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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계절노동자 길버트, 동료 시민들의 ‘우르르’ 연대가 살렸다

한겨레21-전태일의료센터 ‘일, 낸다 캠페인’ 나의 1, 당신의 하루④
제도의 사각지대 메우기 위해 함께 짜는 안전망
등록 2026-07-23 21:31 수정 2026-07-2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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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에 ‘필리핀 출신 계절노동자가 한국 농촌의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연필 스케치 일러스트로 그려달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만든 일러스트.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에 ‘필리핀 출신 계절노동자가 한국 농촌의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연필 스케치 일러스트로 그려달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만든 일러스트.


전태일의료센터가 동료 시민의 아픈 하루를 함께 지탱하기 위해 ‘일, 낸다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몸과 마음을 다친 노동자의 ‘하루치 병원비’(2만1천원)를 매달 선결제하는 기부 연대입니다. 내가 낸 ‘1’(일부/하루/노동)로 누군가의 회복을 돕고, 그가 다시 우리 일상을 든든하게 지켜줍니다.

한겨레21은 ‘나의 1, 당신의 하루’를 매달 다른 필진의 시선을 담은 연속 기고로 전합니다. 이 다정한 여정에 ‘일 내는 동료’로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일 내는 동료가 되시려면 글 맨 아래 정보무늬를 찍어주세요. _편집자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필리핀 남성, 삼십 대 중반. 3년째 한국에 와서 농사짓고 있는 길버트(가명). 농업과 어업이 바쁜 계절에 들어와 5~8개월만 일하고 돌아가야 하는 노동자, 그래서 이름도 ‘계절노동자’. 2026년 계절노동자 규모는 무려 10만여 명, 일할 사람이 없어 쩔쩔매는 농어촌에서 땀 흘려 일해 먹거리를 생산하는 아주 고마운 이죠. 길버트의 고향집에는 심장병을 앓는 아내와 한창 청소년기를 보내는 두 아이가 있고요. 그에게는 돈을 모아 아내의 병을 고쳐주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한번 아프면 끝장인 계절노동자

 

길버트가 밭에서 일하다 정신을 잃었어요. 병원으로 실려가고, 큰 병원으로 옮겨가서 진단받은 것은 대뇌해면기형. 무사히 수술받아 건강을 회복하고 있지만, 그에게는 엄청난 병원비 청구서가 떨어졌어요. 대한민국 정부가 운영하는 공식적인 ‘계절노동자 제도’를 통해 들어와 일하바지만, 그에게는 건강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력을 탐낼 뿐 노동자의 건강은 나 몰라라 하는 제도 탓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2026년부터 계절노동자에게 의무적으로 상해보험에 가입하도록 했다는 점인데, 상해보험금을 받아도 그가 해결해야 하는 자부담금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큽니다. 지난해 말에 고향으로 갔다가 올봄에 다시 들어와 고작 한 달 월급을 받은 길버트, 아내에게 보냈던 첫 월급은 고스란히 다시 돌아와 병원비가 되었습니다. 노동력을 회복해서 다시 일하려면 한동안 쉬어야 하는데, 돈벌이 없는 기간을 과연 그는 어떻게 버틸까요? 그 생각을 하면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고, 길버트는 말했습니다.

두려움 가득한 길버트의 눈을 바라보며, ‘만약에’ 하고 생각해봅니다. 만약에 그의 곁에 전태일의료센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전태일의료센터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노동자 병원’입니다. 녹색병원이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일하다 아프면 치료받고, 사회구조를 개선해 아프지 않게 일할 수 있도록 예방하고, 회복 후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계획이랍니다. 노동자 전담 병동과 근골격계 집중재활치료실을 설치하고, 과로사의 대표적 질환인 뇌심혈관질환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신속히 치료하고자 정성 들일 작정입니다. 전태일의료센터는 설립비 모금을 계속하며 건축 설계를 진행하는 동시에, 성큼 한 걸음을 더 내디뎌 ‘일, 낸다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하루치 입원비 2만1천원을 선결제하는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다친 동료 시민과 연대하자는 캠페인’입니다.

 

이란주 이주인권활동가·작가

이란주 이주인권활동가·작가


노동자도 활동가도 자나 깨나 돈 걱정

 

이주노동자들이 작은 병은 물론이요, 목숨이 오가는 중한 질병에도 병원 가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저는 줄곧 봐왔습니다. 아니, 그 두려움을 같이 겪었습니다.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활동가들은 매일 이런저런 돈 걱정에 시달리는데, 그중에서 제일 힘겨운 것이 바로 병원비 걱정입니다. 큰 수술이 필요한 이의 병원 입원 서류를 작성할 때면 마음이 후들거립니다. 돈 걱정 때문이죠. 사실을 고백하자면,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매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곁에 선 이들의 연대 덕분이었습니다. 연대의 힘이 노동자를 살리고, 도망치고 싶은 활동가도 붙들어준 것입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골목길에서 놀다 힘겹게 굴러가는 손수레를 만나면 우르르 달라붙어 힘껏 밀어 올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무래기들의 하찮은 힘이었지만 여럿이 함께하니 손수레가 거뜬히 오르막길을 올라갔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우르르’ 연대는 참 근사한 일입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가는 다양한 연대의 그물망이 이주노동자도 건져 올릴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체류 자격이나 체류 기간과 무관하게 말이죠. 체류 자격이 불안정할수록, 체류 기간이 짧을수록 이주노동자는 더 거센 비바람 앞에 놓이게 되거든요. 특히 건강을 돌보는 연대의 그물은 이주노동자를 반드시 포함해야 합니다.

 

여섯 달은 무보험, 남은 두 달은 비싼 지역보험

 

다시 길버트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길버트처럼 농가에 고용된 계절노동자에게 우리 사회는, 입국 후 6개월간은 건강보험에 가입할 자격조차 주지 않습니다. 근로계약 기간이 최장 8개월인데, 6개월간은 자격 없다고 가입하지도 못하게 하고, 계약 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6개월 이후 두 달간은 싫어도 무조건 지역가입자로 가입시켜 건강보험료를 징수합니다. 월수입이 200만원 남짓인 노동자에게 요구하는 보험료는 무려 월 15만여원. 고약해도 너무 고약합니다. 한 계절노동자는 이 보험료를 ‘또 다른 착취’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주노동자는 우리 사회에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특히 계절노동자는 이 나라 5천만 구성원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사람들입니다. 응당 노동과 처우에 차별이 없어야 하고, 복지를 평등하게 제공해야 합니다. 건강보험제도를 개선해서, 농가 고용 계절노동자 역시 건강보험에 직장가입자로 가입하게 하고 고용주 부담 보험료에 대해 공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공적 제도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도 생기는 빈틈은 ‘일, 낸다 캠페인’에 ‘우르르’ 함께해서 연대의 힘으로 메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 낸다 캠페인’ 참여 정보무늬

‘일, 낸다 캠페인’ 참여 정보무늬


이란주 이주인권활동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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