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가 2022년 2월15일 부산 서면에서 지지자의 환호에 어퍼컷(올려치기) 자세를 취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12·3 내란의 우두머리 윤석열이 마침내 구속 기소됐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이 신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관심은 대통령선거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진상 조사와 법적 처리, 새 정부 출범을 통한 질서의 복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12·3 내란과 그 이후의 사태는 근본적인 정치사회 개혁이 더는 미뤄질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정권도 이를 회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개혁 논의는 비상계엄 절차 강화와 같은 내란 방지책 외에도 권력구조 개편이나 사회권 강화 등 기존 개헌 논의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섣부른 개혁 이전에 필요한 것은 12·3 내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다. 이는 가장 중요한 개혁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내란의 직접 원인은 윤석열의 반민주적 태도와 쿠데타에 대한 로망이다. 그러나 내란은 개인적 요인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 사회적 토대가 된 정치 불안정과 양극화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
먼저 정치 경험이 없는 인물이 이념·세대·젠더로 갈라진 극심한 정치 양극화 속에서 겨우 0.7%포인트 차로 당선됐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국가 운영은 대통령의 역량 부족, 불안정하고 협소한 정치적 기반, 여야 간의 강한 대립으로 처음부터 순탄치 못할 가능성이 컸다. 행정적 권한은 있으나 사회적 뒷받침이 없을 때 권위주의적 대응의 유혹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내란을 실행하고 동조한 세력들도 문제다. ‘충암파’와 육사 출신 고위 군 장교들의 참여, 국무위원들의 소극적 대응은 행정부의 불충분한 민주화와 권위주의적 잔재를 보여준다. 더불어 유튜브와 부정선거론의 영향력은 보수 세력의 극우화를 나타낸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은 지도자의 특성이나 특정 이슈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과 같은 우연적 요소로만 설명될 수 없다. 오히려 이들은 한국 국가체제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의 발현이다.
1987년 수립된 제6공화국 체제는 5년 단임 대통령제와 의회에 대한 행정부의 우위, 지역과 중산층 중심의 대표제와 노동계급의 보수적 배제, 경제적 자유주의화를 특징으로 했다. 여기에 1997년의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은 이 체제의 성격을 확고하게 신자유주의적으로 전환했다. 이 체제는 문제가 많았지만 그럭저럭 굴러갔다. 김영삼, 김대중과 같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들과 국가개혁의 신념을 가진 일부 관료는 그 한계가 명확했지만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고 실행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자유주의 세력이 집권(김대중, 노무현 정부)하기도 했지만 전통적인 권위주의적 보수의 사회적 헤게모니는 견고했다. 보수적으로 노동계급과 소외집단을 배제해도 지역 간 연합이나 중산층 중심 성장주의로 정권을 잡고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신자유주의 정책도 국제통화기금(IMF) 구조개혁 이후 수출과 성장률의 회복에서 보이듯이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이 체제의 사회적 기반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로 경제성장이 추세적으로 둔화하고 불평등이 심화했으며 불안정 노동이 증가했다. 사회적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고 이에 따른 삶의 불확실성 증가는 중산층의 (심리적) 불안을 심화시켰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도 확대됐다. 가장 취약한 청년, 여성, 노인, 지방 등은 정치적으로 소외됐다. 대표되지 않는 집단이 늘어나면서 지역주의나 중산층 중심 성장주의만으로는 국가 운영을 안정화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보수의 헤게모니 속에서 국가체제는 갱신되지 않았다. 이 체제는 정치적으로 소외된 집단들을 진정으로 대표하거나 포용하지 않았다. 복지지출이 증가했으나 노사정협의체는 항상 파행되었고, 청년과 여성 대표 등은 정치적 장식에 가까웠다. 새로운 상황에 대처해야 할 대통령과 행정부도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이 퇴장하고 관료도 단순한 월급쟁이에 가깝게 되면서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실행하지 못했다. 이를 보완해야 할 의회의 정치적 기능은 미약했고, 사회 전반의 정치에 대한 대안적 상상력도 빈곤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대응과 ‘공천 파동’에서처럼 오히려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상황을 악화시켰다. 총선 참패로 정권 연장이 어렵다고 판단한 일부 보수 세력(조선일보, 새누리당 내 비박 등)이 이탈하면서 박근혜는 탄핵됐다. 하지만 이로써 보수는 한국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상실했다. 보수 정당은 분열의 내홍을 겪었고, 다수의 재벌 총수는 구속되거나 수사 대상이 되면서 위축됐다. 탄핵에 대한 반발로 성장한 극우 세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를 활용하면서 주류 보수언론의 영향력도 쇠퇴했다.
