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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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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시작, 브랜드로 탄탄하게

‘불안’을 ‘브랜드’로 승화하는 디자이너 김태일의 플레이리스트
등록 2024-11-22 19:51 수정 2024-11-29 18:00
브랜드 디자이너 김태일씨. 김태일 제공

브랜드 디자이너 김태일씨. 김태일 제공


 

얼마 전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내 이름에 브랜드라는 도장을 찍기로 한 것이다. 브랜드란 대체 무엇일까? 단순히 로고와 명함, 홈페이지로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것.

다이스앤플라이 제공

다이스앤플라이 제공


브랜드 디자이너 김태일님을 찾았다. 그가 운영하는 스튜디오 이름 ‘다이스앤플라이'에서부터 그의 브랜드가 드러난다. ‘다이스'(주사위)와 ‘플라이'(파리). 누리집을 보면 주사위를 든 파리가 성가시게 날아다닌다. 유행만을 좇는 기회주의적 브랜드를 만들지 않겠다는 신념을 왼팔에 타투로 새길 정도다. 중국 칭화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유튜브 채널 EO(이오·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과 기회(Opportunities)를 뜻하는 영어단어 첫 글자를 줄인 약어) 초기 멤버로 일하다 로고, 명함, 웹페이지 등 사업을 시작할 때 회사 소개에 필요한 모든 디자인을 기획, 제작하는 브랜드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

―EO 영상 피디(PD)로 시작해서 어떻게 브랜딩을 업으로 삼게 됐나요.

“EO에서 피디로 일했던 첫 1년은 천직을 찾은 기분이었어요. 조회 수 백만도 찍어보고, 창작 자체가 큰 행복이었죠. 그런데 유튜브 환경에서 경쟁하려면 ‘어그로'를 잘 끌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창작자의 진심이 희석되는 걸 보며 불안감이 생겼죠. 팀원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곤 했는데, 한 분이 ‘반딧불'이란 별명을 지어줬어요. 환경이 변화할 때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게 반딧불이래요. 그만큼 콘텐츠의 결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브랜딩이 중요하다고 계속 주장하다 EO에서 결국 제 인생 첫 번째 브랜딩 기회를 얻게 됐죠.”

태일님이 말을 이어갔다. “신나서 행성 콘셉트로 브랜드 세계관을 그리고, 팀원과 인터뷰이 캐릭터도 한땀 한땀 수십 개를 만들었어요. 지나고 보니 정성만 강조했고,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위한 확장성을 고려하지 못한 첫 실패였어요. 이때 디자인의 기본기에 대해 자극을 받았죠. 실력 있는 디자이너라면 복잡한 그림이 아니라, 도형 하나만으로도 이른바 ‘화려하면서 심플한' 디자인을 가능하게 해요. 독립한 뒤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지금은 정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담는 브랜드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어요. 결국 디자인이란 오래 변치 않는 브랜드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저는 이걸 브랜드의 ‘일치성'이라고 불러요.”

―‘브랜드의 일치성’이란 뭘까요.

“내가 더 오래, 멀리, 넓게 경험했으니, 당신을 더 오래 즐겁게 해주겠다는 매력이요. 유행과 상관없이 한 분야를 깊게 파는 우직함이 일치성 높은 브랜드의 특징이죠. 이런 브랜드는 독특한 오라(기품)로 ‘너도 이 삶의 방식에 동참하고 싶지 않니?'라는 느낌을 전파해요. 브랜드가 제시하는 궁극의 세계에 도달하고 싶은 상상력을 자극하죠. 한편 포용적인 사람일수록 유행하는 이것저것에 관심이 있다보니 흔들릴 때가 많아요. 제 강점은 일치성을 논리적으로 잡아내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클라이언트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쉽게 타협하지 않으려고 해요.”

―‘이것저것 관심’이라는 말이 참 찔리네요.(웃음)

“브랜딩이 중요한 건 최초의 비전을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너무 이상만 추구하면 아예 시작을 못하기도 해요. 팁을 드리자면, 3년 이내에 이룰 목표를 상상하면 자연스럽게 실천 가능한 브랜딩이 돼요. 결국 일치성의 본질은 내가 내건 말을 현실로 만드는 거니까요.”

김수진 컬처디렉터의 목표를 형상화한 브랜드 이미지. 다이스앤플라이 제공

김수진 컬처디렉터의 목표를 형상화한 브랜드 이미지. 다이스앤플라이 제공


한 달 전, 태일님에게서 최종 작업물을 받았다. 3년 뒤에 테크놀로지와 문화예술을 결합한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개최하는 내 모습이 생생한 브랜드 디자인으로 구현됐다. 이제 말한 것을 지키면서 내 일치성을 완성할 일만 남았다. 다이스앤플라이에서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누군가의 불안감이 단단한 브랜드로 승화되고 있다.

김수진 컬처디렉터

김태일(@diceandfly.studio)의 플레이리스트

The Futur(프랑스어로 ‘미래’라는 뜻)
https://www.youtube.com/@thefutur/featured

이 채널을 보면서 크리에이티브와 비즈니스의 결합에 대해 영감을 얻어요. 작업자들이 흔히 장인정신에 빠져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버리기 쉬운데, 자기 정체성을 지키면서 세상과 시장을 대하는 법을 코칭해주는 채널입니다.

장석종
https://www.youtube.com/@fashionfighting

엔터테인먼트와 트렌드 리서치가 동시에 가능한 채널입니다. ‘킹받음’과 유익함이란 측면에선 패션계의 ‘침착맨’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네요.

츠미 tsumi
https://www.youtube.com/@tsumi_chan

하우스, 이디엠(EDM) 등 여러 음악 장르와 서브컬처 오에스티(OST)를 섞은 믹싱이 진국인 채널입니다. 취향에 맞는다면 도파민 수급으로 최고!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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