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8일, 광주광역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세 살 난 아이와 그 부모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희생된 179명 가운데 가장 어린 희생자의 일가족이었다. 사고가 참혹했기에 소방·경찰·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주검 수습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희생자들의 장례 절차는 늦어졌다. 참사 발생 12일째인 1월9일이 돼서야, 희생자 전원의 발인이 치러졌다.
장례 절차는 마무리됐지만, 아픔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유가족들이 자식·배우자·부모·형제를 잃은 고통을 견뎌내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조롱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유튜버·악플러가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1월7일 오후 5시 기준, 항공참사 관련 악성 인터넷 게시글·영상 159건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남경찰청이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한 30대 남성을 수사했을 때, 그가 한 해명은 “뉴스를 보다가 별 생각 없이 글을 올렸다”였다.
악성 게시글을 올리는 이들만 유가족의 트라우마를 만들어내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이 통상 ‘짧게는 6개월, 길면 3년이 걸린다’고 말하는 항공참사 조사가 이제 막 시작된 시점에, 국토교통부는 참사 피해를 키운 것으로 지목된 전남 무안국제공항의 방위각제공시설(로컬라이저) 및 콘크리트 지지대와 관련해 “규정에 맞게 지어졌다”는 입장부터 발표하고 나섰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사퇴 의사를 표명한 1월7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규정 준수 여부를 떠나 안전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미 국토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뒤였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했고, 재난사회학 박사과정 중에 있는 박상은 플랫폼씨(Platform.C·비영리 사회운동 교육단체) 활동가는 조사 시작 단계부터 ‘법 바깥의 질문을 삭제’하는 경향에 대해 우려했다.
“법적으로 무엇을 지켰냐 안 지켰냐를 떠나서 ‘여객기가 동체 착륙하는 일, 활주로를 벗어나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면 당연히 규정을 바꾸는 등 뭘 할 수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하는데, (국토부가) 법적 내용을 먼저 따지는 방식으로 반응했잖아요. 법적 책임은 가장 차후에 따져야 할 문제이고, 조사 초반엔 무엇이 문제였고 어떤 조건들이 달랐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지 (시스템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야 하거든요. 지금은 섣불리 추정하고, 책임자를 찾아낼 게 아니라 지켜봐야 할 시점입니다. 유가족은 트라우마가 크기 때문에 (정부가) ‘지금 이렇게 정해져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진행할 수밖에 없고, 어떻게 진행하고 있고’ 등의 설명을 중간중간 정확하게 유가족들에게 전달하는 게 너무 중요합니다.”
유가족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더 투명하고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길, 이를 통해 ‘안전한 사회’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정부의 투명하고 공정한 조사, 조사 과정과 결과에 대한 정확한 공유가 유가족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중요한 이유다. 참사 발생 바로 다음날 통합심리지원단을 꾸려 무안국제공항으로 갔다가 1월7일 현장에서 돌아온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트라우마의 치료나 회복이라는 건 결국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트라우마 치료나 회복의 전제는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받아들이는 ‘수용’이에요. 보통은 이걸 되게 어려워해요. 왜냐하면 ‘왜 하필 이런 일이 있었을까’ ‘마지막 순간에 걘 어땠을까’ 의문이 끝도 없이 꼬리의 꼬리를 물거든요. 결국엔 모르는 채로 끝나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러이러해서 이런 사고가 났다’는 식의,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게 될 때 훨씬 받아들이기가 쉽죠. 그게 정리 돼야 수용이 되는데 투명하게 정보 공개가 안 된다든가, 찔끔찔끔 정보가 나와서 (조사 주체를) 믿을 수 없다거나 궁금증이 증폭되면 당사자 입장에선 정말 지옥이에요. 지금 유족대표단이 중간에서 의사소통을 잘하고 계신데, 불필요한 의심이 쌓이지 않는 게 사실은 너무나 중요해요.”
심 센터장은 “벌어진 사건은 돌이킬 수 없지만, 그 뒤에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가 개입할 수 있다”며 “이미 상처를 받아 ‘내가 사는 세상이 별로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과 불신 속에 살고 있는 유가족들이 적어도 2차 가해, 트라우마를 악화시키는 위험 요소에 노출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에 국가트라우마센터는 희생자 주검 확인 단계에서부터 심리지원 인력을 투입했다.
