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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종말, 머스크 예언대로 안 된다

‘AI 부메랑’ 등 인간의 노동 복귀 현상 잇따라… ‘자동화보다 인간이 먼저’ 보여주는 리얼리즘
등록 2026-09-03 22:46 수정 2026-09-0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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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31일 홍콩에서 열린 갤봇(Galbot)의 무인 로봇 편의점 개장 행사에서 휴머노이드로봇이 일하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8월31일 홍콩에서 열린 갤봇(Galbot)의 무인 로봇 편의점 개장 행사에서 휴머노이드로봇이 일하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영국 옥스퍼드대학 소속 칼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번은 2013년 발행한 ‘고용의 미래’ 보고서에서 향후 10~20년 안에 미국 일자리의 절반가량이 인공지능(AI) 자동화로 사라질 것이라 단언해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불렀다. 비슷한 시기에 ‘포레스터 리서치’란 시장조사기관은 2025년까지 미국에서 227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 예언했다.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를 제하더라도 순 9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리라는 구체적 수치까지 내놓았다. 이들이 예상했던 일자리 종말 시점은 얼추 지났고, 결과적으로 두 예측 모두 빗나갔다.

 

노동 자동화, 고속도로 아닌 비포장도로

 

인간 노동 종말의 예언은 매번 새 옷을 입고 다시 찾아온다. 얼마 전 일론 머스크는 향후 5년 안에 AI가 인류의 지능 전체를 추월하고, AI 로봇이 육체노동을 대체해 인간 노동이 선택사항이 되는 풍요의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했다. 그의 미래 시나리오는 테슬라의 AI 로봇(휴머노이드) ‘옵티머스’가 1억~10억 대까지 팔릴 것이라 호언장담한다.

머스크의 허세만큼이나 소셜미디어 숏폼 영상으로 떠도는 휴머노이드의 온갖 재롱 잔치는 마치 마술처럼 강력하다. 중국의 무술 하는 로봇, 달리기하는 로봇, 격투하는 로봇, 청소하는 로봇을 보라. AI 학습용 암묵지 데이터를 추출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머리에 밴드로 고정한 채 망고를 썰거나 재봉질을 하는 인도 여성 노동자의 모습은 어떠한가. 100시간 넘게 택배 분류 작업을 하는 휴머노이드와 그 옆에서 인간이 함께 경쟁하는 모습이 전세계로 생중계되기도 한다. 이들 진풍경은 우리의 심상을 어지럽히는 미래 노동의 불확실한 공포가 됐다.

국외 빅테크 소식을 실시간으로 옮기는 뉴스 저널리즘도 노동의 종말론에 가세한다. 언론은 대량해고 소식이 AI 자동화로 인한 순수 ‘기술 실업’ 효과인지 다른 정세 요인 때문인지 일말의 단서도 없이 생성형 AI발 해고나 취업난으로 단정 짓는다. 우리 정부 또한 생산 현장 AI 로봇 노동 도입을 ‘역사의 수레’로 보고 이에 맞설 생각을 하지 말고 시대 변화에 순응하며 각자 살길을 찾으라고 재촉한다. 뇌공학이나 AI 분야 ‘텔레페서’(방송교수)들은 청년에게 AI로 노동의 소멸이 임박했으니 취업 시장에서 각자 영리하게 대체 불가 직종을 찾으라고 전도하기 바쁘다.

이들 노동 종말의 수사가 10여 년 전 예언처럼 철 지난 과장이 될지 아니면 진지한 현실이 될지는 좀 지켜봐야겠다. 분명한 사실은 노동 자동화의 역사 수레가 곧게 뻗은 고속도로 같은 매끄러운 길보다는 심하게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좌충우돌하며 갈 확률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도요타, ‘인간 중심의 자동화’ 파격 선언

 

뭔가 무너져내릴 듯 삐걱거리는 자동화 수레에 관한 최근 사례 몇 가지만 들어보자. 2027년 창업 90주년을 앞둔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조립 공장과 연구 현장에서 AI를 인력 대체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신 AI를 직원 교육과 생산 효율 개선 등에만 한정해 쓰겠다고 발표했다. AI는 지시된 일은 잘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 집단해고 대신 “인간 중심의 자동화”를 통해 노동자의 작업 능력을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이다. 2026년 7월에는 미국 포드자동차가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은퇴했거나 해고했던 숙련 엔지니어와 기술자 350여 명을 다시 회사로 불러들였다. AI 기반 품질 검사가 현장의 결함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해 리콜이 잇따랐고, 결국 사람의 눈과 손이 다시 필요해진 까닭이다.

또 다르게,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의 최고경영자는 AI 비서 하나가 상담 직원 700명분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대대적인 인력 감축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응대 품질이 급격히 떨어지자 1년도 채 안 돼 고객이 원하면 상담 인력을 다시 채용하겠다고 경영 방향을 틀었다. 미국 인사(HR) 컨설팅 업체 커리어마인즈가 2025년 AI 도입을 이유로 감원을 단행한 인사담당자 600명을 조사한 결과, 실제 이들 기업의 68.3%가 이미 해고한 직원 일부를 6개월 이내 다시 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헤드헌팅 업체 로버트 하프의 조사에서도 채용담당자의 32%가 AI로 없앤 직무에 결국 사람을 다시 앉혔다고 답했다. 조사기관 오그뷰의 보고서는 더 직설적이다. AI를 이유로 감원을 단행했던 경영자의 55%가 스스로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인정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2027년까지 AI로 인력을 줄였던 기업의 절반이 인력 재고용에 나설 것이라 내다봤다.

