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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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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다른 세상을 만든다”

등록 2003-10-16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size="2" color="663300">멕시코 반세계화 운동 연구자·기록자가 말하는 ‘사파티시타 투쟁’에 대한 오해와 진실 </font>

1994년 1월1일 멕시코 치아파스주에서 빈곤과 소외에 시달리던 마야제국의 후예 원주민 농민들이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투쟁을 선언한 지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권력이 아닌 정의와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요구하고, 폭력이 아닌 인터넷을 무기로 전 세계 진보주의자들과 연대해 싸우는 이들은 반세계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이들은 ‘20세기 마지막 혁명가들’ ‘포스트모던 시대 첫 무장투쟁집단’이라 불리며, 검은 스키마스크를 쓰고 정글로부터 세계로 시적인 언어로 가득한 투쟁 선언문을 써보내는 이들의 지도자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세계 진보주의자들의 ‘스타’다. 그러나 정부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현실을 보면서 이들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사파티스타 투쟁은 멕시코 사회에 무엇이었고, 이들의 운동이 한국과 전 세계에 보여준 것은 무엇인지를 다시 살펴보기 위해 멕시코 학자와 운동가, 한국의 학자가 지난 10월10일 저녁 서울 충무로 활력연구소의 ‘골방’에 모여 앉았다.

10~12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개최한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온 기예르모 미셸 멕시코 메트로폴리탄 개방대학 교수는 사파티스타 운동을 10년 동안 연구해온 멕시코의 대표적인 사회학자다. 크리스티앙 칼로니코 역시 같은 대학의 영화·비디오학과 교수이며, 멕시코의 독립 다큐제작 프로덕션인 ‘마르카 디아블로’와 비정부기구(NGO) 단체인 ‘침묵에 맞서는 소리’ 대표로 사파티스타의 활동을 처음부터 기록해왔다. 송기도 전북대 정치학과 교수는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대에서 중남미 정치를 전공한 학자이며 등의 책을 썼고, 전북 민언련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민영상제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

송기도 교수(이하 존칭 생략)= 등에서 사파티스타 운동을 꾸준히 소개했지만 많은 한국 사람들은 아직 머나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파티스타들의 요구와 그들의 상황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반정부 게릴라라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미셸= 멕시코인들도 처음에는 사파티스타를 반정부 폭동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사파티스타는 자신들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실천하는 전문가’이며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임을 밝혀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원주민들에 의해, 원주민들을 위한 정부를 세우고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 1996년 2월 정부는 원주민 자치정부와 문화, 권리를 보장하는 산 안드레스 협약을 맺고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 2001년 2월에 원주민 사령관들과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평화행진 끝에 멕시코시티에 도착했을 때 멕시코의 많은 사람들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희망을 이루려는 그들의 노력에 매우 감동받았다. 이때 국회연설에서 여성 사령관 에스테르는 “나는 여자이고 원주민이고 빈민이기에 3중으로 배제당해왔고 그래서 우리들의 대표”라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정부가 협약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스스로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사파티스타가 치아파스에서 ‘좋은 정부 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치를 선포한 것은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송기도= 나무총을 든 가난한 농민들이 최신 헬기와 탱크로 무장한 정부군에 맞서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국인들은 어떻게 힘 없는 마야 원주민 농민들이 정부에 반대해서 게릴라가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한다.

칼로니코= 스페인의 식민지배 시대부터 500년 동안 억압과 착취를 겪은 그들은 자신들이 멕시코에서 가장 잊혀진 존재이며 정치적으로 어떤 가능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유일한 탈출구가 무장봉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의 전쟁은 생존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사실 멕시코 사람들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사파티스타들이 부패한 정부에 대항해서 일어났으므로 정부를 전복시키려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들은 완전히 산산조각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파티스타들은 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하려는 것이 아니라 멕시코 사람들과 연대해서 현실을 바꾸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권력을 장악하고 혁명군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실패”라고 했다. 말 그대로 ‘무장봉기’는 첫 12일 동안만 계속됐고 그들은 이후 10년 동안 거의 총을 쏘지 않고 그들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들의 무기는 인터넷이었고 그들의 생각과 현실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수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단 12일 동안의 무장봉기가 있었을 뿐

미셸= 사파티스타들은 스스로 ‘희망에 미친 작은 군대’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그들은 그 지역 아이들, 여자들까지 모여 스스로 만든 ‘작은’ 군대다. 첼탈, 초칠, 토호라발 등 이 지역 6개 부족 인구를 다 합해도 50만명밖에 안 되고 허술한 무기라도 든 군대는 수천명 정도다.

송기도= 그들이 권력을 쟁취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칼로니코 인간의 존엄성을 찾기 위한 혁명이다. 사회주의 혁명도 아니며 모든 사람들이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마르코스는 세디요 대통령에게 “여러분이 정의하고 보호하는 세계에 우리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는 대통령 당신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차이”라고 말했다.

송기도= 사파티스타 봉기 전과 뒤 치아파스 원주민들의 생활은 어떻게 변했나.

