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7년차 회복 중인 약물중독자입니다. 인생을 돌아보면 쾌락에 젖어 방황과 두려움으로 어두운 방구석에서 보낸 시간을 회상하는 것이 힘들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중독의 무서움을 알리고 중독자에게 회복 메시지를 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려서 어머님과 누나들이 있는 가정에서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혼한 형에게 폭력을 당하는 날이 많아졌고 부모님은 나를 부산으로 전학을 시켰습니다. 시골 학교에선 항상 인정받던 나였지만 큰 도시에서는 영락없는 촌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가족을 원망했고, 문제아가 돼갔습니다.
학교에선 이른바 노는 아이들과 어울렸습니다. 술, 담배, 아티반 같은 약물을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부산 서면 유흥가가 밀집한 지역 주변 빈민가에서 살았는데, 약물 하는 사람을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필로폰도 사용했습니다. 필로폰에 대한 호기심이 항상 있었고 별다른 죄의식이나 두려움은 전혀 없었습니다.
한동안 약물을 끊고 지냈습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뒤 곧바로 군대에 갔고, 제대 뒤 연로한 어머님과 가족의 기대가 있고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 남들에게 지는 것이 싫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돈으로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로는 큰돈을 벌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지도 않던 돈이 나를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생활고에 힘들어하던 친구들이 한두 명 찾아오면서 도와준 답례로 전해준 필로폰을 다시 하며 인생이 나락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일도 어려움을 겪게 됐습니다. 점차 뒤처진다는 조바심과 불안함에 약물로 위안과 편안함을 찾는다고 합리화하면서 약물 하는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결국 단속에 적발됐습니다. 이후 구치소에서 알게 된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서 약물 유혹을 받으며 더더욱 약을 끊을 수 없었습니다.
출소 뒤 남은 삶을 영원히 중독자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타인에 대한 불신, 단속에 대한 불안, 범죄자라는 낙인, 가족관계 단절 등으로 발버둥 쳤습니다. 약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에 더 깊은 수렁에 빠졌습니다. 날짜·시간에 대한 개념 없이 옷 한 벌로 10년 가까이 폐인처럼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 10년 만에 다시 구속됐습니다. 차라리 고마웠습니다. 출소하던 날 어머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10년 만에 약물중독자 중년이 되어 나타난 아들을 어머니는 한눈에 알아보시고 손을 잡으며 어린아이같이 해맑은 미소로 “밥 먹었나?”라고 물어봐주셨습니다. 생전에 본 마지막 모습입니다. 국립부곡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중독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중독이 이런 거구나’ ‘나도 저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비로소 치료진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들였습니다. 1년 만에 퇴원했습니다.
퇴원 뒤 식당에서 배달일을 했습니다. 사회적응을 위해 대리운전일까지 하다보니 친구·가족 모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하고 받아줬습니다. 또 나 자신의 회복을 위해 부산 NA(약물중독자 자조모임) 모임을 만들어 봉사했습니다. 2009년 대학교 중독재활복지학과에 진학해 중독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사회복지사 1급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중독 분야에 취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 어디에서도 중독자 출신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당시 내가 넘어야 할 것은 중독자에 대한 편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복지 석사·박사 과정에 진학했습니다. 지도교수님에게 내가 약물중독자임을 털어놓았습니다. 교수님 도움으로 2019년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경남 김해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알코올중독자재활시설인 리본(Re-born)) 하우스에서 생활지도사로 야간당직일을 했습니다. 2020년 3월 자격증 취득과 함께 당시 폐쇄된 리본하우스를 살려 현재 김해다르크(DARC·약물중독재활센터) 리본하우스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독자 치료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지 13년 만입니다. 사람들이 ‘돈도 안 되고 힘든 일을 뭐 하러 하냐’고 묻습니다. 이 일은 나 자신의 회복에 도움이 되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며, 회복 당사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아직 중독자 당사자에 대한 편견으로 지역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중독 당사자에 대한 편견도 우리가 만든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모범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회복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외로움, 미래에 대한 불안, 초조, 우울 같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부정적인 심리 기전을 해소하지 못한 데서 오는 약물에 대한 갈망입니다. 일반인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이 따릅니다. 그리고 단약(약물을 끊음) 뒤 일상생활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중독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악화하고 만성적인 특성 때문에 점점 더 나빠지고 재발이 반복되는 것이 중독이라는 불치병입니다. 또 개인의 신체·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 국가 그리고 경제적으로 악영향을 미쳐 결국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NA에서는 자신들을 약물중독자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끊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혼자서 끊을 수 있다면 그것은 중독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중독자가 혼자서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다는 자기모순과 교만 그리고 잠깐의 단약으로 회복을 논하며 자신이 중독자임을 망각하기 때문에 재발하게 됩니다.
지난 40년간 정부가 강력한 처벌로 약물 수요를 억제했지만 그 수요는 줄지 않았고 오히려 최근 급속히 늘고 있습니다. 많은 약물중독자가 지속적인 수감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교도소 내에서도 다루기 힘든 재소자로 분류됩니다. 최근엔 20대, 30대 새로운 약물남용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처벌보다는 치료의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러나 전국 21개 지정 의료기관 중 대부분이 제대로 치료를 못하거나 안 하는 실정입니다. 병원 문턱이라도 밟은 약물중독자는 전체 마약사범의 2.4%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 약물중독자들은 치료받을 의료권을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약물중독자를 처벌·비난의 대상이 아닌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와 가족의 인식 전환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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