앞으로 참사 조사의 진행 상황에 따라 유가족이 겪는 트라우마도 달라질 수 있다. 1월4일 유족대표단 쪽은 “참사의 책임자라는 의혹이 있는 국토부가 셀프 조사를 하고 있는 셈”이라며 “중립성과 독립성이 확보된 별도의 조사 기구를 설치하거나 국토부 관계자를 조사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토부가 구성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에 전직 국토부 관료, 현직 국토부 항공정책실장 등이 참여하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이다. 이에 박 장관은 “조사 공정성과 관련해 문제 제기가 있던 사조위원장은 사퇴 의사를 표명했고, 상임위원인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을 사고 조사 등 위원회 업무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목포)은 사조위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유가족이 선출한 전문가를 사조위에 참여시키게 하는 법률 개정안을 1월8일 대표발의했다. 발의된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사조위를 현행 국토부에서 국무총리 소속으로 변경하고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공무원이 아닌 사람으로 대통령이 임명, 상임위원은 정무직 공무원으로 임명해 독립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사조위 위원 수를 현행 12명 이내에서 13명 이내로 늘려서 비상임위원 중 1명은 유가족 및 피해자 가족대표 회의가 선출한 사람을 국무총리가 위촉, 사조위에 의견이 반영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았다.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센터장은 ‘제천 화재 참사 조사’ 사례를 예로 들며, 조사 시작단계인 현시점에서의 이 논의가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했다.
“2017년 12월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불이 나 29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소방합동조사단의 조사가 1차·2차 두 번에 걸쳐 이뤄졌어요. 1차 조사는 소방 관계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정부 기관이 꾸린 조사위원회였는데,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가족들이 갖고 있는 의문들이 해결되지 않은 거예요. ‘소방 관계자들 잘못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얘기했는데, 소방 관계자들이 조사하는 게 맞느냐’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2차 때는 가족들이 추천한 위원들을 참여시켜서 가족들의 질문들, 가설들도 같이 검토가 이뤄졌어요. 그랬더니 결과가 굉장히 다르게 나왔어요. (그런데 이미 1차 결과가 나온 뒤 문제가 제기되고 유가족들의 질문이 검토되면) 사실 시간도 비용도 2배가 되잖아요. 그사이 사람들의 신뢰도 ‘왜 첫 번째랑 두 번째랑 달라’ 하면서 낮아지고요. 항공참사 조사는 특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정밀한 조사이기 때문에, 저는 지금부터 사고조사위원회에 유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 센터장은 “희생자들의 죽음이 이른바 ‘불행’이 아니라 ‘당신의 죽음으로 세상이 변했다’가 돼야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 죽음을 어떤 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에 대해 ‘사회적 관점’을 만들어주고 ‘책임을 나눠 갖는다’는 의미에서” 명확한 진상 규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위원장도 “안전은 완벽한 인간을 전제로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를 전제로 ‘제도와 시스템’이 보완되어야 한다”(일본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를 다룬 책 ‘궤도 이탈’ 추천사 중에서)고 지적한 바 있다.
다만 참사 원인 조사는 무엇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조류 충돌’ ‘로컬라이저 둔덕’ ‘제주항공 정비비 절감’ 등 참사 원인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현재로선 사고 책임자나 원인을 단편적으로 결론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11년, 임기제 공무원인 국토부 항공안전감독관으로 6년 일한 경험이 있는 심재동 세한대 항공정비학과 교수는 “조류 충돌이 있었던 건 (이제까지 발표로 미루어보아)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조류 충돌이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엔진이 꺼질 정도의 손상이 오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조류 충돌이 있었는데, 우리가 지금 알지 못하는 어느 부분이 약해져 있어서 더 큰 손상을 가져왔을 수도 있고, 다양한 요인이 굉장히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어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사조위가 궁극적으로 조사해야 하는 곳은 국가”라며 “국토부가 항공사 인가도 주고 감독 권한도 가지고 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없었는지 관리·감독·운영 현황 등 모든 게 다 조사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음성기록장치와 비행기록장치(FDR) 데이터가 확보된 상황에서 더 면밀한 항공기 조사와 그 문제를 낳은 구조적 문제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고기동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은 1월8일 “한·미 합동조사단이 현장에서 엔진과 주 날개 등 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손상된 비행기록장치는 미국에 도착해 미국 교통안전위원회와 함께 수리 및 자료추출 등 분석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구성된 한·미 합동조사단에는 국토부 사조위 외에도 미국 연방항공청(FAA)·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보잉·지이(GE)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국토부는 현재 사조위 운영규정상 유가족 쪽이 조사단에 직접 참여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유가족과 조사 과정을 공유하고, 유가족 쪽이 서면 의견을 제출하면 반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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