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29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건설노조 폭염 실태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얼굴에 맺힌 땀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전태일의료센터가 동료 시민의 아픈 하루를 함께 지탱하기 위해 ‘일, 낸다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이 캠페인은 몸과 마음을 다친 노동자의 ‘하루치 병원비’(2만1천원)를 매달 선결제하는 기부 연대입니다. 내가 낸 ‘1’(일부/하루/노동)로 누군가의 회복을 돕고, 그가 다시 우리 일상을 든든하게 지켜줍니다.
한겨레21은 ‘나의 1, 당신의 하루’를 매달 다른 필진의 시선을 담은 연속 기고로 전합니다. 이 다정한 여정에 ‘일 내는 동료’로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일 내는 동료가 되시려면 왼쪽 정보무늬를 찍어주세요. _편집자

‘일, 낸다 캠페인’ 참여 정보무늬
장미의 꽃말은 사랑, 그리고 열정이라고 한다. 선명한 붉은색에서, 그리고 장미가 피는 뜨거운 날씨에서 연상된 의미일 것이다. 사랑과 열정은 인간의 행복이고 또 어떤 이들에겐 삶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장미는 ‘행복의 권리’ ‘존엄한 삶을 누릴 권리’라는 의미도 가진다. 이런 상징은 영화나 문학작품의 표제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가 대표적이다. 영화는 음식과 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건물 미화원들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빵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장미는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행복할 권리를 상징한다.
화단에 장미가 활짝 폈다. 5월, 햇볕이 이젠 제법 따갑다고 느낄 무렵이면 이렇게 장미꽃이 곳곳에 피어오른다. 저 뾰족하고 볼품없는 가시덩굴에서 이리 예쁜 꽃이 피어나다니, 볼 때마다 신기하다. 비록 오늘의 내 모습은 별 볼 일 없을지라도 내일의 나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리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지친 일상을 이렇게 위로해주는 자연의 응원일지도 모르겠다. 천상의 ‘그분’께서 살짝 꽃의 모습으로 다녀가신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불교 수행자들은 그분의 이름을 여래(如來)라고 부르기도 한다. 산스크리트어로는 타타가타(Tathāgata). ‘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는 뜻이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신 분들의 말씀이라면 아마도 인간의 언어를 넘어선 방식으로 전해지는 것이리라. 그분들이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표준어의 정의)로 또박또박 뭔가를 설명하시면 글쎄 뭔가 좀 없어 보이지 않겠나. 그렇다. ‘간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위대한 말씀은 이렇게 꽃으로, 바람으로, 별빛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그나저나 올여름은 또 어떻게 넘기나? 이 여름을 어찌 건너갈까? 슬슬 고민이 시작된다. 본격적인 더위야 7~8월이 절정이겠지만, 실지로 무더위에 대한 걱정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때는 장미꽃이 피어나는 지금 이 무렵인 것 같다. 살짝 땀이 나기 시작하는 바로 이때 말이다. 더위에 대한 공포감은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하지도 않은 이때가 훨씬 더 크다는 것. 그런 게 사람의 심리인가?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니라 그대의 마음이라더니. 이걸 두고 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무더위로 기력을 잃고 비실대다가 한밤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조선소로 복귀했는데, 그사이 조선소 업무가 낯설어진 탓인지 아니면 그해가 유난히 더웠는지 일에 제대로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볕더위가 계속되던 8월의 어느 저녁, 나는 심한 배앓이를 했다. 늦은 밤, 한 시간이 넘게 토사곽란을 하던 나는 119를 불러 겨우 응급실에 갔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나마 나는 운이 좋았던 것 아닐까. 그 무렵 같은 조선소에는 60살을 넘긴 한 노동자가 엔진룸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또 이웃 조선소의 다른 노동자는 불볕더위가 있던 날 화장실에 앉은 채로 숨을 놓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다행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무엇보다도 나는 병원을 찾았고, 아픈 다음날부터 사흘간 휴일이 있었다. 무더위를 건너지 못한 많은 이와 나의 차이는 바로 그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휴식했다는 사실, 그리고 최악의 상태를 겪기 전에 미리 병원을 찾았다는 사실 말이다.
이 더운 날에도 일하는 사람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다. 더운 날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명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만 더위에 땀 흘려가며 움직이는 건 아닐 것이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먹고살아야 한다는 현실은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랜 세월 동안 우린 이 기후에 그럭저럭 적응하며 살아왔다. 인간도 뭇 생명도 모두 무더위에 그리 나약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생명이 무턱대고 태양과 정면 대결을 벌이진 않는다. 각자 자신의 지혜로운 방식으로 무더위를 넘긴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지혜로워야 한다. 더위에는 물과 그늘이 있어야 하고, 봄이나 가을보다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노동시간을 체력 안배를 위해 단축하고, 상대적으로 시원한 시간대로 조정해야 한다. 휴일을 늘리고, 건강상태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이러한 것이 필요하다. 그게 더위를 넘어가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쌓은 사람의 지혜다. 뭇 생명 모두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놀라운 문명시대에 그걸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사람들이 쓰러져가는데도, 뭔가 조처하려 하지 않는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추울 때 추운 일 하고 더울 때 더운 일 한다고, 한 코미디언이 이야기했다. 지금도 그의 어록 중 하나라고 가끔 인터넷 동영상에 오르곤 한다. 당신의 노동은 산만하고 나태했던 유년을 보낸 벌이니 달게 받으라는 이야기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열심히 입시 공부를 했든, 다른 재미난 일로 유년을 보냈든, 정말 그냥 앞뒤 없이 게을렀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저 추운 일은 추위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고, 더운 일은 더위에 따른 조치를 하면 된다. 그뿐이다. 그게 정답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구의 생명이 쌓아온 삶의 지혜일 것이다.
장미에는 연대(solidarity)라는 꽃말도 있다고 한다. 연대란 내리는 비를 함께 맞는 것이다. 추위에 함께 떨고 더위에 함께 땀 흘리며 고통에 공감하는 것. 그렇게 장미의 넝쿨은 담장을 넘어 오른다. 서로 받쳐주며.
양성민 작가·‘꿈꾸는 배관공’ 저자

양성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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