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기를 지나며 정보기술(IT) 업계는 오히려 성장했다. ‘개발자 모시기’ ‘고액 연봉’ 등의 키워드가 유행하며 취업 시장도 반응했다. 개발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코딩 붐'이 일었다. 정부도 발을 맞췄다. 문재인 정부 시절 디지털 인재 양성을 위한 ‘케이(K)-디지털 트레이닝’(디지털 핵심 실무인재 양성훈련·KDT)을 시작했다. 청년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한 코딩 교육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코딩 교육 업체 가운데서도 단기간 집중 교육을 제공하는 ‘부트캠프’는 수혜가 컸다. 이들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청년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는, 누구나 ‘꿈의 직장’에 개발자로 취업이 가능하다는 마케팅을 펼쳤다. 부트캠프 광고를 보면 현직 개발자가 참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취업 연계까지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취업준비생으로선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하지만 단기간 속성으로 코딩을 배우고 시장에 던져지는 취업준비생이 ‘꿈의 직장’으로 여겨지는 IT서비스업계(이른바 ‘네카라쿠배’)에 들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다. 부트캠프를 수료한 많은 이가 시스템통합(SI) 업체에서 개발자 경력을 시작한다. SI는 쉽게 말해 다른 회사의 시스템 개발을 대신 하는 업체다. SI 업계는 다단계 하도급 문제가 오랫동안 지속된 분야다. 하청에 하청을 주고 그 사이사이에 중개업체가 끼어 있다. 삼성에스디에스(SDS)나 엘지씨엔에스(LG CNS) 등 대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청 구조의 아랫부분에 있는 중소 업체다.
SI 업계의 ‘초급’ 인력이라도 되려면 최소 3년차는 돼야 하지만, 중개업체는 갓 업계에 들어온 신입 개발자를 초급으로 분류해 머릿수를 채운다. 이른바 ‘경력 뻥튀기’ 방식이다. IT 개발자 헤드헌팅 업체 ‘이브레인’의 노상범 대표는 “인력 중개업체에서 신입 개발자에게 앉아만 있으라고 하는 방식이 비일비재하다”며 “이런 식으로 경력을 많이 시작하고 그렇게 SI 생태계는 굴러간다”고 설명했다. 정우재 IT노조 부위원장은 “국비 지원 IT 인재 양성사업은 비전공자를 위한 단기 교육에 그쳐 커리큘럼 전문성이 떨어지고 초급기술자 양성에 사실상 주력하고 있다”며 “이른바 ‘코더’, 즉 저임금 비전문 프리랜서를 배출하는 사실상의 요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SI에서 시작해 네카라쿠배급 IT서비스업체로 이직하겠다는 이들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SI 쪽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보다는 떠나지 못해 있는 선수가 더 많아요. 이쪽(SI)에서 저쪽(IT서비스업체)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되게 많은데 반대 경우는 거의 없기도 하고요.”(노상범 대표) 성장하기도 어렵다. 유검우 IT노조 위원장은 “SI 업계 일 자체가 창의성을 요구한다기보다 고정된 패턴이 있어서 커리어 관리가 힘들다”며 “혼자 현장에 나가는 경우가 많아 가르쳐줄 사수도 없다”고 말했다.
부트캠프에선 취업 이후의 현실적 어려움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취업률과 이전 수료생들이 넘어간 화려한 대기업 명단 등만 강조할 뿐이다. 그 화려함에 이끌려 청년들이 들어온다. 한 부트캠프에서 일했던 김아무개(28)씨는 “개인적으로 교육업체는 마케팅 기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얼마나 마케팅을 잘하느냐에 (매출이) 달려 있다. 교육의 질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트캠프에서 취업을 시켜줄 것이라고 (수강생들이) 생각하는 걸 캠프에서 워낙 잘 파고들고 있지만 사실은 취업을 시켜주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일부 부트캠프에선 모집책을 두고 커미션(수수료)을 준다고 알려졌다. 프리랜서 개발자인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는 “부트캠프에 국비를 쏟으며 청년을 대거 양성하지만 실제로 취업도 어렵고, 취업해도 행복한 삶은 보장하기 어렵다”며 “이런 상태로 계속 달려가도 되는지 물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년 늘어나는 부트캠프 수료생과 항상 인력난을 겪는 SI 업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서로의 영역을 키울 동안 정부는 방치했다. 임소연 동아대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 부트캠프는 SI의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인력만 공급하는 굉장히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유 위원장도 “산업부 스스로 지금 제 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다”며 “SI 프로젝트 품질 자체도 계속 조금씩 떨어지고 있고.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지금은 취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부트캠프가 시작했을 땐 교육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부트캠프와 비슷한 형태의 기관이 처음 등장한 건 2013년이다. 네이버에서 만든 ‘엔에이치엔(NHN) 넥스트'라는 교육기관이다. 김정 코드스쿼드 대표를 비롯해 교육에 관심 있는 개발자들이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고민하며 만든 기관이었다. 2년제 기관이라 학교 형태에 더 가까웠다. 김정 대표는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2016년 코드스쿼드를 창립했다. 2015년 설립된 코드스테이츠도 1세대 부트캠프다. 코드스테이츠는 김인기 대표가 직접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부트캠프에 참여한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에 설립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 코딩 붐이 일어나면서 부트캠프는 확연히 늘었고, 고용노동부에서 KDT 사업 등 부트캠프 지원 사업을 주관하면서 취업률이 중요한 요소로 점차 변해갔다.
다만 부트캠프가 만들어진 근본적 배경엔 IT 업계의 실력주의 문화와 채용 방식 전환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경숙 활동가는 2011년 한 대기업에 입사해 코딩을 처음 배웠다. 해당 기업이 선발한 신입사원들을 현업에 배치하기 전 3개월 동안 강도 높은 합숙훈련을 시켰기 때문이다. 일종의 부트캠프와 비슷한 구조였다. 이런 구조는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노상범 대표는 “요즘 대부분의 회사가 ‘즉시 전력’을 원한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아주 조그마한 회사들도 신입을 안 뽑는다”며 “신입 개발자를 채용한다고 해서 보면 개발자가 아니라 전산관리직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조 활동가는 기업이 이렇게 신입을 채용하지 않는 이면에 IT 업계에 퍼진 과도한 실력주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력만 보고 뽑는다는 블라인드 채용도 IT 업계에서 먼저 시작했다”며 “입사 이후에도 서로 실력으로 쪼고 불태워지는 상황이다보니 신입도 당연히 실력이 있어야 하고 포트폴리오도 기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IT 업계의 성장, 개발자 열풍, 정부 지원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부트캠프 부실 성장’의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김정 대표는 “기업에서 어떤 식으로 채용하느냐에 따라 이쪽 업계는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며 “기업에서 신입인데도 경험한 사람을 뽑으려니까 (부트캠프 같은) 앞 단계가 더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지금은 사실 부트캠프에서 회사가 할 직무교육을 해주고 있고, 회사에서 배울 일을 여기서 미리 배우는 것”이라며 “기업이 먼저 뽑아서 직무교육을 해야 하는데 다 배운 애들만 뽑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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