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 땀이라도 한 바가지 흘리고 찬물 목욕을 하면 조금 시원해질까? 이열치열을 실천하면 더위가 내 용기에 놀라 조금 물러서지 않을까? 뜨거운 복달임 음식을 먹으며 땀을 내어 더위와 한판 붙어보자. 우리 선조들도 여름 복달임 음식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음식을 최고로 쳤다. 당장 복날이면 어김없이 동네 크고 작은 음식점은 삼계탕을 메뉴로 내놓고 우리는 그런 음식점에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다 차례가 되면 펄펄 끓는 뜨거운 뚝배기에 고개를 박고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먹지 않는가.
복달임 음식은 보양의 의미가 크다. 음력 6월과 7월 초복에서 말복 사이에는 연중 가장 더운 날씨가 지속된다. 이즈음엔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물놀이하고 허해진 기운을 보하려 보양식을 먹었다. 이 보양식은 대체로 소·개·닭 등의 육류나 민어·전복 등 제철 생선이었다. 해가 길어 노동시간은 길지만 먹을 것은 변변하지 않았으니 더운 노동을 지속하기 위해 고단백 영양 음식을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도 옛사람들처럼 보양식을 찾아 먹어야 할까? 오히려 덜 먹고 체중을 줄여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그러니 올해 복달임 음식은 조금 가볍게 준비하자.
나는 2021년 3월 고기 먹기를 끊었다. 우연한 기회에 소·돼지·닭이 사육되는 환경을 알게 됐다. 그 동물 대부분은 인간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기 위해 쉼 없이 임신·출산을 반복하며 참혹하게 사육됐고, 환경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다. 축산업으로 인한 환경파괴도 문제지만 다른 생명체를 이렇게까지 괴롭히며 고기를 먹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그러던 중 한 환경포럼에서 작가이며 뮤지션인 요조씨가 실천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미미하지만 나 한 사람이라도 덜 먹자는 취지로 고기 먹기를 끊었다. 조금이라도 덜 먹으면 조금이라도 덜 동물이 희생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육류를 먹지 않는다.
그때부터 여름이면 으레 먹던 삼계탕이나 백숙을 먹지 않는다. 고기를 안 먹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좋아하는 삼계탕을 먹지 못하는 것에는 약간의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삼계탕을 먹지 못하니 이보다 더 나은 음식으로 여름 보양식을 해먹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들었다. 육류를 끊고 첫해 여름에는 깨끗하게 손질한 민어를 한 마리 사서 회, 전, 탕 등을 만들어 동네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먹을 만한 민어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동네 친구를 불러 같이 먹으니 크게 사치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작년에는 금태를 한 마리 사서 레시피를 찾아가며 금태솥밥을 했다. 금태도 가격이 만만한 생선이 아니다. 이쯤 되니 채식지향자는 육식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써야 제대로 된 식사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믿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마침내 올해는 보양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기분 좋게 복달임 음식을 하고 동네 친구와 나눠 먹으며 사람으로 복달임해보자고 생각했다.
올해 복달임 음식은 평소에도 종종 해서 동네 친구들과 나눠 먹은 음식 채개장으로 정했다. 채개장은 육개장에서 육류를 뺀 음식으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자주 해먹는 대표적인 국물 요리이다. 채개장을 해먹기 시작한 이유는 국물 음식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고기를 끊은 이후 가끔 먹던 뜨끈하고 얼큰한 해장국도, 진한 육수로 맛을 낸 국수도, 하다못해 조미료 맛이 강한 음식점의 부대찌개나 김치찌개도 먹을 수 없으니 국물 음식에 대한 갈증이 났다. 그래서 채식인이 자주 해먹는다는 채개장을 끓이기 시작했다. 채개장은 얼큰한 국물 음식에 대한 나의 갈증을 씻어줬다.
채개장의 핵심은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들깻가루 양념에 버무린 채소를 뭉근한 불에 오래 끓여 채소의 다양한 맛이 우러나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냉장고의 채소칸과 냉동칸에서 할 일을 잃고 헤매는 다양한 채소를 구원할 수 있는 음식이다. 얼큰하고 맵게 먹고 싶다면 끓는 마지막 단계에 고추기름을 넣고 먹기 전에 청양고추를 얹는다. 어떤 채소를 넣어도 상관없지만 고사리와 대파 그리고 숙주는 꼭 넣어야 한다. 부드러워진 고사리는 고기와 비슷한 맛을 낸다는 것을 고기를 끊고 알게 됐다.
조리법은 간단하다. 채소를 손질한 뒤 한 차례 데치고 이를 된장 4, 들깻가루 2, 고춧가루 1, 고추장 1의 비율로 만든 양념에 버무려 들기름에 살짝 볶고, 물을 붓고 폭폭 끓이면 된다. 맛을 더 좋게 하겠다고 특별한 육수를 낼 필요도 없다. 물에 다시마 한 장이면 된다. 다양한 채소와 된장이 국물 맛을 풍성하게 한다.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다시마는 건져내고 중약불에서 충분히 끓이자. 부족한 간은 가급적 한식 간장으로 한다. 채소에서 다양한 맛이 우러나 깊고 동시에 담백한 맛을 낸다.