칼로니코= ‘현실적으로는’ 나아진 것이 없다. 봉기 전에도 이들은 공용어인 스페인어를 거의 말하지 못할 정도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에 걸려도 약을 사지 못해 아이들이 죽어갔다. 지금은 정부군이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치아파스에 560곳의 정부군 주둔지를 만들어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샘물은 오염되고 경작도 할 수 없으며 정부는 원주민 사회를 분열시켜 자기들끼리 싸우게 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기예르모 세디요 정권은 산 안드레스 협약을 맺어놓고도 계속 민병대 등을 지원하며 원주민 사회 내부에서 분열과 충돌을 일으키는 저강도 전쟁을 계속했다. 1997년 12월22일에는 정부군이 26명의 여자와 15명의 아이, 4명의 남자 등 45명의 원주민을 학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현재의 비센테 폭스 정부도 (대통령의) 얼굴과 이름만 바뀌었을 뿐 저강도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송기도= 아무래도 부사령관이자 대변인 마르코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체 게바라와 자주 비교되며 20세기 마지막 낭만적 혁명가로 평가받는 마르코스는 누구이며 그가 ‘성공’한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마르코스는 부사령관, 사령관은 원주민

미셸= 마르코스는 매우 리더십이 강하고 복잡하며 다른 사람의 고통에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다. 원주민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조직한 능력도 뛰어나다. 그가 사파티스타의 생각과 활동을 시나 편지, 에세이 등의 형식으로 써보낸 문학적 은유와 마법적 상상력이 넘치는 글들, 정확한 현실 인식, 카리스마, 세계와 연대하는 능력은 확실히 투쟁이 지금까지 성공해온 비결이다. 마르코스는 1983년에 원주민들을 근대화시키고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맞게 변화시키고자 치아파스에 갔지만 원주민들이 지난 500년 동안 싸우고 살아온 역사를 듣고 자기가 그들로부터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원주민들을 제치고 나서지 않으며 항상 원주민들이 전면에 나서도록 했다. 2001년 사파티스타 대표가 의회에서 연설하기로 했을 때 의원들은 모두 마르코스가 올 줄 알았지만 원주민 여성 사령관 에스테르가 연설을 했다. 그는 “마르코스는 사령관이 아니고 부사령관이다. 원주민들이 사령관이다”라고 밝혔다.

송기도= 최근에는 정부와의 투쟁이 지지부진하고, 인터넷 홈페이지(www.chiapas.gob.mx)에도 2~3년 전과는 달리 새로운 글들이 많이 올라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사파티스타 투쟁이 약간의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이는데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가.

칼로니코= 사파티스타들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달팽이처럼 껍질 속에 숨어 때를 기다려왔다. 멕시코는 1억명 인구 중 겨우 100만명만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회이고 누가 나서기 전에는 침묵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지만 1994년 봉기가 시작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고 연대했던 것처럼 사파티스타가 다시 활동을 한다면 침묵하는 다수도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특히 정부는 며칠 안에 사파티스타 지역을 모두 점령해버릴 수 있는 무력을 가지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이목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고 사파티스타들과 국제사회의 연대가 끊기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전 세계 농민, 노동자, 반세계화 운동가들의 꾸준한 관심과 연대가 중요하다.

송기도= 당신들은 사파티스타가 아닌데 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그들과 관련된 활동을 해왔나.

미셸= 가난한 원주민들의 외침에 감동을 받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답은 엘리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원주민들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하고 배우는 데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사파티스타 조직원이 아니지만 사파티스타다. 사파티스타가 평화행진을 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수많은 멕시코 사람들에서 볼 수 있듯 사파티스타는 멕시코 시민사회를 바꿔놓았다.

송기도= 칸쿤에서 최근에 세계무역기구(WTO) 협상과 세계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시위 도중 한국인 농민운동가가 자결했다. 사파티스타 운동도 이런 흐름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원주민의 감동적 외침은 오래 지속된다

미셸= 나무총을 든 가난한 사파티스타 농민 병사들이 자신들을 희생해 세상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처럼 ‘세뇨르 리’(이경해)의 희생은 새로운 농민운동, 반세계화 운동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의 죽음은 한알의 밀알이 떨어져 수많은 열매를 맺듯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사파티스타와 한국의 농민운동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의, 정의를 위한 운동이다. 멕시코 원주민들은 이경해씨의 죽음을 알고 멕시코 농민들의 풍습에 따라 꽃잎을 뿌리며 그의 장례식을 치렀다. 그들은 “우리는 모두 세뇨르 리”라고 외쳤는데 멕시코 사람들이 사파티스타 운동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마르코스”라고 말한 것과 비슷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연대다. 거기에는 다른 방식의 삶과 죽음이 있다.

칼로니코= 사파티스타 운동도 반세계화 운동도 새로운 세상과 정치를 원한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배우며 서로를 지원해왔다. 사파티스타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선 대표적 반세계화 운동이며 미국 등의 농산물 앞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농민들의 운동이다. 그들은 앞으로도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

정리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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