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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최후의 카드

등록 2008-04-11 00:00 수정 2020-05-03 04:25

경영권 불법 승계·비자금 조성·불법 로비 의혹… 대응책은 무엇인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삼성이 카드를 만지작만지작 하고 있다. 조준웅 삼성특별검사팀 수사 결과에 대한 대응 카드다. 1월10일 출범한 뒤 80여 일을 달려온 특검팀의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가의 안주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에 이어 총수인 이건희 회장도 4월4일 특검팀에 소환됐다. 4월23일이면 삼성 특검은 종지부를 찍는다.

삼성은 어떤 카드를 내놓을까? 온전히 특검팀의 수사 결과 수위에 달려 있다. 특검이 서슬 퍼런 칼날을 내놓느냐, 아니면 솜방망이를 내놓느냐에 따라 삼성은 다른 카드를 내밀 공산이 크다. 물론 삼성의 공식 입장은 “현재로선 특검 결과와 관련한 대응책은 없다. 특검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밝히겠다”이다.

특검이 밝혀야 할 의혹은 큰 틀에서 세 가지다. 경영권 불법 승계, 비자금 조성, 불법 로비가 그것이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이 회장 개입 밝혀지면 일선 후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 회장이 단 16억원의 증여세만 낸 채,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삼성그룹 전체 지배권을 갖게 된 과정의 불법성 규명이다. 이재용 →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를 ‘누가’ 기획했느냐를 따지는 것이기도 하다.

관건은 물론 이 회장의 관여 여부. 이학수 부회장은 특검에서 “구조조정본부 차원의 기획안은 있었다”까지만 언급했다. “단, 회장님은 모른다”라며 선을 그었다.

특검이 이 회장 개입 여부를 밝혀내느냐에 따라 삼성의 대응 수위는 달라질 것이다. 만약 특검에서 이 회장이 지시를 했거나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경우, 이 회장은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세금를 포탈했다는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대해 삼성은 법리적인 공방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공소시효와 관련해 과세가 가능한지, 과세 규모는 얼마인지를 놓고 지루한 법정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과 이 부회장의 경영 일선 후퇴 카드도 거론된다.

특검이 이 회장의 개입 사실을 밝혀내지 못할 경우엔 일단 삼성은 ‘면죄부’를 받게 된다. 2006년 6월 법학교수 43명이 삼성에버랜드 사건으로 고발장을 낸 지 7년10개월 만이다. 하지만 시민단체 쪽에선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답지 않은 ‘꼼수’로 경영권을 승계했다는 도덕적인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삼성이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대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시민단체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순환출자 방식을 대신한 지주회사 전환이라는 카드도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지주회사, 삼성생명금융보험지주회사, 삼성물산지주회사, 호텔신라지주회사 등 4개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격 전환을 점치기도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다. 지주회사로 전격 전환하기에는 이 회장 일가의 재산이 너무 적다. 이들 4개 지주회사를 고려할 경우 각 지주회사마다 이 회장 일가의 지분이 최소한 30%는 넘어야 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전·현직 임원들이 갖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까지 합쳐서 이 회장 일가의 재산은 14조원가량(생명주식을 주당 70만원으로 가정할 때)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나 삼성SDS 등 계열사의 시가총액을 합하면 100조원이 넘는다. 지주회사 체제에서 안정적인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는 30조원이 필요하다. 천문학적 돈이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자금 조성
차명계좌, 회삿돈이면 엄청난 타격

삼성생명 차명주식과 삼성증권 차명계좌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게 관건이다. 삼성의 전·현직 임원 12명이 갖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 328만4800주(16.2%)는 주당 70만원으로 환산하면 총액이 2조3천억원에 이른다. 삼성증권에 있는 1300여 개의 주식 차명계좌에도 주식과 현금 등 비자금이 들어가 있다. 특검은 이 돈이 이 회장 개인돈인지 회삿돈인지를 밝혀야 한다.

만약 특검에서 비자금이 삼성 계열사에서 가져온 회삿돈으로 결론 난다면, 이 회장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받게 된다. 탈법적인 방법으로 비자금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고가 미술품을 구입하고 정·관계에 불법 로비를 펼쳤기 때문이다. 이 때는 배임 및 횡령 혐의도 적용할 수 있다.

이 회장 개인돈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특검 초기까지만 해도 특검에 소환된 임원들은 자신의 돈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이 부회장은 특검에서 “이병철 선대 회장한테 물려받은 재산”이라고 진술했다. 회삿돈을 유용하거나 횡령한 게 아니라 이 회장의 돈을 차명으로 관리했다는 주장이다. 이 회장은 비자금에 대해선 대책을 내놓을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세금을 내느냐, 또는 비자금의 공익재단 기증과 같은 옛 방식을 쓰느냐에 따라 여론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증권 주식 차명계좌에 대한 세금 문제는 어떻게 될까? 이 차명계좌는 대부분 삼성전자 주식이다. 삼성 쪽은 이 주식도 이 회장 개인 소유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증여세는 피해갈 수 있다. 하지만 세법상 3% 이상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 주식가액이 100억원 이상인 대주주는 주식매매를 통한 양도차익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이 회장 소유라면 여러 차례 거래가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정도의 양도차익이 발생했을 것이다.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고 조세포탈죄도 적용된다.

김영희 변호사는 “2006년 이종기 삼성화재 전 회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에 증여한 삼성생명 지분 4.68%(93만5천여 주)도 원래 이건희 회장 소유였던 것으로 밝혀지면, 차명에서 다시 삼성생명공익재단이란 또 다른 차명이 설정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증여세 부과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며 “증여세는 증여 당시의 시가를 기준으로 부과한다”고 말했다.

불법 로비
앞으로 조직적 로비는 어려울 듯

조직적으로 정·관계에 금품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다. ‘돈을 안 받으면 호텔 할인권이나 와인을 주라’는 ‘회장 지시사항’ 문건도 나왔다. 이에 대해 삼성은 “문건은 검토사항일 뿐 실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김용철 변호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건넸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진술을 했다. 로비 대상 명단에는 임채진 검찰총장, 김성호 국정원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불법 로비를 한 것으로 나온다면, 이는 뇌물공여에 해당된다. 회삿돈이었다면 횡령·배임이고 정치인에게 갔을 경우는 정치자금법 위반이다. 로비 사실이 드러나면 이명박 정부에까지 파장이 미친다. 정기적 뇌물공여 대상이던 사람이 새 정부의 핵심 사정라인을 맡거나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 됐기 때문이다.

특검이 불법 로비가 없었다는 면죄부를 줄 수 경우에도 그동안 삼성이 정·관계에 조직적으로 펼쳤던 로비와 인맥관리가 앞으로 상당 부분 제약을 받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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