AI가 일자리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 같은 숏폼이 압도하는 현실에서, 노동 현장에서 이렇듯 상반된 상황이 조용하게 연출되고 있다. 국내외 언론은 인간 노동자의 이 대규모 복귀 현상에 ‘AI 부메랑’ 혹은 ‘AI 백래시’라는 이름을 붙인다.

 

워크슬롭과 AI 생산성 부진

 

왜 이런 인간 노동의 복귀 현상이 벌어질까? 우선 AI의 능력치가 기업의 주어진 문제 발굴 능력에서 뛰어나더라도, 기업 조직의 궁극적인 개선이나 미래 의제 설정 등에서 한계가 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도요타의 인간 중심 경영 철학이나 포드의 숙련 노동자의 귀환은 이를 증명한다. 커리어마인즈의 응답자 반 이상이 “AI를 쓰는 데 예상보다 더 많은 인간의 통찰력이 필요했다”고 말한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다음으로, 이른바 ‘워크슬롭’(workslop)의 문제가 있다. 워크슬롭은 2025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중요하게 다뤘던 AI 노동 관련 신조어이다. 워크슬롭은 “겉으론 잘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업무에 의미 있는 진전을 주지 못하는 AI 생성물”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AI 산출물에 환각이나 오류가 많아 실제로는 노동 업무에 방해되고 후처리 작업에 시간과 비용이 더 투여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조사에 따르면, 최근 한 달 사이 직장인의 40% 이상이 이런 AI 슬롭 산출물을 주고받은 적이 있으며, 이것을 해석하고 고쳐 쓰는 데 평균 두 시간 가까이 소모했다. 이는 기업 전체에 생산성 손실로 이어질 수 있고, 조직 내 신뢰 관계와 협업 방식에도 타격을 준다.

워크슬롭 문제로 AI가 생산성에 미치는 능력치도 의심받고 있다. 엠아이티(MIT)미디어랩 조사에서는 생성형 AI를 도입한 기업의 95%가 “유의미한 재무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BER)가 미국·영국·독일·오스트레일리아 4개국 기업 임원 6천 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약 90%가 “지난 3년간 AI가 고용이나 생산성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용지표도 노동 종말이 신기루라는 가설에 힘을 싣는다. 미국 노동통계국(BLS) 데이터를 분석한 최근 보도에 따르면, AI 노출도가 가장 높다고 알려진 사무직이나 전문직 직군이 오히려 AI 노출도가 낮은 직군보다 실업률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AI가 특정 부문 일자리를 대거 빼앗을 것이라는 초기 우려와 달리, 실제 노동시장에서는 AI가 고용 파괴보다는 생산성 증대의 보완재 구실을 한다는 조사 결과가 지배적이다. 예컨대 국제노동기구(ILO) 이상헌 고용정책국장은 특정 수치의 일자리가 AI 영향권에 있다는 분석이 곧 그만큼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기보다는 오히려 ‘직무의 재편’으로 바라볼 것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의 말처럼 2025년 ILO 보고서는 전세계 일자리의 25%(사무직 비중이 높은 고소득국은 34%)가 생성형 AI의 ‘영향권’에 있다고 밝히면서도, 이것이 실제 일자리 감소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잠재 위험’을 계측한 수치임을 못박았다. 숫자는 추정값일 뿐 현실은 정세에 따라 꽤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AI 부메랑의 교훈 “기술 숙명론은 답 아니다”

 

고용 시장에 흘러넘치는 AI발 대량실업 서사는, AI의 실제 능력치보다는 그에 대한 과잉 기대와 주식 부양 욕망이 빚어낸 신기루에 가까웠다. 물론 이제까지 AI 부메랑 논의에 맞서는 연구 조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스탠퍼드대학이 발행하는 ‘2026 AI 인덱스’에서 다룬 에릭 브리뇰프슨 등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AI 도입으로 소프트웨어 청년 개발자 고용이 2022년 말 정점 이후 최근까지 약 20% 감소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은행이 2026년 8월에 발표한 조사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이 또한 상대적으로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50대 고용은 늘었던 반면 신규 청년 고용 위축 현상이 일어났다는 비슷한 결과를 발표했다.

문제는 이들 수치를 둘러싼 해석조차 AI발 변수로만 읽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반론으로, 채용 자체가 얼어붙은 자본주의 경기 침체기에 청년 코호트(연령세대)만 떼어놓고 보면 종종 통계적 착시가 발생한다는 점이 거론된다.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정세 변수가 거론되기도 한다. 국외 조사에서는 AI 노출 직군의 채용공고와 모집이 챗지피티 출시보다 반년 앞선 시점에 이미 정점을 찍었다는 점, 그리고 같은 시점에 시작된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이라는 거시적 충격이 기업의 미래 투자 심리를 위축시켜 청년 채용을 미룬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짚는다. 국내 연구진 또한 청년 고용 위축 현상을 AI만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팬데믹 이후 과잉 채용 정상화, 경력직 중심 채용 등의 요인이 청년 고용 축소를 더 키웠을 가능성을 추가 진단한다.

결국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노동의 종말’도, 그렇다고 안심해도 좋다는 해피엔딩도 아니다. 적어도 ‘노동 종말’의 결정론적 과잉 서사를 걷어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노동 자동화 역사의 수레바퀴는 예언자들이 그리는 것처럼 매끄럽게 굴러간 적이 없었다. 자본주의 정세에, 노조의 협상력에, 기업의 조직 역량에 따라 늘 덜컹거렸다. 그 덜컹거림 사이에서 노동하는 인간의 현실주의(리얼리즘)적 조건이 결정됐다. 오늘 ‘AI 부메랑’ 현상이 주는 진짜 교훈은 기술 숙명론이 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의 수레를 잠시 멈춰 세우고, 자동화 기술보다 인간 노동자의 존재가 먼저임을 요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미래이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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