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철 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왼쪽부터), 이대택 스포츠 인권 연구소 대표, 김현수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이 2025년 7월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서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비리 고발장을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인 체육시민연대는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을 2025년 7월9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정용철 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승민 회장이 탁구협회장 재임 시절 후원금을 유치한 사람에게 성과급을 부당 지급하고, 국가대표로 선발돼야 할 선수를 바꿔치기했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조사를 마친 뒤 관련자들의 징계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유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스포츠 인권 침해 및 비리 조사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는 2025년 4월 유 회장이 대한탁구협회장으로 재임했을 때 불거진 ‘선수 바꿔치기’와 ‘후원금 인센티브 부당 지급’ 사건을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선수 바꿔치기’는 2021년 2월 김택수 탁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장(현 진천국가대표 선수촌장)이 유승민 탁구협회장에게 경기력향상위원회의 의결 결과를 보고한 뒤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 출전 국가대표 선수가 ㄱ씨에서 ㄴ씨로 바뀐 사건을 말한다.
‘국가대표 선발 및 운영 규정’에 따르면 유승민 탁구협회장은 경기력향상위원회가 추천한 ㄱ씨를 국가대표로 발탁해야 한다. 하지만 유 회장은 ‘ㄴ씨가 ㄱ씨보다 성적이 더 좋지 않나’라는 의견을 냈고, 김택수 위원장은 위원회를 재소집하는 등 별도 절차를 밟지 않은 채 ㄴ씨로 국가대표 선수를 바꿨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절차를 지키지 않고 선수를 교체한 사실은 명백한 비리라고 판단했다.
‘선수 바꿔치기’보다 더 뜨거운 사안은 ‘후원금 인센티브 부당 지급’ 사건이다. ‘선수 바꿔치기’는 이미 사건의 실체가 상당 부분 드러난 사안이다. 징계 시효 역시 완성돼 기관 경고에 그쳤다. 하지만 ‘후원금 인센티브 부당 지급’ 사건은 스포츠윤리센터 조사만으로는 실체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후원금 인센티브를 둘러싼 관계자들이 모두 조사받지 않았고, 계좌 내역 등을 살펴보려면 수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21년 1월18일 탁구협회는 협회 후원금 유치를 활성화하고자 인센티브위원회를 구성한 뒤 후원기업을 유치한 사람에게 후원금 10%를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발전기금 및 인센티브 제도’를 시행했다. 그 후 기업·개인에게 후원금을 끌어온 탁구협회 임원들(김택수, 현정화, 정해천)과 유 회장의 지인 김아무개씨 등이 수억원의 인센티브를 받았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이들이 2021~2024년 3억5천만원을 인센티브로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는 ‘발전기금 및 인센티브 제도’를 신설하는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스포츠윤리센터는 탁구협회가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인센티브위원회를 구성했기 때문에 인센티브 제도 역시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인센티브를 받은 사람들이 탁구협회에 중대한 손해를 초래했다고 봤다. 특히 김택수 위원장과 정해천 전 사무처장 등은 ‘임원은 보수를 받을 수 없다’는 탁구협회 정관도 위반했기에 스포츠윤리센터는 이들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탁구협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유 회장의 지인 김씨의 경우 2022년 12월23일 인센티브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사무처장 전결로 인센티브를 받아갔다. 다만 유 회장은 인센티브 지급 명단에서 빠져 있어 스포츠윤리센터의 고발 대상에서 제외됐다. 유 회장은 조사에서 ‘인센티브위원회 구성과 관련한 모든 것을 사무처장에 위임했다’고 해명했지만, 위원회 임원과 위원의 위촉 및 해촉 업무는 회장 결재 사항이다. 스포츠윤리센터는 탁구협회에 유 회장과 김택수 위원장의 징계를 요청하는 한편, 이미 지급된 인센티브를 전액 환수하라고 권고했다.
관련자들은 재정이 열악한 탁구협회를 위해 마련한 궁여지책이 사적 이득 창구로 매도당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유 회장은 2025년 4월22일 대한체육회 이사회에서 “결정문을 존중하고 수용한다”면서도 “부끄럽게 협회를 운영해온 적은 없다”고 호소했다. 김택수 선수촌장 역시 후원금 유치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토로하며 “배임을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나. 이제까지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며 “일련의 과정은 협회 재정에 도움이 됐지 문제가 된 게 없다. 내가 인센티브 1천만원, 2천만원 받으려고 부당한 행위를 했겠나”라고 하소연했다.
그런데도 의심의 눈초리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탁구협회에서 수십억원의 후원금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일부를 인센티브로 지급했는데,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유 회장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상현 변호사(법무법인 대겸)는 “유 회장이 인센티브 지급 행위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해도 협회 업무를 총괄하고 자금 집행에 최종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었다. 그저 사무처장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 회장 지인 김씨가 탁구협회에 수억원의 후원금을 유치한 뒤 인센티브를 받은 방식 역시 다른 종목 단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탁구 발전을 위해 후원금을 유치해왔다고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경위와 의도로 탁구협회 사무에 관여하게 됐는지, 어떻게 인센티브위원회 의결 절차까지 생략한 채 인센티브를 받았는지 등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씨는 신고 대상도 아니어서 스포츠윤리센터 조사도 받지 않았다. 이상현 변호사는 “김씨가 어떻게 탁구협회의 의결 절차 없이 거액의 인센티브를 지급받게 됐는지 반드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후원금 인센티브를 바라보는 인식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인센티브 제도 도입 취지나 규모의 적정성 판단은 차치하고, 인센티브를 도입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간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현수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기업과 개인은 사람이 아닌 종목을 보고 후원금을 낸다. 그런데 후원금 중 일부가 인센티브로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는 후원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이런 흐름은 결국 후원 자체를 줄이는 문화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김 집행위원장은 이어 “협회를 빌미로 인센티브를 취한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조직 사유화로 이어진다”며 “결국 종목 단체는 리베이트 장사를 하는 곳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체육회를 포함해 모든 종목 단체의 임원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규정한 건 이러한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처이기도 하다.
스포츠윤리센터의 징계 요청에 따라 탁구협회는 2025년 7월2일 유 회장을 포함한 전현직 임원 4명의 징계 여부를 다루고자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마저도 ‘셀프 징계’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징계 대상자가 탁구협회 스포츠공정위의 결정에 불복하면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에서 재심의를 받게 되는데, 체육회 수장이 유 회장이기 때문이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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