월1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를 맞는다. 그렇게 49일은 슬픔을 잊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아니면 슬픔은 49일의 숙성을 거치며 깊어진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간이었다. 살아 있는 대통령은 죽은 대통령을 자꾸만 생각나게 만들었다. 슬픔이 채 가시기 전에 분향소는 짓밟혔고, 촛불의 비명은 여전하다. 조그만 비판에도 호통으로 대답하고, 거리의 자유를 옥죄는 현직 대통령은 마치 근엄한 아버지 같았다. 맨손으로 시작해서 성공을 일군 자수성가형 아버지가 나처럼 하라고 근엄한 얼굴로 호통을 칠수록 떠나간 어머니 같은 전직 대통령이 그리웠다. 자꾸만 소통하자고 잔소리를 하던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래서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이명박 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성과 부성의 대립”이라고 요약한다. 징계와 엄벌을 일삼는 아버지의 법 앞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어머니의 부재가 뒤늦게 뼈저렸다. 그렇게 지난 49일은, 옆에 있을 때에 몰랐던 어머니의 자리를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오늘의 대통령은 시장에서 어묵을 씹으며 장삼이사의 손을 잡았지만, 그것은 어머니를 따라하는 제스처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추모의 광장에서 다짐은 굳었다. “평생 꼭 투표하겠습니다.” “평생 한나라당을 찍지 않겠습니다.” ‘대한 늬우스’식으로 말하면 ‘못 살겠다. 갈아보자’ 민심은 흉흉하지만, 아직 눈물 젖은 투표용지로 다짐이 확인되진 않았다. 가파르게 치솟았던 야당의 지지율도 과거로 돌아간 정도는 아니지만 서서히 하향 곡선을 그었다. 오히려 크나큰 슬픔 뒤에 밀려오는 허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대규모 운동이 대안적 가능성을 만나지 못하면 오히려 보수화로 귀결되는 역설을 우려한다”고 말한다. 그토록 뜨거웠던 일본의 68운동이 대안적 흐름을 만들지 못해 결국 일본 사회 전체의 보수화로 귀결된 역사가 남의 일만은 아니란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는 한마디, “그의 서거가 한국 정치를 바꾸는 독립변수가 아닐 수 있다”. 아직까지 애도의 물결이 행동의 흐름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렇게 굳은 다짐은 허튼 맹세가 될 것인가.
한국 정치 바꾸는 독립변수 아닐 수도그렇게 민심은 갈 곳을 잃었다. 김종배 평론가는 그들을 “정치 유목민”이라 부른다.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 후보 지지에서 노무현 지지로 옮겨왔고, 2007년 대선에선 이명박 후보 지지로 돌아섰던 유권자를 말한다. 유동층 혹은 중도로 불리는 이들은 한국 정치의 향배를 좌우로 가르는 캐스팅보트 구실을 해왔다. 추모의 열기가 한반도를 휩쓸었던 이유엔 이들의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가 있었다. 이들은 ‘노터치’를 원한다. 김종배 평론가는 “이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철저하게 개인적 차원에서 극복하면서 신자유주의 논리를 체득한 사람들”이라며 “생활상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은 높은 반면에 경제적 이해에도 민감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들은 이명박 후보의 경제 살리기에 끌렸다. 이들의 슬로건은 ‘표현의 자유도 노터치’ ‘경제적 자유도 노터치’. 시민의 일상을 옥죄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반대해 추모의 물결에 가담한 이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야누스의 얼굴을 지닌 이들을 놓치면 정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대안적 흐름이 나타나지 않으면 지난 보궐선거처럼 내년 지방 선거에서도 패자는 분명한데 승자는 누구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과연 애도의 정서는 정치적 태도로 바뀔까. 김종배 평론가는 “애도의 행렬은 참여정부에 대한 회고도, 친노 세력에 대한 지지도 아니고 노무현 개인에 대한 추모였다”고 평가한다. 심지어 박상훈 대표는 “노무현 같은 정치인마저 죽게 만드는 한국 정치에 대한 총체적 환멸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한다. 추모 정서가 이명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반감을 넘어 보수 세력에 대한 반대까지 나아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슬픔을 안겨준 주체에 대한 원망은 깊지만, 눈물을 닦아줄 손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직후에 오는 2010년 지방선거 전망도 장밋빛은 아니다. 김종배 평론가는 “민심이 MB로 돌아가진 않는다. 그렇다고 민주당으로 회귀하지도 않는다. 진보 정당도 여전히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고 평가한다. 진보개혁 세력이 일상의 고통에서 흘러나온 대중의 눈물을 위무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진보 지향 대중들의 무력감이 나타날 가능성도 농후하다.
