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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아시안게임 외면’ 일본 빠진 한·중만의 잔치

의도적으로 2진 중심 참여시킨 일본 탓 경쟁 강도 떨어져
필리핀 남자 컬링 금메달 등 9개 국가 메달 획득 다채로워
등록 2025-02-28 21:32 수정 2025-03-03 14:53
피겨 차준환이 2025년 2월13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 피겨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차준환은 이날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다. 연합뉴스

피겨 차준환이 2025년 2월13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 피겨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차준환은 이날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다. 연합뉴스


2025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당초 세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대한체육회의 예상은 종합 2위(금메달 11개, 은메달 7개, 동메달 20개)였는데, 선수단은 최종적으로 금 16개, 은 15개, 동 14개를 거머쥐고 귀국했다. 금메달 16개는 역대 겨울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 타이기록이다. 한국 선수단은 이번 대회에서 질적·양적 성장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최국인 중국은 금 32개, 은 27개, 동 26개 등 총 85개의 메달을 거머쥐며 1위에 올랐다. 한국(45개·2위)과 일본(37개·3위)에 견줘 거의 2배 이상의 메달을 쓸어담으며 개최국으로서 체면을 제대로 세웠다.

작정하고 겨울아시안게임 무시한 일본

여름스포츠에 이어 겨울스포츠에서도 이제는 한국과 일본을 완전히 눌렀다는 평가를 노린 것일까. 중국은 모든 종목에서 최정예 멤버가 총출동했다. 설상 종목은 물론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은동을 쓸어담아 포디움을 오성홍기로 가득 채우는 모습을 여러 번 연출했다. 쇼트트랙 슈퍼스타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은 어깨 수술까지 미루며 출전을 강행해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이 금메달은 중국이 쇼트트랙에서 한국을 제치고 따낸 유일한 개인전 금메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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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일본이다. 직전 대회인 2017 삿포로 대회에서 일본은 금 27개, 은 21개, 동 26개 등 총 74개의 메달을 쓸어담으며 한국(금 16개, 은 18개, 동 16개)과 중국(금 12개, 은 14개, 동 9개)을 제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아니 작정하고 대회를 외면했다. 하얼빈 현지 경기장에서 만난 일본인 기자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만큼 일본 언론사가 취재진을 보내는 데 인색했다는 이야기다. 일본 올림픽위원회 ‘팀 재팬’ 관계자는 “이번 대회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방송사도 없다”고 귀띔했다. 그는 ‘팀 재팬’에서 일하기 전 “겨울아시안게임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털어놨다.

원래 아시아권 겨울스포츠 최강국은 일본이다. 쇼트트랙에서만큼은 한국이 세계 최정상급 기량을 갖추고 있지만, 더 많은 메달이 걸린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일본이 앞선다. 피겨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일본의 인재풀은 한국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넓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 일본은 정상급 기량을 가진 선수를 대거 다른 국제대회로 돌렸다.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천m 금메달리스트 다카기 미호는 불참했고, 일본 스키 강자들과 컬링 에이스팀 역시 국제대회로 빠졌다.

겨울스포츠 인프라를 갖춘 한·중·일이 서로 경쟁하며 유지해왔던 긴장감이 이번 대회 들어 무너진 것이다. ‘팀 재팬’은 대회가 한창이던 2월10일 한겨레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각 체육 단체에서 추천받은 뒤 ‘팀 재팬’의 정책에 따라 파견됐다. 선수들의 컨디션과 다른 대회와의 일정 조율을 고려했다”며 “월드컵 등 다른 행사도 많이 열리기에 일본인들이 겨울 시즌 동안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 외에 다른 국제대회를 알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겨울스포츠 불모지에서 메달 따낸 선수들

‘팀 재팬’의 이러한 입장은 2월21일 막을 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사대륙선수권대회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피겨 사대륙선수권은 5년 만에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렸는데, 일본은 남녀 싱글부터 페어, 아이스댄스 등 모든 세부 종목에 골고루 여러 선수를 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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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현장 역시 한국 취재진보다 일본 취재진으로 붐볐다. 한국 언론사는 연합뉴스 등 5~6개사 기자가 현장을 챙겼지만, 일본에서 온 기자는 수십 명에 달했다. 피겨에서는 사대륙선수권대회가 메이저 대회이긴 하지만, 규모나 위상 측면에서 종합국제대회인 겨울아시안게임이 월등히 앞선다. 그런데도 목동아이스링크에서 본 일본 기자가 하얼빈에서 본 기자보다 훨씬 많았다. 매년 열리는 사대륙선수권대회가 8년 만에 치러진 종합국제대회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이다.

일본이 겨울아시안게임에서 발을 빼고 있지만, 한국은 매 대회 최상의 전력을 꾸려서 나선다. 특히 남자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면 군 면제라는 혜택을 받기 때문에 기를 쓰고 출전하려 한다. 올림픽 동메달을 따려면 전세계를 상대로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지만 겨울아시안게임에서는 일본 또는 중국만 넘어서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2진 선수들을 보내면서 이번 대회의 경쟁 강도는 대폭 떨어졌다. 선수들의 피땀으로 일군 금메달에 토를 달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금메달에 따른 혜택을 재고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2025년 2월12일 중국 하얼빈체육대학 학생빙상장에서 열린 여자 아이스하키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양 팀 선수들이 퍽을 다투고 있다. 연합뉴스

2025년 2월12일 중국 하얼빈체육대학 학생빙상장에서 열린 여자 아이스하키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양 팀 선수들이 퍽을 다투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상 한국과 중국만의 잔치로 치러진 이번 대회가 그나마 풍요로웠던 이유는 겨울스포츠 불모지에서 메달을 따낸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캄보디아가 참가하면서 겨울아시안게임 역대 최다인 34개국이 출전했는데,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m에서 대만의 천잉추가 동메달을 따냈고, 타이에서는 폴 앙리 비외탕이 남자 프리스타일 슬로프스타일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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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남자 컬링 대표팀이 따낸 금메달은 이번 대회 최대 이변으로 꼽혔다. 모두 스위스에서 태어난 이들은 직업이 은행원, 전기기술자, 건설노동자 등으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모여서 아시안게임 출전 준비를 했다. 훈련 자금도 사비를 털었던 필리핀 컬링 대표팀은 자국에 역사상 첫 겨울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선사했다. 세 나라가 깜짝 메달을 따내면서 총 9개 국가가 메달을 가지고 돌아갔다. 그래서 이번 대회는 역대 겨울아시안게임 중 가장 많은 나라가 메달을 목에 건 대회로 남았다.

2029년 사우디아라비아의 겨울아시안게임

지금까지 9번의 겨울아시안게임 가운데 8번이 한국(1번), 중국(3번), 일본(4번)에서 열렸다. 열대·아열대 기후에서는 설상 종목 경기장을 만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겨울아시안게임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최대 난관이었는데 4년 뒤인 2029년 겨울아시안게임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및 서남아시아에서 열리는 첫 겨울아시안게임이다. 눈이 오지 않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시티인 ‘네옴시티’를 만들어 대회를 치를 계획이다. 또 산에 인공눈을 뿌려 설상 종목 경기장을 만든다.

다만, 이 역시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겨울아시안게임 유치는 겨울스포츠 강화가 목적이 아니라, 스포츠 워싱(스포츠를 이용해 평판을 개선하는 관행)의 일환이다. 대회 개최를 위해 낭비될 막대한 에너지와 자원을 놓고 논란 역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장필수 한겨레 기자 feel@hani.co.kr

*‘스포츠 찔러보기’는 체육계 현안을 살짝 비틀어보려는 시도로 4주마다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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