이것은 내 방식일 뿐 채개장을 끓이는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채소 종류를 바꿀 수도 있고 된장과 고추장, 고춧가루의 비율을 달리해 자기 입맛에 맞출 수도 있다. 데치는 과정을 생략하고 제시된 모든 양념을 한꺼번에 채소와 버무려 끓여도 된다. 요리에 정석은 없다. 하면서 자기 입맛에 맞는 양념과 조리법을 찾으면 된다. 마라탕을 좋아한다면 고추기름 대신 마라탕 소스를 넣으면 될 것이다.
처음 한두 번 이상한 맛이 나기도 하지만 몇 번 시도하면 자기만의 맛을 만들 수 있다. 레시피에 의존하지 말고 기본만 머리에 넣고 내 감각을 사용하자. 내가 만드는 채개장도 할 때마다 조금씩 맛이 다르다. 충분한 맛을 내려면 많이 하는 게 좋다. 그러니 큰솥에 끓여 며칠 나눠 먹거나 친구들에게 선심을 쓰자. 육류가 들어가지 않아 많이 먹어도 속이 편하다.
뜨끈한 국이면 별 반찬이 필요 없지만 서운하다면 제철을 맞은 가지나물과 오이지무침을 같이 올리자. 가지로 다양한 음식을 할 수 있지만 나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밥 위에 얹어 찐 가지에 간장양념(간장 1큰술, 물 1큰술, 청양고추 1개, 마늘 1알, 참기름 1/2큰술, 깨소금을 모두 섞는다)을 얹어 먹는 방법을 좋아한다. 방법이 간단하고 양념장에 따라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
오이지는 씻어 얇게 썰어 30분 정도 찬물에 담가 짠맛을 뺀다. 짠맛이 빠진 오이지 한 개를 꽉 짠 뒤 무침 양념(고춧가루 1/2큰술, 청양고추 1개, 마늘 1알, 깨소금과 참기름 약간)을 넣어 무친다. 이때 고춧가루를 먼저 넣어 색을 입히고 참기름과 깨소금은 마무리할 때 넣는다.
밥은 강낭콩을 넣은 솥밥을 한다. 솥밥을 조금 더 잘하는 방법이라면 중강불로 시작해 밥물이 자작해지면 약불로 13분, 마지막 30초 정도는 불을 다시 세게 올려 남은 수분을 날리는 것이다.
못 먹던 시절에는 계절 보양식을 찾아 먹어야 그나마 건강이 유지됐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풍성한 지금은 굳이 보양식을 찾아 먹지 않아도 된다. 대신 음식을 핑계로 사람을 만나자. 큰솥에 채개장을 가득 끓여 친구를 불러 같이 먹자. 혼자 모든 음식을 준비하기 버겁다면 친구들에게 반찬 한 가지씩만 들고 오라 하자. 그리고 둘러앉아 먹자. 올여름 복달임은 사람이다.
<채개장 끓이기>
4인분, 물 2ℓ
재료: 삶은 고사리 800g, 대파 5대, 숙주 200g, 얼갈이 400g, 버섯 200g(표고나 느타리 뭐든 상관없다)
양념: 된장 8큰술, 고추장 2큰술, 들깻가루 4큰술, 고춧가루 2큰술, 고추기름, 청양고추, 간장, 마늘, 들기름
국물용 재료: 다시마 사방 5㎝ 세 장
1. 모든 채소는 손질해 5㎝ 길이로 썰어 각각 데쳐 물기를 짠다.
2. 데친 채소에 된장·고추장·고춧가루·들깻가루를 넣고 버무린다.
3. 양념에 버무린 채소를 들기름에 볶고 물을 붓고 다시마도 넣어 뭉근하게 끓인다.
4. 국이 한소끔 끓으면 들깻가루를 충분히 넣는다.
5. 마지막에 입맛 따라 마늘과 고추기름을 넣고 부족한 간은 한식 간장과 소금으로 한다.
6. 먹기 전에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얹어 매운맛을 추가한다.
<가지나물찜>
재료: 가지 1개
양념장: 한식 간장 1큰술, 물 1큰술, 청양고추 1개, 마늘 1알, 참기름 1/2큰술, 깨소금, 고춧가루 약간
1. 씻어서 물기를 뺀 가지는 길게 4등분 하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밥을 뜸 들일 때(밥 불을 줄일 때) 밥 위에 얹어 찐다.
2. 찐 가지 위에 취향의 양념장을 살짝 얹어 먹는다.
<오이지무침>
재료: 오이지 1개
무침양념: 고춧가루 1/2큰술, 청양고추 1개, 마늘 1알, 깨소금과 참기름 약간
1. 오이지는 씻어 얇게 썰어 30분 정도 찬물에 담가 짠맛을 뺀다.
2. 짠물이 빠진 오이지를 꽉 짠 뒤 양념을 넣어 무친다. 이때 고춧가루를 가장 먼저 넣어 색을 입히고 참기름과 깨소금은 마무리할 때 넣는다.
윤혜자 출판기획자, 육류를 먹지 않는 페스코 베지테리안,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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