추모의 광장에서 재발견한 정치대안은 슬픔을 딛고 일어선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이제 사람들은 울음을 그치고 말하기 시작했다. 지나간 시간을 반추할 거리가 생긴 것이다. 먼저 지식인들이 말문을 튼다.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등 다양한 진보적 연구단체와 학자들이 모여서 7월7일 서울 조계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심포지엄을 연다. ‘노무현의 시대정신과 그 과제’라는 제목의 이 심포지엄은 논의의 물꼬를 트는 작업이다. 진보와 개혁을 아우르는 연구자들은 노무현의 시대정신을 논하고,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따지며, 노무현의 시대가 남긴 과제를 새겨본다. 이렇게 노무현 개인에 대한 애도를 넘어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엄정한 평가 작업이 시작됐다. 이러한 흐름은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백가쟁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추모 심포지엄을 기획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서거 100일이 되는 즈음엔 대북정책, 복지정책 등 분야별로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따져볼 자리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시민은 추모의 광장에서 정치를 재발견했고,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가혹한 비판과 뜨거운 추모를 넘어 대안을 모색하는 기운이 생긴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의 새벽은 밝은 것일까.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는 “서거를 통해서 연합의 정치가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마저 위협하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 진보와 개혁이 연대하는 기운이 일고 있다. 서거의 여파에 대해 정상호 교수는 “이제 뉴민주당 플랜을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며 “민주당의 우향우를 막았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정치학)는 “정서적 고양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며 “실질적 연합을 만드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라고 지적했다.
정서적 고양은 신기루처럼 사라질까연대는 차이를 전제한다. 그래서 진보와 개혁의 차이를 통한 연대는 쉽지 않다. 무엇을 중심으로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구체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비정규직,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 진보와 개혁을 가르는 ‘한강’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첩첩산중이다. 여기에 추모 정국에서 진보 세력이 보인 태도에 대한 비판도 더해진다. 박상훈 대표는 “진보적 인사들이 뜨거운 애도와 정치적 원칙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태도를 보이면서 문제를 보는 깊이가 있다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었어야 했다”며 “인간적 애도에 정치적 원칙을 굴복시켜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이렇게 애도와 비판의 분리를 통해 진보 개혁은 경쟁도 품격 있게 한다는 평가를 받을 기회를 놓쳤단 것이다.
‘다시, 바람이 분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의 제목이다. 노무현 바람의 기운이 가시기 전에 6월의 거리엔 역풍도 불었다. 추모 물결에 위기를 느낀 일부 보수는 분향소를 기습하는 행동에 나섰다. 그리고 정부는 시국선언을 하는 교사들에게 대규모 징계로 엄벌한다. 반북·반공의 철 지난 구호를 외치는 이들의 모습에서 여전히 한반도를 휘감은 분단의 그림자가 새삼스럽다. 여전히 1970~80년대 냉전시대를 사는 이들의 모습에서 한국 사회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뼈저리게 확인한다. 그렇게 분단의 유령은 2009년 6월 한반도에 살아 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진보개혁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원망을 토로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오히려 보수파의 단결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며 “이제는 어떻게 사회를 바꿀지 대안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 진영이 이명박을 넘어서 진보의 미래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중심으로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그러나 끝내 눈물의 역사는 새로운 시대를 부른다.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일찍이 허수경 시인은 그렇게 노래했다. 한홍구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심포지엄 발표 글에서 가까이 이한열부터 멀리는 고종까지 언급하며 “한국의 근현대사는 죽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역사였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는 “역사는 대중이 흘리는 눈물만큼 변했다”며 “이제 다시 시작될 ‘살아남은 자의 슬픔’ 시즌2는 광주에서 시작된 시즌1에 비해 훨씬 더 대중적으로 폭넓게 진행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49일의 속울음은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눈물은 어떻게 단련될 것인가. 박상훈 대표는 “엥겔스는 후기 저작인 서문에 ‘페이퍼 스톤’(종이돌)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가난한 이들이 힘을 조직하는 강력한 방법은 돌과 바리케이드가 아니라 투표라는 뜻”이라고 전했다. 과연 눈물은 돌보다 강하고 바리케이드보다 강고한 ‘종이돌’로 돌아올 것인가. 49재는 산 자들이 죽은 이의 영혼이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길 바라며 기도하는 기간이다. 당신의 기도가 그가 돌아올 ‘사람 사는 세상’을 정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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