촛불항쟁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국가체제 개혁의 시대적 과제가 있었다. 국가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국가권력의 사회적 기반을 진보적으로 확대해야 했다. 그러나 ‘노동존중’과 ‘포용국가’ 담론에도 불구하고 노동과 사회적 취약층은 제대로 대표되지 않았고 삶의 불안정과 치열한 경쟁, 불확실성은 계속됐다. 페미니즘에서 극우까지 정치적 소외 집단들의 목소리는 더욱더 커졌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기반은 조국 사태와 주요 정치인들의 성범죄 등으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분열됐다. 신자유주의 관료의 권력은 온존되었고, 권위주의적 도구로 사용됐던 검찰 권력 또한 제압되지 못했다. 자유주의 세력과 권위주의 보수 세력 어느 쪽도 헤게모니를 잡지 못하면서 정치 양극화는 ‘심리적 내전’ 수준까지 격화됐다.
2022년 대선은 이러한 상황에서 치러졌다. 더불어민주당도 유력한 대선 후보 다수를 잃어버렸지만, 보수 세력도 경쟁력 있는 후보를 배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반기를 들면서 반문의 영웅이 된 윤석열을 영입하고 ‘이대남’을 동원하는 동시에 중도 안철수와 단일화함으로써 간신히 정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2025년 1월19일 새벽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직후 폭도들에 의해 파괴된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건물 외벽과 유리창들. 한겨레 정용일 선임기자
그러나 보수 세력은 안정된 사회적 기반 부재와 심화한 정치 양극화라는 문제를 해결할 역량도 의지도 없었다. 대통령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통치와 그 가족의 범죄 혐의는 점차 보수 지지층까지 등을 돌리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권 핵심이 유튜브와 부정선거론에 포획당하면서 점점 더 극우화된 반면, 지배블록에서 주변화된 보수언론과 재벌은 대통령을 제어하지 못했다.
동시에 여야의 대립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부정선거론은 헤게모니의 상실을 부정하는 보수의 자기합리화였고, 이를 받아들인 윤석열은 야당을 대화와 타협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에 반감을 가진 보수는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에게 정치보복이 가해질 것이라던 예측을 현실로 만들었다. 검찰은 이재명 대표와 그 가족을 사법처리했고, 민주당은 윤석열과 그 가족을 겨냥한 특검 시도로 맞섰다. 상대를 법을 통해 제압하려는 극한투쟁으로 정치는 기능을 상실했다. ‘명태균 게이트’까지 터지면서 탄핵의 위협을 느낀 윤석열은 최측근과 국가 내의 보수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위헌적인 ‘비상대권’의 의지를 실행에 옮겼다.
결국 12·3 내란은 국가체제의 위기에서 파생된 것이다. 국가는 노동과 약자를 배제하는 신자유주의, 대통령과 행정부 중심의 국가주의, 국가기구 내부의 권위주의적 경향에 지배됐다. 그 결과 불평등 심화로 확대된 정치적 소외 집단은 대표되지 못하고 그들을 위한 새로운 비전도 제시·실행되지 못했다. 보수는 헤게모니를 상실했으나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헤게모니(사회적 기반)는 조직되지 못했고 정치 양극화와 국가권력의 기능부전은 심화되었다. 12·3 내란은 이를 강제력을 동원해 해소하려는 권위주의적 대응의 최종 귀결이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국가체제 전반의 개혁이다. 무엇보다 정치 안정화와 국가의 사회적 기반 확대를 위해 국가의 역할을 재정의해야 한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을 사회적·생태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함으로써 사회경제적 불평등, 경쟁,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정치적으로 소외·배제된 집단을 진정으로 대표하고 포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불안정 노동, 청년, 여성 등 정치적으로 소외된 다양한 집단이 국가 내부에 충분히 대표될 수 있어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직접민주주의 강화, 정당 설립 요건 완화, 국회의원 증원, 비례대표 확대, 노사민정 협의체의 실질적 운영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정치세력의 난립으로 정치 불안정이 더 커질 수 있으므로 정치세력 간 대화와 타협을 촉진하는 개혁도 필요하다. 각종 선거에서 정당 연합과 후보 단일화에 대한 제도적 지원, 결선투표제 도입 등이 그 예다.
둘째,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사회의 목소리에 더 민감한 정당과 의회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권력구조가 개선 또는 개편돼야 한다. 행정부 내에서도 신자유주의, 국가주의, 권위주의적 경향을 해소해야 한다. 경제부처, 검찰, 그 밖의 보수적 네트워크의 권력이 해체되고 소외된 집단의 이해관계와 사회적·생태적 가치를 반영하는 부처의 위상과 기능이 획기적으로 강화돼야 한다.
끝으로, 이러한 제도개혁이 국가의 사회적 기반을 안정화하는 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 간에 창의적인 해법으로 합의를 도출하는 ‘가능성의 예술’로서의 정치가 필요하다. 특수한 이해관계들을 조화시키고 보편적인 사회적 의지를 창출하는 정치적 리더십과 상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지주형 경남대 교수(경남대 K-민주주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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