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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싸움이 우리에게 도착했다… 산재·직업병 알린 원진레이온에서 녹색병원까지

한겨레21-전태일의료센터 ‘일, 낸다 캠페인’ 나의 1, 당신의 하루⑥
산재·직업병 알린 원진레이온의 유산,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
등록 2026-09-24 22:50수정 2026-09-30 09:19
문송면씨 산업재해 사망 30주기인 2018년 7월1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문송면·원진 30주기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추모제에서 한 참가자가 헌화를 마친 뒤 문씨의 영정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문송면씨 산업재해 사망 30주기인 2018년 7월1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문송면·원진 30주기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추모제에서 한 참가자가 헌화를 마친 뒤 문씨의 영정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전태일의료센터가 동료 시민의 아픈 하루를 함께 지탱하기 위해 ‘일, 낸다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몸과 마음을 다친 노동자의 ‘하루치 병원비’(2만1천원)를 매달 선결제하는 기부 연대입니다. 내가 낸 ‘1’(일부/하루/노동)로 누군가의 회복을 돕고, 그가 다시 우리 일상을 든든하게 지켜줍니다.

한겨레21은 ‘나의 1, 당신의 하루’를 매달 다른 필진의 시선을 담은 연속 기고로 전합니다. 일 내는 동료가 되시려면 글 맨 아래 정보무늬를 찍어주세요. _편집자

 

1988년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던 열일곱 살 문송면이 세상을 떠났다. 1987년 겨울 충남 서산에서 서울로 와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두통과 불면, 발작과 통증이 찾아왔다.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고향에서 송아지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뒤에야, 한 의사가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을 해왔던 건가요?”

이 질문으로 문송면의 ‘병’과 그가 해온 ‘일’이 연결됐다. 그는 온도계 공장에서 수은을 다루고 시너로 부품을 닦던 일을 알렸고, 수은 및 유기용제 중독 진단을 받았다. 가족들은 진단서를 들고 회사와 노동부를 찾아다녔다. 피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산재 인정 한 달여 뒤인 1988년 7월2일, 문송면은 눈을 감았다.

문송면의 죽음은 다른 노동자들을 움직였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우리도 일하다 병들었다”며 나섰다. 공장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 가운데 팔다리가 마비되고, 말이 어눌해지고,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정신 이상을 겪는 이들이 있었다. 그동안 ‘중풍’으로 여겼던 병이 이황화탄소 중독에서 비롯된 직업병일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긴 싸움이 시작됐다.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이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안전보건 지원단체들, 노동운동가와 학생, 지식인, 보건의료단체와 시민사회가 힘을 보탰고, 의사와 산업안전 전문가들이 현장으로 들어갔다. 언론은 공장 안에서 벌어진 일을 세상에 알렸다. 아픈 노동자들만의 문제로 치부되던 일이 점점 사회의 문제가 되어갔다.

 

아픈 노동자들, 병원을 만들다

 

산재가 인정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누가 직업병 환자인지를 두고 다시 싸워야 했다. ‘비유해부서’에서 일했던 김봉환씨가 산재요양 신청조차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자 137일 동안 장례투쟁이 이어졌다. 공장 폐쇄가 결정된 뒤에는 더 큰 문제가 남았다. 공장이 사라져도 이미 병든 사람들의 삶은 계속된다. 시간이 많이 지나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도 있었다. 치료와 보상, 검진과 재활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원진 노동자들은 그 질문까지 붙들어야 했다.

1988년부터 1997년까지 꼬박 10년. 그 싸움 끝에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 만들어지고 직업병 전문병원과 연구소를 세울 기금이 마련됐다. 1999년 경기도 구리시에 원진녹색병원이 문을 열었고, 2003년에는 서울시 중랑구에 종합병원 녹색병원이 세워졌다.

나는 녹색병원의 역사를 들여다볼 때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먼저 떠난 이의 죽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사람들이 다음 사람을 구했다. 왜 죽었는지 묻고, 잘못된 것을 고치라 요구하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와 기준을 바꿨다. 그렇게 만들어진 병원이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을 넘어 지역주민들의 일상을 돌보는 종합병원이 됐다. 그리고 산재·직업병 환자를 치료하고 노동환경을 연구한다. 인권침해 피해자, 이주노동자와 난민, 장기투쟁 현장의 노동자처럼 의료의 손길이 더 필요하지만 쉽사리 닿기 힘든 이들에게 다가간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30여 년 전 만들어낸 병원이 그들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오늘을 돌보고 있다.

녹색병원은 지금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일하다 아프면 제때 제대로 치료받고, 무엇이 사람을 아프게 했는지 노동환경을 바꾸고, 치료를 마친 뒤 환자가 자신의 삶과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을 준비 중이다. 여기에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다. 노동자와 시민, 노동조합과 단체, 문화예술인과 종교인, 이름을 밝히지 않은 평범한 후원자들까지 3만여 명이 건립에 마음을 보태고 있다. 어떤 이는 매달 1만원을, 어떤 이는 하루치 병원비를, 어떤 이는 오랫동안 모은 꽤 큰 돈을 내놓았다. 하는 일도, 살아온 자리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런 병원 하나쯤은 우리 사회에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마음을 모은다. 돌이켜보면 원진레이온 싸움도 그랬다. 그렇게 모인 힘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었다.

김지현 녹색병원 노동자

김지현 녹색병원 노동자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앞으로 전태일의료센터에 어떤 이들이 다녀가게 될지 자세히는 알 수 없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도 그랬을 것이다. 자신들의 싸움이 수십 년 뒤 몽골인 부모를 둔 미등록 이주민 아이의 건강을 돌보게 될지 몰랐을 것이다. 중랑구의 폐지 수집 어르신들의 일상과 연결되고, 지병을 앓으며 매일 오토바이를 달려야 하는 배달노동자,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환자의 삶과 이어질 거라고 상상했을까.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이 남긴 싸움 위에서 오늘을 살아간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만드는 병원이 언젠가 누군가의 하루를 떠받칠 것이다. 나는 ‘좀 특이한 병원’ 녹색병원에서 일하며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업무를 하고 있다. 세상에 없던 병원을 만드는 이 장거리 레이스를 달리며 혹여나 후원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과도한 부담감에 짓눌릴 때도 있지만, 뭔가 일을 내보려 오늘도 애를 쓴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싸움이 우리에게 도착했듯, 오늘 우리가 남긴 싸움도 언젠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도착하게 될 테니까.

 

김지현 녹색병원 노동자·‘이 병원의 이름은 전태일입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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